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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위한 교회교육
1. 예배와 교육
1) 예배와 예배의식
예배(禮拜, worship service)는 하나님과 언약관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려 주시는 구원과 축복과 말씀에 응답하여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과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리는 집단적인 경배의 종교의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성경의 고대 예배형식은 제물제사 형식이었습니다. 율법시대에는 성전(성막)에서 드려지는 제물제사와 함께 특별한 성일에 실행되는 집회 형식 예배가 더해 졌습니다. 신약시대에는 제물제사의 의의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완성되었으므로 교회예배는 그리스도의 구속에 기초한 집회형식 예배형식으로 확립되었습니다.
집회형식 예배는 더 이상 제사의식을 실행하지는 않지만 제사의 원래 의미를 반영하는 ‘의식’에 따라 실행됩니다. 십계명과 율법은 임의적인 예배의식 창안을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예배의식은 하나님의 존재적 지위와 속성, 구원의 특별한 방법과 의미를 표상하기 때문입니다.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천주교의 미사와 성사 형식 예배가 성경의 규례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여 거부하고 말씀과 성례 중심의 사도교회 예배의식으로 되돌렸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예배는 ‘예배의식’(worship service)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종교의식인 예배는 성도들의 삶과 신앙공동체 활동의 중심에 위치해 있어서, 넓은 의미에서 삶 전체를 통한 섬김(service)으로 확장됩니다. 그래서 포괄적 표현인 ‘종교’도 어원적으로는 하나님과의 ‘관계’(religion)와, 하나님 ‘섬김’(godsdienst)을 담고 있어, 예배와 유사한 의미들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첫 번째 목적이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뜻하는 넓은 의미의 ‘예배’는 우리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2) 예배의 교육
예배와 교육은 명확하게 구별되는 활동입니다. 전형적인 예배의식(worship service)은 하나님과 신앙공동체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을 향한 경배활동입니다.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예배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있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에 완전히 의존해 있습니다. 반면에 전형적인 교육활동인 수업(teaching-learning)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에서 새로운 지식을 가르치고, 문제해결 능력과 기술을 구비시키고, 전인적인 발달과 성숙에 이르게 하는 의도적이고 효율적인 인간 형성 활동입니다. 교육은 학생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배와 교육은 서로 구별된 다른 활동이고 각각의 활동 목적이 다릅니다. 그래서 교회활동에서 예배와 교육을 각각에 적합한 시간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비록 교육은 예배와 더불어 다른 활동들과 명확하게 구별되는 특별한 활동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교육은 예배와 더불어 다른 모든 활동에도 작동하는 일반적 기능입니다. 그 이유는 그 활동을 실행하는 인간의 전인적 특성, 학습의 전인적 특성, 그리고 실제 삶의 총체적 특성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교육을 목표한 활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교육적 기능을 발휘하는 활동입니다. 예배에 직접 참여하는 체험은 예배를 배우는 쉽고도 좋은 방법입니다. 체험과 경험은 전인적인 방식의 학습입니다. 그래서 학습 속도에서 대단히 빠르고 효과적이며 학습 효과도 오랫동안 지속됩니다. 다른 사람이 매뉴얼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도 쉽고 빠르게 학습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습을 사회학습이라고 말합니다. 현대교육에서 좋은 교육을, 지식 대신 경험이라는 말로 바꾸어 설명하고 경험교육과정을 서술한 교육학자도 있습니다. 고등교육에서도 전문적인 능력과 기술일수록 실습시간을 많이 요구하고 이후에도 실행경험 혹은 경력을 요구합니다.
