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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호랑이의 활약과 최후
초기에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켰던 호랑이
어찌되었던 TIGER-II 는 고난을 딛고 1944년 2월부터 생산이 되어 바로 전선에 투입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 데뷔는 기대만큼 멋지지는 않았는데 오히려 참담한 수준이였습니다.
TIGER-II 의 최초의 수령부대는 일선에서 활약하던 독립 중전차 부대가 아닌 제 316 무선전차중대 (316 Funklenk-Panzerkompanie) 로 이 부대에는 1944년 3월14일 포르쉐형 포탑을 장착한 초도생산차량 (Fgst #28001~28005) 5대를 수령했는데 이 티거II들은 프리츠 아비에라인중장의 교도기갑사단 (Panzer LehrDivision 130th Panzer Division) 에 배속되어 노르망디 전선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대부분 고장등으로 버려지면서 전량을 손실하게 됩니다.
이어 TIGER-II 의 두번째 배치부대는 제 503 독립중전차대대 (503rd Schwere Panzer Abteilung)로 1중대가 12대를 인수 (Fgst #28023~28035)하여 티거-I 과 혼성부대를 구성 노르망디 전선으로 출동하게 됩니다.
[노르망디로 이동중인 TIGER-II의 모습 이때는 이미 제공권을 연합군에 빼앗긴 상황이라 공습을 피해 이동해야했다]
하지만 노르망디 전선에 투입된 TIGER-II 는 이렇다할 활약도 펼쳐보지 못한채 대부분 함포공격 이나 항공지원공격 혹은 연합군 전차의 협동공격에 말려들어 격파되거나 연료부족 혹은 고장등으로 유기되게 됩니다.
[대부분의 TIGER-II 는 이동중 연료부족이나 고장으로 버려졌는데 아직 기계적으로 완성되지 않은터라 크고작은 고장이 잦았다]
이후 제503 독립중전차대대는 꾸준히 티거-II 를 공급받아 마침내 완전편제를 완료하게 되었지만 노르망디 전선에서는 결국 이렇다할 활약을 펼쳐보지 못한채 대부분의 전공을 티거-I 에 양보하게 되는데 티거-II 가 맥을 못추는 가운데 티거-I 은 1944년 6월13일 비예흐 보까즈 전투에서 무장친위대 제101 독립중전차대대 2중대장 미하일비트만 SS중위와 1중대장 칼 룰프 뫼비우스 SS대위가 영국군 제7기갑사단 22기갑여단예하 4런던 의용 기마병 연대를 기습공격해 전차와 장갑차 28대를 단신으로 격파하는 전과를 거두는등 뛰어난 활약을 하게 되는데 여기에 추가 투입된 제102 SS 독립 중전차대대 역시 만만치 않은 전과를 올렸기 때문에 정작 노르망디에서 TIGER-II 는 큰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TIGER-II 를 정면에서 격파할수 있는 전차는 그리 많치 않았다 전면장갑 150밀리 하부만 해도 100밀리에 달하는 중장갑으로 사진의 TIGER-II 역시 관통되지 않고 포탄의 흔적만 남아있는것을 볼수 있다]
이는 동부전선도 마찬가지였는데 제501 독립중전차대대에 배치된 TIGER-II 가 1944년 8월11일 9월1일에 걸친 오글레도프 일대 공방전에서 소련제6친위 중전차군 예하 53친위 전차여단 및 제71 친위 독립 중전차연대와의 격전끝에 19대의 TIGER-II 를 손실하는 망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오글레도프 전투
*** 이것은 russian battlefield에 나온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볼프강 슈나이더 "의 저서와 "스티븐 잘로가"의 저서와 약간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특히, 날짜에서...간단히 교차 비교해 놓았습니다. russian battlefield는 다소 소련군의 입장을 두둔하는 듯한 사이트라 전적으로 믿는데는 한계가 있는 듯 합니다.
### 소련군 오스킨의 T-34/85전차의 활약
1944년 8월 10일, 제1우크라이나군 일부는 비스툴라강을 도하하여 폴란드 산도미에르즈의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한 후, 제4전차군을 투입하여 교두보를 확장한다. 독일군은 소련군 교두보를 제거하기 위해 남부우크라이나 집단군에서 5개 사단, 독일에서 5개 사단, 헝가리에서 3개 사단과 6개 돌격포 대대를 투입한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반격에 대비하고자 부대를 재편성하는 한편 대규모 지뢰지대를 설치한다.
8월 11일, 제3 근위전차군 소속 제6근위전차군단 소속 부대들은 전날 점령한 스지들로프와 오글레도프 주위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당시 소련군 교두보는 비스툴라강을 배후로 불규칙한 반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제52근위전차여단이 좌측방 경계를 담당하였다.
또한 모래로 이루어진 지면은 전차호를 구축하는데 어려움을 주었는데, 이는 독일군에게도 똑같이 어려움을 주었다. 모래속에서 기동에 지장을 받은 독일군 판터 전차들은 자세를 취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판터 전차의 약점인 측면이 소련군에 노출되곤 하였다.
11일 하루 동안 제53근위전차여단 혼자 8대의 독일군 판터 전차를 격파하는 성과를 거둔다.
12일, 제53 근위전차여단장 아크히포프와 참모장 키릴킨은 더 이상 독일군이 모래언덕을 뚫고 정면공격을 단행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그들의 병력과 장비를 측면 방어에 집중시킨다.
코로보프의 제2전차대대가 맡은 구역은 확 트인 개활지였다. 그들의 우측방은 마주린의 제3전차대대가 배치되어 있었는데, 그곳은 깊고 넓은 계곡으로 오글레도프에서 스타스조프로 이르는 도로가 나 있는 곳이다.
그 도로는 소련군 진지로 접근하는 유일한 진입로로 당연 독일군도 이 도로에 주목하였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진입에 대비하고자 언덕위에서 매복을 하기로 하고 2대의 T-34전차를 배치한다. 나머지 전차들은 오글레도프에서 1km 떨어진 주방어선에 배치되었다.
독일군의 움직임을 살피기 위해 전차와 모터싸이클로 이루어진 3개의 정찰대를 보낸다. 이들 정찰대의 보고서를 보면...
“12/13일 동안 야간을 이용한 정찰에서 501중전차대대 제1중대 소속 독일군 한 명과 제16기갑사단 제79자동차화연대 제10중대 소속 독일군 한 명을 포로로 잡아 심문한 결과, 코닉폴 기차역에서 제 501중전차대대가 도착한 다음, 미확인 전차사단이 하역되었다고 하였다. 제501중전차대대는 3개 중대와 1개 보급중대로 구성되었으며 모두 40대의 전차 중 판터가 20대, 4호전차가 20대였다. 하역된 40대의 전차는 치밀리크로 행군 중 약 30대만이 도착하였고 나머지는 고장을 일으켜 수리해야만 했다고 하였다.”
제501중전차대대의 도착은 매우 중요한 변수였다. 이 대대는 1944년 7-8월 사이에 오르드루프 훈련장에서 재편성되면서 당시에는 슈퍼 전차로 불리운 ‘티이거 II’ 전차 45대를 수령했었다.
비장의 무기인 티이거 II 전차는 신뢰성 면에서 미처 검증이 되기도 전에 허겁지겁 동부전선으로 투입되어야 했다. 더구나 제501중전차대대 일부만(3개 중대 중 2개 중대)이 폴란드로 향했다.
