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청자양각모란문(靑磁陽刻牡丹文)대접
대접 전체가 여섯 장의 꽃잎으로 된 꽃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기형(器形)은 중국 송대(宋代)의 자기에서도 볼 수 있는데, 대접 안쪽 면을 장식한 양각 무늬와 더불어 도범(陶范)으로 찍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바깥 면에는 돌아가며 여섯 군데에 세로로 홈을 파서 꽃잎이 핀 모양을 나타내었고 안쪽 면에는 활짝 핀 커다란 모란꽃 가지가 풍성하게 양각되었다. 엷은 녹색을 띤 광택이 있는 회청색 비색유(翡色釉)가 약간 두껍게 입혀져 있고, 그릇 안쪽에 빙렬(氷裂)이 조금 있다. 도범을 이용하여 만든 대접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유약과 태토의 질, 세련된 의장(意匠)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청자 가마터에서 이와 같은 질의 파편들이 발견되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112. 청자음각연화문병(靑磁陰刻蓮花文甁)
구연(口緣)에서 다소 좁아진긴 목을 지나 동체 하부가 팽배된 이런 기선(器線)을 가진 병을 고려시대 청자병에 자주 나타나는 형태 중의 하나이다.
문양도 대개 비슷한데 어깨부분에는 여의두문대(如意頭文帶)가 동체 하단(下段)에는 연판문대(蓮瓣文帶)가 있으며, 주문양대에는 연화문(蓮花文)이나 운문(雲文)을 음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부(頸部) 상단에는 고리가 붙어 있어 장경병과 마찬가지로 뚜껑의 유실을 막도록 되어 있다.
다소 경직된 듯한 기형이나 세련되지 않은 문양 등으로 보아 고려청자 전성기 직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기초가 많은 비색(翡色) 유약(釉藥)이 전면에 고르게 입혀졌으며, 접지면(接地面)과 굽안바닥 주연(周緣)의 유약을 닦아내고 모래섞인 내화토(耐火土)를 여섯 곳에 받쳐서 구웠다. - 국립중앙박물관
113. 청자투각연화동자문주자(靑磁透刻蓮花童子文注子)
순청자의 전성시기인 12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투각주자(透刻注子)로 이 시기에는 음각(陰刻), 양각(陽刻), 상형(象形), 노태(露胎) 등 다양한 시문기법이 청자 표면에 사용되었는데 특히 투각은 성형 후 조각하기 쉽도록 어느 정도 건조된 상태에서 행해지는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시문기법으로 그 수량이 많지 않다.
주자는 액체를 담는 구형(球形)의 내용기(內容器)와 그것을 감싸고 있는 외용기(外容器)로 구성되어 있으며 바깥 부분 전면에 연당초문(蓮唐草文)과 7명의 동자(童子)를 매우 생동감 있게 투각하였다. 연꽃, 잎, 동자의 세부는 음각세선(陰刻細線)을 하여 사실감을 극대화하였고 연꽃 줄기에 매달린 동자의 표정은 천진난만하게 잘 묘사하였다.
뚜껑 측면과 구연부에는 각각 운문(雲文)과 뇌문(雷文)을 음각하였고, 상면에는 석류를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동자상을 조각하였으나 현재 동자의 머리 부분은 결실되었다. 태토는 회색으로 정선되었고 유색은 녹색조로 차분하나 일부 암록색을 띠기도 한다. 굽은 접지면의 유를 닦아낸 뒤 9-10곳에 모래비짐을 받쳐 번조하였으며 주자의 크기에 비해 매우 육중하다. - 국립중앙박물관
114. 『중백옥배(中白玉盃)』명청자상감당초문잔(銘靑磁象嵌唐草文盞)
구연이 약간 내만되었으며 끝을 뾰족하게 처리한 형태로 지금까지 높은 굽이 달린 마상배와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등 용어에 혼란이 있었는데 '팽이형 잔'으로 부르면 어떨까 싶다. 순청자가 만들어졌던 시기에는 없었던 기형으로, 상감기법이 사용되면서 생겨난 형태의 잔으로 여겨진다.
이 기형은 금속기로는 만들어졌지만 중국청자에는 보이지 않아 고려시대의 독자적인 기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하에 뢰문대(雷文帶)와 연판문대(蓮瓣文帶)를 넣어 종속문양대(從屬文樣帶)로 삼았으며, 동체 중앙에는 역상감당초문을 지문(地文)으로 이조원문(二條圓文)을 네 곳에 모아두고 그 안에 '중(中)' '옥(玉)'명(銘)은 흑상감으로 '백(白)' '배(盃)'명(銘)은 백상감으로 감입되었는데 '중(中)' '옥(玉)'은 후보(後補)이다. 구연에 부분적으로 검은 모래가 붙어있어 거꾸로 세워서 번조(燔造)한 것으로 추정된다. - 국립중앙박물관
115. 청자상감모란운학문침(靑磁象嵌牡丹雲鶴文枕)
지금까지 알려진 고려청자 상감 베개 가운데 가장 유조(釉調)가 아름답고 의장(意匠)이 세련된 예이다. 양쪽 마구리 가운데는 둥근 구멍이 뚫려 있으며 베개의 면은 양쪽 마구리 모서리에서부터 안쪽으로 포물선을 그리듯 휘어들었다.
