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bs '경전의 숲을 거닐다(326-329)' 동국대학교 이필원 교수 /bbs]
▒ 맛지마니까야 '마간디야의 경' (Magandiya sutta) ①
▶수타니파타의 '마간디아'와는 다른 사람
수타니파타의 마간디아(바라문)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딸(피부는 황금색, 아름다운 몸매)이 있었는데
그 딸에 어울리는 배우자를 찾던 그에게 마침 부처님을 만날 기회가 있었고
부처님이야말로 자기 딸의 배우자로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부인과 딸을 데리고 부처님을 찾아뵈었다.
"당신이야말로 나의 딸의 배우자로서 적합합니다. 당신은 모든 속세의 욕망을 버리긴 하셨지만
이제 속세로 내려오셔서 저의 딸과 결혼해서 사시면 어떻겠습니까?" 청을 하였다.
부처님 말씀 "딴하와 아라띠, 그리고 라가를 보고서 나에게는 성적 교섭의 욕망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줌과 똥으로 가득찬 그것에 무슨 욕망이 일어나겠습니까? 그 두 발조차 건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마간디아와 부인은 육신의 아름다움의 무상함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갖게 되어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출가생활을 하게 됨.
그러나 딸 마간디아는 자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마간디아는 크게 분노하고..
더구나 '내 부모가 출가를 해?' 원망의 마음.. 숙부의 손에 맡겨졌는데 자신의 조카딸이 너무나 이뻤기 때문에
조카딸을 이용해 출세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꼬삼비의 우데나왕(아주 호색한이었다고 함)에게 결혼시킴
그 왕비도 마간디아, 친정아버지도 마간디아, 그리고 왕비의
작은 아버지의 아들도 마간디아 (지금 이 경의 주인공. 사촌지간)
이와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꾸루국의 깜맛싸담마라고 하는 꾸루족 마을에
바라문 바라드와자곳따의 불을 섬기는 사당 안에서 풀로 만든 처소에 머물고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아침 일찍 의복을 갖추시고 발우와 가사를 들고 깜맛싸담마로 탁발을 하러 들어가셨다.
깜맛싸담마에서 탁발을 하시고 공양을 마친 다음 탁발에서 돌아오신 세존께서는
낮 동안 시간을 보내기 위해 어느 숲속을 찾아가셨다.
얼마 후 세존께서는 숲속에 도착하셨고 어떤 나무 아래에서 낮 동안의 시간을 보내셨다.
그 무렵 마침 유행자 마간디야가 산책을 하며 거닐디가 바라드왓자곳따의 불을 섬기는 사당을 찾았다.
유행자 마간디야는 불을 섬기는 사당 안에 풀로 만든 처소가 있는 것을 보고 바라드와자곳따에게 물었다.
"존자 바라드와자의 불을 섬기는 사당 안에 풀로 만든 처소가 있는데
이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짐작하건대 수행자의 잠자리 같습니다."
그러자 바라문이 대답했다. "존자 마간디야여, 사꺄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라는 분이 있는데
그분께는 다음과 같은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이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이며
가장 높은 분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이며
부처님이며 세존이시다'
존자 마간디야여, 이곳은 그분 고따마 존자를 위해 마련한 처소입니다."
유행자 마간디야가 말했다.
"존자 바라드와자여, 우리가 성장의 파괴자인 존자 고따마의 처소를 보았으니 참으로 못볼 것을 보았습니다."
바라문 바라드와자곳따가 말했다. "존자 마간디야여, 그대는 그런 말을 삼가십시오.
존자 마간디야여, 그대는 그런 말을 삼가십시오.
많은 끄샤트리야의 현자들과 많은 바라문의 현자들과 많은 장자의 현자들과 많은 사문의 현자들이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 아주 청정한 믿음을 일으켜 그분의 성스러운 길을 따르고
그분의 선하고 유익한 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마간디아는 큰아버지 부부의 출가소식이 불쾌했을 수도 있다..
'성장의 파괴자' - 빨리어 '부나후노'(dhunahuna): 여기에는 문맥상 '육근의 즐거움을 막는 사람'
유행자 마간디야가 말했다.