*** 참고로 1개 중전차대대대의 편제를 살펴보면, 소대당 티이거 II 4대, 3개 소대로 이루어진 1개 중대는 중대본부 2대를 포함하여 14대, 3개 중대로 이루어진 대대는 대대본부 3대를 포함하여 모두 45대로 구성되었다.
### 소련군 보고서###
8월 9일, 제501중전차대대가 폴란드 코닉폴 기차역에 하역되어 전선으로 향했다. 포로 심문결과 절반은 판터, 절반은 4호전차로 구성되었다는데, 나중에 밝혀진 바에 의하면 판터가 아니라 티이거 II였다. 아마 포로는 이 사실을 숨기고 싶었던 것이었다.
16전차사단 본부로 예정된 지역까지 행군하는 동안 10대의 티이거 II가 고장을 일으켰다. 11일, 고장을 수리하고 재보급을 하면서 이틀을 보낸 제501중전차대대는 다시 행군을 하여 스지들로프에 도착하였다. 고장은 계속 일어나 단 11대의 티이거 II만이 도착하여 전투 준비에 들어갔다.
소련 제6근위전차군은 독일군에 비해 수적 우위를 점하지 않았다. 제 53근위전차여단은 9대의 T-34-76, 제52근위전차여단은 9대의 T-34-76과 10대의 T-34-85, 제52근위전차여단은 11대의 T-34-76과 4대의 T-34-85를 보유하고 있었다. 스타스초프에는 제71독립 근위 중전차연대 소속 11대의 IS-2와 1대의 IS-85 중전차가 배치되어 있었다.
### 볼프강 쉬나이더의 저서 “Tiger in Combat I"에서 이 대목을 보면...
제501중전차대대는 1943년 10월에서 1944년 7월초까지 동부전선에서 치열한 격전 끝에 45대의 Tiger I 전차를 모두 잃고, 1944년 7월 14일자로 오르드루프 훈련장에서 재편성된다.
1944년 8월 7일까지 45대의 티이거 II 신형 전차를 지급받는다. 8월 5일, 제501중전차대대(제1중대는 제외)는 철도를 이용해 폴란드 바라노프 교두보로 이동한 다음, 제드레체포 까지 무려 50km를 행군하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티이거 II 전차들이 고장을 일으킨다. 주로 최종구동장치의 결함 때문이었다.
8월 11일, 제501중전차대대는 제16기갑사단에 배속되어 치밀니크에서 스지들로프 방향으로 공격한다.
8월 12일, 공격은 적의 강력한 방어로 인해 돈좌된다. 티이거 II 8대만이 가동되었다. 소련군 제53근위전차여단 소속 T-34-85전차의 매복공격으로 3대의 Tiger II전차가 완파되었다. 포탑안의 포탄이 폭발하여 치명적 피해를 입혔다. 이로 인해 많은 전차병들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독일군은 Tiger II 전차 포탑내부에 탄약을 적재하지 않는 조치를 내리는데, 수행탄약수가 68발로 줄어든다. 같은 날, 제501중전차대대 제1중대가 오글레도프에 도착하여 대대에 합류했다.
8월 13일, 격렬한 전투가 지속되고 1대의 Tiger II (002호)가 소련군에 포획되었다.
8월 중순까지 소규모 전투가 이어지고 Tiger II 전차들은 새로운 최종구동장치를 지급받는다.
8월 22일, 제501중전차대대는 어이없게도 강력한 소련군 보병부대가 진을 친 라돔지역에 배치되는 불운을 맞는다. 이곳은 전차전이 불가능한 지형으로 여러 대의 Tiger II 전차들이 적에 의해 격파된다. 설상가상으로 대대장이 히틀러 암살음모에 가담한 혐의로 보직 해임되었다.
9월 1일, 26대의 Tiger II 만이 남았고, 대대는 제38기갑군단에 배속되었다.
### 다음은 소련군 제53근위전차여단장의 전투 경과 설명
8월 12일 밤, 전차엔진소리가 독일측 지역에서 들려왔다. 새벽이 오기 전에 제53근위전차여단장은 본부에서 돌아와 제1전차대대 관측포스트에서 적정을 관찰하였다. 전방과 우측으로는 계곡이었고 가운데 도로가 나 있었다.
왼쪽으로는 건초더미가 쌓여 있는 곳으로 이곳에는 이부쉬킨의 전차들이 매복하고 있었다. 계곡 초입에는 오스킨의 T-34-85가 배치되어 있었다. 건초더미속에 매복하고 있던 이부쉬킨은 오스킨에게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발포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다음날 아침은 옅은 안개가 끼여 적정 관측에 어려움을 겪는데, 제1전차대대 관측소에서도 안개로 인해 관측을 할 수 없었다. 잠시 후, 아침의 정적을 깨는 육중한 전차 엔진소리가 들려왔다. 곧 캐터필러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하늘에서는 스타스초프로 접근하는 융커스 폭격기들의 소리가 들려왔고, 곧 이어 독일군 포병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포탄들이 전방 초소 머리 위를 날아가 멀리 떨어진다. 아직 적은 우리 여단 본부 및 매복지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8월 13일 오전 7시, 안개가 짙게 낀 틈을 이용하여 독일군은 11대의 티이거 II 중전차를 앞세우고 전진해왔다. 이부쉬킨의 목소리가 무전에서 흘러나왔다. “전차가 지나가고 있다. 볼 수는 없지만 들을 수는 있다. 독일군이 계곡을 통과하고 있다.”
계곡으로부터 전차소리가 굉장히 크게 들렸다. 좌측을 엄호중인 코로보프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다급하게 들려왔다.
“그들이 온다!" "
"400m안으로 들어올 때까지 참고 기다려라!”
1번 전차 뒤로 2번 전차, 3번 전차가 나타났다. 1번 전차는 이미 이부쉬킨이 매복지를 지나갔다. “사격?” 오스킨이 물었다. 이부쉬킨은 “사격!” 명령을 내렸다. 곧 오스킨의 T-34-85전차가 서서히 기동하면서 건초더미 일부가 움직인다. 곧, 오스킨의 T-34-85전차의 85mm 포가 불을 뿜었다.
### 오스킨 자신의 전투 경과 설명을 보면...
“쌍안경을 통해 독일전차의 옆구리에 난 관통구멍을 정확히 볼 수 있었다. 처음엔 연기가 솟아났는데 곧 화염을 볼 수 있었다. 세 번째 전차가 나에게로 방향전환하려고 했지만 캐터필러가 피탄 되어 마음대로 기동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세 번째 전차를 향해 포탄을 퍼부었다.
나는 암호통신 305-307을 보냈다. 그 순간 독일군 곡사포 공격이 시작되었고 항공공격으로 계곡은 먼지와 연기로 자욱하였다. 융커스 폭격기와 메사슈미트 전투기가 상공에 나타남과 동시에 소련 전투기들이 도착하여 치열한 항공전이 시작되었다.”
### 다음은 “스티븐 잘로가”의 저서에 기록된 오스킨의 활약
1944년 8월 11일, 제6근위전차군 제53군위 파스토프 전차여단소속 알렉산더 P. 오스킨의 T-34-85전차는 폴란드의 오글레도프를 정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 정찰에는 1개 보병팀이 그의 전차에 동승하였다.
