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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근통신
김소운
▣ 이해와 감상
이 글은 일본인이 식민 통치하에 행한 한국인에 대한 모멸과 학대에 대한 민족적 항의를 담은 것으로,
6․25의 참화 속에 비쳐진 조국의 현실에 대한 성찰이 일본의 민족성을 '간교함'과 '경솔함'으로 비판하게끔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의 시선은 결코 우리 민족의 찬란했던 전통 문화에 대한 옹호에 의한 것이 아니며, 일본의 식민 통치의 오류와 태평양 전쟁의 패전국으로서 이후의 국가적 태도의 진실성이라는 문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는 한국과 일본 양국 사이에 놓여진 '덕성(德性)'이라는 말로써 제시한 것이다.
이 글이 가지는 비판적 성격은 현실적 문제를 다루면서 사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음과 관련된다. '선데이 매일'지의 기사와 일본인 박사의 글에 대한 논평을 통해 글을 전개하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 예화(例話)를 인용함으로써 일본인의 민족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글이 민족 감정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필자 자신의 오랜 일본 생활에 근거한 개인적 경험이 글의 날카로움을 가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이로써 개인적인 사색이 대사회적 경문(驚門)으로서의 내용을 포괄하게 된다. (구인환)
▣ 이해와 감상
일본의 <중앙공론>지에 전재되어 선풍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글이다.
일본인의 모멸과 학대에 대한 민족적 항의를 담은 서간체 수필로 일본에 대한 친애와 미움이 교묘하게 교직되어 있다. 작자는 일본에서 20년 이상 살아온 사람이다.
일본인들의 지나친 우월감과 우리 민족문화에 대한 인식 부족에 그는 격분한다.
그동안 자신에게 포착된 일본인의 속성을 줄줄이 풀어내면서 김소운은 그것을 간교함과 경솔함이라 이름짓는다. 그러나 이 비판은 결코 우리 문화에 대한 옹호는 아니다.
일본 식민통치의 오류와 태평양전쟁 패전국으로서의 일본이 보여주는 진실성 문제에 대한 언급이다. 작자는 일본과 한국 사이의 <덕성>의 차이를 논한다.
이 글이 자기는 미덕은 현실문제를 다루면서 숱한 예화를 가지고 독자를 이끈다는 점이다. 선데이매일의 기사에 대한 분노는 김소운으로 하여금 일본 사회 내부에 만연되어 있는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포착케 한다.
1,2장의 서두에 나오는 <친애하는 일본의 국민 여러분>의 뉘앙스는 다분히 경멸적인 어조이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는 일본의 민족성에 대한 비판이 약소민족의 열등감내지는 울분이라도 매도당할까 저자는 줄곧 경계한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전여옥의(KBS 동경특파원) <일본은 없다>라는 책을 참고해서 두 사람이 공통으로 지적한 일본 민족서의 한계를 검토해 보는 것도 좋은 공부가 될듯하다.
김소운은 우리의 우월한 문화를 일본에 알리고자 조선민요사를 비롯 구전 동요와 시를 채집, 일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계속했다.
목근통신, 은수 삼십 년이란 수필집에서 일관되게 일본과 우리의 관계를 말하면서 <나를 낳아 준 어미가 문둥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다>라고 절규하기도 한다.
▣ 핵심 정리
* 형식 : 경수필, 서간문
* 성격 : 충고적, 설득적, 비판적
* 문체: 서간체
* 표현: 구체적 예화
* 제재: 일본인의 모멸과 학대
* 주제 : 일본인의 모멸과 학대에 대한 민족적 항의.
국인에 대한 모멸과 학대에 대한 민족적 항의
일본 지식인에게 호소
▣ 본문 감상―일본에 보내는 편지―
미움과 친애의 두 진실에서.
친애하는 일본의 국민 여러분!
나는 대한민국의 총리도 국민 대표도 아닙니다. 포의 서생에 지나지 않는 일개인이 이런 전치사로 여러분을 부르는 것이 혹시 외람될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20 몇 년이란 긴 세월을 귀국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나라 말로 '잔뼈가 굵어지도록―' 20 몇 년이라면 당신네들이 '종전'이라고 부르고 우리가 소위 '해방'이라고 하던 1945년까지로 마감해서 내 생애의 거의 3분지 2에 해당합니다. 그렇게 긴 세월을 나는 귀국의 우로에 자랐습니다. 내가 가진 변변치 못한 지식이나 교양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태반은 일본에서 얻어 온 것입니다.
