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훈 선생님의 탄신 100주년과 상길육영회
정구복(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먼저 오늘 서병훈 선생님의 탄신 100주년 축하연에서 선생님은 비록 계시지 않지만 선생님의 탄신을 축하드린다는 말씀을 충심으로 드립니다. 이런 축하연을 준비한 서정신 박사의 효성과 차분한 준비한 노고를 극찬하는 바입니다. 또한 이 자리에 상길육영회 회원 전원이 초대 받게 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한달 전쯤 서정신 박사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왔을 때 저를 찾느냐고 애쓴 이야기를 듣고 그 반가운 목소리에 다음날 만났습니다. 아버지의 성품을 닮았다는 이야기와 제명함을 보더니 아버님도 호를 지었으면 청양으로 했을 것이라는 말에 그 효성이 지극하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박사는 선생님의 유일한 기록인 연세대학교 학적부와 소중한 관련 자료를 몇가지 더 찾아냈습니다. 아마 영원히 잊혀질 번한 기록을 지극한 효성으로 찾아낸 것입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 만난 뵙게 된 것은 56년 전인 1956년 12월 선생님의 선친 상을 당했을 때였습니다. 그 때 저는 선생님이 만드신 상길육영회 장학생이었습니다.
그 후 수십 차례 만나 뵈었지만 선생님의 신상에 대한 이야기나 정치와 사회가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를 나눈 바가 없고, 단지 상길육영회 회원들이 세배를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때 매다 사모님이신 황우순 여사님의 친절하고 겸손하신 모습을 접했습니다. 선생님도 말씀을 많이 하시지 않는 과묵한 성품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당시 선생님 앞에서 우리들은 감히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선생님이 얼굴에 살며시 띄우는 순수한 미소를 보고 우리를 참으로 반기고 계시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을 뿐입니다.
선생님은 제가 항상 말하는 것처럼 가장 존경하는 세분의 선생님 중 한 분이셨습니다. 비록 스승과 제자관계는 아니지만 단순히 장학금을 주셨다는 뜻에서만 아니라 마음으로 평생토록 잊을 수 없는 온화한 성품을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사표였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란 칭호는 제가 칭하는 가장 존경의 뜻을 표하는 말입니다. 제가 꼽는 세분의 선생님이 모두 작고하셨지만 그 유족과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 소중한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상길육영회에 대한 이야기를 간략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상길육영회는 1953년에 선생님이 선친의 이름을 따서 만든 장학 단체 명칭이었습니다. 선생님이 청양양조장을 유산으로 물려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뜻으로 당시 청양군에 있었던 청양중학교와 정산중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하여 학비를 대주는 장학사업을 하였습니다. 사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선생님 자신이 어려운 사정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연희전문대학을 다니실 때 다른 동료와 가정환경이 비교되어서 느끼신 것이거나 당시 등록금을 마련하기가 어려운 형편이었을 상황을 당한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중학교 장학생이 한 해에 두 명씩 뽑았으나 고등학교까지 계속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대상자는 4명, 6명, 8명, 10명, 12명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청양양조장 수익금으로 이를 충당하지 못해 서울에서 돈을 내려보내야 하는 형편에까지 이른 것으로 생각합니다.
상길 육영회는 1960년 4,19민주화운동으로 이승만정권이 붕괴되고 헌법에 규정된 참의원 선거가 1961년에 실시되었는데 충청남도 대선거구에 출마를 하셨다가 고배를 마시고 그 경제적 후유증이 한동안 심각했던 것으로 압니다. 그래서 육영회사업은 이후 중단되었습니다.
육영회 장학금을 받고 사회에 진출한 사람을 수소문하여 1975년부터 상길육영회라는 명칭을 사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청양중학교 출신의 장재천, 김건진씨와 정산중학교 출신의 황의갑, 안병산, 황광석, 그리고 저 모두 6명이 었습니다. 우리들은 당시 매월 얼마씩을 갹출하여 돈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선생님 댁 경제사정이 어려운 것 같으면 응당 도와드려야겠지만 그렇지는 않은듯해서 우리들은 상길육영회를 다시 부활하는 길이 보답의 길이라고 생각해서 상길육영회라는 명칭으로 청양지역, 정산지역에서 한명씩을 선발하여 6명을 고등학교 졸업까지 장학금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선생님께는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어 말씀을 드렸더니 선생님은 “너희들이 무슨 돈이 있느냐” 하시면서 1984년에 5천만원을 내어 장학재단인 법인을 만드시려고 하셨고, 저희들을 이사에 참여하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이는 2년 후 포기되어 이제 육영회 사업이 완전 중단된 상태입니다. 그러나 저희들도 거의 모두 정년퇴임을 하여 더 이상 육영회 사업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길육영회란 명칭은 오직 우리들의 사적 친목단체로 잔명을 유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요컨대 상길육영회는 청양지역에는 웬만한 사람은 모두 알고 있을 정도로 알려졌으니 선생님의 아버지에 대한 효성은 지극했음을 확인할 수 있고, 1950연대에 장학금을 출연하신 것은 전국적으로 보아도 아주 선구적인 것이라는 장학사업이란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현재 기업가들이 10살도 되지 않은 어린손자, 손녀에게 300억원의 주식을 물려주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번 만든 단체를 지속시킴이 대단히 중요한 것임을 들어 상길육영회를 살리는 것이 선생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라고 여겨왔습니다만 이는 이루기 어려운 하나의 꿈으로 접어야 함이 못내 유감스럽습니다.
인간은 태어나서 죽을 때 빈손으로 간다고 하는 데 일생 번 재산을 몽땅 자식들에게 물려주려는 의식에서 벗어나 사회발전을 위해 복지재단에 기부하는 기부문화가 전국적으로 활성화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어려서 참말로 부러웠습니다.나역시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업을 계숙할수 없었으니까요.서병훈 선생님 고맙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