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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야
박 영 희
1
“인생은……?” 하고 원고지 위에 이렇게 석 자를 쓴 명진의 붓은 더 나아가지 못하였다. 그는 무거운 머리를 원고지 위로부터 문득 바깥을 내어다보았다. 때는 낙조였다. 서쪽에 비스듬히 기울어진 나머지 저녁빛이 아양스럽게 명진이가 앉은 이 이층 위 다다미방 안으로 비치어 들어온다. 명진의 머리는 점점 무거워진다. 펜을 잡았던 손은 힘없이 책상 밑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얼마 후의 명진이는 무엇을 결심한 듯이 다시 책상 앞에 다가앉으면서 붓을 들었다. 그리고 붉어진 그의 눈을 비비고서 글을 쓰려고 한다. 그는 오늘 밤 안으로 이 원고를 마치지 않으면 아니 될 운명에 이른 것이다. 오랫동안 글이고 무엇이고 다 내어버렸던 불행한 문사인 명진이는 삼사 일 전에 N잡지사로부터 원고의 부탁을 받았다. 가난한 명진이에게 잡지사로부터 선금이라도 얼마 주었으면 며칠 들어앉아서 원고를 쓸 동안에 먹을 것을 준비하고라도 글을 쓸 터인데 명진이의 사정을 보아주지 않는 그 잡지사는 원고가 다 끝나기 전에는 원고료를 줄 수가 없다는 까닭에 하는 수 없이 명진이는 고생을 하고라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명진이는 곧 글써 달라는 주문을 거절하고 싶었으나 그에게 그럴 용기가 없었다. 며칠만 들어엎디어서 쓰면 돈 십 원이나 생기는 것인 까닭에 첫째로 그의 생활문제에 있어서 거절할 수 없는 사정이었다. 하는 수없이 쓰기로 결정을 하고 하룻동안 들어앉아 보았으나 배가 고파서 견디지 못하였으므로 그날과 그 이튿날은 알 만한 친구를 방문하고 삼사 일 동안 먹을 것을 얻어 보려 하였으나 결국 성공도 못 하고 날짜만 허비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오늘은 아침부터 즉기살기를 단결하고 들어엎디어서 써보려고 하였다. 원고수집 기한은 내일 아침까지니깐 오늘은 밤이라도 새어서 써야 하게 되었다. 그런데도 더욱이 잡지사에서는 큰 제목을 내어주었다. 그것은 그달 잡지사가 ‘인생문제호’기 때문에 특히 인생문제에 대해서 무엇이든지 써달라는 것 이었다. 명진이는 그 제목이 대단히 어려웠다. 그는 글쓴 전부가 연애에 대해서 많았었다. 사나이와 계집의 다디단 이야기의 소곤거리는 소리를 연한 음률과 부드러운 말로써 노래부르던 부세의 시인이었다. 한 번도 인생문제 전래에 대해서 생각한 일은 없었다. 자기는 가난하면 그럴수록 세상의 물질에 구속되려고는 아니 하였다. 그러다가 별안간 ‘인생문제’라는 광막한 제목이 그를 몹시 괴롭게 하였다.
‘인생은……?’ 이렇게 쓰기를 아침부터 세수도 아니 하고 쓰는 것이 이때껏 원고지를 수십 장이나 버리도록 써보았으나 잘 생각이 나지 아니하였다. 앞에 벌여 놓아 있는 흰 원고지 위에 이리저리로 씌어져 있는 ‘인생은……?’ 하는 수많은 묻는 말은 도리어 명진이에게 묻는 것 같았다.
‘인생은 물처럼 와서
바람처럼 가버리는데……?’
이렇게 명진이는 썼다. 그리고 그는 무슨 큰 발견이나 한 듯이 한번 큰 목소리로 떠들어 읽었다. 바람처럼 나온 생각이 우연히 한 줄 써가기는 하였으나 그리 쉬웁게 물처럼 흘러나오지는 못하였다. 이러자 정오를 고하는 기적 소리는 음침하게 외치고 은근히 사라졌다.
“저 소리는 밥 먹으라는 신호지!” 하고 웃던 그의 친구의 말소리가 생각났다. 명진이는 그때 그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무엇? 밥 먹으라는 신호야? 에끼! 시간 맞추라는 신호지! 자네는 밥만 아나?” 하고 그때 명진이는 친구에게 반문하였다.
