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 답사 보고서
*답사기간 : 2008. 2. 25 ~ 3. 1 * 답사지 : 러시아 연해주 동북아평화기금의 활동지
1. 무엇을 보고 싶어 우수리스크에 갔는가?
1) 동북아평화기금(이하 동평)의 활동상을 실재로 보고, 영주교육생태마을과 연해주 고려인마을과의 교류협력 가능성과 가망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2) 에듀코빌리지의 피스캠프를 연해주에 만들 수 있겠는가, 그 방법은 무엇인지 알기 위해.
3) 연해주에도 생태마을을 만들 수 있겠는가.
2. 여행의 줄거리
이 번 여행의 출발지점은 어디인가? 속초에서 배를 타고 자루비노항까지 갔으니 출발지는 속초라고 해야지만, 속초를 가기위해 나는 아침7시반에 집을 나섰으니 나의 집을 출발지로 해야 하지 않는가. 그 집에 오기까지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가. 나의 출발지는 어디인가?
남북이 통일되기 전까지는 외국에 나가지 않겠다고 혼잣말을 하고는 했는데, 무엇이 나를 러시아령 연해주에 가도록 했는가. 무엇일까? 이 질문을 하면서 배에 올랐다.
에듀코빌리지와 만난 사건. 이것이 나로 하여금 외국여행을 하도록 이끌었다. 그렇다면 이 만남이 이번 여행의 출발점인가. 아니다. 9년 전에도 우리는 만났었고, 같이 꿈을 꾸기도 했다. 에듀코빌리지와의 만남은 이미 9년전에 아니면 그 이전에 이미 예정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출발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기억하지 못하므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우리는 꿈을 꾸고 있다. 그 꿈이 우리를 만나게 했고, 우리를 여행하도록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 꿈은 평화에 대한 그리움이고, 평화롭게 살려는 굳센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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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초를 바라보며 나는 속초를 떠났다. 배들은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도착한 곳은 자루비노항이다. 이미 아침해는 바다위로 솟아 올라왔다. 배에 탄 사람은 밤새 흔들렸는지 부스스한 얼굴로 하선을 준비한다.
<밤을 지나 배를 내리는 연해주 땅이다. 두만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땅덩어리>
우수리스크 미하일로프에 있는 우정마을까지는 여덟 명이 함께 간다. 동평의 스텝과 장기봉사자들 그리고 어학연수를 하려는 학생들이다. 내 짐은 달랑 배낭과 가방하나이지만 우리들 무리의 짐은 꽤나 많다. 고려인 농가에 지원할 착유기, 누가 기증했다는 노래방기기 등 박스가 많았다. 짐 때문에 통관이 늦어졌다. 끝내 착유기는 배에 다시 실었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을 가로막는 국가와 국가의 벽은 내 앞에 드러났다. 세관에서 시간을 끄는 동안 누군가 와서 빨리 버스를 타라고 재촉을 했다. 알고 보니 승객 중 한 명이었다. 우수리스크로 가는 직행버스는 40분 이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어릴 적에도 시골에서는 사람이 다 올 때 까지 버스가 기다려 주고는 했었다. 뒤늦게 버스에 탔다. 아무도 원망을 하는 사람은 없다. 러시아에서는 시간이 늦어지는 것에 익숙해진다고 동행중 한 사람이 말해 준다.
버스는 시골길을 털털 거리면 달렸다. 아스팔트 포장길을 달리다 보면 어느새 흙길, 또다시 흙길이다. 버스 안 풍경은 한국의 지방도시와 지방도시를 연결하는 직행버스의 모습 그대로이다. 내가 탄 버스도 경기도에서 운행하던 직행버스. 한글 안내문이 그대로 달려 있다. 타고 있는 사람들도 한국사람과 얼굴이 같은 고려인이 대부분이다. 버스 기사가 배가 불룩한 백인, 버스 안에 매캐한 먼지 내음이 퍼진다는 것이 낯설 뿐이다. 그러나 창밖에는 남한에서 보지 못한 풍광이 펼쳐진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하지만 처음 보는 풍광이다. 넓게 펼쳐진 들판, 평평한 땅에 멋대로 자라난 참나무 숲, 마음대로 자라다가 말라버린 풀들, 밋밋한 산.
