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소개
“너 집에서 논다며?”
큰아이가 다섯 살 되던 해(둘째를 임신했을 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갓 낳은 아이를 남에게 맡기는 건 너무하지 않은가 싶었고 다양한 장소에서 사람들이 “너 집에서 논다며?”라고 이야기했다. ‘엄마는 집으로!’라는 노래의 2절이 ‘너는 집에서 노는구나!’였다.
과연 전업주부는 남편이 벌어다준 돈으로 편하게 노는 것일까? 곳곳에서 들리는 메들리에 ‘억하심정’이 들면서 뭔가 불편했다. 초등학교 입학 이래 저자에게는 늘 소속이 있었는데, 회사를 그만두니, 주부라는 이름으로 펼쳐진 일상은 드넓지만 아무것도 없는, 기이한 진공 상태처럼 느껴졌다.
전업주부의 세계는 왜 이러한가.
왜 주부는 경제 인구에 포함되지 않는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아이가 중요한가, 일이 중요한가라는 찜찜함은 어디서 기원하는가.
왜 나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가.
등등의 사소하지만, 뼈아픈 근본적인 질문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그러한 질문과 이상하게 엄마로서 주부로서 불편해지는 마음에 대하여, 자발적 독서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 저자 소개
저자 정아영
“주부의 노동을 폄하하는 사회현상의 저변에
무엇이 있는지를 밝히고 싶었습니다.”
헤드헌터, 번역가, 소설가 등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제1정체성은 언제나 ‘엄마’였다. 엄마 경력 12년에 접어들던 어느 날,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너무 아등바등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엄마의 독서』(2018, 한겨레출판)를 썼다.
이후 엄마들이 얼마나 힘든지를 토로하고 공감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이 문제들이 근본적으로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를 현실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고자 공부와 사유, 글쓰기를 쉬지 않았다. 엄마, 주부들의 문제가 ‘돈’이라는 시커먼 물건과 연관된 것임을 선명하게 드러내고자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을 집필하였다. 2013년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장편소설 『잠실동 사람들』, 『맨얼굴의 사랑』을 펴냈다.
📜 목차
지은이의 말
1장 주부들이 사는 외딴섬
1. “너 집에서 논다며?”
2. 주부들의 세상은 왜 이렇게 다른가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3. 다시 돌아간다면 그때도 회사를 그만둘 것인가 레슬리 베네츠, 『여자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4. 나는 왜 요리를 싫어하게 되었을까 라문숙, 『전업주부입니다만』
2장 핵심은 ‘돈’에 있다
5.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카를 마르크스, 『자본론』
6. 나는 왜 회사를 그리워하는가 게오르크 지멜, 『돈의 철학』
7.나는 왜 뉴스에 나오지 않는가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8. 아이 셋을 길러낸 전업주부는 왜 연금을 받지 못하는가 낸시 폴브레, 『보이지 않는 가슴』
3장 자본주의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9. 누가, 왜, 여성들을 불태웠는가 실비아 페데리치 『캘리번과 마녀』
10.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는가 마리아 미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11. 공존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박가분, 『포비아 페미니즘』
12. 내 몸 안에 갇힌 나를 어떻게 들여다볼 것인가 로이 F. 바우마이스터, 『소모되는 남자』
4장 경계선 너머의 세상
13. 왜 가사 노동에 임금을 지불해야 하는가 실비아 페데리치, 『혁명의 영점』
14. 비구니가 『아빠 수업』이라는 책을 낸다면 어떤 반응을 받을까 법륜, 『엄마 수업』
15. 비혼 여성과 기혼 여성은 연대할 수 있을까 김하나·황선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16. 주부들은 왜 제 가족의 안위만 생각할까 서영남, 『민들레 국수집』
글을 닫으며 - 자본주의와 함께 시작된 해묵은 거짓말
📖 책 속으로
무보수로 행하는 자신의 일을 ‘일’이라 말하지 못하는 이들이 딛고 선 공간은 자본이 점거한 세상에서 동떨어져 홀로 존재하는 세상, ‘사랑’과 ‘헌신’의 이름으로 치장되어 있지만 화려한 치장을 들추면 소외감과 황량함으로 어쩔 줄 몰라 하는 영혼들이 숨 가쁘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는 외딴 섬이었다.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는 작가는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도록 도운 여러 경제적 요인을 따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을 빼먹었다. 저녁 밥상에 올릴 재료를 수합하여 다듬고 소스를 가미하고 그릇에 담아 식탁을 차려낸 한 인물, 저녁 식탁을 차렸던 애덤 스미스의 ‘어머니’라는 인물을.
자본가가 생산수단을 점유하고 그 생산수단에 기대 살던 이들의 노동력을 팔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든 뒤 그 노동력에서 이윤을 짜냈던 최초의 과정. 그러나 맑스가 고안해낸 이 개념에는 중요한 한 요소가 빠져 있다. 강제로 노동자가 된 이들의 노동력을 유지하고 미래에 노동자가 될 이들을 낳고 그 아이들을 길러 튼실한 노동자로 만들어 자본가의 품으로 보내주는 일군의 사람들이. 재생산자라고 불릴 수 있는 이 사람들은 바로 ‘여성’이라고 불리는 이들이었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맑스가 놓치고 넘어간 이 지점, 재생산자 개념을 파고든다. 자본가가 토지를 점유해 토지와 값싼 노동력을 통해 막대한 ‘시초축적’을 이루었다면, 노동력을 제공하고 거의 무상에 가까운 임금을 받아갔던 노동자들은 가정에서 무상으로 의식주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내를 통해 집단적으로 시초축적을 이루었다. …… 자본가는 노동자 한 명을 고용함으로써 값싼 노동력과 노동력 재생산의 무상제공이라는 원플러스원 혜택을 누린 셈이다.