"존자 바라드와자여, 제가 만약 그 존자 고따마와 대면한다면
저는 그의 앞에서 기꺼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
존자 바라드와자여,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경전 가운데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라문이 물었다. "존자 마간디야의 반대가 없다면 내가 고따마 존자께 그 말을 전해도 되겠습니까?"
유행자 마간디야가 대답했다. "존자께서는 걱정마시고 제가 말한 그대로를 전하십시오."
이때 세존께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셨고
저녁 무렵 명상에서 일어나 바라드와자곳따의 불을 섬기는 사당으로 오셨다.
세존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바라문 바라드와자곳따는 세존을 찾아와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바라드와자여, 그대는
유행자 마간디야와 함께 이곳 불로 만든 사당에 대해 어떤 대화를 나누었습니까?"
그러자 바라문은 놀라서 머리털이 쭈뼛해진 채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고따마 존자께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런데 존자께서는 이미 우리가 나눈 이야기를 알고 계시군요."
그때, 세존과 바라문 사이에 대화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유행자 마간디야가 이리저리 거닐다가 바라드와자곳따의 불을 섬기는 사당에 계신 세존을 찾아왔다.
그는 세존께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안부를 주고받은 다음 한쪽으로 물러나 앉았다.
세존께서 유행자에게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눈은 형색을 좋아하고 형색을 기뻐하고 형색을 즐깁니다.
여래는 그것을 제어하고 지키고 다스렸으며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합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이를 두고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유행자 마간디야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참으로 그것을 두고 나는 분명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경전 가운데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 우데나왕은 예쁜 여자만 보면 사족을 못써 통제 안 돼. 그 형색에 마음 뺐겨 비극적인 결과 초래
첫째 왕비는 지혜로운 왕비였으나 마간디아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됨
그렇게 형색의 노예의 삶을 살지 말고 주인으로 살아라
지금도 불교에 대한 오해 - '불교는 세속적인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한다. 과연 그런 것들이 가치가 없는 것이냐?' 반문
사실 불교는 세속적인 가치를 버리라는 게 아니고 세속적인 가치에 대해 노예적인 마음으로 끌려다니는 것을 경계하는 것
※빨리어 '불을 섬기는 사당' - 아기야가라(agyagara)
세존께서 유행자 마간디야에게 계속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귀는 소리를 좋아하고 소리를 기뻐하고 소리를 즐깁니다.
여래는 그것을 제어하고 지키고 다스렸으며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합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이를 두고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유행자 마간디야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참으로 그것을 두고
나는 분명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경전 가운데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코는 냄새를 좋아하고 냄새를 기뻐하고 냄새를 즐깁니다.
여래는 그것을 제어하고 지키고 다스렸으며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합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이를 두고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유행자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참으로 그것을 두고
나는 분명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경전 가운데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혀는 맛을 좋아하고 맛을 기뻐하고 맛을 즐깁니다.
여래는 그것을 제어하고 지키고 다스렸으며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합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이를 두고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유행자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참으로 그것을 두고
나는 분명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경전 가운데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몸은 감촉을 좋아하고 감촉을 기뻐하고 감촉을 즐깁니다.
여래는 그것을 제어하고 지키고 다스렸으며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합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이를 두고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유행자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참으로 그것을 두고
나는 분명 '사문 고따마는 성장을 파괴하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경전 가운데 그와 같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낭독에서 생략된 부분)
"마간디아여, 사실에 기뻐하고 사실에 즐거워하고 사실에 환희하는 정신이 있는데
여래는 그것을 제어하고 지키고 수호하고 다스렸으며 그것을 다스릴 수 있는 가르침을 설합니다."
(뒷부분은 동일)
육근을 안 쓰고 살 수는 없지만 살다보면 자기 나름대로 성향을 갖게 된다
그것에 너무 몰두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므로 잘 다스려야 한다
예)눈을 혀를 즐겁게 하다보면 병을 얻게 되고.. 집이나 차에 몰두해도 문제..
육근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 유난히 쉽게 빠지는 부분이 있으면 잘 살펴 제어해야 한다
▶마간디아 - 육근의 욕망을 마음껏 발산해서 욕망을 최대한 채우는 것이 나의 성장=행복이다..