마을에 도착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마을 반대편 외곽으로부터 독일군의 행렬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스킨은 즉시 여단장에게 보고하는데, 적의 눈에 띄지 않도록 하고 독일군을 정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전차차체는 이미 옥수수밭으로 인해 잘 은폐되었고 포탑부근과 모든 보병들도 옥수수대로 위장하였다. 독일 전차대 일부가 오글레도프에 진입하였고 곧, 어둠이 깔리면서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당시 오스킨은 그 전차 행렬이 독일이 자랑하는 티이거 II 전차인지 모르고 있었다. 45대의 티이거 II를 장비한 독일 제501중전차대대가 폴란드에 도착하여 이곳까지 행군하는 동안 최종기어가 고장 나서 단 8대만이 도착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그들인지 오스킨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8월 12일 아침, 독일군은 비스틀라강의 산도미에르즈 부근 소련군 교두보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고 행동에 들어가는데...
옥수수밭에서 매복중인 오스킨은 이들의 움직임을 똑똑히 보고 있었다. 아직 독일군은 오스킨의 전차를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었다. 독일군의 티이거 II 전차행렬은 천천히 도로를 따라 이동하고 있었다.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독일 전차대는 그들의 치명적 약점인 측면을 노출시키게 된다.
오스킨은 장진수에게 BR-365P철갑탄을 장진하라고 지시한다. 티이거 II 전차가 200m거리에서 측면을 노출하자 즉각 포수에게 사격명령을 내린다.
첫 발이 독일군 전차 행렬의 두 번째 전차를 가격하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효과가 없는 듯하였다. 그러나 첫 발은 티이거 II의 포탑측면을 관통하여 승무원들을 즉사시켰다. 오스킨은 2발의 BR-365포탄을 발사하는데, 피격된 티이거 II 전차 포탑에 적재된 포탄이 폭발하여 완파되었다.
이 때, 선두 티이거 II 전차가 포탑을 회전시키며 매복자를 찾고 있었다. 그러나 먼지와 연기로 인해 목표를 찾는데 실패하는데, 오스킨은 3발의 85mm 포탄을 티이거 II에 날린다. 그러나 포탑 정면을 튕겨 나간 포탄은 티이거 II에 전혀 피해를 주지 못했다. 간신히 4번 째 포탄이 포탑링에 명중되어 관통되고 적재포탄의 유폭으로 인해 거대한 폭발을 일으킨다.
세 번째 티이거 II 전차는 두 번째 전차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와 화염으로 인해 목표를 찾지 못하자 전속력으로 후퇴하기 시작하였다. 오스킨의 T-34-85전차는 차체 후방에 설치된 MDSh 연막통을 터뜨리며 자신을 숨기면서 세 번째 티이거 II를 뒤쫓는다.
기동력에서 보다 나은 T-34-85전차는 티이거 II의 후방을 따라 잡아 85mm 철갑탄을 발사하는데, 이 포탄은 장갑이 상대적으로 약한 후면 장갑판을 관통하여 엔진을 파괴시키고 화염에 휩싸이게 만드는데 성공한다.
[소련군의 매복작전에 걸려 격파된 TIGER-II 전차의 모습 당시 최고의 전투력을 가진 최신 전차가 당한 사실은 소려군에게는 대단하 전과였고 독일군에게는 치욕이였다] 이 날, 오스킨의 T-34-85전차는 3대의 티이거 II 전차를 격파하였다. 이 과정에서 독일군은 모두 11명의 전차병을 잃고 15명의 생존자들이 소련군에 포로로 잡혔다. 당시 독일군은 소련군의 강력한 방어선에 걸려든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독일군의 TIGER-II 를 격파한 소련군 최고의 전차 에이스 오스킨 중위에 그의 T- 34/85형의 모습]
오스킨은 이러한 전과로 소련 최고 영웅칭호를 받고, 다른 전차병들도 각각 훈장을 받았다.
[오글레도프에 파견된 제501중전차대대 소속 티이거II 는 노획되어 현재 쿠빙카 전차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사진의 전차가 그중 하나]
*** 오글레도프에 파견된 제501중전차대대 소속 티이거 사진은 조만간 괜찮은 것으로 올리고 지금은 대충 올립니다... 양해를..
출처 유용원의 군사세계의 산토끼님의 글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74&num=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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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전투에서는 알렉산드르 오스킨 중위의 T-34/85 에 격파된 차량중 일부가 포탄내에 적재된 포탄의 유폭으로 밝혀지면서 이후 포탑내 포탄 적재가 금지되어 TIGER-II 의 포탄적재량은 64발로 (예전에는 84발)로 감소하게 됩니다.
이들 초기 전투에서 TIGER-II 가 망신을 당한 이유로는 급하게 막 배치된 차량이라 승무원들이 이 전차에 대한 정확한 조종법을 다 익히지 못한점과 대량운용되지 못하고 각개로 운용된 점 그리고 지형지물을 익히지 못했으며 적은 매복하여 이를 기다린 전술이 잘 먹힌 경우 입니다. 특히 초기형의 TIGER-II의 경우 크고 작은 트러블이 속출했기 때문에 전투중 버려지거나 아군에 의해 파괴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서히 드러나는 TIGER-II 의 활약~~
하지만 점차 전차병들이 신형전차에 대한 운용에 익숙해지고 전장이 독일로 좁혀들면서 신형전차는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게 되는데, 1944년 9월 노르망디에서 대부분의 차량을 손실해 궤멸당한 제503 독립 중전차대대가 45대의 신품차량을 수령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로 이동, 소련군의 IS-II 와 격전을 벌이면서 대등한 전투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이 부대는 1945년 2월16일 부다페스트 함락과 함께 대대는 차량을 전량 손실한채 전차병들만 간신히 탈출하게 됩니다.)
[1944년 9월 노르망디에서 대부분의 차량을 손실해 궤멸당한 제503 독립 중전차대대가 45대의 신품차량을 수령해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로 이동, 소련군의 IS-II 와 격전을 벌이면서 대등한 전투력을 인정받게 된다. (이 부대는 1945년 2월16일 부다페스트 함락과 함께 대대는 차량을 전량 손실한채 전차병들만 간신히 탈출하게 됩니다.)]
[초기배치분에서 속출했던 여러가지 문제점 역시 꾸준히 개선되어 점차 제 성능을 발휘하게 된다.]
비슷한 시기에 제506 독립중전차 대대가 같은기간 차량을 수령해 소련군을 맞아 격전을 벌였지만 1944년말 동프러시아 나레프 일대에서 사실상 최후를 맞이하기도 하는등 TIGER-II 는 대전말 복잡한 독일의 상황을 그대로 대변하는듯 했습니다.