“이 사람 자네는 고생을 해도 헛하나? 저 공장에를 좀 가보게! 기적이 울리기 시작해서 ‘으ㅡ-' 할 때이면 공장의 모든 기계는 일시에 뚝 그치고 마네. 죽은 듯이 고요하네. 그리고 직공들은 내 밥 네 밥 하고 다투어 가면서 변또를 먹는 것을 모르나? 직공이 아닌 우리도 정오가 되면 염치없이 배가 고프지 않나? 보게, 식당이나 카페 안에를. 고급 노동자들은 그래도 고기에 계란에, 우유에, 빵에…… 그러니 별수 있나 밥 먹으란 신호지.”
“이 사람, 그러나 점심을 먹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나?”
“허허! 자네 옳은 말일세. 점심값 없는 사람은 그만이지 어떻게? 없는 사람들에게 밥 준다는 신호인 줄 알았던가? 있는 사람더러 잘 먹으라는 신호야. 또 그리고 자네는 시간을 맞춘댔으니 자네는 시계를 가졌나?”
“아무것도 없어…….”
명진에게는 그 기적 소리가 밥 먹으라는 신호도 아니고 시간 맞추라는 신호도 아닌 것을 깨달았다.
“이 사람 없는 놈을 표준하는 세상인가? 모두가 있는 놈들의 것이야! 없는 놈이야 밥을 먹거니 거꾸러지거니 무슨 관계를 하는 줄 알었던가?” 그 친구는 이렇게 말하였다.
“글쎄 표준이야 어떤 놈의 표준이든 저놈의 소리가 나면 누구누구 할 것 없이 배고프기는 일반이겠네그려?”
“그야 없는 놈이라고 배 아니 고픈가? 고프기는 같이 고파 가지고 먹기는 있는 놈만 먹는 세상이 알뜰하지.”
명진이는 문득 지금의 기적 소리로써 엣날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따라서 그는 배가 고팠다. 생각에 몰두하는 것이 길로 다니는 것보다 더 힘이 드는지 오늘은 어제보다 일찍이 배가 고파 온다.
‘밥 먹으라는 신호도 이제는 그쳤다’ 하고 명진이는 또다시 ‘인생이란……?’ 하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아까 쓴 ‘인생은 물처럼 와서 바람처럼 간다…….’를 읽어 보았다. 그러나 명진이는 그 글귀가 너무도 무미한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생각해 보았다.
‘물처럼 사람이 와서 또한 바람처럼 가버리는 인생! 그렇게 허무하기도 하고 그렇게 잠깐 동안인 인생이란 말이지! 그러면 그렇게 짧은 인생이면 어찌해서 볕별 고생을 다 하고 살까!’ 하는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번뜻 생각이 났다. ‘오래 사는 인생이면 모르겠으나 며칠 못 사는 인생이면 왜 좀 잘 살다가 못 죽을까?’ 하는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는 다시 붓을 들었다.
‘인생은 부유(蛭孵)와 같이 짧은데
빈궁은 맹수와 같이 덤비어
짧은 인생은 웃음도 없이 거꾸러졌으며
귀중한 인생은 값도 없이 내어버려졌구나!’
명진이는 이렇게 써보았다. 쓰고 나서 한숨을 한번 쉬고 나니 뱃속에 버티었던 무슨 물건이 내려앉은 듯이 배는 더 고파 온다.
2
시간이 갈수록 두 가지 고민은 점점 명진이를 괴롭게 하였다. ‘인생이란’ 하는 문제와 한가지 원고지 갖다 줄 걱정과 배가 고파서 어찌할 줄 모르는 괴로운 걱정이었다. 해는 다 떨어지고 어둠이 점점 진해져 간다.
‘인생은 거지처럼 공수로 왔으나
땅 위엔 모두가 먹을것…….’
하고 명진이는 “허허” 웃었다. “그런데 나는 배가 고파……” 하고 다시 원고지 위를 보았다.
‘인생이란 것은……?’
하는 글자가 명진이를 보고 웃는 것 같았다.
그는 피곤한 듯이 원고지가 흐트러진 위에가 찰썩 누워 버렸다. 그리고 쑥 들어간 눈을 은근히 감았다. 뱃속에서는 소리를 지르고 머리는 어지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명진이는 무엇을 생각하였다. 그의 눈앞에는 밥, 국, 떡, 과실……이 별안간 쭉 나타났다. 국집에서는 국 끓이는 더운 기운이 무럭무럭 나고…… 밥집에서는 허연 밥이 탐스럽게 놓였다. 그러다가 명진이는 다시 인생문제를 생각하였다.