▶부처님 - 그것을 제어하고 통제하지 못 하면 바른 성장을 할 수 없다
세존께서 물으셨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상의 어떤 사람이 예전에 눈으로 인식되는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일으키고 탐욕을 야기하는 형색에 탐닉했다고 합시다.
후에 그가 그러한 형색의 생성이나 소멸이나 유혹이나 위험이나 여읨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형색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형색에 대한 타는 듯한 고뇌를 버리고 형색에 대한 갈증을 버리고 안으로 마음의 고요를 성취했습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유행자 마간디야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세상의 어떤 사람이 예전에 귀로 인식되는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일으키고 탐욕을 야기하는 소리에 탐닉했다고 합시다.
후에 그가 그러한 소리의 생성이나 소멸이나 유혹이나 위험이나 여읨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형색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형색에 대한 타는 듯한 고뇌를 버리고 형색에 대한 갈증을 버리고 안으로 마음의 고요를 성취했습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유행자 마간디야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계속해서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에 대해 질문하셨고
유행자 마간디야 또한 계속해서 "존자 고따마여, 나는 그 사람에게 아무런 할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대답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내가 예전 재가자로 살아갈 때에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들
즉 눈에 의해 인식되는 형색과 귀에 의해 인식되는 소리와 코에 의해 인식되는 냄새와
혀에 의해 인식되는 맛과 몸에 의해 인식되는 감촉들을 두루 갖추고 즐기며 살았습니다.
마간디야여, 당시의 나에게는 세 개의 궁전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우기를 위한 것이고 또 하나는 겨울을 위한 것이고 마지막은 여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누구는 패션에, 누구는 맛에, 누구는 귀가 얇아서.. 특히 취약한 부분이 있다.. 미연에 잘 파악해서 제어해야 한다
깔맞춤(?).. 색깔별로 옷을 셋트로 다 사는 사람도 있어
마음을 밖에 뺏기면 늘 마음이 분주하고 불안하다,
충족이 안 되면 화도 나고, 질투도 나고.. 마음의 고요는 이루기 어렵다
※빨리어 '겨울의, 추운' - 헤만띠까(hemantika)
세존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그 당시 나는 우기의 궁전에서 생활하는 4개월 동안 궁녀들의 음악에 탐닉하여
아래에 있는 궁전으로는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생성이나 소멸이나 유혹이나 위험이나 여읨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그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타는 듯한 고뇌를 버리고, 갈증을 버리고 안으로 마음의 고요를 성취했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갈애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타는 듯한 고뇌에 불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는 중생들을 봅니다.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즐기지 않습니다.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마간디야여, 참으로 그러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면
천상의 즐거움을 능가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므로 그보다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마간디야여, 예를 들어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부유하고 재물이 많고 가진 것이 많아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 즉 눈과 귀와 코와 혀와 몸에 의해 인식되는
각각의 자신이 원하고 좋아하고 사랑스럽고 아름답고 감각적 쾌락을 일으키고 탐욕을 야기하는
형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을 두루 갖추고 즐기며 살았는데
그가 몸으로 선행을 하고 말로 선행을 하고 마음으로 선행을 행하여
이 세상을 떠난 다음 좋은 곳, 천상세계에 태어나 서른셋 천상세계의 천신들과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합시다.
그는 그곳 환희의 숲에서 요정의 무리에 둘러싸여 천상의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을 즐기게 될 것입니다.
그런 그가 천상세계에 머물면서 인간세상에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을 두루 갖추고 즐기며 살고 있는
또 다른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볼 때,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가 인간세상의 또 다른 장자나 장자의 아들을 부러워하거나
인간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으로 되돌아가려 하겠습니까?"
유행자 마간디야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보다 천상의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이 훨씬 탁월하고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나는 이처럼 예전 재가자로 살아갈 때에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들
즉 눈에 의해 인식되는 형색과 귀에 의해 인식되는 소리와 코에 의해 인식되는 냄새와
혀에 의해 인식되는 맛과 몸에 의해 인식되는 감촉들을 두루 갖추고 즐기며 살았습니다.
그 후에 나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생성이나 소멸이나 유혹이나 위험이나 여읨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그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타는 듯한 고뇌를 버리고, 갈증을 버리고 안으로 마음의 고요를 성취했습니다.