TIGER-II 가 본격적인 대활약을 펼치게 된 것은 1944년 8월 제506독립 중전차 대대가 45대의 T차량을 인수하여 적응훈련을 받던중으로 연합군이 무리하게 마켓가든 (Operation 'Market Garden’ 1944년 9월 17일~9월 25일)작전이 개시하면서였습니다. 마켓가든 작전이 실행되자 아 부대는 즉각 네덜란드의 아르헴 지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 연합군 공수부대의 무덤이 된 마켓가든 작전에서 TIGER-II 는 맹활약을 하게 된다. 사진은 마켓가든 작전의 주요 목표가 된 네덜란드 아르헨의 다리의 모습]
Operation Market Garden
마켓가든 작전(1944년 9월 17일~9월 25일)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벨기에와 알자스-로렌 지역까지 진격한 연합군이 보급 문제로 진격이 정체되자 북쪽의 네덜란드에서 전력이 약화된 것으로 믿은 독일군을 단숨에 돌파하여 바로 라인 강을 건너 전쟁을 크리스마스 전에 끝내자는 욕심으로 벌인 작전이다. 독일 본토로 진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천연의 장애물 라인 강을 돌파하기 위해 작전 목표를 독일이 점령 중인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번, 네이메헌, 아른험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놓인 교량으로 설정하고 대규모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이 교량들과 거점 도시들을 점령하고 그와 함께 연결된 도로를 통해 기갑 부대를 신속히 독일 본토로 진격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마켓가든 작전(1944년 9월 17일~9월 25일) 치루어진 작전으로 북쪽의 네덜란드에서 전력이 약화된 것으로 믿은 독일군을 단숨에 돌파하여 바로 라인 강을 건너 전쟁을 크리스마스 전에 끝내자는 욕심으로 벌인 작전이다. 독일 본토로 진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천연의 장애물 라인 강을 돌파하기 위해 작전 목표를 독일이 점령 중인 네덜란드의 에인트호번, 네이메헌, 아른험을 연결하는 도로를 따라 놓인 교량으로 설정하고 대규모 공수부대를 투입하여 이 교량들과 거점 도시들을 점령하고 그와 함께 연결된 도로를 통해 기갑 부대를 신속히 독일 본토로 진격시킨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이것은 오판으로 끔찍한 결과를 낳게 된다]
작전은 9월 20일 발 강에 위치한 네이메헌 다리 확보와 함께 초기에는 순조로웠지만, 라인 강에 위치한 아른험 다리 확보에 실패하고 영국 1 공수사단이 독일군의 반격으로 괴멸하면서 결국 실패로 끝났다. 독일이 서부전선에서 거둔 최후의 승리로 평가된 전투였다.
(출처 위키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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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헴에 도착한 제506독립 중전차 대대는 영국군 제1 공수사단의 전 병력이 집결한 오스터르베크 공략에 투입되어 (TIGER-II 한대는 영국군의 피아트 로켓발사기에 당했지만) 영국군 공수부대를 몰아부치며 아르헴 방어전을 성공리에 이끌게 됩니다.(이 전투로 투입된 영국군 공수부대 사단병력 10,005명중 생존해 귀환한 병사는 겨우 2,163명에 불과했다)
이후 재정비를 거쳐 아헨 방어전에 투입되었고 이어 1944년 12월16일 아르덴느공세(Battle of the Bulge)에 투입되어 활약을 하지만 대부분 연료부족으로 인해 전투중 손실보다는 대부분이 전차승무원에 의해 자폭처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동시에 투입된 무장친위대 제501 독립 중전차대대는 제 509 독립 중전차대대의 차량 11대를 넘겨받아 총45대로 완편되어 빌헬름 몽케 SS소장의 제1 SS기갑사단 ‘ 아돌프 히틀러’ 에 배속되어 파이퍼 전투단과 함께 진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진격과정중에 대부분의 TIGER –II 는 전투에서 손실보다는 역시 연료부족과 빈번한 고장으로 버려지게 일쑤였고 그나마 유일하게 12월18일 스타벨로트 시내를 강행돌파하려다가 격파된 1중대장 위르겐 베쎌 SS 중위의 105호 차량이나 12월19일 스타벨로트 방어전에서 미제3기갑군사단 예하 823 구축전차대대의 M10과 교전을 벌였다가 기동불능에 빠지는 바람에 포기한 쿠르크소바 SS하사의 222호 차량 정도만이 전투중에 파손을 당해 버려진 경우였습니다.
대부분의 TIGER-II 차량은 작전지역 이동중 연료부족으로 방치되거나 연합군의 공중지원 공격으로 전투중 손실되게 되는데 한예로 제2소대장 게오르기 한트쉬 SS소위의 221호는 12월22일 베리몽에서 이동불능에 빠지게 스스로 자폭처리되었고 파이퍼 전투단이 최후를 맞이한 ‘라 글레즈’에 방치되었다가 12월26일에 노획된 오토 블라제 SS병장의 332호는 미군이 노획하여 본토로 가져가 버리기도 합니다.
한편 제프 프란츨 SS하사의 104호(Fgs# 280093) 역시 라글레즈 시가지 외곽에서 방어전을 수행하다 격파된 후 영국으로 압송되어 보빙턴 박물관에 전시되어지기도 합니다.
또한 프란츠 파우스만 (Franz Faustmann) SS병장의 213호 (Fgst # 280273) 은 주포포신이 파손된채 현재에 방치되던 것을 훗날 판터전차의 포신으로 복구하여 복원해 현재까지 지역관광 자원으로 잘 남아있기도 합니다.
[스위스의 어느 농가에 버려진 이 전차는 노획되어 사용되는것을 막기위해 전차병에 의해 포신이 파괴되어 있다. 이 전차는 판터의 75밀리 포신을 끼우고 복원되어 현재 스위스의 관광자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복원되어 현재 스위스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는 TIGER-II 전차로 파괴된 88밀리 포신대신 판터전차에서 빼낸 75밀리 포신을 끼워 복원해냈다고 한다]
한편 참패를 당한 서부전선과는 달리 동부전선에서는 TIGER-II 는 소련군들의 전차들을 상대로 뛰어난 활약을 하며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는데, 2차대전중 동부전선에 투입된 TIGER-II들은 총 274대!!! 이중 1945년 1월13일 리조프에서 제501 돌립중전차대대 소속 111호 차량이 기동불량에 빠진상태에서 그 자리에서 22대의 소련군 전차를 격파하는가 하면 대대 차체에서도 총 60여대의 소련군 전차를 격파함으로써 오글레도프 에서 당한 치욕 (1944년 8월11일 소련군 오스킨 중위의 T-34/85전차가 홀로 독일 제501중전차대대소속 티이거 II전차 3대를 격파한 전투) 을 씻게 됩니다.
1945년초에 되어서야 약간의 차량을 수령한 제 502독립중전차대대는 1945년 1월25일 15대의 소련군 전차를 격파하는 것을 시작으로 4월13일에는 15대를 추가격파하는데 모두 티거II 1대가 이룬 전과였습니다.(물론 전차장은 다른인물들..)
이어 4월26일에는 코스틀러상사의 217호 차량이 9대의 소련군 전차를 격파하였으며 다음날에도 T-34/85 2대 ,IS-II 2대 M4A2 셔먼전차 1대를 격파하는등 뛰어난 활약을 했지만 결국 대대는 소련군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이어지는 다른 부대들의 전과들을 살펴보면…
제503 독립중전차 대대는 4월13일 룬데르부르크에서 TIGER-II 두대가 16대의 소련군 전차를 격파하였고, 21일에는 포이스도르프에서 3: 25의 격전이 벌어져 이중 소련군 전차 18대가 격파되기도 합니다.
