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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 유난히도 무더운 삼복 더위에 잘들지내시는지?
멀리 런던으로부터 주야로 날아드는 "대한 건아들의 승전보"로 그나마 견딜만들 하시죠?
모쪼록 백두산행기를 올리오니 잠시라도 피서에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백두산행기( 白頭山行記 )
이번 서문교회 갈렙산악회의 백두산 등정은 하나님의 보살핌 아래 회장단의 면밀한 사전 준비와 참가자들의 호흡이 잘 어우러진 마치 한 편의 파노라마와도 같이 오래오래 기억되리라. 다녀 온 뒤에 회장님의 명(?)에 따라 마지못해 산행기를 쓴다고는 하였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차일피일하다 보니 어느덧 다녀온 지 한달 이상 지나가 버렸지만, 사진도 보며 기억을 추슬러본다.
제 1 일차 2012년 6월 27일 수요일
새벽기도 후 교회 마당에서 목사님의 기도 후 이번에 함께 하지 못하는 분들의 환송을 뒤로 한다. 이번 산행을 위하여 특별히 산행기간 동안 계속 기도까지 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갈렙산악회에서 애용하는 애마를 일행이 타고, 밤새 준비하신 샌드위치를 나누며 동심으로 돌아간 듯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인천 공항. 올림픽 대로에서 바라보는 한강과 하늘의 푸름은 벌써 가을이 온 듯 쾌청한 날씨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 후 서점에서 백두산 여행 관련 책자를 훑어보고, 아시아나 비행기 편으로 오전 10시 15분에 이륙하여 중국의 장춘 용가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 11시 5분경. 중국이 한국보다 1시간 늦으니 약 1시간 50분이 소요된 셈이다.
장춘 공항에 마중 나온 여행사 가이드인 리문춘씨는 조선족으로 연변대학에서 근무하다 백두산 가이드로 새로운 일을 시작하여 최근에는 중국 호남성의 장가계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 무한도전 여행사의 요청을 받고 우리 팀을 안내하기 위하여 다시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건장한 체구의 40대 중반 남성으로 교회에도 나가고 있단다. 우리 일행이 3박 4일 동안 타고 다닐 차량은 중국인 기사가 딸린 중형 버스인데 옆 자리가 빈 데도 있고 비교적 넉넉한 편이다.
우리 일행은 내일 새벽 백두산 등정의 Base Camp가 될 이도백하의 천상온천관광호텔로 이동하기 위하여 길림 방향으로 이동을 시작한다. 도로변의 간판은 대개 한글이 위쪽에 중국어와 나란히 표기되어 있다. 우리가 탄 버스의 타이어 바람이 빠졌다고 하여 정비소에 들렀다가, “교화고속도로” 휴게소의 “부원활어관”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중국에 도착하여 첫번째 식사이기에 가득한 호기심으로 둥근 탁자에 둘러 앉아 우선 기도를 드리고 커다란 생선요리를 곁들인 식사를 맛있게 한다. 옆 테이블에도 한국에서 온 일행이 떠들썩한 정도를 미루어보아 경상도 아줌씨들 인듯하다.
중국에서는 식당이나 광장 등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서 여럿이 모여 기도를 하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동 중에 발해의 역사를 일련의 대형 석판에 그림과 함께 조각한 공원에 들린다. 동네 아이들이 석판 옆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발해의 역사를 접하니 한편으로 반가운 마음과 함께 “중국의 국경 안에서 전개된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 하려는 연구 프로젝트” 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이동하다 보니 어느덧 저녁 6시가 훌쩍 넘어 조선 음식이 나오는 식당에서 통닭 요리를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고 백두산의 관문인 이도백하(二道白河)에 도착하니 저녁 9시가 지났다.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을 마주하니 백두산에 가까이 온 실감이 난다. 여기서부터 백두산 입구의 천상온천관광호텔까지는 밤이라 우리 전용 버스를 이용할 수 없다고 하여 호텔에 물건을 운반하는 특장차, 즉 식자재 운반 냉장차 ( 짐을 싣는 뒤 칸은 외부에서 볼 수 도없고 밖에서 문을 잠글 수 있게 제작됨 )를 타고 이동한다.