'친애'란 말이 일편의 외교 시령이 아닙니다. 진정 여러분에게 보낼 수 있는 내 마음의 인사입니다.
나는 3,4일 전에 어느 친구 집에서 30여 년이 지난 헌 기록 사진 몇 장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기미 운동이라고 부르는 이른바 대정 8년의 '독립 소요 사건' 때 당신네들 손에 학살당한 그 처참한 송장들의 사진을 내가 그날 처음 본 것은 아닙니다. 20여년 전 토오쿄오 게라구 고우(東京下落合)의 오끼노 선생 댁 서재에서 본 것도 바로 이 사진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무에다 주렁주렁 목을 달아 메어 죽인 그 사진을 그 날 다시 대했을 때 내 감정은 새로 한 번 설레었습니다.
'죽일놈들 같으니 ― 이 죄값으로도 나라가 안 망할라구!'
그 때 내 입으로 복받쳐 나온 말이 이것입니다. '왜적'이니 '강도 일본'이니 하는 말로는 형용치 못 할, 더 한결 절실한 미움이 용솟음친 것을 고백합니다.
이 '미움'과 이 '친애'는 둘 다 에누리 없는 내 진실의 감정입니다. 이 서로 상반되고 모순된 두 감정을 그냥 그대로 전제해 두고 이 글 하나를 쓰자는 것이다.
'선데이' 매일지의 기사
이 글은 여러분이 읽지 못할 글자로 여러 분의 눈에 뜨이지 않는 한국의 신문에 실릴 것입니다. 그러나, 기필코 가까운 장래에 이 전문을 일본문으로 옮겨 여러 분이 읽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이 약속은 반드시 이행되리라고 믿습니다.
지난해 가을-정확히로는 1950년 9월 10일호 <'선데이' 매일>지 권두에 <한국 전선에 종군하여>란 좌담회 기사가 실렸던 것을 여러분은 기억하실 것입니다. 좌담회라기 보다는 UP통신 특파원과 '뉴우스위크' 부주필의 대담-거기다 <'선데이' 매일>의 기자 하나가 진행을 겸해서 한자리 끼었으니, 이를테면 세 사람의 정담이라고 할까요. 정담이든 대담이든 그것은 제쳐 두고, 도대체 그 기사의 내용이란 것이 어마어마 했습니다.
기탄 없고 솔직한 점으로 보아 그 이상 바랄 수 없으리 만치 한국의 약점을 찌른 명담이요, 쾌변이었습니다. 도시니 촌락이니 할 것 없이 온통 구린내 천지란 이야기, 독 '가스'는 없어도 구린내에 코가 떨어지지 않으려면 '가스 마스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 길거리에서 보는 거지며 부랑아들 이야기-, '무슨 죄를 졌길래 이런 나라를 위해 전쟁까지 해주어야 하느냐?' '소련을 응징하는 것이 이번 전쟁의 목적이라면 차라리 이런 나라는 소련에 주어 버리는 것이 효과적이 아니냐?' 등등, 바로 한국인의 심장에 비수를 겨누는 언언구구 기고만장한 대경구(大驚句)들이었습니다.
구린내 나는 나라의 출토품
다시 한번 친애하는 일본 국민 여러분!
내가 최근에 들은 바로는 [썬데이 매일]의 발행 부수는 70만에서 80만을 상회한다고 합니다. 대한민국으로는 상상치도 못할 방대한 부수입니다. 한 부를 다섯 사람이 읽었다 치더라도 400만에 가까운 이 숫자는 거의 일본의 독서 대중의 총량에 해당할 것입니다. UP특파원과 뉴스위크 부주필―이 두 분의 외국 기자는 한국의 똥구멍을 털어서 그 적나라한 실상을 전 일본의 방방곡곡에다 소개하고 선전해 주었습니다.
거기 대해서 우리들은 정히 냉한삼두(冷汗三斗)일 뿐, 일언반사의 대구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이것은 우리들이 역사의 은인이라고 부르는 미국의 언론인의 대담입니다. 그 기사의 책임을 여러분에게 돌릴 이유도 없거니와 그것을 여기서 추구하고 항변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오늘날 가졌다는 것은 가난한 것과 초라한 것뿐입니다. 어느 모로 따져 보아도 우리가 치켜들어서 남의 앞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일찍이 남의 나라에까지 이식되던 우리들의 문화는 이미 낡은지 오래입니다. 그리고 그 문화의 대부분이 일본 ― 즉, 당신네들의 나라로 수출되었습니다. 새삼스런 이야기 같습니다마는 우리노(上野) 공원을 지나칠 때 여러분은 왕인 박사의 기념비를 자주 보실 것입니다. 일본에 처음으로 한문 문화를 이식한 우리 선인의 한 분입니다.