[6호전차 티거의 등장이 있다 소련군은 주포를 기존의 76.2 밀리에서 85밀리로 강화한 T-34/85 를 투입하기에 이른다]
제509 독립 중전차대대에는 1945년 1월27일 4대의 TIGER-II로 41대의 소련군전차를 격파해 0:41 이라는 믿기지 않은 스코아를 세우기도하는등 동부전선에서의 TIGER-II 의 전설은 그 끝을 모르고 계속되어 갔는데, 3월6일에는 엄페호에서 포탑만 내밀고 포격을 하던 IS-II전차대에 2대의 TIGER-II 가 돌격해 원거리에서 순식간에 이들 소련군전차 6대를 격파하며 독일제 조준장치의 우수성과 88mm KwK43 L/71포의 파괴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전투를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전차 역시 TIGER-II의 먹이에서 벗어날수는 없었다]
여기에 같은 부대의 대대는 3월13일 매복해 있던 SU-152 24대를 습격하여 모두 이를 모두 격파하는등 호랑이들의 사냥꾼으로 악명을 떨치던 SU-152들을 반대로 소탕하는 큰 전과를 올리기도 했습니다.
[88밀리 대공포를 개조한 주포에 100밀리 중장갑을 한 6호전차 티거가 등장하자 소련군은 이를 격파할 대응책으로 122밀리 주포를 장착한 IS-II 스탈린 전차를 배치하기에 이른다. 비록 구경은 컸지만 곡사포인 122 mm corps gun M1931/37 (A-19) (Russian: 122-мм корпусная пушка обр. 1931/1937 гг. (А-19))를 개조한 포로 포구속도가 느리고 탄도가 곡선이라 맞추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구경이 큰 만큼 일단 피격되면 중장갑인 티거 조차 한방에 훅 갈수 있는 위력을 가진 포를 가진 전차였다]
이어 3월24일에는 치열한 격전을 벌여 아군의 TIGER-II 3대가 손실되었지만 T-34/85 8대와 IS-II 8대를 격파해버려 3:16의 스코아를 올리기도 했습니다.(이들 부대는 이처럼 뛰어난 전과를 올렸지만 결국 3월9일 카플리츠에서 미군에 항복을 하게된다)
[이 역시 2천미터 이상의 원거리에서 정확하게 포격하는 TIGER-II의 포격앞에 불타오르는 전차로 변하기 일쑤였다]
이처럼 동부전선에서의 TIGER-II 의 활약은 실로 말로 다하기 힘든 뛰어난 활약을 하면서 소련군으로 하여금 TIGER-II 의 악명(?)을 널리 떨치게 되는데 소련군은 이에 TIGER-II를 사냥하기 위해 당시 최신의 IS-III 스탈린 전차를 투입했지만 이때는 이미 독일군들이 항복하고 본국으로 철수한 때라 직접적인 전투를 벌일 기회는 없었습니다.
[IS-II 와 T-34/85형의 투입에도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햇던 소련군은 급기야는 최신의 JS-III 스탈린 전차를 투입하려했지만 그즈음 이미 독일군의 기갑세력은 모두 와해된 상태로 훗날 이 전차는 서방 전차연구가들을 경악하게 한 전차로 소련제 전차의 신화를 시작하게 한 전차중 하나이다.]
아르덴느 공세이후 독일의 전력은 급격하게 약화되어 1945년초에 이르면 이미 독일의 패망은 기정사실화하게되는데 여기에 ‘東’으로는 소련군이 ‘西 ‘로는 미영국을 기반으로 하는 연합군이 쳐들어오는 일촉측발의 상황인데다가 설상가상으로 1945년 3월에는 카셀에 있는 헨셜사의 공장마져 미군에 접수되는 바람에 총 492대 (489대라는 설도 있으나 Jentz 1996, p. 288.에서는 492대라고 정의하고 있다)를 생산하고 더 이상의 TIGER-II 를 생산할 수 없게 됩니다.
[벌지전투 (아르덴느전투) 에서 무리한 독일군은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패주하게 되는데..]
[끝내 소련군은 독일의 수도 베를린까지 밀어부치게 되고..]
[다량의 전차를 앞세운 소련군은 1945년 5월4일 독일의 항복을 받아내기에 이른다]
이들 전차들을 끝으로 남은 TIGER-II 들은 수도 베를린이 함락되는 5월4일까지 끝까지 저항한것으로 유명합니다.
특히 무장 친위대소속의 503 독립중전차 대대의 TIGER-II 6대가 베를린 최후의 방어전에 참전하여 소련군을 상대로 최후까지 항전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며 이 대대소속의 칼 쾨르너 SS 상사는 4월21일 자신의 TIGER-II 로 소련군 전차 15대를 홀로 격파하는등 용전분투하다 자신의 전차가 격파되자 5월2일에는 판터로 갈아타고 다시 2대의 소련군 돌격포를 격파하는등의 활약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TIGER-II 의 최후의 임무는 밀려드는 소련군으로 부터 아군을 보호하여 좀더 인간적은 대우를 해주는 미영국측에 항복하는 독일군을 보호하는 임무였다. 그리고 한대한대씩 호랑이들은 쓰러져갔다]
하지만 최후까지 저항도 슬슬 종말을 고하게 되는데 물밀듯이 밀려오는 소련군의 돌격앞에 최후로 항복을 하기위해 미군진영을 향하는데 TIGER-II 는 탈출의 선봉에 서게 되는데 아쉽게도 미군진지 코앞인 슈판다우교 일대에서 소련군의 대전차 화망에 걸려들어 최후를 맞이하면서 호랑이의 전설은 끝을 맺게 됩니다.
호랑이의 에이스들
이번에는 TIGER-II 에 탑승하여 전과를 올린 3인의 에이스를 소개합니다. 내용은 디펜스코리아 타입 (2009년도 12월호에 실린글을 참고했습니다.)
1. 쿠르크 크니스펠 상사( Feldwewel kurt Knispel 1921.9.21~1945.4.29)
쿠르크 크니스펠 상사는 지난 TIGER-I 이야기때도 잠시 다룬적이 있는 독일 최고의 전차 에이스로 공식 확인된 격파수만 해도 168대 비공식 기록까지 더히면 무려 198대의 적 전차를 까부신 그야말로 독일의 전차 에이스중 에이스 입니다.
[ 쿠르트 크니스펠의 얼리적 모습 앞줄 오른쪽이 그이다. 그는 독일 태생이 아니다. 체코 변경에서 태어난 독일계 주민이었다. ]
1921년 체코의 주테덴란트에서 출생한 체코계 독일인인 그는 1940년 독일육군에 입대하여 하 슐레지엔 지방의 자강 (Sagan 현재는 폴란드 지명인 “Zagan” 으로 바뀌었음)에 위치한 기갑 보충병 휸련대대에서 기초훈련을 받고 1940년 10월1일 모든 훈련을 이수한 그는 제12기갑사단 29전차연대 1대대 3중대에 배치되어 1941년 6월11일까지 4호전차의 장전수, 포수 교육훈련을 모두 이수하게 됩니다.
[쿠르트 크니스펠 의 모습 그는 앞서 소개한 비트만 중위나 오토 카리우스 중위에 비하면 별로 알려져 있지 않은 에이스지만 그의 전과를 알면 앞서 이야기한 에이스들은 애들에 불과하다는게 최근의 정설이다]
1941년 6월22일 바로바로사 작전이 발동되자 헬만중위의 4호전차의 포수로 탑승한 그는 맹활약을 하며 전장을 누비게 됩니다.