세상에 아내라 불리는 주부가 없다면 자본주의는 일거에 무너질 것이다. 주부가 남편인 노동자에게 해주던 온갖 종류의 무상 재생산 서비스가 사라지면 노동자는 그 모든 서비스를 돈을 주고 구매해야 할 테고 필연적으로 임금인상이라는 결과를 낳고 자본이 어떻게 이윤을 취하겠는가. …… 그러나 주부는 자신이 하는 일을 일로 취급받지 못하고 하는 일에 대해 대가를 지불받지 못하기에 사회에서 어떠한 자리도 차지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아이들은 공공재다. …… 시대정신의 큰 흐름이 바뀌었으나 국가와 사회의 제도는 여전히 돌봄을 여성의 몫으로만 남겨두고 있으니. 돌봄의 전담자였던 여성의 자리가 비기 시작했는데 그 자리를 채워야 할 남성과 사회가 그 자리로 들어오지 않고 있으니, 그 상태를 나 몰라라 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광활한 진공 상태에 빠지게 되는가. 이러니 사회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구나. 이러니 제도와 정치에 대해 손길을 뻗고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이로구나.
🖋 출판사 서평
‘집에서 논다’는 말의 연원을 찾아
열다섯 권의 책을 타고 떠나는 시공간 여행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을 통해 여성이 남성이 소유한 ‘동산’으로 역할을 했음을 거슬러 찾아간다. 전업주부는 ‘가정 공산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된다. 경제적 자립에 대한 경각심도 깨닫는다. 1장이 전업주부라는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고민한다면, 2장에서는 본격적으로 ‘경제학’ 고전들을 탐색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과 같은 주류 경제학 도서들이다.
백미는 자본주의의 ‘시초 축적’에 관한 부분. 자신에게 시작해 시초 축적에서 배재되었던 여성의 노동에 대한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쉽게 더듬는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생략된 수많은 손길이 있는데 그것이 ‘여성’이었다는 점이다. 이 손길이 경제학에 포함되는 것은 어마어마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변동을 동반할 것이다. 애덤 스미스가 저녁을 차려준 어머니의 노동을 경제적 요인으로 포함시켰다면 그 후 경제학의 역사는 크게 달라졌으리라. “자본주의 체제에서 처음부터 구성요소로 포함되지 않았다는 측면에서, 마음대로 공짜로 가져다 쓰되 그 가치는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여성의 돌봄 노동과 자연 자원은 쌍생아처럼 닮아 있었다. 그 때문에 여성의 모성, 여성의 관대함에는 당연하다는 ‘자연스러움’이라는 개념이 따라왔다.”
저자는 이 과정이 전혀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것을 생생히 알아차리고 자신의 현재 위치를 지각한다. 이곳이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에 냉정하게 대응할 수 있는 훌륭한 답변이자 일종의 무기가 될 수 있다. 책 전체에서 여성의 돌봄 노동은 정확하게 ‘노동’임을 주지시킨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편하게 먹고 살지 않느냐?라는 말에 이렇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내가 먹고사는 게 아니다. 내가 먹이고 입히고 재워주고 아이들을 건사해주기 때문에 남편이 편하게 나가서 일하고 올 수 있는 것이다. 당장 내가 없다고 가정해보라. 아이들 보고 살림하느라 남편이 제시간에 출퇴근을 할 수 있겠는가? 2주짜리 출장을 아무 때나 갈 수 있겠는가?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고 부탁하려면 남편이 벌어오고 있는 돈 전부를 다 줘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나’라는 비임금 노동자가 있기 때문에 남편이 임금노동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남편에게 임금노동에 대한 빚이 있다면 남편은 내게 비임금노동에 대한 빚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 관계는 누가 누구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상호의존하는 관계다. 다른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이.”
“노동자가 아내를 부양하는 게 아니라, 아내가 노동자를 일하러 갈 수 있도록 부양해주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아내가 남편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에게 의지한다는 말이다.”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적절한 예화가 많다. 미혼 여성도 시원함을 느낄 만큼! 책과 현실을 잇는 것이 매끄럽다. 또한, 자신의 생각과 대척점에 있는 반대 진영의 책을 일부러 찾아 읽기도 하면서 사유를 단단히 하고, 수용되지 않는 책의 아쉬운 부분들에 대해서도 솔직히 이야기한다.
가정주부라는 밑바닥 아래 자기 존재의 근원, 여성, 페미니즘을 떼어놓을 수는 없다. 『당신이 집에서 논다는 거짓말』은 돈(자본)ㆍ여성ㆍ페미니즘ㆍ돌봄 노동ㆍ자본주의ㆍ가족ㆍ복지ㆍ 국가ㆍ경제학ㆍ사회학이 모두 얽혀 있는데, 잘 버무려져 있다. 감정적 대응으로 빠지지 않고 성실히 분석하며 쉽게 말한다.
비논리적 공격을 당했을 때 어떻게 답해야 하는지 시원하게 논리적 무기를 장전해주는 책. 심지어 실용적으로 느껴지기까지. 적재적소에서 펼쳐지는 재치와 수다! 질문은 뜨겁게, 답은 냉철하게.
지워진 ‘여성의 노동’의 경제학적·역사적·사회적 맥락을 되짚어보다
왜 나의 노동은 노동이 아닌가
누가 누구에게 의지하는가
자본주의를 꼼꼼히 파헤치는 주부의 ‘생활 밀착형’ 인문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