일본에 있어서 생활 문화의 기본이라고 할 '다도(茶道)'―, 지금도 일본의 여유층들은 비록 패전은 했다고 하나 그 다도를 숭상함이 예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 쓰이는 그릇(茶碗)들은 좀 값나고 귀한 것이라면 대개로 이 '구린내 나는 나라'의 출토품들입니다.
지나간 옛 문화가 아무리 찬란했기로서니 그것으로 오늘날의 우리의 처지를 호도할 구실은 못됩니다. '소로구―프'에 이런 우화가 있습니다.
동물들의 자격 심사회인데 그 몇 번째 차례에 거위가 나왔습니다. 심사관이 묻습니다.
"자네 공적은 무언가?"
"네, 제8대조 할아버지가 트로이 전쟁 때 성을 넘어오는 적병을 맨 처음 발견했지요. 그래서 하마터면 위태할 뻔한 성을 구해냈답니다. 유명한 이야기이지요."
"그건 자네 8대조 이야기가 아닌가. 자네 공적이 무언가 말이야."
"제 공적이 무어냐고요? 제가 바로 그 8대조 할아버지의 8대손이지요."
"글쎄 이 사람아, 트로이 전쟁은 트로이 전쟁이고 자네는 대체 무엇을 했더냐 말이다."
"온, 참, 말귀도 못 알아들으시네. 제가 바로 트로이 전쟁에 공훈을 세운 그 거위의 8대 직손이라니까요."
우리는 비록 구린내 나는 나라의 족속이라고 하나 이 거위의 '넌센스'를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라니 고구려니 해서 죽은 아이의 나이를 헤자는 것이 아니라 일체를 상실한 오늘날과 그 화려하고 풍요하던 옛날의 문화를 한번 맞대어보는 것입니다.
서글프고도 부끄러운 회상입니다.
제 욕을 제가 하는 바보
[선데이 매일]의 기자가 묻습니다.
"한국의 도시나 촌락에서 약탈을 당한 그런 흔적은 없던가요."
"글쎄요. 한국에 약탈을 당할 만한 무슨 재산이 애당초에 있었던가요. 그토록 빈한합니다. 이 나라는―"
UP기자의 이 대답에는 "약탈의 대상이나 되었으면 제법이게―"하는 또 하나의 암의가 풍기어 있습니다. 사실인즉 전화로 인해서 입은 직접 피해 외에도 한국의 국민들은 허다한 재산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재산'이라고 하는 물자며 세간살이들은 있는 이의 눈으로 볼 때 소꿉장난의 부스레기들로 보였을 것입니다.
약탈의 대상도 못 되리만치 빈곤하다는 이 신랄한 비평을 그러한 의미에서 감수합니다. 그러나 관과치 못할 또 하나의 문제가 여기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은 36년 동안을 일본이 다스리던 나라입니다. '일시동인(一視同仁)'의 일본의 정치가 마침내 한국을 이 빈곤에 머무르게 했다는 사실은 별로 일본의 자랑이 못될 것입니다.
―'센징(鮮人)의 주택은 더럽다'고 쓰는 것보다 '센징의 집은 도야지 우리 같다'고 쓰는 편이 문장 표현으로도 더 효과적이다―
20년 전 동경 삼성당에서 발행된 교재서의 한 구절입니다. 현명하고 영리한 귀국 국민에도 제 욕을 제가 하는 이런 바보가 있었습니다. 이런 천진한 바보의 귀에도 약탈감도 못 된다는 외국 기자의 한국평이 통쾌하고 고소했을는지 모릅니다마는, 마음 있는 이는 아마 또 하나의 반성을 잊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국의 '레미제라블(悲慘)'은 한국의 수치이기 전에 실로 일본의 덕성의 '바로미터'이라는 것을―
"한국에서 돌아와 일본을 보니 여기는 바로 천국이야. 한국은 정말로 지옥이지 "
"전선에서 잠드는 UN 부대들의 야영의 꿈은 뉴―욕이나 갤리코니아가 아니거든― 긴자, 도―똔보리, 아사쿠사, 신쥬꾸―, 하나꼬상, 기미꼬상, 노부꼬상의 꿈이지."
