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춘추전국시대의 사람으로 정확한 생몰연대는 불명확하나 대체로 맹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도가의 대표자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저서인 '장자'는 원래 52편이었다고 하나 현존하는 것은 진대의 곽상이란 사람이 정리한 33편으로 그 중 내편이 가장 원형에 가까운 글로써 내편 이후의 글은 후세사람들의 글이라 보는 것이 타탕하다고 한다. 이 장자의 '장자'라는 저서는 노자의 '도덕경'이 시처럼 되어있는 것과는 달리 이야기 행식, 또는 우화형식으로 되어있다. 그래서인지 나는 노자의 도덕경을 읽으면서 노자는 자애롭게 웃고 있지만 조금 대하기 어려운 신선의 풍모를 가진 분일것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고 장자의 장자를 읽으면서는 술도 마시고 왠지 소탈하고 허허로운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그런 옆집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를 가진 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의 내편은 위에서 말한대로 장자가 집필한 원형의 모습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부분으로써 그렇기때문에 내편중 하나인 제물론은 가장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하지만 중국 철학사의 최고봉으로 여겨질 만큼 유명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제물론의 첫부분은 남곽에 사는 자기라는 사람의 내면적인 변모로 시작한다. 이 내면적 변모란 오상아, 즉 내가 나를 잃었다는 말로 표현되는 것으로써 장자의 핵심개념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자기 초월의 경지로 이것이야 말로 비로소 제물론의 세계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이 경지에 이르러서야 하늘의 퉁소소리를 들을 수 있고 참 주인을 찾을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밝음을 소유해야 한다고 장자는 말했다. 이 제물론의 세계는 비 본질적인 것으로 하나가 여러개일 수 있고 여러개가 하나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인간이 이 경지에 도달하기란 매우 힘든일로써 지혜가 지극한 옛 사람들도 이러한 경지에 이른 사람이 몇 없었음을 말하고 이러한 비 본질적인것 즉 도에 대한 설명을 한다. 비록 장자의 설명이 모순된 것 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커다란 도의 경지에서 본다면 그것은 같은것이라는 것을 장자는 여러번 설명을 한다. 이런것을 환히 꿰뚫는 것을 성인의 경지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 제물론의 마지막 부분에는 가장 유명한 나비의 꿈, 즉 호접지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도라는 경지에서 보았을때는 나비나 장자나 다 같은 존재로써 물론 구별이 있기는 하겠지만 다 같이 연계되어 있음으로써 어울릴 수도 있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도덕시간에 도가는 무정부주의를 지향한다고 배웠다. 그래서인지 나의 도가에 대한 생각은 도가는 국가라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오히려 뿔뿔히 흩어져 사는 것을 권장한다는 것이었다. 신선역시 홀로 수양을 통해 되는 것이지 아무나 될 수 있는게 아니듯이 말이다. 그러나 장자를 읽으면서 나의 생각은 조금 바뀌었다. 장자의 사상기반역시 춘추전국시대를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장자 역시 그 시대의 혼란과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나선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장자는 공자나 맹자와 같이 인이나 의를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무위자연을 가르친다. 자연과 같이 살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연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 결코 속세에서 떨어져서 살라는 것은 아닌것이다. 그리고 장자가 가르치는 도 역시 마찬가지다. 장자는 티끌이 태산보다 클 수 있으며 태산이 티끌보다 작을 수 있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작은 도만을 보았을때에는 티끌도 엄청나게 큰 것일 수 있지만 무한하고 커다란 도에서 본다면 태산 역시 매우 자그마한 것일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호접지몽에서 모든것은 다 연계되어있다고 하고 진정한 도를 깨달은 사람은 그것을 꿈을 통하지 않고도 생각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그 당시 왕들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었을까. 왕은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과 수많은 신하들과 함께 연계되어 있는것이라고 말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이러한 장자의 사상을 적용할 수 있다. 첫째로 장자의 가르침은 인간중심주의에 젖어있는 우리 인간들에 대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세상모든것과 우리는 연계되어있다는 것은 자연과 우리 역시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연을 훼손한다면 그 피해는 우리 역시 받게되는 것이다. 매 초마다 30여종의 생물들이 멸종되어간다는 현실이 꿈이면 좋겠지만 우리가 아직 크게 깨어나지 못한만큼 이 현실이 꿈이라고 해도 이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우리인 자연을 보호하고 무분멸한 훼손을 금해야 하는 것을 아닐까. 두번째로는 여유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큰일이라고 생각했던 일도 우리의 삶 전체라는 시각에서 본다면 아주 조그만 일이다. 하루하루를 너무 급하게 살아가지 말고 조금은 주위를 둘러 볼 줄 아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세번째로 박애주의이다. 백인이던 흑인이던 황인이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모두 인간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동남아시아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디에 가서 그런 대접을 받는다고 하면 당장에 모두들 그나라를 비방하고 욕을 해댈 것이다. 왜 반대입장을 생각하지 못하는가? 그들도 우리도 모두 다 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