이유인 즉, 최근에 백두산 서파쪽 산불로 일반인의 백두산 등반이 금지된 상황이어서 중국 지방정부 지인의 비공식적인 안내를 받아 호텔로 들어가는 야간 작전^^ 임. 칠흑 같은 짐칸에 쭈그리고 한 삼십분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보니 애꿎은 등산용 의자만 망가지고 랜턴에 의지하며 몸살을 하였어도 모두 동심같이 들뜬 마음으로 추억거리를 만든다.
호텔에 도착, 김경선 집사님과 함께 배정 받은 온돌방에 일행이 다 모여 열 시경부터 기도모임을 갖는다. 개인별로 성경 말씀 – 호세아 11장부터 14장 말씀, 찬송가, 여권 사본 등 인쇄물까지 준비하여 나누는 그 세밀한 준비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역 만리 지금은 중국 땅 백두산 아래에서 여러 장로님, 집사님들과 예배를 드리게 되니 감개가 무량하다. 내일 새벽 출발을 위하여 짐을 미리 싸 놓고 새벽 한 시 경에 꿈나라로~~
제 2 일차 6월 28일 목요일
새벽 산행의 기대와 긴장으로 잠에서 뒤척이고 있는데 벌써 다른 방에서 새벽 4시경부터 김태홍 집사님을 비롯하여 일행이 우리 방으로 모여 들기 시작한다. 날씨는 오늘도 쾌청. 백 번 와서 두 번 날씨가 좋다고 하여 백두산이라고 부른다는 전설이 있는데^^ 기도 덕분인지 더할 나위 없는 날씨다. 문춘씨도 가이드 생활 이십 년 동안 제일 좋은 날씨인 것 같다고 한다. 5시쯤 호텔 앞에서 멀리 백두산과 장백폭포를 바라보며 손을 잡고 둘러서 무사 산행을 위한 기도를 드리고 출발한다.
장백폭포 입구 주변은 노상온천지대라 심한유황 냄새와 서린김이 자욱하고 섭씨 83도에 달하는 뜨거운 온천수로 계란을 노천에서 삶아서 판매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長白山)이라고 부르는데 천지의 물은 북쪽의 화구벽을 뚫고 흘러 장백폭포(높이 68m)가 되고, 이 물은 이도백하(二道白河)를 지나 쑹화강(松花江)으로 유입(流入)된다. 폭포 위쪽으로는 아직도 만년설이 여기 저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장백폭포를 뒤로 하고 드디어 천지를 향하여 출발한다. 달문을 지나 천지수면으로 가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1,360개의 계단을 동반한 콘크리트 터널. 터널 중간 의자에서 잠시 쉬고 계시는 최학생 장로님과 문춘씨를 뒤로 하고 계단을 계속 오른다. 이 터널은 산에서 수시로 낙석이 굴러내리기 때문에 한국 사람인 천상온천관광호텔 사장이 등산객의 안전을 고려하여 축조(築造)한 것이라고 한다. 천지물가로 가는 길에 김영도 변호사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이국적인 풍광을 사진에 담으며 쉬엄쉬엄 도착하니 벌써 6시 반. 천지는 사진으로도 여러 차례 보았지만 그 맑고 넓은 호수 주위를 호위(護衛)하는 2천미터급 봉우리들,
그리고 그 지형의 웅대함과 기이(奇異)함이 가히 한민족의 성산(聖山)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천지는 해발 2,194m, 면적 9,165평방km, 최대폭 3.55km, 평균수심 213m, 최대수심 384m로서 세계에서 가장 깊은 산상호수이자 칼데라호이다. 6월인데도 수면은 살얼음이 덮여 있고, 물고기가 보이지는 않지만 산천어가 서식하고 있다 한다. 백두산은 약 천 년 주기로 대폭발이 있어 왔다는데, 백두산은 10세기에 대폭발이 있었고, 백두산 폭발이 발해 멸망(926)의 결정적 원인이라는 주장도 있다.
천지물가에서 조용히 기도와 찬양을 드린다. 다양한 포즈로 단체, 개인 사진 촬영에 빠질 수 없다. 갈렙산악회 플랜카드도 준비하려고 하였으나 천지에서 태극기나 플랜카드를 펼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한다. 우리 일행이 한국에서 원래 계획하였던 일정은 “백두산 서파 + 북파 종주 트레킹”이었는데, 중국 당국에서 특히 서파 등정을 금지하는 바람에 북파 종주 후에 지하삼림(地下森林)을 거쳐 하산하는 것으로 변경되었다.