패전국이라던 일본이 천국이요 36년의 질곡에서 벗어났다는 한국이 지옥이란 것은, '메퓌스트 회레스'와 '파우스트'가 위치를 전도한 것 같은 신통하고도 재미있는 후세의 이야기 거리입니다. 전쟁에 지면 사내란 사내는 모조리 아프리카로 끌려가서 강제 노동의 노예가 된다던 일본……. 그 일본은 점령군 사령부의 관후한 비호 아래 문화를 재건하며 시설을 다시 회복하여 착착으로 전쟁 전의 면모를 도로 찾아가고 있습니다. 거기 대비할 때, 연합국의 일원이요, 당당한 승리자인 중국은 그 광대한 영토를 버리고 대만으로 밀려가고, 해방의 기쁨에 꽝매기를 울리며 좋아 나루띠던 한국은 국토를 양단 당한 채 지난 1년 동안에는 두 번이나 수도 서울을 적수(敵手)의 유린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이 사실, 가장 냉엄해야 할 '역사'도 알고 보니 익살맞고 짓궂은 장난꾸러기입니다.
행여나 오해치 마십시오. 우리는 일본의 불행을 바라는 자가 아닙니다. 일본의 행복을 질시하는 자가 아닙니다. 비록 '지옥'의 대명사를 가지도록까지 일찍이 상상치도 못한 가난과 도탄을 겪고 있다고는 하나 그러나 우리는 지녀나가야 할 최후의 덕성하나를 쉽사리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쪽이 더 교활?
개인에 연령이 있는 것처럼 민족에도 민족의 연륜이 있습니다. 젊으면 경솔하고 순진하고, 늙으면 신중하고 교활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생리의 약속입니다.
같은 민족끼리도 문화의 노약(老若)에 따라 이 차이는 현저합니다. 동경을 중심으로 한 관동(關東)과 교오또를 표준으로 한 가미까다의 기질이며 지방색을 비교해 본다면 여러분 자신이 이 사실을 수긍할 것입니다. 중국은 이미 늙은 나라입니다. 일본은 동양 3국 중에서 가장 어리고 젊은 나라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민족의 연륜으로 보아 바로 그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일본의 민족성은 조급하나 진솔한 것이 자랑입니다. "대(竹)를 쪼갠 것처럼 꼿꼿하다"는 형용을 여러분의 나라에서는 곧잘 씁니다.
우리는 그것을 과신(過信)했기에 만일 일본이 패전한다면 군인이란 군인은 모조리 자살해 버리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실로 일장의 넌센스입니다. 일본이 그렇게 유순하게 승리자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귀염까지 받으리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입니다.
한국은 문화에 있어서 적어도 10여 세기를 일본에 앞선 나라입니다. 중국의 연륜에는 미치지 못하나 일본보다는 더 장성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사교성과 어인술(御人術)이 일본보다는 능해야 할 이치인데도 나타난 결과는 정히 그와 반대입니다.
오오까와 박사는 전범자로 재감(在監) 중에 발광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의 기염만장(氣焰萬丈)한 저술 <일본 2천6백년사>에 대해서 일찍이 나는 <부인공론>에 글 하나를 쓰고 삭제당한 일이 있습니다.
그 저서 중 소가씨에 논급한 대문에, 조선으로부터 도래한 귀화인의 예를 들어, 우리 민족성을 교활하고 간악한 최적의 표본으로 내세운 한 구절이 있습니다. 만일 그가 발광하지 않고 정신이 성했다면 한 번 다시 물어보고 싶은 일입니다. 오늘날의 일본과 한국을 서로 비교해서 과연 어느 쪽이 더 순진한 민족이냐, 어느 쪽이 더 능란하고 교활한 민족이더냐를.......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광자(狂者)입니다. 광자의 권리로 그는 이 설문(設問)을 거침없이 외면할 것입니다.
하가꾸레의 일화
사무라이가 골동품 가게에 와서 접시 하나를 만지다가 "갑이 얼마냐?"고 묻습니다. "네, 스무 냥입니다." "스무 냥이라니? 아니 이 사람아, 이게 스무 냥이란 말인가? 자네는 주인이 아닌게로군. 주인을 불러 오게, 주인을...... ." "제가 바로 주인인데요." "주인이라? 주인이면서 접시 하나 값도 모른다? 딴소리 말고 주인을 부르게."