<마구 흔들리는 버스에서도 사진을 찍고 싶었다>
<자루비노에서 우수리스크까지 차선이 있는 포장도로는 많지 않았다>
우수리스크 시내에서 버스를 내려 우정마을로 가는 봉고차를 탔다. 30분도 안가서 우정마을에 도착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에서 고려인정착지원을 위해 3천호를 짓기로 약속하고 시작한 사업은 30호를 짓고 중단되었다. 이 마을에 동평은 센터와 스탭들의 주택을 더 지었다.>
<우정마을센터 ‘그루터기’현관에 걸려 있는 김봉준화백의 걸개그림. 동평은 다인종 다문화 평화공동체로 사는 마을 만들기에 힘쓰고 있다.>
이 마을을 하늘에서 내려 보면 넓은 벌판에 점 몇 개를 찍어 놓은 듯 할 것 같다. 황량하기조차 하다.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이 ... 넓은 들을 찾아 연해주로 흘러들어간 함경도의 농군들, 일제의 압제를 이겨내는 독립투사들의 평화에 대한 염원들 이것이 모여 한 줄기 찬바람으로 내 가슴을 떨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연해주에서 한 밤을 보냈다. 창 밖이 훤하다. 저 멀리에서 해가 올라오고 있었다. 고개를 들지 않고 얼굴 정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땅이 연해주 우수리스크이다. 방안에서 일출을 감상했다.
김현동사무처장과 함께 순얏센 고향마을에 가보았다. 고향마을은 과거 소련의 협동농장 소포즈가 있었던 곳이다. 주민들은 마을에 모여 살며 협동농장에 일하러 다녔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협동농장도 없고 순얏센의 주민들은 텃밭농사를 지으며 미하일로프군 소재지나 우수리스크 시내에 있는 직장에 다닌다고 한다. 고향마을은 농장부지에 있던 건물을 고쳐서 만들어 가고 있었다. 스물이나 서른정도의 가구가 모여서 살며 자연농업을 중심으로하는 생산기반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우수리스크 일대가 그렇지만 순얏센은 지평선이 많이 보이는 곳이다. 농사를 짓지 않고 묵히는 땅도 많았다. 곳곳에 검게 탄 풀밭이 녹은 눈 사이로 보인다. 겨울에 불을 질러 나무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곳곳에 소련 협동농장의 유해가 있다. 고향마을은 이 터전위에 새롭게 평화와 상생의 마을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이다. 넓은 땅에 비해 일할 사람과 물자가 부족하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순얏센 고향마을에는 캠프장을 조성하고 있다. 내가 갔을 때에는 스텝들과 손님들의 숙소를 만들기 위해 마루바닥위에 엑셀 파이프를 깔고 시멘트공구리를 하고 있었다. 할 일이 지천에 깔려 있었다.
<고향마을 농장 안에 있는 호수. 러시아인 가족이 얼음낚시를 하고 있다. 이 호숫가에 대규모로 텐트를 칠 수 있는 야영장을 만든다고 한다. 왼편으로 참나무 숲이 보인다. 마치 산 같다. 구릉지에 있는 숲이 바람을 막아 준다.>
고향마을 농장부지에는 개인 소유지도 있다고 한다. 소련 붕괴 후 농촌의 생산력이 극도로 떨어지자 정부는 토지를 개인에게 분배했다. 중국의 개방정책의 영향인 것 같다. 분배 받은 사람은 매년 일정의 세금을 납부하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짓지 못하고 세금만 내다가 반납하였지만 어떤 이들은 계속 세금을 냈다. 이 정책은 몇 년 지나지 않아 중단되었다. 그 때 까지 세금을 내던 사람들은 개인소유를 인정받게 되었다. 이런 토지를 ‘파이’라고 하는데, 이 토지가 매매되고 있었다. 동평도 이 토지를 매입하여 스텝들과 친구들에게 분양을 했다고 한다. 김사무처장은 이곳에 스텝들과 친구들의 집을 지을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우정마을 근처에 있는 9헥타르의 파이가 2천달러에 팔겠다고 나와 있는 것을 보았다.
새롭게 만들고 있는 마을 입구에 있는 순얏센마을은 낡고 가난해 보였지만 평화로웠다. 길에는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자동차가 없는 사람들이다. 20킬로미터 정도는 묵묵히 걸어 다닌다고 고려인 송슬라바는 말한다. 반면 고려인들은 2킬로미터도 안 걸으려고 한단다. 일상에서 다섯 시간을 걷는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삶의 속도와 깊이는 어떠할까.
우수리스크의 농가는 개인소유로 매매할 수 있다. 순얏센의 경우 주택은 1만달러 정도에 매매된다고 한다. 최근 집 값이 급격히 오르고 있단다. 주택에는 1000평 정도의 텃밭이 딸려 있다. 반면 아시노브까에 있는 송슬라바의 집은 주택2채와 텃밭 1500평인데 10만루블에 샀다고 한다. 우리돈 4백만원이다. 순얏센이 우수리스크 시내에 더 가깝기 때문인가.
농가에 비닐하우스가 있으면 고려인의 집이라고 보아도 된다고 한다. 동평의 자연농업교육을 받은 고려인들의 집이다.