또 베개의 네 면 가운데 두 면은 넓고 두 면은 좁아서 베는 데 높고 낮은 차를 두게 하였다. 각 면의 중앙에 주문양대(主文樣帶)를 두고 마구리와 닿은 가장자리에 연판문(蓮瓣文) 띠를 역상감(逆象嵌)으로 둘렀으며, 주문양대와 가장자리 사이의 면에는 당초문을 역상감했다. 주문양대를 보면, 넓은 두 면에는 흑백 상감으로 두 겹의 원을 그리고 그 안에 운학을 상감했으며 좁은 두 면에는 흑백 상감 두 겹으로 마름꽃 모양(菱花形)을 만들고 그 안에 모란꽃 무늬를 상감해 넣었다.
유조(釉調)는 태토가 약간 비쳐 보여서 잔잔한 회청색이며, 상감한 무늬 위에 빙렬(氷裂)과 기포(氣泡)가 많이 들어가 수정처럼 은빛으로 빛나는 소위 석(石)얼음이 부분적으로 나타나 있다. 마구리 한쪽 면에 규사눈 받침이 네 군데 있다.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청자가마에서 구워낸 것으로 짐작된다. - 국립중앙박물관
116. 청자상감 당초문완(靑磁象嵌 唐草文盌)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159년(고려 의종 13년) 무렵에 죽은 문공(文公)이라는 사람의 묘지(墓誌)와 함께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토된 것으로, 연대를 짐작할 수 있는 상감청자 중 가장 오래된 유물이다. 내면에는 기저(器底) 중앙에 큰 단판(單瓣) 국륜(菊輪)을 감상하고, 그 둘레를 유익한 백상감보상당초(白象嵌寶相唐草)로 채웠으며, 입둘레에는 초문대(草文帶)로 장식하였다. 이 내면 상감이 모두 백상감 단색으로 된 데 비하여 외면에는 구변(口邊)에 백상감초문대가 있을 뿐 그 아래는 5개 소에 국화 한송이씩을 흑백상감하고 있으며, 내외면의 변화 있는 조화를 이루고 있다. 청아한 회청색 비색유(翡色釉)가 매우 고르고 맑게 씌워져 있어서 은은한 광택으로 말미암아 상감효가가 한층 돋보인다. 굽다리 밑에는 3개의 화강성 눈 자국이 남아 있으며, 유색의 조화로 보나 상감기법으로 세련도로 보나 이만큼 틀이 잡히려면 이미 상당한 기간,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을 것이다. 고려 청자상감의 발달 실태를 잘 전해준 매우 귀중한 유물이다. - 국립중앙박물관
117. 청자철채퇴화삼엽문매병(靑磁鐵彩堆花蔘葉紋梅甁)
보물 제340호. 높이 27.5㎝, 입지름 5.0㎝, 밑지름 9.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반구형(盤口形)의 작은 구연, 당당한 어깨, 밑으로 내려가면서 홀쭉해지는 기법이 전형적인 고려 매병이지만 장식기법이 특이하다. 태토로 성형한 후 산화철 성분의 안료를 전면에 바르고 어깨 부분에 인삼잎무늬[蔘葉紋]를 그린 뒤 문양 부위의 철채를 긁어내고 백니(白泥)를 발라 유약을 입혀 구운 것으로, 기면 전체는 검은색으로 발색되었지만 문양은 흰색이다.
문양은 매우 단순하지만 전체의 검은색과 강렬한 대비를 이루어 인상적이며, 기면에 바를 때 사용한 귀얄의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어 운치가 있다. 일종의 철채백상감(鐵彩白象嵌) 기법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유(釉)는 매우 얇으며 부분적으로 노태(露胎)된 부분이 있고 용융이 불완전하여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 내화토(耐火土)와 모래를 빚어 받쳐 구웠는데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사당리 등의 가마터에서 이와 유사한 종류의 파편이 수집되었다. - 국립중앙박물관
118. 청자죽절문과형주자(靑磁竹節文瓜形注子) / 高麗時代 12세기 전반 / 높이 21.6cm
기품있는 형태와 세련된 문양은 주자의 가치를 한층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참외형 주자는 우리나라 도자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인기있는 형태이다. 이미 신라시대 토기에서도 이러한 승반이 있었을 테인데 승반은 아쉽게도 유실된 것 같다. 매우 능숙한 문양표현이나 아름다운 청록색을 띠는 유색으로 미루어 12세기 전반 전라남도 강진군 사당리(全羅南道 康津郡 沙堂里) 가마터에서 제작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 승반(承盤) - 주전자의 밭침처럼 쓰는 그릇인데 그릇안에 찬물이나 뜨거운물을 붓고 그 안에 주전자를 넣어서 주전자내용물이 식지 않도록 하는 목적이 있다.
119. 청자상감 모란국화연화문 과형주자(靑磁象嵌 牧丹菊花蓮花文 瓜形住子) 13세기
강진 청자박물관은 새로 구입한 이 주전자에는 다양한 꽃무늬가 상감되어 있다. 몸체부분에는 참외모양의 12개 골이 져 있는 형태로 높이는 23.6cm로 규모가 큰 편에 속하며 고려시대인 13세기 무렵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외모양 몸체 등 전체적인 비례가 이상적이고 손잡이와 주구(注口)의 균형도 안정적이다. 또한 이 주전자는 주구모양의 연잎을 말아 붙인 듯한 형태로 양각(陽刻)되어 있는데 이것은 현재까지 고려청자에서는 유일한 예로서 이러한 장식적 요소가 유물 전체의 품격을 한 단계 높여주고 있다. 특히 무늬를 살펴보면 위아래 부분에 연판문(蓮瓣文)을 둘러 몸체 중앙에 넓은 공간을 마련했고 12개 주름 면마다 연꽃, 모란, 국화, 규화(葵花, 해바라기 꽃)의 꽃가지를 새겼는데 가늘고 정교하게 상감하여 상감문양 가운데서도 보기 드문 완성미(完成美)를 갖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