주인이라던 사람, 그 말을 듣더니 두말없이 접시 도로 뺏어 땅바닥에 탕탕 때려부수고는, "자, 잘 보시우. 이래도 내가 주인이 아니란 말이오?"
일본에 보편화된 고바나시의 하나입니다. 깨어진 접시 조각, 무색해서 얼굴이 붉어진 사무라이를 연상하면서 여러분은 이 고바나시의 통쾌미를 즐깁니다.
또 하나 이와 다른 하가꾸레(죽음을 초개같이 아는 무사 정신을 가진 일당)의 일화가 있습니다.
떡장사집 이웃에 가난한 홀아비 낭인(浪人)과 그의 어린 자식이 살았다. 어린애가 떡가게에서 놀다 돌아간 뒤 떡 한 접시가 없어졌다. 낭인의 아들인 그 어린애에게 혐의가 씌워졌다.
"아무리 가난할망정 내 자식은 사무라이의 아들이다. 남의 가게에서 떡을 훔쳐 먹다니 그럴 리가 만무하다."
낭인은 백방으로 변명해 보았으나 떡장수는 종시 듣지 않고 떡값만 내라고 조른다.
이에 낭인은 칼을 빼어 그 자리에서 어린 자식의 배를 갈라 떡을 먹지 않았던 증거를 보인 뒤에 그 칼로 떡장수를 죽이고 저마저 할복 자결해 버린다.
이 산비(酸鼻)한 일화는 일본 국민성의 순일불기(純一不羈)한 표본의 하나라고 해서 칭송을 받으며, 듣는 자로 하여금 감탄과 상찬(賞讚)을 마다않게 한 이야기입니다. 만일 이 열렬한 의기(意氣)를 용납하지 못하는 민족이 있다면 당신네들은 언하(言下)에 경모(輕侮)와 멸시로 그들을 대하기에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민족이 바로 이 한국입니다.
이상의 두 예화에서 우리들은 용렬한 소인의 성정(性情)-제도(濟度)치 못할 히스테리를 찾아 낼 뿐입니다. 우리들은 이런 이야기에 불쾌를 느낄 뿐만 아니라 이런 이야기를 자긍하고 긍정하는 민족의 그 단순 소박한 윤리 의식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20여 년을 일본서 살아온 나 같은 사람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중략>
내 어머니는 레프라일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이 장황한 편지에 결말을 지어야 하겠습니다. 일본에 대해서 너무 아는 체한 것이 부끄럽습니다마는, 그러나 하고 싶은 얘기를 이것으로 다한 것이 아닙니다. 원컨대 여러분들과 자리를 같이해서 한국과 일본이 지닌 이 구원(久遠)의 숙명에 대해서, 좀더 활발하게, 좀더 솔직하게, 흉금을 토로하고 싶습니다. 그런 기회가 아직도 내게는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숙명 ― 진실로 그렇습니다. 미우나 고우나 이것은 숙명적인 인연입니다. 과거의 수천 년이 그러했고, 다가올 수만년이 또한 그러할 것입니다. 개인의 이웃은 떠나버리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민족의 이웃, 국가의 이웃은 떠나버릴 수 없고, 땅덩이를 실어서 이사할 수도 없습니다.
한국이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고난과 비통을 이미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한의 쓰라림과 불행을 우리는 이미 겪어온 것 같습니다. 여기 대해서는 아름다운 말, 호기스런 장담으로 외면(外面)을 호도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최후로 한마디 말을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역경에 있어서 강한 민족이었습니다. 신라의 옛날은 모르거니와 고려의 문화, 이조의 학예가 한가지로 고난의 어둠 속에서 더 한층 빛났다는 것이 우리들의 자랑입니다.
우리의 과오 ― 나날이 우리 스스로가 불행을 자승(自乘)해 가고 있는 이 현실을 부정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또 하나의 섭리를 믿는 자입니다. 사나운 바람, 매운 서리를 견디고, 땅속에 잠겼던 한 톨의 보리알이 움을 틉니다. 이것이 민족의 지열(地熱)입니다. 만일 이 지열이 없었던들, 우리는 몇 세기 전의 어느 국난에서 벌써 멸해 버렸을 민족입니다.
가미가제의 기적을 바라는, 이것은 신화가 아닙니다. 침략치 않고, 저주할 줄 모르는 어진 백성이, 오욕과 가난에 견디어 내는 하나의 항독소입니다.