백두산 등정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이유가 최근 한국 사람들이 백두산에서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는다든지 한국의 고토(故土)를 상기시키는 일들로 동북공정(東北工程)과 관련, 중국 당국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이제 드디어 현지 산악 가이드와 함께 본격적인 백두산 등반을 시작한다. 경사가 45도는 족히 되어 보이는 너덜바위 지대를 갑자기 올라가려니 땀은 비 오듯 하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현기증이 난다. 손을 발 삼아 엉금엉금 기어가는데도 배낭무게가 더하여 몸이 뒤로 추락할 것만 같다. 부족한 산소에 곧 멈출 것만 같은 숨을 몰아쉬니 어느새 눈앞에는 용문봉(해발2,595m) 정상의 “평원”이 펼쳐진다. 발 아래는 그림 같은 천지와 병풍을 두른 듯 천지를 옹위(擁衛)하는 2천미터를 넘는 16 봉우리들,
그리고 저 멀리 산 중턱에는 천지를 보러 가는 관광객들의 지프차 행렬이 아스라이 보인다. 겨우 숨을 고른 후 모두 둘러앉아 호텔 측에서 준비한 도시락으로 허기를 채운다. 아침과 점심으로 김밥, 백반, 김치, 콩자반, 장조림 등등 도시락이 배낭에 한 짐이다. 또한 정철도 장로님이 장백폭포 입구에서 사오신 온천수에 익힌 계란을 맛본다.
이어서 바로 종주를 시작, 중간에 일반 야영 텐트처럼 보이는 중국군 초소에서 커피를 한 잔씩 사 마신 후 9시가 조금 지난 시각에 출발하여 관일봉(해발 2,510m)을 거쳐 백두산 봉우리들 중 두 번째로 높은 백운봉(2,691m) 정상에 도착하니 10시 반경. 오는 도중 능선의 야생화와 만년설을 배경으로 천지와 함께 사진도 찍고, 이야기도 나누고, 생각에 잠겨 걷느라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백두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장군봉(2,749m)인데 북한 영토에 속해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안타까움과 함께 다음에는 북한을 통하여 장군봉에 오를 것을 기대해 본다. 백운봉에서 신발 끈을 풀고 양말도 벗고 백두산의 햇빛도 쪼이며 근처 약수터에서 떠온 천지 샘물도 나누어 마신다.
이제 다시 관일봉을 거쳐 어느덧 하산길에 접어든다. 정오쯤에 야생화가 만발한 “천상의 화원”에서 점심 도시락을 마저 끝낸다. 발 아래는 끝없이 펼쳐진 들꽃 융단이 일행을 기다린다. 이름 모를 들꽃을 푹신하게 즈려밟으며 한 시간여나 내려갔을까. 앞으로는 눈 닿는 데까지 이어지는 녹색 구릉이 숲으로 일행을 인도한다. 최학생 장로님은 어떻게 아시는지 그 많은 들꽃 이름을 지나면서 일일이 알려 주신다.
그 중에는 석남꽃(노랑만병초의 별칭)이라던지 북한에서도 희귀한 들꽃도 부지기수인데 이 귀하고 아름다운 꽃들을 밟고 지나갈 수 밖에 없음에 한편으로는 꽃들에게 미안하면서도 또한 언제 이런 호강을 다시 누리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천지에서 봉우리들을 올라올 때는 돌산과 바위를 타느라 잘 느끼지 못하였는데. 하산 길에서는 고도의 차이에 따른 식생(植生)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들꽃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피곤한 줄도 모른다.
관목 수림대를 지나니 이제 백두산의 원시림이 나타난다. 길이 나타났다가는 끊어지고 또 나타나기를 수 차례, 심마니들이나 다니는 토끼 길을 백두산 현지 가이드는 용케도 다시 찾아낸다. 쓰러진 고목들이 마치 장애물 경기라도 하듯 연이어 앞을 가로막고, 일행은 풀숲을 헤치며 계속 전진한다. 햇빛조차 잘 들지 않는 원시림을 뚫고 가다 보니 왜 지하삼림(地下森林)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백두산이 분화하면서 생긴 거대한 계곡과 울창한 숲을 중국에서는 “숲의 바다”라는 뜻의 곡저림해(谷底林海)라 부른단다. 한 번은 앞에 가고 있던 일행과 조병하 집사님, 김희수 집사님, 문춘씨 그리고 나를 포함한 일행이 길이 엇갈려 숲 속에서 서로 부르며 헤매다 재회의 기쁨을 맛보기도 한다.