신학에서 볼 때, 언약의 특성 자체가 신앙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예배의식 참여를 요구합니다. 여기에 부차적이지만 경험을 통한 교육목적에서 어린이들의 참여를 요구하고 있는 성경본문도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특정 영역까지는 성전예배 참여할 수 있도록 허락한 것과 고대교회에서 교리교육 이전 단계에서도 개종 예정자의 예배참여를 허락한 것은 예배의식에의 개방성과 더불어 예배 경험의 교육적 효과도 기대하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직접 참여경험은 인간의 내면 형성에서 강력한 교육효과를 발휘합니다. 인간 마음의 특성인 습관, 전통의식, 삶의 스타일, 가치관과 선호, 도덕의식, 인생관, 세계관 등은 공동체의 삶에서 점차 내면화된 것들입니다. 지속적인 참여경험은 명시적으로 의도된 교육활동이 아니었음에도 마음에 더 깊은 영향을 주어, 사람의 행동과 생각의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이러한 교육결과를 염두에 두고 ‘문화화’(사회화)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일상생활경험 교육과정을 ‘감추어진 교육과정’(비의도적 교육과정)이라고 표현합니다. 예배참여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교육적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예배의 일차적인 목적은 교육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예배는 처음부터 교육을 의도하고 있음에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로 예배의식 방법을 주셔서 예배에서 신앙공동체를 만나 구원과 축복으로 근본적인 필요를 채워주시고 예배 안에서 신앙공동체에게 그 분의 뜻을 가르치셨습니다. 규정된 제사의식은 참여자와 봉사자 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구체적 실물과 상징으로 하나님의 요구와 구원의 의미를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낭독은 명확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는 방법이었습니다.
족장시대에 있었던 간헐적인 하나님 만남의 제사의식을 율법시대에 규례에 따라 집행되는 정기적인 제사의식과 성일(절기)집회로 제도화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지속적으로 예배를 가르치려는 의도를 반영합니다. 집회의 배경이 된 주요 절기의식을 설명하는 성경본문들은 자녀들이 질문할 것을 예상하고 있고 그것을 교육의 기회로 삼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교회예배에서 말씀 낭독과 설교는 새로운 계시 수납이 아니라 이미 주어진 계시에 대한 낭독과 해설이었으므로 선지자적 기능보다 교육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은 목사의 역할을 천주교회처럼 사제역할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교사 역할로 간주하였으며 예배의식에서 설교를 주요한 위치에 두었습니다. 교회예배를 하나님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간으로 간주했던 것입니다.
3) 예배를 위한 교육
또 다른 한편으로 예배의식에는 신학적 언어와 표상(상징)들과 여러 가지 활동이 있고, 목사가 전체를 인도하는 연속적 과정과 여러 봉사자가 역할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집단의식입니다. 예배의식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 참여자와 봉사자를 교육하는 것은 필수적입니다. 예배의식의 의미 이해와 참여활동 숙련을 위한 준비교육, 예배자 내면의 진실과 자발성을 구비시키는 준비교육은 참된 예배의 필수적 요구입니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는 진리(그리스도와 말씀)에 대한 이해와 믿음, 성령님의 교제를 위해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절히 기대하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예배를 위한 준비와 숙련을 교육해야 합니다.
예배는 그리스도인과 신앙공동체의 중심이므로 예배를 위한 교육은 교회교육의 핵심활동입니다. 참된 예배자가 되는 것은 교회교육의 시작이면서 목표이고, 참된 예배실행도 교회활동의 시작이면서 목표입니다. 예배는 교육과 구별된 활동이지만 예배는 성도들을 교육하는 하나님의 교육활동이고, 참된 예배를 위한 준비교육은 교회교육의 주요 과제이며 내용입니다
2. 공예배와 교육
1) 주일의 공예배
교회 「헌법」규정의 ‘예배지침’에 따르면 예배는 엄격히 말하면 공(동)예배를 뜻합니다. 다른 집회는 기도회와 특별집회로 구별됩니다. 총회와 노회는 성경의 엄격한 요구에 부응하는 참된 예배를 실행하도록, ‘예배지침’으로 예배를 주관하는 목사와 당회 그리고 성도들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공예배는 성경의 요구에 따라 구성된 예배의식 안에서, 하나님 만남과 섬김이 이루어지는 일련의 활동이 순서에 따라 질서 있게 진행되는 공동의 예배의식입니다.
공예배는 명시적으로 주일예배(주일예배와 오후(저녁)예배)를 뜻합니다. 공예배는 은혜언약관계 당사자인 하나님이 하나님의 백성을 만나주시는 규정된 예배여서, 모든 성도들이 규정된 시간인 주일에, 예배를 위해 성별된 예배당에서, 예배에 적합한 활동요소를, 의도된 순서에 따라 진행하는 의식입니다. 공예배는 공교회 곧 보편교회의 특성이어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세계적 범위에서 공통된 형식을 따릅니다.
