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신문에서 전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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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과 향수'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
<기획-옥천에 살아 옥천을 빛낸 그들, 이제는 지역인물마케팅이다(4)>
1988년 해금조치 이후 옥천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
지용제 정체성 정립부터 종합적·체계적인 활용 전략 시급
지금에 와선 옥천을 찾는 이들에게 '정지용과 향수'를 뺀 옥천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정지용이 그리고 그의 문학작품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정지용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한국전쟁 당시인 1950년.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1988년이 되어서야 정부의 월북 작가 해금조치로 정지용의 문학세계가 다시금 조명받게 되었고 다행히 그의 고향인 우리고장에서도 그해 6월25일 제1회 지용제를 관성회관에서 개최하게 된다.
이어 1990년에는 옥천읍 체육공원에 정지용의 흉상이 제막된다. 이 흉상을 마련한 것은 당시 옥천군도 지역 주민들도 아닌 바로 '향수'를 국민가요 반열에 올려놓은 가수 이동원씨와 성악가 박인수 교수. 1989년 시 '향수'에 작곡가 김희갑씨가 곡을 붙여 앨범이 발표됐고 노래를 부른 이동원씨와 박인수 교수는 직접 콘서트를 열어 성금을 모금, 지용시인의 흉상 제작비용을 마련했다. 이후 주목할 점은, 정지용을 기념하는 데 앞장섰던 주체가 행정기관이나 문학인들만이 아닌 옥천의 주민들이었다는 것. 1994년 , 지금의 지용생가터가 경매로 넘어갈 위기에 처하자 박효근 전 문화원장을 추진위원장으로 뜻을 함께 하는 주민들이 모여 '지용생가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때의 생가복원추진위의 구성은 단순히 생가터를 지키자는 의미를 넘어, 정지용 시인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들을 주민 스스로 고민하고 기획하는데 기폭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의 옥천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생가복원추진위는 '지용 추모 종합계획'을 구상하기에 이르렀고 이 같은 민간의 움직임에 지자체가 결합하면서 사업의 규모와 예산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이때부터 시인 정지용과 관련된 각종 사업들이 본격화되기 시작해 △1996년 정지용 생가 복원 완료 △2003년 정지용 사이버문학관 개관 △2005년 5월 지용문학관 개관 △2005년 12월 정지용 시인의 모교인 일본 동지사 대학에 지용시비 건립 등의 결실을 낳게 된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옥천을 찾는 이들에게 '옥천이 낳은 한국현대시의 거장 정지용'을 알릴 기본적인 토대를 닦는 과정이었다면 이후 정지용과 그의 문학은 지역개발의 모티브로서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 신활력사업, 소도읍육성사업 등 '정지용' 모티브로 추진
참여정부 이후 전국의 지자체들은 상향식 지역개발사업, 지역특성에 맞는 개발계획, 지역고유 자산을 활용한 창의적 사업 발굴이라는 요구에 직면하게 된다. 그런 측면에서 옥천군 역시 '정지용'이라는 문화ㆍ인물자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정지용이 남긴 시 '향수'는 이미 노래로 만들어져 국민가요 반열에까지 올랐기 때문에 옥천군은 '옥천=정지용=향수=고향=옥천'과 같은 연상 작용을 활용한 다양한 사업들을 현재까지도 많은 예산을 투자해 추진해오고 있다.
옥천군이 '정지용과 향수'를 지역개발사업의 핵심자원으로 활용한 대표적 사업이 바로 신활력사업. 시인 정지용의 대표작에서 이름을 딴 '향수 30리'라는 사업명을 달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추진된 신활력사업은 90억원 가까운 예산이 투자된 대규모 지역개발사업이다. 여기서 말하는 30리는 정지용 시인의 고향인 구읍(하계리)을 거점으로 장계관광지와 장령산까지 거리(각각 약 12km)를 의미한다. 당시 옥천군은 옥천의 대표적 문화자원인 정지용 시인을 모티브로 지역의 관광기반을 구축하고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개발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밝혔다. 그 결과물로 이뤄진 것이 바로 △향수30리 자전거길 조성 △장계관광지 시문학공원 조성 △실개천 복원사업 △정지용 시를 소재로 한 구 37번 국도변 정비사업 △향수 30리 농산물공동브랜드 개발 등. 뿐만 아니라 사업기간 중에는 지용제 예산도 크게 늘어 유명가수가 출연하는 대규모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다.