자연농업을 하고 있는 농가 중에서 모범적이라고 할 수 있는 몇 집을 방문하였다. 이 날 만난 고려인들은 행복해 보였다. 그들은 다시 시작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꿈을 꾸는 사람들이었다. 사람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데 나이는 무관하다는 것을 이 고려인들이 보여 주었다.
<심발로자씨는 돼지와 닭을 자연농법으로 기른다. 텃밭농사를 하고 돼지를 팔아 생계를 꾸려간다. 돼지는 없어서 못 팔정도이다. 아직은 밭이 작아 사료를 사서 먹인다. 꿈이 있는 노인을 만나면 기운이 난다.>
겨울이 상대적으로 추운 우수리스크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었다. 그러나 심발로자씨의 돼지막은 별도 난방을 하지 않아도 따뜻했고 냄새도 없었다. 1미터이상 두껍게 깔아 놓은 톱밥이 발효하면서 열을 내고 돼지의 먹이도 되는 것이다. 닭들도 사람을 피하지 않고 활기차게 먹이를 쪼아대고 있었다. 가축과 집주인이 서로 넘치는 기운을 주고 받는 듯 했다.
개별농가는 적정 규모의 돼지와 닭을 키우고, 이 농가들이 힘을 합쳐 사료를 자급할 수 있는 밭농사를 짓고, 더 많은 농가들이 모여서 축산물가공공장을 만들어 자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동평도 이 방향으로 나간다고 한다. 고향마을이 그 첫 번째 모델이 될 것이라고 한다. 돼지 100마리 정도의 축산을 시작하는 초기비용은 대략 3만달러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돼지막을 짓고 돼지를 사고 필요한 사료를 사는데 드는 돈이다. 이런 농사를 하면 1년에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지는 알아보지 않았다. 연해주에서 돈을 벌어 한국에서 쓰겠다고 생각한다면 연해주에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연해주에서의 새 삶을 살기에는 충분하다고 한다.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새로운 꿈을 꾸며 긴 겨울날에는 아내와 함께 초두부를 해 먹는 심발로자씨가 보여주고 있다. 젖소나 양을 방목하고 젖을 짜서 유가공품을 만들어 파는 것도 연구해 볼 과제이다. 한국에서 유기축산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급사료를 충당할 땅이 없다.
<닭을 키우며 사는 박발로자씨. 그의 집에는 꽃을 피우는 화분과 태극기가 있다. 그에게 한국은 무엇일까.>
아시노브까에 있는 ‘고려인의 집’을 방문했다. 동평에서 만든 여섯 개의 마을센터중 하나이다. 이곳은 세계청년봉사단(KOPION)이 위탁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 많은 청년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한국어교육사업과 디브이디와 책 대여 사업 정도를 하고 있다.
<농가를 구입해서 그 터에 새로 집을 지었다. 여기에도 1천평정도의 텃밭이 있다. 그 밭에 올 봄부터 농사를 해보겠다고 한다.>
김사무처장은 이러한 센터를 새로 시작하는데 약 1억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그는 이런 마을센터가 더 만들어지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동평이 마을센터를 만드는 일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농가방문을 안내해 준 고려인 송슬라바의 집에 들렀다. 우정마을에 살다가 2년전 10만루블(4백만원)에 산 집이다. 1,500평 정도 밭이 있고 풍광이 좋은 집이었다. 그집은 러시아식 뻬치카로 난방을 하고 있다. 슬라바는 이것을 없애고 구들을 놓고 싶다고 한다. 엑셀파이프 깔고 바닥난방을 하면 이곳에서는 구들이라고 한다. 방안에 재가 떨어지는 것도 싫고 방도 넓게 쓰고 싶어 한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뻬치카는 일 년에 참나무장작 1톤 트럭으로 다섯차 조개탄 두 차 정도가 든다고 한다. 방은 아주 따뜻했다. 그는 여기서 돼지와 닭을 키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연해주에 피스캠프를 마련한다면 이 정도의 농가를 사서 농사지으며 살면서 해나가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수리스크 시내 구경을 했다.
<시내에 최근에 생긴 대형매장이다. 남한과 그리 다르지 않다.>
우수리스크 시내에는 동평의 또 하나의 활동지 고려인 이주 140주년 기념관이 있다. 고려인의 역사와 문화를 일구어 가는 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리모델링작업이 한창이었다.