또 공예배는 은혜언약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여서 언약 백성인 그리스도인 모두가 공예배 참석의 특권과 의무를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예배를 위한 준비와 지속적인 그리고 안정적인 공예배 실행을 위해 모든 언약백성에게 주일성수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예배지침’에 따르면, 공예배의식의 활동요소는 예배초청, 기원, 영광찬송, 회개기도, 십계명, 성경교독, 신앙고백, 감사찬송, 대표기도, 성경 봉독, 찬양대 찬양, 설교, 성례, 화답찬송, 헌금, 교제, 주기도, 축도(강복선언)입니다. 이 요소들 중 일부는 당회의 공예배 준비과정에서 생략될 수 있으나 임의로 다른 요소들을 창안할 수는 없습니다. 기본요소는 회개기도, 성경봉독과 설교, 성례, 중보기도, 헌금입니다.
2) 공예배를 위한 교육
은혜언약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특별한 의식인 공예배는 그 특별한 성격, 의미, 내용, 규정 등을 염두에 둘 때 예배교육을 요구합니다. 공예배 봉사자에게는 직무를 위한 특별 교육이, 그리고 일반 참여자인 성도들에게는 일반적인 기본 교육이 요구되는데, 여기서는 일반적인 기본 교육에 주목하여 몇 가지 교육 과제를 제안해 보겠습니다.
첫째, 공예배를 이해하는 기본 신학교육과 태도교육이 필요합니다.
공예배가 의도하는 은혜언약의 의미와 공예배 내용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공예배 참여자에게 기본적 요구입니다. 공예배가 의도하는 언약의 당사자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간의 만남과 소통 그리고 예배의 활동요소와 진행 절차는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공예배의 의도와 내용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더 깊은 수준의 참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공예배는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영적 활동이므로 예배자의 준비된 마음은 중요한 조건입니다.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태도는 축복의 기회로 이어지지만 부정적이고 무심한 태도는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공예배는 유아로부터 노인까지, 새신자로부터 주요 직분자까지 공동으로 참여하는 활동이어서 예배 전에, 동시에 상시적으로, 또 수준에 맞는 교육이 반복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규칙적인 공예배 참여의 습관형성 교육이 필요합니다.
공예배는 신앙생활의 중심이고, 매주일 실행하는 의식이며 일생동안 지속되어야 할 의식입니다. 성도들의 일상생활은 먼저 고정해 둔 공예배에 맞추어 설계되어야 하므로 비그리스도인들은 개종의 결단을 종종 주저합니다. 성도의 가정에서 성장한 세대도 세속사회 안에서 이러한 생활패턴을 일평생 이어가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공예배 참여가 규칙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실행되려면 공예배 참여활동이 자연적 습관으로 형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일성수가 과중한 부담으로 여겨지지 않는 그래서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려면 공예배 참여를 특권과 축복의 기회로 수용하는 언약 백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고, 동일한 패턴의 삶을 살아가는 신앙공동체와 함께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좋은 습관 형성의 교육은 기본적인 지식교육과 더불어 신앙적 자기 정체성 확립의 교육과 신앙공동체 안에서의 교제와 생활 참여를 포함해야 합니다.
셋째, 공예배의식에 적합한 용모와 의복 교육이 필요합니다.
활동양상에 따라 다른 양식의 문화 형식이 있습니다. 스포츠와 레저 활동 의복양식이 있다면 결혼식과 장례식 의복양식이 있습니다. 직장에서도 일의 형태에 따라 다른 복장 양식이 있으며, 레스토랑의 종류에서조차 기대되는 양식이 있습니다. 공예배는 하나님과 성도들의 공식적인 공동 회집 의식이므로 공예배의식의 특성에 부합하는 용모와 의복 양식 교육은 필요한 과제입니다.
물론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은혜와 사랑으로 사람들을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고려할 때, 고비용의 용모단장과 의복구비는 성경적 기준에 맞지 않습니다. 화려한 장신구와 고급 의상에 대하여는 오히려 주의하도록 요구받습니다(벧전 3:3). 공예배를 위해서는 특별한 용모와 의복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으면서도 단정한 차림새가 좋은 준비입니다. 예배의식을 인도하는 목사와 봉사자가 예배의식의 직무수행을 위해 가운을 착용하지만 그 경우도 천주교회나 정교회의 교황과 주교들처럼 화려한 양식이 아니라, 단순하고 절제된 스타일과 색상의 가운을 착용합니다. 예배의식에서 경배 받아야 할 분은 삼위 하나님이시므로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주목받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약 30년 전 유학시절 경험했던 개혁교회 주일예배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일찍 예배당에 왔고, 어린이들도 깨끗한 용모에 단정한 차림으로 조용히 앉아 예배에 집중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용모와 의복의 변화는 교육의 결과를 반영합니다. 동시에 용모와 의복의 변화는 생각과 행동의 변화를 만들어냅니다. 학교 학생에게 용모와 교복 교육은 이러한 교육적 형성을 의도한 것입니다. 학생의 용모와 교복에 대한 규정이 근대국가의 획일적 사고와 집단통제 의도도 있어 오늘날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공예배의식을 위해 통일된 용모와 복장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단지 공예배의식에서 하나님께 존경과 경외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용모와 의복에도 주의를 기울이도록 교육합니다.