정지용을 핵심자원으로 활용한 또 하나의 대규모 지역개발사업은 바로 생가와 문학관이 위치한 정지용의 고향, 구읍의 소도읍육성사업. 2009년부터 현재까지 170억원 이상이 투입된 소도읍육성사업은 교동저수지 생태습지공원, 시비문학공원, 체육공원을 조성해 주민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구읍을 지역 문화관광의 중심지로 가꿔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추진됐으며 올해 완료를 앞두고 있다. 이렇듯 신활력사업과 소도읍육성사업만해도 최근 5년 사이 250억원 가까운 예산이 투자됐으며 해마다 지용제, 생가 및 문학관 운영 등에 드는 비용까지 고려하면 분명 적지 않은 예산이 '정지용'이라는 자원개발에 투자되고 있는 것이다. 그 투자가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는 의견이 분분할 수 있다. 하지만 어쨌든 '월북작가'라는 굴레에서 벗어난 지 25년 만에 '정지용'은 유무형의 자원을 통 털어 옥천을 대표하는 자원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 이는 2012년 옥천군의 공공디자인 컨설팅을 맡은 업체가 주민 450명을 대상으로 '옥천을 대표하는 상징'을 물었을 때 정지용과 향수를 대답한 응답자가 다수를 차지했다는 조사결과에서도 알 수 있다.
◆ 26회째 맞은 지용제, 주민열의는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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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지용생가 방명록에 남겨진 글들. 시 '향수'를 사랑하는 방문객들의 마음이 느껴진다. |
하지만 정지용을 지역의 인물자원으로 제대로 활용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쉬운 목소리가 여전하다. 우선은 올해 벌써 스물여섯 해 째 행사를 치른 지용제가 기대만큼 변화발전하지 못하고 있다는데서 오는 아쉬움이 가장 커 보인다. 오히려 주민참여도나 행사에 대한 열의는 훨씬 열악한 예산과 조건에서 축제를 치르던 예전보다 더 떨어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지용제보다 10년 가까이 후발주자로 시작된 효석문화제나 황순원문학제, 만해축전 등이 큰 인기를 끌며 전국 각지의 관광객을 끌어 모으고 있는데서 지용제의 발전전략 찾기는 더 시급해 보인다. 문학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라는 숙제부터 주민주도형 축제운영방안과 추가적인 축제 기반시설 구축 등의 문제까지, 수년 째 제기되는 문제들을 민관이 함께 해결해내지 못하면 지용제는 그저 5월이면 '습관처럼' 돌아오는 축제로 점점 더 그 가치를 잃어갈 것이다.
반드시 지용제 기간이 아니더라도 지역 안팎의 이들이 언제든 '정지용'이라는 인물자원을 접하고 그를 통해 옥천을 보다 매력적인 고장으로 인식시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현재 일상적으로 정지용을 만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은 구읍의 생가와 지용문학관 그리고 지역 곳곳의 벽화나 간판 등의 시설물들. 하지만 문학관은 늘 변함없이 고정된 전시물만을 볼 수 있는 '전시관'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구읍을 찾아도 정지용 관련한 시집 한 권, 기념품 하나 살 수 없는 현실은 수년 째 지적돼도 전혀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지용문학관에서 해설사로 활동하는 한 주민은 "정지용 시인을 사랑해서 전국 각지에서 문학관을 찾는 이들이 정말 많은데 다녀가도 뭐 하나 기념하고 간직할 게 없어 아쉽다는 이야기들을 정말 많이 하신다"며 "어떤 분들은 지용시인처럼 위대한 시인의 문학관을 왜 공짜로 관람하게 하냐며 돈을 받아도 충분히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까지 이야기하는데 정작 우리 지역이 그 가치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해설사로 활동하는 또 다른 주민은 "구읍이라는 공간은 여러 면에서 분명 매력이 많은 곳인데 지금 이런저런 사업이 계속 추진돼도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내지 못하고 각자 놀고 있는 느낌"이라며 "정지용, 육영수와 같은 유명 인물을 중심으로 구읍 고유의 특색을 드러낼 수 있는 관광산업전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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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효석문학관 기념품 매장에는 '메밀꽃' 모양의 머리핀 등 다양한 상품들이 구비돼 있다. |
