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큰 남자
안 종 문
2월 초순의 따사로운 토요일 오후였나 보다. 막바지 겨울 추위가 맹위를 떨치다가 언제 그랬던가? 식으로 풀리던 날이다. 오전 근무를 마치고, 아내와 함께 여지없이 파크골프 운동을 하러 서천구장으로 갔다. 일주일 만에 하는 운동이라 신이 났지만 구장 사정은 복잡했다. 출발 차례를 길게 기다리고 있는 A코스를 포기하고, 그보다 소수의 인원이 대기하고 있는 B코스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전혀 의도하지도 않았던 5번 홀에서는 홀인원을 했다.
6번 145m 롱 홀에 도착했다. 조별 출발 대기 공이 일곱 개나 놓여있었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스물 댓 명이나 된다. 삼삼오오 이곳저곳에서 대화를 나누기도 하였고, 일부는 펜스에 구멍을 파놓은 곳에서 공 넣기를 성공시키는 퍼팅 연습을 하고 있었다. 나도 재빨리 대기 순서 대에 공을 얹어놓고는 무료하지 않도록 퍼팅 훈련에 동참했다. 행운일까? 바로 성공했다.
이를 지켜보던 어떤 떵치 큰 아저씨가 같이 웃어보자는 표정으로 나더러 ‘간이 크네요!’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럿이 듣고 있는데 다소 생뚱맞은 의외의 말이어서 “간이 큰 사람인 줄 어떻게 아셨나요?”고 되물었다. “척 보면 알지요. 작은 체구에 저렇게 키 큰 미인을 데리고 사는 남자라면 알고도 남지요” 순간 나는 멋쩍게 웃기만 했을 뿐 뭐라고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자리 깔아드릴 테니 같이 동업해봅시다”고 재치 있게 응수할 것을.....
동고동락의 동반자로 내자를 택한 것은 사실 간이 큰 선택이었다. 남들이 ‘왜 그랬을까?’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법했다. 나는 중등학교 2년차 체육교사 신분이었는데 내자는 직장 생활을 제법 오래 하다가 뒤늦게 입학했던 대학교 3학년 학생이었던 것이다. 영향력 있었던 윗사람들이나 친척이 소개해 준 것도 아닌 같이 근무하는 학교 아저씨로부터였다.
총각 교사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숙직을 대신하는 날이 많았다. 딴 짓을 하지 않고 체육실에서 공부하는 젊은 교사가 눈에 들었던가 보다. 자신의 늦둥이 대학생 질녀를 소개한 그 분의 말을 순수하게 믿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어떤 아가씨이기에 저렇게 애절하게 소개하시는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한편으로는 세상 물정을 많이 겪어보고 뒤늦게 대학 다니는 아가씨라면 뭔가 깨달은 것도 많을 것이기에 인생에 대한 주관이 뚜렷하지 않겠냐는 막연한 믿음이었다.
돌이켜 보면 내가 ‘간이 크다’는 소리를 들은 것은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일곱 형제 중에 여섯째인 나는 근사한 육군 장교 제복의 둘째 형님 같은 사람이 되고자 열심히 공부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생각해서 그냥 시골 고등학교에 진학했어야 했는데도 가슴에 새겨놓은 청운의 꿈을 꽃피우고자 중3 졸업고사를 치러놓고는 비장한 마음으로 서울로 갔다.
셋째 형님이 직장에 다니면서 넷째, 다섯째 동생들을 고등학교에 공부시키느라 단칸 셋방에 함께 데리고 자취생활 하고 있었던 열악한 사정도 모른 체 오로지 ‘열심히 공부하면 성공한다.’는 신념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런 동생이 기특해서 종로에 있었던 입시 마무리 종합반 학원에 한 달 수강하도록 배려해주었다.
어느 날 셋째 형님은 나의 고등학교 입학원서를 사왔다. 학비가 전액 무료인 철도고등학교 이었다. 내 꿈과 다른 실업계 고등학교 원서에 나는 마치 내가 죽게 되는 마냥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염없이 울었다. 결심했다. 이튿날 학원 수강을 마치고 중3 내내 월간 진학 잡지를 보면서 꿈속에서 그려보았던 K고등학교를 찾았다. 수위실에서 판매하던 입학원서를 사서 돌아왔다.
넷째 형님은 놀랬다. 수재들만 입학한다는 우리나라 제일의 고등학교였다. 네가 그 학교에 입학하면 자신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뒷바라지 해주겠노라는 말과 함께 ‘어디 한 번 네 하고 싶은 데로 살아보아라.’며 나의 만용에 두 손 들고 체념했다. 결과는 뻔했다.
그렇게 시작된 간 큰 남자의 인생은 여러 도전에 따른 숱한 흔적과 상처를 안고 사는 지금의 인생을 살고 있다. 후회스런 일도 적지는 않았지만 잘 했다는 자긍심으로 살 수 있게 만든 일도 많다. 그 중 아들과 딸이 철들어서 ‘엄마를 선택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주위 사람들이 ‘명퇴하면서 서울 집을 잘 사두었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2023.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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