일전에 친한 미국인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미스터 김! 그대가 만일 한국이 아니고 미국이나 프랑스에 태어났던들, 몇 배, 몇 십배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으련마는 ."
"천만의 말씀 ."
그 때 내 입으로 나온 대답입니다.
"내 어머니는 '레프라'(문둥이)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어머니를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겠습니다."
"오오, 그러리라!"
그는 자못 심각하고 침통한 표정으로 내 손을 쥐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그날 내가 처음 한 것은 아닙니다.
1939년 11월호 《부인공론》에 '보오노 하나(박꽃)'란 수필 하나가 실려 있습니다. 향토에 대한 내 애정과 신앙을 고백한 글입니다.
'향토는 내 종교였다 .' 거기 쓴 이 한마디 말은 목숨이 다 할 날까지 내 가슴에 지닐, 괴로우나 그러나 모면치 못할 십자가입니다.
문둥이의 조국! 그러나 내게 있어서는 어느 극락정토보다도 더 그리운 어머니의 품입니다.
가마꾸라 하세의 내 살던 집에 무궁화 한 그루가 있습니다. 수필집 이름은 《목근의 뜰》이라 지었다가 그 책은 마침내 나오지 못한 채, 종전(終戰)되던 해 이월, 손가방 하나를 들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육 년이 지났습니다.
육군의 비밀 공장 기지로 들어가 그 집이 헐리웠다는 소식을 내가 떠난 월여 후(月餘後)에 들었습니다. 내 살던 집은 없어지고, 뜰에 썼던 무궁화도 지금은 아마 피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흰 꽃 모습은 언제나 눈만 감으면 내 앞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 '목근통신'이라고 이름지은 쑥스러운 애상(哀傷)을 웃어 줍시사 하고 이 글을 끝맺습니다. 1951. 8. 부산에서.
■ 어휘와 구절풀이
* 포의 : 베옷. 벼슬이 없는 선비
* 냉한 삼두(冷汗三斗) : 식은 땀이 세 말이라는 뜻.
* 암의 : 숨겨진 뜻.
* 일시동인 : 모든 사람을 똑같이 사랑함.
* 바로미터 : 척도. 기준
* 메퓌스트 회레스 : 파우스트에게서 영혼을 산 악마.
* 구원(久遠) : 오래된.
* 흉금 : 속마음
* 호도하다 : 일시적으로 우물우물 덮어버리다.
* 가미가제 : 자살 특공대
▣ 핵심 문제
1. 1장의 끝부분에 쓰인 같은 대상에 대한 '미움'과 '친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 미움은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에게 보여주는 태도에서, 친애는 자신이 살아 왔던 곳이기에 일본인들도 이웃이라고 보고자 하는데서 비롯된다..
2. 5장의 예화(例話)를 통해 나타나는 일본인의 민족성은 어떤 것인가?
☞ 간교함과 경솔함을 가진 일본인
☞ 용렬한 소인들의 성정치 못한 히스테리
▣ 수필에서 유머와 위트의 역할
수필은 단순한 생활의 기록이나 객관적인 진리의 서술이 아니라 생활을 통해 걸어가는 마음의 산책이다. 그러나 그 속에는 온화하고 담담한 지성의 거울에 비친 대상에 대해, 필자 나름의 날카로운 비판 정신이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나 비판이 지나치게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표출되면 그것은 수필이 될 수 없다. 이러한 비판 정신의 경직성을 완화하기 위한 장치로 유머(humor)와 위트(wit)가 나타나고, 이는 수필의 활력소가 된다.
유머와 위트는 소설이나 희곡에서도 중시하는 문학의 기본 요소이다. 특히 수필에서는 서정의 아름다움, 지적 활동의 기본이 되는 비판 정신과 함께 유머와 위트가 반짝여야 한다. 수필에 있어서 유머는 자연스럽게 스치는 입가의 미소와 같은 것이며, 위트는 문득 깨닫게 되는 지혜의 섬광과 같은 것이다. 이것이 부족한 수필은 마치 딱딱한 문학비평이나 학술적인 글이 되고 말 것이다.
첫댓글 2011년 4월 27일 17:00에 게시하신
유진 님의 글에 이어
두번 째로 김소운 님의 목근통신 올립니다.
부디 반복이다 질타하지 마시고
다시 한번 더
읽으주시는 아량 부탁 드립니다.
유진 님 글 다시 올리게 되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