경기도 양평군이 황순원문학관이라는 문학자원을 어떻게 '소나기마을'로 키워냈는지, 경남 하동군은 작가의 출신지도 아닌데 <토지>라는 문학작품을 활용해 '토지마을'이라는 유명 관광지를 어떻게 개발했는지, 또 강원도 평창군의 효석문화제가 개최 15년 만에 축제 기간 1백만 명 이상 방문이라는 성과를 어떻게 거뒀는지 등에 관한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와 관련해 지난 9월 회원들과 함께 전국의 유명 문학축제들을 둘러보고 온 옥천문화원 김승룡 원장은 "성공적인 문학축제를 가보니 일단 주민들의 참여도가 남다르다는 느낌이었고 축제 공간에 대한 투자가 더 많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문학축제니만큼 문학 관련 콘텐츠를 강화하는 것은 기본이겠지만 정지용을 사랑해서 옥천을 찾긴 했어도 일단 왔으면 먹을거리, 볼거리 등을 충분히 즐기고 갈 수 있도록 준비가 돼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 통영시 '창의도시' 추진 눈여겨 볼 만
'정지용'이라는 인물자원의 활용이 극대화되기 위해서는 주민 다수의 공감과 호응을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지향점을 설정하고 그와 관련된 다양한 사업들을 종합적으로 묶어내는 과정이 시급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현재 통영시가 2016년을 목표로 추진 중인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 가입전략은 눈여겨 볼만하다.
유네스코 창의도시란 유네스코(UNESCO,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가 문학ㆍ음악ㆍ민속공예ㆍ디자인ㆍ영화ㆍ미디어ㆍ음식 등 7개 분야에서 뛰어난 창의성으로 인류문화 발전에 기여한 세계의 도시로 선정한 곳을 의미한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7개 분야에 걸쳐 19개국 34개 도시가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선정됐는데, 우리나라에선 2010년 서울이 디자인 창의도시로, 경기도 이천시가 공예와 민속예술 창의도시, 2012년에는 전주가 음식 창의도시로 선정됐다.
통영시의 경우 '윤이상'이라는 세계적인 음악가를 인물자원으로 보유한 것을 바탕으로 '음악 창의도시'로 선정되기 위한 노력을 진행 중. 만약 통영시가 음악도시를 추진하듯, 우리고장이 문학 창의도시 선정을 목표로 한다면 '정지용'이라는 문학ㆍ인물자원을 중심으로 그동안 추진해 온 각종 지역개발사업을 묶어내고 이후 지속가능한 지역개발을 이루어내는데 '정지용'이라는 인물자산을 어떻게 활용할 지 비전을 수립하는 동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그렇게 해서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로 선정 된다면 '유네스코'라는 세계적 기구의 공식명칭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이미 문학 창의도시로 선정된 여섯 개의 도시, 영국의 에딘버러와 노리치, 호주 멜버른과 미국 아이오와시티, 아일랜드 더블린과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와 같은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교류할 기회 또한 얻게 된다.
국내에서도 많은 문학축제와 문학관이 경쟁하는 상황에서 전국 유일의 '유네스코 문학 창의도시'라는 브랜드가 지역에 어떤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지도 어렵지 않게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창의도시 선정은 일차적으로는 지역을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만드는 효과를 가지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지역이 가진 문화적, 창의적 자산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중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지역발전전략을 수립하는데 좋은 동기를 제공해 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창의도시 선정 과정이 곧 지역 주민들이 함께 자기 지역의 정체성을 찾고 만들어가는 중요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지금 옥천에 필요한 그 과정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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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에 위치한 이효석 문학관 전경. 왼쪽 건물에선 이효석 관련 각종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오른쪽 건물에선 이효석과 그의 작품을 소재로 한 각종 기념품, 봉평의 특산품 및 메밀차 등 음료를 판매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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