[쿠르트 크니스펠이 탑승했었던 차량으로 알려진 티거 차량 그는 4호전차부터 티거2ㅇ 이르기 까지 다양한 전차를 모두 탑승했었다]
1943년 1월 드디어 신형 TIGER-I 전차로 옮겨탄 쿠니스펠은 파더보른에 위치한 제500 전차 훈련대대에서 적응훈련을 받은후 제503 독립전차대대 1중대로 배치받게 되는데 이 부대는 그가 최후를 마치게 되는 마지막 부대가 됩니다.
1943년 쿠르스크 전투이후 그가속한 제503 독립전차대대는 수많은 격전을 치루게 되는데 그 와중에 그는 차근차근 전적을 쌓아가기 시작합니다.
[쿠르트 크니스펠 의 전차장 시절의 모습 이 독일 기갑의 본좌는 비트만 중위나 오토 카리우스 중위에 비하면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독일 전차 격파의 탑 에이스들이 주로 장교들이지만 그는 다른 에이스인 바르크만과 같은 부사관 출신이었다. ]
앞서 설명했듯 제503 독립중전차대대는 최초로 티거II를 수령하게 되는데 그가 속한 1중대에 12대의 차량을 배치 쿠스스펠은 처음으로 이 전차와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그가 속한 제503 독립중전차대대는 1944년 5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의한 방어를 하러 가지만 그다지 큰 활약은 하지 못했고 다시 동부전선으로 배치되면서 비로서 그의 활약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그는 전차장으로 승진하게 되었고 무려 24발의 포탄을 맞고도 멀쩡하게 살아남으면서 그 전설을 이어가는데 동부전선에서 그는 꾸준히 스코아를 늘려나가 공식적으로 확확인된 것 해도 무려 168대!! 이는 제502 독립 중전차 대대의 오토카리우스 중위 나 요한네스 뷜터대위 그리고 티거 에이스로 유명한 보카주 전투의 영웅 미하일 비트만 대위들이 많아야 130~150대를 격파한 것이 비하면 월등한 숫자이며 그가 양보한 비공식 기록까지 더하면 무려 198대나 격파했다는 주장이 있을정도로 엄청난 격파수였습니다.
[후반에는 드디어 퀴니어스 타이거라 불리는 타이거II에도 탑승했다. 히틀러가 소련을 침공했던 바르바로사 작전부터 그는 전차의 포수로 참전했다
쿠르트는 독소 전쟁의 여러 전선을 전전했다. 야르제프에서 전투의 첫 맛을 본 그는 스타린그라드 전역(戰域)과 레닌그라드 , 그리고 코카서스 전선에서 실전을 겪으며 경험을 쌓았다. 1943년 1월말, 그는 푸트로스의 기갑 학교에서 타이거 전차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었다. 동부 전선에서 몇몇 주요 전투에 참여했던 그의 부대는 다시 본국으로 소환되어 타이거 2 전차로 재장비했다.]
이는 연합군 및 독일군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기록으로 그의 뛰어난 감각과 경험 그리고 TIGER-II 전차의 우수한 성능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런 전적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전차에이스와는 달리 이렇다할 훈장이나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아마 그가 체코계 독일이라는 점과 장교출신이 아닌 병으로 시작해서 차곡차곡 전적을 올린 경우라 그런것으로 보입니다.
미하빌비트만 중위가 비예호 보카즈 전투의 활약으로 독일 최고의 훈장중 하나인 백엽검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으며 온국민의 영웅으로 떠오른것과는 달리 그는 단지 1급과 2급 철십자훈자과 황금격파기장만이 수여되었을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과에 대해 연연하고나 욕심 부리지도 않았고 그를 홀대하는 독일군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할뿐…
[쿠르트 크니스펠의 티이거2를 탑승했던 시절의 모습으로 죽기 얼마전의 사진이다. 그의 부대는 노르만디 상륙작전으로 내륙으로 깊숙이 치고 들어오는 미 영 연합군을 막도록 급파되었다. 그는 노르만디에서 독일군을 따라 퇴각하면서 카엔에서 연합군과 큰 전차전을 했다. 그러나 대 소련 전쟁의 사정이 다급해지자 쿠르트의 부대는 다시 동부 전선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도 독일은 소련에게 밀리기만하는 참담한 실정이었다. 이런 암담한 전황에서 독일 기갑부대는 강철 같은 단결심을 발휘하며 악착같이 거대한 소련의 군사력에 저항했다. 쿠르트는 밀려오는 적과 수없는 격전을 했다. 메조투르, 토로크젠트미크로스, 세그레드, 케크스케메트 그리고 그란 교두보 전투는 물론 기우라, 니트라, 바브 케슬등의 전투다.]
실제로 그는 그의 전과임이 확실한 몇몇 전적들도 모두 동료들에게 양보하는 미덕(?)을 보이기도 했는데 그는 팀웍이 중요한 전차전에서 개인의 전과만을 내세우기보다는 전과를 양보함으로써 더 큰 것을 노렸을지 모릅니다.
어찌되었던 개전부터 종전가까운 기간을 꾸준히 전장에서 전투와 살아온 그에게도 드디어 최후의 날이 다가오게 됩니다.
종전이 얼마남지 않은 1945년 4월28일 쿠니스크 크니웰 상사의 티거II부대는 체코의 보슈티츠 (Wostitz) 지구에서 격전을 벌이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 쿠니스크 상사의 티거II 가 소련군 전차들의 파상공세에 결국 피탄되어 전승무원이 사망하고 맙니다.
[쿠르트 크니스펠의 최후 그는 공식적으로 168대를 격파햇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다는게 정설이다. 어떤 전투에서는 쿠르트는 단숨에 적 전차 24량을 격파해서독일 군부를 놀라게
그의 나이 불과 24세로 너무 아까운 나이로 그가 전사할때까지 격파한 전차수는 168대로 독일 전차 에이스로 단연1위로 비공식적인 격파률까지 더하면 무려 198대가 넘을것이라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쿠르크의 모습 그는 공식 적 격파 전차가 168량이지만 비공식적으로는 195량까지 도달 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위 평가다. 쿠르트는 경탄할만큼 겸손했다. 실제로 그가 격파한 차량을 따지면 200대가 넘을것이라는게 주변에 함께 싸웠던 그의 동료들의 말이다 그는 전과를 챙기는 법도 동료보다 앞서 전과를 말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묵묵히 자기할일에만 충실했다고 한다]
2. 칼 보르만 SS소위 (Karl Brommann 1920.7.20~)
칼보르만 소위는 소개하는 3명의 에이스중 유일하게 현재까지 살아계신 분으로 그는 제503 SS 독립 중전차대대의 예비역 소위이다.
1920년 7월20일 독일의 홀슈타인주 노이뮌스터(Neumünster in Holstein)에서 출생한 그는 18세인 1937년 SS에 지원하였습니다.
외모에서 볼수 있듯 그는 전형적인 게르만 인종의 우수한 혈통을 타고 났는데 그로인해 그는 그 어렵다는 SS에 합격하여 대원번호 316479번으로 배정받게 됩니다.
이후 칼브로만은 제6SS산악사단 “노르토” (6th SS Gebirgs Division Nord (Mountain Division)) 로 전출되어 필란드지구에서 전투중 치명상을 입고 1년간 병원신세를 지게됩니다.
이부상으로 1941년 12월1일 2급 철십자 훈장을 수여받은 그는 1943년 5월 부상에서 회복해 야전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제11 SS 기갑척탄사단 “노르트란트 (11th SS Panzergrenadier Division Nordland )”에 배치되어 동부전선에서 격전을 치루었고 곧 그는 중사로 진급하게 됩니다.