하산(下山) 길의 계곡은 종종 선발대의 종적을 발견하기 어렵게 만든다. 만일 후발대가 계속 계곡을 따라 내려가서 선발대를 만나지 못했다면 휴대전화도 잘 터지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결과가 되었을 지 상상하기 어렵다. 순간의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실감한다. 내려올수록 심해지는 모기와도 전쟁을 치르며 지하삼림 출구에 도착하니 어느덧 오후4시가 훌쩍 지난다.
새벽부터 오후 5시경까지 약 12시간 동안 20여 km의 산행을 일행 모두가 무사히 마친 것도 다 주님의 인도하심과 이 번 산행을 위한 기도 덕분이리라. 하산길이 특히 힘들기도 하였지만 서파를 경유하지 못하고 지하삼림(地下森林)으로 종주한 것이 결과적으로 백두산의 다양한 모습을 더 잘 볼 수 있는 기회가 된 듯하다.
산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천상관광호텔로 돌아와 다들 온천수에 몸을 씻고 저녁식사를 마치니 몸이 천근만근이다. 매일 방 배정을 다시 하는 관계로 오늘은 최학생 장로님과 한 방을 쓰는데 장로님은 피곤하신 듯 바로 취침에 들어가시고, 나도 오랜만에 장백폭포에서 흘러내리는 꿈결같은 물소리를 배경 음악으로 삼아 초저녁부터 잠에 곯아떨어진다.
제 3 일차 6월 29일 금요일
대망의 백두산 등정을 무사히 마치고 오늘도 일행은 새벽에 일어나 5시경부터 소천지(일명 은환호銀環湖)와 녹연담(綠淵潭)을 산책한다. 물이 들어오는 입구는 있는데 나가는 출구는 없는데도 항상 일정한 수위를 유지한다는 은환호에 비친 아침의 산과 나무들의 모습은 실물보다 더 선명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26m급의 폭포들이 떨어지는 녹연담은 마치 옛 동화 속에 나오는 별천지에 들어 온 것만 같다.
아침 식사 후 호텔을 출발하여 용정으로 이동, 독립운동의 산실인 “대성중학옛터”를 방문한다. 지금까지도 학교는 그 옆에 새 건물을 짓고 용정중학교라는 이름으로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한다. 학교 앞에는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져 있고 역사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니 조선족 여교사가 대성중학교의 역사를 잘 정리된 전시물과 함께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문익환 목사, 장준하 선생 등도 이 대성 중학교에서 수학하였다 한다. 일행은 각자 기부금과 함께 방명록에 서명도 한다.
이어서 두만강으로 이동 중에 “연길시 매화구육관”에서 중식. 문춘씨가 이 지방의 유명한 “단고기” 즉 멍멍이탕집을 들러야 한다고 하여 무침, 찜, 전골 등등 조리 가능한 다양한 요리를 즐겼다. 이어 두만강 행. 도문의 두만강 국경선에 도착하니 어느 덧 4시가 훌쩍 지났다. 드디어 중국의 “두만강변 첫 도시”라는 도문시와 북한의 함경북도 남경시를 잇는 도문대교에 도착하여 국경선 다리 앞의 전망대 건물에 올라 북한 쪽을 바라보니 인적은 드물고 산에는 나무도 별로 없는 듯. 중국 쪽과 비교하니 북한은 시간이 과거로 흘러가 정지해 있는 것 같다.
중국과 북한을 잇는 다리는 강 중간까지 중국 쪽에서 접근이 가능한데 국경선인 노란색과 분홍색선 (국경 변경선) 을 한 발이라도 넘을라치면 바로 초소에서 제지를 한다. 마침 북한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일렬횡대로 국경을 넘어 오는데 얼굴에 윤기도 흐르고 겉모습이 멀쩡하다. 트럭도 한 대 건너오는데, 노후 된 차량에 철광석 같은 광물을 실은 듯 까만 배기가스가 자욱하다. 당과 군에 관련된 사람들이나 무역에 종사하는 북한 사람들은 생활도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일행은 국경선에서 땅으로 한 발짝도 더 나아갈 수 없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두만 강변으로 이동한다. 강은 상상하던 것만큼 넓거나 맑지 않고 수영을 웬만큼 하면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을 듯하다. 조선 초기에 남이 장군이 白頭山石磨刀盡(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하였고) 豆滿江水飮馬無(두만강 물은 말이 다 마셔버렸네)라고 읊던 시절의 두만강은 어떠하였을까 생각해 본다.
