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도 이전에 한국전쟁 북한의 남침과 현대 한반도 전쟁위기 상황을 비판하면서 '좋은 전쟁'보다 '나쁜 평화'가 낫다는 그로티우스의 명제를 제기한 바 있습니다.
최근 문형배 헌법재판소 소장 대행의 블로그 글이 논란입니다. 결국은 문맥의 독해가 문제입니다. 문형배 재판관은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이란 북한을 지칭하는 것이었다고 해명하였으나, 반대자들은 여전히 그것은 유엔군을 지칭하는 것이며, 유엔군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아래 문형배 재판관의 의도를 따라 그 글을 다시 풀어 써 보았습니다. 저는 문형배 재판관이 답한 것처럼 그 주어는 북한이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유엔군 참전'용사들'을 추모하면서, 갑자기 그들을 '자들'이라고 지칭하면서 폄하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문형배 재판관의 블로그 글>
“17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호주 출신 병사 도은트를 비롯한 16개국 출신 유엔군 참전용사들은 무엇을 위하여 이 땅에 왔을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자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좋은 전쟁이란 낭만적 생각에 불과하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깨달음을 몰랐을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룬다면 완전한 통일이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을까?
묘역을 떠나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단어는 <평화>였다.”
<정태욱의 풀이>
17세의 나이로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호주 출신 병사 도은트를 비롯한 16개국 유엔군 참전 용사들은 어째서 한국에 와서 그들의 꽃다운 생명을 바쳐야 했을까?
한국전쟁을 다시 생각해 본다. 북한은 미 제국주의로부터의 해방과 통일을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소위 '정당한 전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명분이라도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루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좋은 전쟁이란 낭만적 생각에 불과하다는, 인류의 보편적인 깨달음을 몰랐던 것일까?
전쟁의 방법으로 통일을 이룬다면 완전한 통일이 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들은 어째서 몰랐던 것일까?
묘역을 떠나면서 내 머리를 떠나지 않는 단어는 <평화>였다. 소위 '좋은 전쟁'은 '나쁜 평화'보다 좋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