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문정현 신부님 트위터)
http://www.cbck.or.kr/bbs/bbs_read.asp?board_id=K1300&bid=13010023
밀양 송전탑 공사 강행 임박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입장
“평화는 정의의 작품”(사목헌장 76항)
1. 지금 밀양은 마을을 관통하는 송전선 공사를 둘러싸고 한국전력과 갈등했던 지난 8년의 시간 중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공사를 강행하려는 입장과 이를 막으려는 주민 간의 충돌이 불 보듯 뻔한 일촉즉발의 상황입니다.
2. 송전선로가 지나가는 마을의 주민들은 공사를 어떻게든 막겠다는 일념으로 땅을 파서 토굴을 만들고 공사가 시작되면 그곳을 떠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겠다는 입장입니다. 반면 기존 송전선로 공사 계획에 일부 수정도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힌 한국전력은 주민들과의 충돌을 감수하고라도 공사를 그대로 밀고 나가겠다는 태세입니다.
3. 한국전력은 공사를 재개하기 위하여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했고 이에 3,000명의 대규모 경찰 병력이 밀양에 파견될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고 있습니다. 나아가 공권력 집행을 방해하면 엄벌에 처한다는 경고를 경찰청장이 직접 밝힌 상태입니다. 고령의 힘없는 노인들이 대부분인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준비되는 계획치고는 너무나 가혹하고 잔인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밀양 주민들은 8년간 힘겨운 싸움을 이어왔습니다. 지난 6월, 보건의료단체연합이 밀양 주민들의 건강을 진단한 결과는 주민들이 얼마나 정신적 육체적으로 병약하고 위급한 상태인지 잘 보여줍니다. 진단 결과 마을 주민 중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이 무려 69.6%였습니다. 이는 9.11테러를 겪은 미국 시민의 4배 수준입니다.
4. 본위원회는 지금까지 현장 방문을 통해 주민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정부와 공사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면서 불상사가 일어나기 전에 양측 모두 진솔하고 열린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야 한다고 간곡히 요청해왔습니다. 공사의 지연으로 발생할 경제적 손실과 시간적 손실은 귀중한 생명의 손실과 비교될 수 없기에 더욱 절박하게 호소해왔습니다.
5. 본위원회의 입장발표는 불상사가 예상되는 현 시점에 양측 의견의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생명이 위협받는 불상사는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절박한 호소를 드리고자 함입니다. 부디 양측 모두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방법을 모색하기를 촉구하는 바입니다.
6. 정부와 한국전력은 공사 강행 의사를 우선 철회해 주십시오. 주민들이 왜 반대하는지 아직 정확한 의사가 전달되지 못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공사 강행 의사를 우선 중단하고 주민들과의 직접 대화에 진심으로 임하십시오. 비용과 시간의 문제보다 앞서는 것이 사람의 목숨임을 유념하고 다시 한 번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길 청합니다. 누군가의 생명을 희생하며 세워진 송전탑만큼 ‘국책사업’이라는 명분의 공사가 지닌 폭력성과 부당함을 제 스스로 증명하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7. 주민들에게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어르신들의 분노와 슬픔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혹여 생명을 잃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목숨을 잃어 설령 공사가 중단된들 그 상처 위에 평화로운 삶을 다시 일굴 수 있겠습니까? 상처는 상처만을 남길 뿐입니다. 부디 분노와 슬픔을 가라앉히고 정부와 한전과의 대화에 다시 한 번 임해주시길 청합니다.
8. 마지막으로 밀양을 걱정하시는 국민 여러분께 청합니다. 밀양의 갈등을 단순히 지역 님비현상으로만 이해하지 말아주시길 바랍니다. 오히려 도시민의 안락을 위해 희생되고 있는 송전선로 주변 마을의 상처를 헤아려주시고 갈등의 발단인 정부의 에너지 공급정책의 문제점에 관심을 가져주시길 청합니다.
9. 본위원회는 앞으로도 공권력과 ‘국책사업’이라는 명분과의 관계에서 절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밀양 마을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부디 하느님의 평화가 하루빨리 밀양 땅에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2013년 9월 30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이용훈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