두만강에서 바로 인접한 광장에는 중국 아이들이 열을 지어 안전모와 유니폼을 갖추어 입고 롤러스케이트를 배우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북한 아이들이 더욱 생각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한민족에 대한 연민일까? “도문강관광부두”의 유람선을 탈까 하다가 생각했던 가격에 비하여 바가지 같아 일행은 광장 옆 Shopping mall에 있는 “Hands Coffee”에서 커피를 한 잔 하며 담소를 나눈다.
다시 오늘 숙박지인 연길을 향하여 이동 중에 버스에서 멀리서나마 산 중턱에 세워진 일송정을 바라본다. 일송정에 있던 우리 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소나무는 그 시절의 소나무는 아니고 새로 심었다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가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는 장뇌삼 사건이 발생한다. 휴게소 안에서 팔던 장뇌삼 가격이 일행이 타고 가는 버스 안에까지 따라오더니 반 이하로 가격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역시 중국이구나 싶다.
가는 도중 연길 교회를 들리다. 중국에는 지하교회도 많다는데 이 번 여행길에 이렇게 번듯한 교회건물은 처음 본다. 도로변에는 “연변조선족 자치주 건립 60주년”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판도 눈에 띈다.
연변에 도착하여 잠시 발마사지로 피곤을 풀고 “순이랭면”에서 냉면과 탕수육으로 식사를 하다. 냉면 그릇이 나오길래 일행이 같이 나누어 먹는 줄 알았는데 개인별로 나오는 양(量)이란다. 저녁 식사를 마치니 어느새 9시가 가까워 온다. 버스에서 모두들 피곤한듯 한 숨 자고 호텔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가 훌쩍 넘었다. 이 번 여행의 최종 숙박지인 연길 컨티넨탈가든호텔은 시설 면에서는 다른 호텔보다 월등히 좋아보인다.
오늘은 조병하 집사님과 룸메이트가 되어 내일 아침 장춘공항에서의 귀국 행을 앞두고 달콤한 잠을 청한다. 이렇게 3박 4일간의 꿈과 같은 여행일정도 저물어 간다. 믿음의 同行에 참여케 하시고, 그리고 이 번 여행을 시종 인도하여 주신 주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일행이 白頭山行을 위하여 준비한 찬송가 중 “참 아름다워라”로 마무리한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솔로몬의 옷보다 더 고운 백합화
주 찬송하는 듯 저 맑은 새소리
내 아버지의 지으신 그 솜씨 깊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아침 해와 저녁 놀 밤하늘 빛난 별
망망한 바다와 늘 푸른 봉우리
다 주 하나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도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저 산에 부는 바람과 잔잔한 시냇물
그 소리 가운데 주 음성 들리니
주 하나님의 큰 뜻을 나 알 듯 하도다. 아멘
감사합니다.
첫댓글 12시간 동안 20여 km를 산행하며 우리 민족의 성산(聖山)을 다녀왔구나.
상세한 기록 잘 읽었다. 성산(聖山)의 기를 받아 많은 복을 받기를.
이회장님!! 감사합니다.
회원의 복까지 기원(祈願)해 주시고,복은 빌어주는 자가 곱으로 받는다 했으니
회장님께서 7배의 복을 받아 곱으로 누리시길...
01시40분...이제서야 산행기를 읽었네~같은 백두산이 건만 어떻게 표현하느냐, 어떻게 갔느냐는 많이 다르군.
안 봐도 본듯 주는 감흥에 잠시 취할 정돌쎄~~그 아스라히 보이던 짚차가 바로 내가 이용했던 짚차..
하나님이 보시기에 매우 흡족하고 사랑스런 자녀들이라 기뻐 하셨을듯 하니, 복을 안 받을 수가 없지.
다음은 또 어느 산행기를 올릴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