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각폭포 아래에서 금란정과 노송을 배경삼아 사진 한 장 기념으로 찍는다.
앞 옥녀봉 위로 안개 구름이 솟구쳐 올라가고, 솔향기 사이로 폭포수 흘러내리는 소리만이 들린다.
물쫗고, 정자좋고, 반석 좋은 곳이 그리 흔하더냐, 장각동천 계곡 입구에 이만한 곳이 그리 흔하더냐.
상오리 7층석탑으로 가는 나무 계단 앞에 나타난 그물에 갑자기 놀랜다. 사유지 안에 남아있는 고려시대 양식의 석탑은 아담하기보다는 우람하다. 대개의 고려 석탑들이 그렇듯이. 이만한 석탑에 어울리는 금당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본다.
길쭉한 탑신과 옥개석의 비례가 눈에 특이하게 비친다.
그나마 남아서 폐사지임을 증명해준다.
백두대간 등산용 지도자료에서 찾아본 장각폭포 일대 지도
(속리산 천황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드는 장각폭포이다)
경상북도 상주시 관내에서 충북 보은 속리산쪽으로 넘어간다. 동관을 찾아가면 선병국고가로 유명한 삼가저수지 위로 만수계곡 골짜기에 이른다.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상주로 넘어가는 고개에 이르고 고개 못미쳐 선씨네 일가가 자신들 조상 묘를 쓰느라 개척한 좁은 길을 따라가면 그 막다른 근원 그곳에 속리산관음사사적비가 있다. 탑 대신에 사적비가 있어서 폐사지임을 말해준다. 부도도 있고, 개울 건너 민가 앞에는 오래된 자연석 맷돌이 남아있다. 이곳 민가터가 옛날 공양간이었다고 한다. 깊은 오지 속에 이렇게 유서깊은 절이 있었다니... 사적비 속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선종을 들여온 신라말 도의선사 에 대해 언급된 부분도 있고, 절의 재산에 관한 이야기도 적혀 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석탑 탑신의 일부가 아닌지 의심이 가는데...
개울 건너에 사적비가 있고, 옛날에 공양간에서 쓰던 자연석으로 된 커다란 맷돌이 남아있다. 개울너머에는 돌확도 있다.
옛절집 공양간 터에 지은 집에서 아주머니가 '물맛이 최고'라고 권하는 말에 마시면서 나누는 이야기는 길어지기 시작한다.
붉게 익은 산딸기도, 검게 익은 오디도 따먹으면서 옛생각하며 나온다.
도의선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절이라면, 이는 국보급일텐데, 그 분의 일대를 기록한 것이 문경 봉암사의 지증대사비가 국보이고, 쌍계사의 진감선사비며, 보령 성주사지의 낭혜화상비도 모두 조선 선종의 비조인 도의선사의 법손들인 바.
이 모든 비가 다 그 역사적 가치때문에 국보로 지정된 것인데...
강원도 설악산의 진전사 말고 또 창건한 절이 있단 말인가.. 멍멍해질려고 한다.
도의선사에 관한 기록은 조당집과 문경 봉암사에 있는 지증대사비문, 장흥 보림사에 있는 보조선사 비문을 통해서이다.
도의선사(道義) 이야기가 언급된 부분이다.
속리산관음사적비명이라고 전서로 된 비석이다.
<사적비명에는 속리산 관음사인데, 현행 지도상에는 경북 상주시 관할 구역>
구병산을 한 바퀴돌고 돌았는데, 속리산 천황봉 동남쪽 기슭이라는 것을 지도를 보고서야 안다.
경상북도와 충청북도가 갈라지는 곳, 예전에도 이렇게 험한 곳이요, 요충지이었는데, 6.25 때에도 바로 이 근처 일대(동관리 포함)에서 격전이 벌어졌음이 화령면에 있는 국군전승비가 말해주고 있다. (임진왜란시의 상주 접전도 말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홀연히 나선 길이 결국은 폐사지를 두 곳이나 둘러본다. 만수리계곡도 보고 삼가저수지 도 보고 삼가터널을 지나오는 길에 마침 선병국 고가에서 운영하는 복해식당에 들러 자연산 버섯찌개로 저녁을 먹는다. 한옥 고가의 후원을 바라보면서 옛정취를 느끼며 지기들과 먹는 맛은 남다르다. 안방 문 위에는 선덕지가(宣德之家), 건넌방 문 위에는 완당선생의 죽로지실(竹爐之室)이라 쓰인 글귀가 고가의 품격을 말해주는듯 하다.
가을날 앞 마당의 감나무에 감이 익을 무렵의 정취가 아름답다고 안주인은 일러준다.
(조타지기가 운전하느라 고생한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호강을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