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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6.25(일) 새벽 북한인민군의 침략으로 시작된 한국동란은 참으로 한민족에게 최악의 시련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마침 오늘이 62주년이 되는 날이다. 해방된 후 불과 5년, 왜정36년 동안 피폐해진 의식주 생활에서 채 벗어나기 전 우리는 혹독한 골육상쟁을 겪어야만 했다. 덕분에 우리는 공산주의의 만행을 알게 되었고 자유민주주의가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었다. 육이오 당시 전쟁의 주역들 우선 이분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함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1사단장 백선엽 대령 30세 2사단장 이형근 준장 30세 3사단장 유승렬 대령 60세 (유재흥준장의 부친) 5사단장 이응준 소장 60세 (이형근 준장의 장인) 6사단장에 김종오 대령(29세) 휘하 7연대장 임부택 중령 31세, 2연대장 함병선 대령 30세, 19연대장 민병권 중령 32세 7사단장 유재흥 준장 29세 8사단장 이성가 대령 28세 독립 17연대장 백인엽 대령 27세 (백선엽 대령의 동생) 당시 군 최고사령관인 육군총참모장은 채병덕 소장 29세 1,6,7,8사단은 전방사단으로 전방을 담당했고 2사단은 대전에, 3사단은 대구에, 5사단은 광주에, 수도경비사령부 소속 17연대(백인엽대령)는 옹진반도에 주둔하고 있었다. 6,25전쟁 발발 당시 군 장성으로 육군에 10명, 해군은 1명, 공군은 2명이었다고 한다. 당시 전방 지휘관과 군 수뇌부의 나이를 볼 때 지금 같으면 그저 고참대위나 소령 급이 될까 말까한 20, 30대 젊은이들이었고 50-60대 원로군인들은 비주류로 주로 후방이나 한 직으로 밀려나 있었다고 한다. 특히 한직에 있던 김홍일소장(육군참모학교장 / 51세)은 중국 국부군 중장(2성 장군)을 지냈고 일본군과 실전경험이 풍부함에도 수도가 함락되고 국군이 붕괴 일보직전까지 가서야 겨우 시흥전투지구사령관에 임명되었고 비로소 반격의 실마리를 마련하였다고 한다. 채병덕 참모총장은 일본육사49기를 나와 일본군소좌 출신인데 친일파를 떠나서 야전군 출신이 아닌 병기병과장교 출신이었다고 한다. 당시 김홍일소장 같은 원로장군들은 후방의 3개사단을 영등포에 집결시켜 한강방어선을 펼치고 반격작전을 주장했지만 군 지휘부에서는 축차투입을 주장했다 군사학에서 축차투입은 선두를 따라 계속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 들쥐떼 같은 작전인데 전쟁에서 아주 드물게 쓰는 군사작전으로 잘 채택하지 않은 작전이라고 한다. 술 때문에 일을 그르친 남북한 군지휘부 1950년6월11일부터 발령된 전군비상경계령을 23일 해제하고 6월 24일 저녁에는 장교구락부 낙성기념 댄스파티를 열고 채병덕총참모장은 2차까지 술을 마시고 다음날 6월 25일 새벽 2시에 귀가했고 잠이 막 들면서 '전쟁 발발' 보고를 받고 중요한 지시를 술이 덜 깬 상태에서 내린 것이다. 또 북한군은 서울함락 후 3일 동안 진격을 멈춘 이유가 뭔지 명확치 않았는데 최근 북한 국방과학연구소격인 제2자연과학원 기자로 활동하다 귀순한 김길선씨 말에 의하면 6,25 전쟁 한 달 전 부터 부대 배치, 이동 등 전쟁준비로 군 수뇌부를 비롯한 북한군은 거의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극도의 피로 누적으로 매우 지쳐있는 상태였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전쟁 발발 4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자 승리에 취했고 긴장이 풀린 가운데 군지휘부가 술을 퍼마시고 3일 밤낮을 자느라 진격을 못했다고 주장 하는 바, 만약 이 말이 맞는다면 남북한 군 지휘부는 술로 인해 전쟁초기에 작전을 그르친 것이다. 전쟁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들 박정희 전대통령은 당시 33세로 육군소령으로 있을 때 좌익혐의로 수사를 받아 사형직전까지 갔다가 백선엽의 도움으로 퇴역을 하고 군무원인 문관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나고 육본이 시흥으로 옮길 때 각종서류를 소각하면서 좌익수사기록도 같이 없애 버린 것이다. 결국 소령으로 복귀하고 백범 김구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가 전쟁이 터지자 육군 중위로 복귀하였다고 한다. 결국 해방 후 무질서한 사회에다 군조차 위계질서가 제대로 잡히기 전에 터진 전쟁, 새삼 강조할 것도 없이 미국의 도움과 UN 16개국의 참전이 없었다면 과연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을까 생각 만해도 아찔하고 그들의 도움이 눈물겹도록 고맙기만 하다.
그런데 왜 요즈음에 와서 정치인 중심으로 아픈 과거를 자꾸 되살려 대결 구도를 만드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 의심스럽다. 그들의 발언을 보면 6.25전쟁을 또 하자는 것인지? 우리는 절대 정치인들 농간에 부화뇌동해서는 절대 안될 것이다. 지난날 대 북한 정책을 보면 한 때는 북한괴뢰군 섬멸을, 언제는 철천지 웬수로, 언제는 평화와 화해 무드로, 그러다 이제는 너죽고 나죽자는 것 같다. 전쟁은 결코 대형스크린에서 보는 입체 영화가 아니다. 2차 대전을 겪으면서 600만명의 동족을 잃은 유태인을 보라! 용서는 하되 절대 잊지는 말자!고 했다. 차라리 그들의 관용이 오히려 부럽기만 하다. -인터넷 이곳저곳에서-
굳세어라 금순아-현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