나는 감각적 쾌락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갈애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타는 듯한 고뇌에 불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는 중생들을 봅니다.
나는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즐기지 않습니다.
이는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마간디야여, 참으로 그러한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떠나면
천상의 즐거움을 능가하는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안에서 기쁨을 누리므로 그보다 못한 것을 부러워하지 않고 그러한 것들을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마간디야여, 예를 들어 큰 병에 걸린 환자가 있어 사지가 헐고 사지가 썩어들어가는데
상처를 손톱으로 할퀴고 숯불구덩이에 몸을 태운다고 합시다.
그를 위해 친구나 동료나 친척들이 훌륭한 의사를 힘들게 초빙해서 그를 치료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병에서 해방되어 병이 없고 안락하게 자유자재로
그가 가고싶은 곳으로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런 그가 자신과 같은 병에 걸린 또다른 환자가 숯불구덩이에 몸을 태우는 것이나
고통스럽게 치료받는 것을 보면서 그 모습을 부러워하겠습니까?"
유행자 마간디야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그렇지 않습니다.
병이 들었을 때 치료가 필요한 것이지 병이 없을 때에는 치료 역시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각적 욕망에 의한 쾌락 - 거칠고 투박하고 저급한 즐거움. 자극적이고 강렬함
(그러나 그 질적인 측면에서 탁월하고 훌륭한 것, 가치 있는 것에 초점 둬야 - 초월하려는 의지가 생겨난다)
부처님의 예 - 한센병(나병, 문둥병. 당시엔 무척 두려워해서 격리시키던 병) '그때가 좋았는데..' 그리워하지 않을 것이다..
경전에서는 병명을 언급하기보다 그냥 '큰 병'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감각기관을 잘 보호하라. 상처를 보호하듯이' 라고 하신다
감각기관=소위 '오감'+意(관념)=육근
세존께서 유행자 마간디야에게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예를 들어 큰 병에 걸린 환자가 있어 사지가 헐고 사지가 썩어들어가는데
상처를 손톱으로 할퀴고 숯불구덩이에 몸을 태운다고 합시다.
그를 위해 친구나 동료나 친척들이 훌륭한 의사를 힘들게 초빙해서 그를 치료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그는 마침내 병에서 해방되어 병이 없고 안락하게 자유자재로
그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갈 수 있고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명의 힘센 사람이 각자 그의 팔을 붙잡고 숯불구덩이에 끌어넣으려 합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순간 그는 숯불구덩이를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몸을 뒤틀며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려하지 않겠습니까?"
유행자 마간디야가 대답했다. "존가 고따마여, 그렇습니다.
불타는 숯불에 닿으면 참으로 괴롭고 타는 듯한 고뇌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세존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렇다면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 불타는 숯불에 닿으면 참으로 괴롭고 타는듯한 고뇌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지금만 그런 것입니까 아니면 이전에도 그러했던 것입니까?"
유행자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그것은 지금만이 아니라 이전에도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존자 고따마여, 병이 낫기 전의 그는 사지가 헐고 사지가 썩어들어가고
상처가 손톱으로 할퀴어져 모든 감각능력이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불이 닿으면 괴로운데도 즐겁다고 느끼는
거꾸로 된 지각을 가지고 숯불구덩이에 몸을 태웠던 것입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이처럼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은
그에 닿으면 참으로 괴롭고 타는듯한 고뇌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며
미래에도 괴롭고 타는 듯한 고뇌를 불러일으킬 것이며
현재에도 괴롭고 타는 듯한 고뇌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마간디야여, 중생들은 감각적 쾌락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갈애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타는 듯한 고뇌에 불타 모든 감각능력이 손상되었습니다.
그래서 감각적 쾌락이 닿으면 괴로운데도 즐겁다고 느끼는
거꾸로된 지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 아토피에만 걸려도 - 피가 나도록 계속 긁어도 가려움증을 견디지 못하고 계속 긁는다
(의사는 긁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해도 긁지 않을 수 없어)
모기에 물려도 긁지 않을 수 없어. 잠결에도 계속 긁고..