[전형적인 게르만 민족의 외모를 가진 그는 제503 SS 독립중전차대의 1중대장으로 전장에 투입되어 그의 중대는 퇴각하는 독일군을 엄호하는 임무를 맡아 침착하게 조준과 사격을 반복하여 무려 66대의 소련군전차와 자주포를 격파하는 한편 44문의 대전차포 그리고 15대의 각종 차량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리게 된다]
1944년2월 그는 제3 SS 기갑사단 “토렌코프”사단의 티거중대를 근간으로 창설된 제 103SS 독립중전차대대(103 SS Heavy Panzer Battalion) 로 전출되어 최초로 티거에 탑승하게 됩니다.
1944년 10월17일 이 부대에는 신형티거II 전차 4대를 수령, 부대명을 503으로 변경하였고 1945년1월27일 동부전선으로 이동에 16대를 추가로 배정받게 됩니다.
1945년초에는 이미 소련군이 폴란드의 영내로 들어오던 시기라 이를 막아내느라 독일군은 바쁠 시기였습니다. 이때 이미 전차대의 소위로 진급한 칼 보르만은 동프러시아 지구에 배치된 대대와 연어어 작전을 치루게 됩니다.
1945년 2월17~18일에 거쳐 제503 SS 독립중전차 대대는 최후의 TIGER-II 13대를 보급받아 단치히 지구(Danzig) 로 향하게 됩니다.
[작전을 하달받고 있는 보르만 소위에 그의 부하들 아마 전시효과를 노린 사진으로 보인다]
이때 단치히는 소련의 용맹한 장군인 로코소프스키 원수의 제2 밸로루시 전선군이 이 지구를 장악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는데 이때 칼 보르만은 제503 SS 독립중전차대의 1중대장으로 전장에 투입되어 그의 중대는 퇴각하는 독일군을 엄호하는 임무를 맡아 침착하게 조준과 사격을 반복하여 무려 66대의 소련군전차와 자주포를 격파하는 한편 44문의 대전차포 그리고 15대의 각종 차량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이 전투로 그는 기사철십자 훈장(Knight's Cross of the Iron Cross) 을 수여받았지만 이때 얻은 전투부상으로 1945년 3월 왼쪽눈을 실명하고 맙니다.
[칼 보르만은 제503 SS 독립중전차대의 1중대장으로 전장에 투입되어 그의 중대는 퇴각하는 독일군을 엄호하는 임무를 맡아 침착하게 조준과 사격을 반복하여 무려 66대의 소련군전차와 자주포를 격파하는 한편 44문의 대전차포 그리고 15대의 각종 차량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리게 되나이 전투로 그는 기사철십자 훈장(Knight's Cross of the Iron Cross) 을 수여받았지만 이때 얻은 전투부상으로 1945년 3월 왼쪽눈을 실명하고 맙니다. ]
어찌되었던 그는 부상으로 인해 플렌스부르크(Flensburg)에 위치한 야전병원에 입원하게 되는데 그가 입원한지 그리 오래지 않은 1945년 4월10일, 영국군이 그가 입원중인 야전병원을 접수하면서 포로로 잡히게 됩니다.
이후 포로로 고된 수용소 생활을 마친후 1947년 11월 석방되어 치의과 대학에 입학하여 수료한후 치과의사로 활동하며 현재까지도 생존해 있습니다.
("achtung.panzer". http://www.achtungpanzer.com/gen10.htm 출처)
3. 칼 쾨르너 SS상사 (Karl Körner Hauptscharführer in the Waffen SS 1920.4.19 ~1997.8.8)
칼 쾨르너 SS상사는 앞서 소개한 칼 보로만 소위와 더불어 제503 SS 독립중전차 대대가 배출한 TIGER-II 에이스중 한사람으로 100대 이상의 전차와/ 자주포등을 격파한 에이스중 한사람입니다. 이중 단독으로 적진에 돌격하여 탑재하고 있던 포탄이 떨어질때까지 39대의 소련군 전차를 격파한 이력이 있는 에이스중 한사람이기도 합니다.
1920년 4월19일 독일의 작센-안할트 (Sachsen-Ahhalt)주 호임(Hoym) 에서 탄생한 그는 칼보로만 소위에 대해 어릴적 이력은 잘 공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그 역시 SS에 자원입대(1940년 )하여 꾸준하게 전과를 올려왔던 것은 분명하며 1945년 4월 제503 SS 독립중전차 대대(503 SS Heavy Panzer Battalion )의 소대장으로 부임한 그는 (이때 계급은 상사였다) 볼레르스도르프(Bollersdorf )와 동베를린에 이루는 전투지대의 보병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이때 칼 쾨르너 상사는 1945년 4월 Strausberg 지역에서 다수의 IS-II 스탈린 전차를 비롯한 약 120~150여대의 소련전차들이 보급을 받기위해 잠시 정차하고 있는 것을 정찰대로부터 보고받고 3대의 Tiger-II 로 보급중인 소련전차대대에 뛰어들어 11대의 IS-II 전차를 격파하는 동시에 갑자기 나타난 독일군 전차를 보고 혼란한 소련군 진내를 탑재한 MG34 기관총으로 난사하여 수많은 소련군을 사살함과 동시에 포탄이 떨어지는 순간까지 살육을 즐겼는데 이 전투에서 그가 홀로 격파한 전차 및 자주포의 수는 무려 39대에 달했다고 합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란이 있다. 홀로 39대를 격파했다고도 하고 39대의 격파와 더불어 같은 동료인 하러 SS상급상사가 25대를 격파했다고 한다 Wolfgang Schneider, Tigers in Combat Vol.2 (Stackpole Books 2005) 300, 301pp)
[보급중이던 IS-II사단에 투입하여 홀로 39대의 소련군 전차를 격파한 칼 쾨르너 상사는 단독으로 전과를 올린 특이한 에이스중 하나이다]
잇따른 소련군의 공격으로 그의 부대 역시 13대였던 전차가 6대로 줄어 이어 그의 제503 SS 독립중전차 대대는 베를린으로 퇴각하게 되고 여기에서 그는 제11 SS 기갑척탄병 사단 “노르르란트” 에 배속되어 밀려드는 소련군 전차들과 끈없는 전투를 치루게 됩니다.
그는 퇴각하는 순간에도 침착하게 대응하여 총 100대이상의 소련군 전차와 자주포를 비롯 26문의 대전차포를 격파하는 전적을 거두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총102대의 전차와 26문의 대전차포를 파괴한것으로 기록)
이는 칼 보르만 소위에 이어 어지러운 패망을 앞둔 독일군의 혁혁한 전공으로 이 전투로 그는 히틀러가 숨어있던 벙커에서 1945년 4월29일 기사철십자 훈장을 수여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훈장을 수여받고 바로 전선에 복귀 샤를로텐부르크 지구(Charlottenburg area)에서 소련군을 상대로 다시한번 방어전을 하지만 중과부적인 병력앞에 힘없이 무너지게 되고 이 전투에서 자신이 타던 TIGER-II 전차마저 파괴되어 판터 전차로 옮겨타고 소련군의 돌격포 2대를 격파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그는 총 6대의TIGER-II 가 투입된 베를린 최후의 전투에도 참가하여 임무를 (생존한 독일군을 미국이 위치한 지역으로 안전하게 퇴각시키는 작전) 완수하였지만 역시 최후의 6대의 TIGER-II 는 최후를 다하였고 그 역시 포로로 잡혀 수용소에서 복무후 풀려나 1997년 8월8일 78세를 일기로 Neu-Eichenberg 에서 사망하게 됩니다.