‘인생은……?’ 하다가,
별안간 딴생각이 났다.
‘……밥과 국은 더울 때 먹어야지.’
또다시 그는,
‘인생은……?’ 하다가,
별안간 딴생각이 났다.
‘……떡 같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몇백 개라도.’
또다시 그는,
‘인생 이란 것은……?’ 하다가,
별안간 딴생각이 났다.
‘……바나나는 구부러져서 들고 먹기에 매우 좋다…… 얼마든지 먹을 것을…….’
또다시,
‘인생 이란……?’ 하다가,
별안간 딴생각이 났다.
‘……사과는 껍질째 먹는 것이 오히려 씹히는 맛이 좋지.’
또다시,
‘인생이란 것은……?’
별안간 딴생각이 났다.
‘……술취한 후에 배〔梨〕 맛이란 참 시원하지.’
그는 스스로 물어 보았다.
‘그래 너 지금 밥을 주면 몇 그릇이나 먹겠니?’
‘지금? 내 세 그릇은 먹을 테야.’
‘과실이면?’
‘과실이야 내 지금 이 당석에서 백 개야 못 먹을까?’
“하하하하……” 하고 명진이는 크게 웃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길거리는 점점 고요하여진다.
‘어서 원고를 다만 몇 줄이라도 써보내야지. 아, 그러나 배가 이다지 고프고야.’
하고 조금 일어나다가 또다시 그 자리 위에 쓰러졌다. 하늘의 별들은 총총하다. 그는 별안간 구수한 냄새를 맡았다. 그러므로 좌우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옆에는 없었다.
‘아! 다다미!’ 하고 그는 다다미 위에 코를 대어 보았다. 다른 때는 모르겠던 것이 지금의 그의 코에는 다다미를 짠 지푸라기의 구수한 냄새가 몹시도 그를 괴롭게 하였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다다미를 혀로 핥아 보았다. 역시 맛은 구수한 지푸라기 맛이었다. 그는 옆에 뜯어진 다다미의 지푸라기를 몇 개 뽑아서 입속에 넣고 씹어 보았다. 그러면서 또다시,
‘인생이란……?
어찌해서 이다지 잔인한 사회를 가졌을까?’
‘사람이 란……
왜 이리 배고픈 때에 먹지를 못할까?’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3
그는 몽롱해지는 인생문제와 한가지로 그의 의식도 점점 몽롱해졌다. 그는 길거리를 지나간다. 처음에 나갈 때는 C네거리라면 서울에서 첫째 가게 넓은 길거리로 나왔고 그때는 사람도 많았는데…… 명진이가 가는 길은 점점 좁아지기 시작하더니 그 길은 명진이 한 사람만이 겨우 걸어갈 만큼 좁아졌다. 그 많던 사람들도 길가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두 줄로 군대처럼 늘어진 것은 모두가 음식물 파는 가가 뿐이다. 끝없이 연해 있는 가가는 멀리멀리 뻗쳐 있었다. 그 가가마다 음식은 산처럼 쌓이었다. 그리고 과실은 썩기 시작한다. 그의 눈에는 길도 아니 보이고 사람도 아니 보이고 가가의 주인도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 이 길거리는 사시(死市)와 같이 고적하였다. 그의 앞에서 점점 좁아지던 길, 별안간 그의 앞을 딱 막고 말았다. 그는 그냥 그 가가의 벌여 놓은 음식 위에 코를 박고 엎드러졌다. 그러자 누구인지 그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었다. 그리고 잡아흔들었다. 그는 깜짝 놀라 눈을 떠 보았다. 또다시 세상은 어지러이 그의 눈앞에서 맴돌고 있다.
“일어나세요!”
하고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네? 누구요! 찾아온 사람은 우리 방에 일이 있는 사람이오?”
“그렇소.”
그때에 명진이는 정신을 좀 차렸다. 그리고 자기를 찾아보러 온 손님을 쳐다보았다.
“잠만 자시유!” 하고 매우 거만스럽게 말을 툭 던지고 말았다.
명진이는 그제야 그가 집주인인 줄 알았다. 그리고 또다시 괴로웠다.
“봐하니 몸이 불편한 모양이니 나는 오래 있지 않고 곧 가겠는데 말씀한 것이나 얼른 주시구료” 하고 윗수염이 빳주하게 난 삼십 전후의 집주인이 말하였다.