<고려신문, 역사박물관, 문화사업, 정착을 위한 법률지원사업 등을 여기에서 한다. 비계를 각재로 한 것이 특이하다. 목재 값이 싼가.>
영화극장과 오페라극장을 가보았다. 우수리스크 시청 근처에 있다. 영화관 입장료는 120루블(4,800원)이다. 오페라 극장에는 연극과 음악공연 등이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데 50루블에서 100루블 정도한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온 유명한 공연은 2만원에서 4만원정도의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내부수리중이어서 영화 상영은 없었다.>
<오페라 극장의 공연장 내부는 3층으로 된 원형극장이다. 연극을 리허설하고 있더라.>
정교회를 찾아가 보았다. 그 옆에는 한국장로교회가 있다. 한국교회가 고려인사회를 분열시킨다고 안내자는 분개했다. 교회 나오면 쌀 한가마니를 준단다. 불신지옥 예수천당을 부르짖는 무리들이 거기에도 있다. 러시아 정교회는 화려하고도 장엄했다. 4시에 울리는 성당의 종소리는 시내에 퍼져나갔고 독일 일본과 치룬 전쟁에 참전했던 이들의 넋을 기리는 기념탑 ‘꺼지지 않는 불’에도 울렸다.
시내를 벗어나 발해의 유적과 항일독립투쟁의 유적을 보러 갔다.
<발해의 절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아무런 안내문도 없다. 길가에 자작나무 숲에 주춧돌만 남아 있다.>
강 건너 발해성터가 보이는 곳 솔빈강 옆에 있는 이상설 선생의 유허비에서 기도를 했다. 그 비는 이상설 선생만을 기리고 있지는 않았다. 기도하는 나에게 불어온 강바람은 이 땅에서 살다 죽어간 독립투쟁 전사들의 염원과 그들이 바라본 평화의 꿈을 내게로 전해 주었다.
<하늘로 길이 난 태극문양은 무엇일까. “독립과 평화를 염원하는 혼령들이여 이제 하늘에서 쉬소서. 이제 내가 그 길을 걷습니다.” 이런 기도의 문양은 아닐까.>
발해성터로 가는 길에 길을 걷고 있는 말을 만났다. 내가 탄 차가 갈 때 까지 그 말은 움직이질 않았다. 길가를 오가는 개는 봤어도 고삐 없는 말은 처음 보았다.
발해성터에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었다. 솔빈강을 따라 저 멀리 보이는 산은 중국땅일까. 길에서 말을 만나고 와서 그런지 말울음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다민족 평화상생공동체를 이루었던 발해 아니던가. 지금 우리가 연해주에서 꾸는 꿈은 발해의 꿈이 내려온 것일까. 우수리스크와 블라디보스톡에 모여들었던 독립투사들의 꿈, 일제의 압제를 이겨내고 평화를 이루려던 그 사람들, 황무지를 개간해서 옥토로 일군 농군들 이 들도 발해의 꿈을 꾼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또 여기에서 무슨 꿈을 꾸는가.
<일제에 맞선 독립투쟁가들의 근거지 국민의회 건물. 지금은 우수리스크시가 고아들을 위한 학교로 사용하고 있다.>
<발해성터에서 내려 다 본 평원과 솔빈강>
3. 답사 결과
1) 영주마을과 고향마을이 교류협력할 수 있겠다.
- 고향마을에서 메주를 만들고 영주마을이 된장을 만들면 되겠다. 올해에 소량(100킬로그램 정도)의 메주를 사고 내년 봄에 장을 담궈 보아야 한다.
- 김현동 사무처장은 연해주메주를 브랜드화해야 중국산 저질메주와 차별화할 수 있다고 한다. 에듀코빌리지의 브랜드를 이용할 수 있겠다.
- ‘동북아 평화학교’라는 이름으로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 연길과 백두산을 연결하는 여행경로를 동평이 개척해서 운영하고 있다. 이것과 함께 고향마을에 만들어지는 캠프장도 이용할 수 있다.
- 고려인이 한국여행을 많이 하지는 않지만 고향마을의 고려인이 한국에 오면 영주마을로 올 수 있다.
- 상품교류 이외에 영주마을이 고향마을에 줄 수 있는 것으로 침뜸교실이 있다. 고려인들은 40대에 심혈관계 질환이 발병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당뇨병도 많다. 고려인 스스로 건강을 돌볼 수 있도록 침과 뜸을 가르쳐 주면 좋겠다.
- 잠시 둘러보고 이 정도를 정리할 수 있다면 앞으로 모색하기에 따라서 대단히 다양한 컨텐츠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2) 영주마을보다는 에듀코빌리지가 해야 할 일이지만 피스캠프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동평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 주택및 토지구입, 법적 지원 등
- 피스캠프가 동평과 상호의존관계를 맺어야 한다.
- 우정마을 솔빈문화센터에는 한국에서 어학연수 온 학생 둘이 있었다. 우수리스크 사범대학 부설 어학연수 코스(1년과정)가 주5회 3시간씩 해서 한 달에 4,000루블(16만원)이고, 솔빈문화센터 숙식비가 한달에 20만원이라고 한다
http://educovillage.com/gandhi/?K_Mode=App/k2_board.php&k2_code=yj5&page=1&k2_no=56>
출처:에듀코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