(교수님 경험 - 모기에 물려 몹시 가려울 때 모기불 가까이 대니까 덜 가렵더라. 평소엔 절대로 안 할 짓인데 ㅎㅎ)
감각적 쾌락도 계속 우리를 상처입게 하고 아프게 하고 괴롭게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이 '시원하다, 좋다, 즐겁다' 라는 생각으로 생활하는 것이 중생의 모습 (착각. 거꾸로된 생각)
머리로는 이해한다 - '긁지 말아야지. 덧난다' / 그러나 행동으로는 그게 안 돼
바른 견해를 갖어야 한다 - 바르게 알면 실천할 수 있다
감각적 쾌락에 대한 갈증 - '악마의 군대'가 찾아왔구나'.. 알아차리고 물리쳐야 한다
▶<거꾸로 된 지각> - 비빠리따 산냐(viparitasanna): 거꾸로 된, 역전된, 뒤집혀진 지각(생각) 전도된 생각, 전도망상
- 좋은 것을 나쁜 것으로,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해로운 것을 이로운 것으로, 이로운 것을 해로운 것으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을 도움되는 것으로, 도움되는 것을 도움 안 되는 것으로, 적을 친구로, 친구를 적으로 보는 것
- 중생은 즐거움이 아닌데(괴로움인데) 즐거움으로 보고 계속 추구한다.. 부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시겠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아이가 뜨거운 것을 향해서 계속 기어가고 있는 것을 볼 때 어른의 안타까움.. 어서 빨리 말려줘야지..
세존께서 말씀을 이으셨다.
"또한 마간디야여, 예를 들어 큰 병에 걸린 환자가 있어 사지가 헐고 사지가 썩어들어가는데
상처를 손톱으로 할퀴고 숯불구덩이에 몸을 태운다고 합시다.
그의 상태가 나빠지면 나빠질수록 그가 상처를 손톱으로 할퀴고 숯불구덩이에 몸을 태우면 태울수록
그의 상처들은 더욱 오염되고 악취가 심해지며 점점더 썩어갈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상처의 심한 가려움 때문에 가려움을 없애는 즐거움에만 만족하는 것입니다.
마간디야여, 이처럼 중생들은 감각적 쾌락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갈애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타는 듯한 고뇌에 불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추구합니다.
마간디야여, 중생들이 감각적 쾌락의 탐욕을 버리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갈애에 사로잡히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타는 듯한 고뇌에 불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을 추구할수록 점점 더 감각적 쾌락의 갈애가 증가하고
더욱 더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타는 듯한 고뇌에 불타게 되지만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욕망 때문에 그 즐거움에만 만족하는 것입니다.
마간디야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왕이나 왕의 재상으로서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대상을 두루 갖추고 즐기며
감각적 쾌락의 갈애를 버리지 못하고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타는 듯한 고뇌를 버리지 못하였는데도
갈증없이 안으로 마음의 고요를 성취했거나 성취하고 있거나 성취할 자를 그대는 보거나 들은 적이 있습니까?"
유행자 마간디야가 대답했다. "존자 고따마여, 없습니다."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마간디야여, 훌륭합니다.
나 또한 왕이나 왕의 재상으로서 그런 자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간디야여, 사문이나 바라문으로서 갈증없이 안으로 마음의 고요를 성취했거나 성취하고 있거나 성취할 자라면
누구든지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의 생성이나 소멸이나 유혹이나 위험이나 여읨을 있는 그대로 알아서
그에 대한 갈애를 버리고 타는 듯한 고뇌를 버리고
갈증없이 안으로 마음의 고요를 성취했거나 성취하고 있거나 성취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감탄의 말씀을 읊으셨다.
"병 없음이 최상의 이익이며
열반이 최상의 즐거움이네.
여덟 가지 고귀한 길은
불사(不死)의 평온에 이르는 길이로다."
중생은 반려자로서 '탐욕'을 선택하는데
'갈애, 탐욕, 명성' 이런 것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이 갈 수 없다는 가르침이 있다
(둘 중 하나 선택해야 한다, 나의 몫) (두 마리 토끼 잡을 수? - 생각으로만 가능)
▶불사(不死) - 아마따(amata): 죽음 없음 (감로, 열반과 동의어)
깨달음을 획득한 자 - 아마따 다싸(amatadasa): 불사를 본 자=열반을 본 자
※빨리어 '불사의 문' - 아마따 드와라(amatadvar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