“무엇 말이오?”
“집세 말야! 집세! 몇 번째야! 참!” 하고 막 집어 버리는 수작으로
“글쎄! 요새는 돈이 없어서 못 내겠다는데 자꾸 조르면 어떻게 한단 말이오? 좀더 참으시오.”
“나가! 나가요! 지금! 석 달이 되도록 한푼 안 내고― 응!”
“석 달 아니야 열 달이라도 돈만 다 내면 그만이지!”
“무엇! 배짱 퍽 유한데 너 같은 놈은 삼십 원 아냐 삼백 원을 낸다 해도 싫어.”
“에 고약한 놈! 그래 이 밤에 나가라면 어디로 가란 말이냐?” 하고 명진이는 흥분되었다.
“갈 데가 좀 많어서?”
“…….”
“은행소 현관이 모두 비었는데.”
“그래 이놈아! 내가 거지로 뵈니?”
“돈 없으면 거지지 거지는 별놈인가?”
"애! 도적 같은 놈!” 하고 그는 벌떡 일어섰다.
"오냐! 내가 가기는 한다마는 내 짐은 언제든지 내가 찾아갈 때까지 두어야 한다.
“그 걱정이야 해 무얼 하시오” 하고 좀 눅이는 모양이다. 명진이는 늘어진 허리띠를 졸라매고 흐트러져 있는 원고지를 주섬주섬 거두어 가지고 밖으로 나왔다.
‘인생이란……?’ 의문표를 쓴 많은 원고지는 그의 손 안에 듬뿍 쥐어졌다.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길로 나왔다.
길을 걸어가면서 그는 생각한다.
‘공중에 나는 새도 깃들일 곳이 있으되 인생은 머리 둘 곳이 없으리라!’는 크리스트의 말이 생각났다. 그러면,
‘인생은 공중에 나는 새만도 못하고
땅 위에 기어다니는 곤충만도 못한가?’
‘아니다!’ 하고 그는 다시 생각하였다.
‘인생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영장이다.
인생은 이지가 풍부한 동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머리 둘 곳을 새보다 더 좋게 만들어야 한다’ 하고 문득 앞에 위대하게 서 있는 건축물을 보면서 생각하였다.
‘저것 보아라! 저러한 집에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집이 없어.
저 집은 많은 노동자의 손으로 지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나처럼 집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생활을 찾아야 한다. 인생은 정의를 위해서 싸워야 한다.’
그는 이제 큰 문제를 푼 듯이 섭붓섭붓 그의 친구인 A에게로 갔다.
아닌밤중에 명진이는 A를 괴롭게 하였다. 겨우 설렁탕 한 그릇을 얻어먹고 그냥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는 그의 친구에게 다만 쫓겨나왔다는 말과 배고프다는 소리만을 하고 그 외에 모든 것은 말하지 아니하였다.
4
깊은 밤중에 명진이는 일어났다. 그리고 그의 품속에서는 많은 원고지를 꺼내었다. 그 원고지에는 ‘인생은……?’ ‘인생이란·…·?’ ‘인생은 무엇이냐……?’라고 쓴 것이었다. 명진이는 그것을 보고는 스스로 웃었다. 그것을 다 찢어 버리었다. 그리고는 새로이 이렇게 편지를 썼다.
편집인 전
수일 전에 귀하로부터 부탁받은 ‘인생문제’는 오랫동안 생각하여 보았으나 그리 재미있는 해결을 보지 못한 것은 귀하와 한가지 나도 매우 유감으로 생각하는 바이올시다. 그러나 한마디로써 ‘인생문제’에 대한 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 짧게 한마디를 드리려 합니다.
‘나는 현존한 사회에서 두 계급의 존재를 알고 있습니다. 나는 그 계급 중에서 가장 가난하며 자유가 없으며 교취를 당하는 무산계급을 알았습니다. 이 계급의 인생은 이 계급을 위하여 그 발전을 장해하려는 대립계급과 싸움으로써 나의 인생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우리가 우리 계급의 승리를 차지할 때에 우리의 인생문제는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그의 주머니 속에 넣었다. 이것을 잡지사에 갖다가 주려고 하는 것이다.
붓을 막 떼고 나니 새벽의 첫닭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들리기 시작하였다.
“벌써 새벽이로구나! 밤이 인제는 밝았구나!” 하고 그는 중얼거리었다.
(《별건곤》, 192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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