독일의 탱크 에이스들은 공군의 에이스처럼 연합군이 이루지 못한 엄청난 스코아를 가지고 있는데 이로인해 사실인지 논란이 많기도 하지만 일단 당시 싸워야 할 상대가 많았다는점 (동으로는 소련군이 서로는 미영 연합군이 마구 치고 들어왔으니) 그리고 상대적으로 우수한 성능의 전차를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과 그에따라 생존성이 높았고 경험이 풍부하여 후반까지 살아남은 에이스가 많았다는 점으로 어느정도 이해되는 분위기 입니다.
다음은 2차대전중 독일군 전차 에이스 리스트 입니다.
WWII GERMAN TANK KILLERS
1.Kurt Knispel -168 Kills (sPzAbt. 503)-KIA in the last days of the war- -commanding his own Kingtiger - never awarded the KC he so richly deserved
2.Otto Carius - 150+ Kills (sPzAbt. 502)- Alive and healthy.Finished the war in S.Pz.Jag.Abt.512(?)
3.Hans Bölter-- 139 Kills (sPzAbt. 502)-survived the war - deceased 4.Michael Wittman - 138 Kills (sS.S.PzAbt. 101 Liebstandarte) 5.Hans Sandrock - 123 Kills (assorted AFV last unit HJ ) - survived the war - deceased 6.Paul Egger - 113 Kills (Das Reich)- alive and well 7.Arno Giesen - 111 Kills (Das Reich) 8.Oberfahnrich Rondorf-106 kills (sPzAbt. 503)- KIA last month of the war 9.Feldwebel Gärtner - 103 Kills (sPzAbt. 503)- KIA last month of the war 10.Karl Körner - 100+ Kills (sS.S.PzAbt. 503)- survived / deceased 11.Albert Kerscher - 100+ Kills (sPzAbt. 502)- alive and well 12.Obersturmfuhrer Helmut Wendorff-84 Kills (sS.S.Pz Abt.101, Liebstandarte) 13.Oberscharfuhrer Ernst Barkmann-82+ Kills (Das Reich)- alive and well 14. Will Fey - 80 + kills (s.SS-Pz.Abt.102/502) - survived /had a stroke recently 15.Eric Litztke-76 Kills (sPzAbt. 509)- survived the war / deceased 16.Hermann Bix - 75+ Kills (4th Panzer Division)- survived / deceased 17.ZugFuhrer Hans Strippel - 70 Kills (4. / II/ PzAbt. 1, 1st Pz. Division)- survived / deceased 18.Emil Seibold - 69 Kills (Das Reich)- survived / deceased 19.Wilhelm Knauth-68 Kills (sPzAbt. 505)- survived / ? 20.Karl Bromann - 66 Kills (sS.S.PzAbt. 503)- alive and well 21.Oberwachtmesiter Hugo Primozic-68 Kills (StuG Abt. 667)- survived / deceased 22.Sepp Brandner - 61 Kills (StuG Brigade 912)- survived / deceased 23.Oberleutnant Hans-Bobo von Rohr - 58 Kills (25 Pz. Abt., 7th Pz. Division) 24.Hauptman Richard Engelmann-54 Kills (StuG Abt. 912) 25.Leutnant Josef Dallmeier-50 Kills (either Fhr. PzJager Kp.1183 attached to 6th Volksgrenadier Division) 26.Walter Feibig-50 Kills 27.Heinz Kramer - 50+ Kills (sPzAbt. 502)- Carius' gunner, KIA end of war 28.Alfredo Carpaneto - 50+ Kills (sPzAbt. 502)- KIA end of war 29.Oberleutnant Mausberg - 50+ Kills - survived / ? 30. Leutnant Horst Krönke - about 50 kills (s.Pz.Abt. 503 & 505) 31.Oberscharfuhrer Jurgen Brandt-47 Kills (sS.S.Abt. 101) 32.Leutnant Heinz Deutsch - 44 Kills (Fsch. StuG Brigade 12) 33.Oberwachtmeister Fritz Amling-42+ Kills (in 48 Hrs. with StuG Brigade 202) 34.Oberwachtmeister Heinz Scharf-40+ Kills (StuG Brigade 202) 35.Leutnant Walter Oberloskamp - 40+ Kills (StuG Brigade 667) 36. Franz Riedel - 40 kills (Frundsberg)- survived / deceased 37.Leutnant Fredrich (?) Tadje-39 Kills (StuG Abt. 190) 38.Obersharfurhrer Rudolf Roy-36 Kills (JP-IV, 12 S.S. PanzerJager Abt. HJ) 39.Wachtmeister Gottwald Stier-30+ Kills (StuG Brigade 667) 40.Wachtmeister Josef Trager - 30+ Kills (StuG Brigade 667) 41.Oberwachtmeister Richard Schram-30 Kills (StuG Brigade 202) 42.Oberwachtmeister Karl Pfreundtner-30 Kills (StuG Abt. 244) 43. Oberleutnant Richard Freiherr von Rosen - about 30 kills (s.Pz.Abt.503)- survived 44. Unteroffizier Martin Burmester - 30 kills (s.Pz.Abt. 503)- 45.Oberwachtmeister Banze - 24 Kills (13 on one day StuG Abt. 244) 46.Hauptman Felix Adamowitsch -23 Kills (in an 8 day period, StuG Abt. 244) 47.Leutnant Eugen Metzger-23 Kills (StuG Abt. 203) 48.Hauptmann Rade -23 Kills (StuG Abt. 244) 49.Leutnant Heinrich Teriete - 22 Kills (in one engagement, sPzJgAbt. 653) 50.Unterscharfuhrer Franz Staudegger-22+ Kills (sS.S.Pz Abt. 101) 51.Leutnant (Res.) Franz Kretshmer - 21 Kills (sPzJgAbt. 653) 52.Unteroffizier Horst Naumann-21 Kills (StuG Abt. 184)- survived / ? 53.Oberleutnant Klaus Wagner - 18 Kills (in two days, StuG Abt. 667) 54.Leutnant Hermann Feldheim-16 Kills (sPzJgAbt. 654) 55.Unteroffizier Heinrich Engel -15 Kills (StuG Abt. 259) - survive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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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재미있게 잘읽었습니다.. 독일의 패망직전까지 활약한 독일최강/최후의 전차군요..
PT5 에서 다루겠지만 Tiger-I 이 1944년 8월로 생산중단되고 대부분이 파괴되어 가동되는 넘을 보기 힘들지만 이넘은 패망 직전인 1945년3월까지 생산되었고 최후까지 싸운 전차라 현재 가동 가능한 넘들도 많은편 입니다.
TIGER-II 에대한 자료 열심히 읽다가 마지막 JS-2 사진에 시선고정...(외모만 보면 네가 진정한 탱크답다..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되네요^^) 한참을 쳐다 보게 됩니다..ㅎㅎ 잘 봤습니다~~
독일산 호랑이들을 1:1로 붙어 잡을수 있는 몇안되는 괴물중 하나였죠.. 나중에 한번 다루겠습니다. 이넘도 꽤 멋진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