넷째, 공예배의식 참여를 위한 사회적 관계 교육이 필요합니다.
공예배는 은혜언약 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공동으로 실행하는 예배의식입니다. 하나님을 ‘하늘에 계시는 우리 아버지’로 부르며, 교회를 성도들을 양육하는 ‘어머니’로 간주하고, 성도들을 서로 영적 ‘형제자매’로 인정하는 영적 가족 공동체가 공동으로 예배의식을 실행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좋은 공예배는 화목한 관계를 전제합니다(마5:23-24).
공예배는 신앙공동체의 교제와 협력을 기초로 실행되므로, 열린 마음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도록 돕는 교육은 공예배를 위한 준비교육의 과제입니다. 교제(코이노니아)는 공예배의 표현이면서, 공예배를 위한 교육의 과제입니다.
공예배를 위한 교육이 사회적 관계를 만들고, 공예배 참여경험은 공동체 의식을 형성하여 사회적 관계를 강화합니다. 긍정적이고 지원적인 사회적 관계는 건강한 자기존중감과 인성을 형성하는 통로입니다. 교회처럼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사회적 역량이 잘 발달합니다. 공예배 참여활동과 준비 교육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회적 발달과 성숙의 기회가 됩니다
3. 찬송과 교육
1) 찬송과 찬송가
예배의 요소인 ‘찬송’(讚頌)은 ‘찬양’(讚揚), ‘찬미’(讚美) 등과 거의 같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말의 사전적 뜻풀이에 따르면 찬송가(讚頌歌)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어 부르는 노래”, “하나님께 감사하고 구세주를 기리는 노래”를 뜻합니다.
찬송은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의식에 참여하여 실행하는 경배와 응답의 표현활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특별한 구원사적 사건에서만 아니라 일상적인 삶에서도 하나님께 찬송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찬송시로만 편집된 시편이 있고, 성경 여러 부분에는 찬송시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시편, 찬송, 신령한 노래가 열거되었고, 요한계시록에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천사들과 장로들과 전체 하나님의 백성이 부르는 우주적 규모의 찬양이 있습니다. 악보가 발명되기 전이어서 곡조를 알 수는 없고 단지 몇 가지 부호표시만 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성전예배가 확립된 후 레위인들의 전문적인 찬양과 악기 연주가 발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외세 침략으로 성전이 훼파되어 공식적인 제사의식 실행이 불가능해지면서 성전의 찬양과 악기 연주 활동은 단절되었습니다. 회당예배에서는 시편에 단순한 곡조를 붙여 인도자와 참여자들이 함께 번갈아 부르는 찬송이 있었습니다. 신약교회도 회당예배처럼 시편에 곡조를 붙여 함께 노래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중세기 성당의 미사에서 성가곡이 만들어졌고, 성가대의 단성창(單聲唱), 교창(交唱)이 발전하였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과정에서 철저한 예배개혁을 시도했던 칼빈의 개혁교회는 성가대 없이 시편과 성경 찬송시에 곡을 붙인 ‘시편송’(Psalm)만 제창(齊唱)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루터는 찬송 작시에 열린 입장을 가져, 시편과 찬송시 외에도, 성경구절을 개작한 시에 곡을 붙여 새로운 찬송가를 만들었습니다. 17~18세기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교회, 영국의 교회에서 성경 구절들을 개작하여 곡을 붙인 ‘찬송가’(Hymn)가 많이 만들어졌습니다. 개신교 교회에서도 예배 찬송에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도입되었습니다.
18~19세기 영국의 감리교 부흥 운동에서 성경 구절 외에도 성도들의 경건한 감정을 표현하는 시에 곡을 붙인 ‘복음송’(Gospel Song)을 만들어 사용하였습니다. 예배참여자의 감동을 목표하고 결단을 호소하는 특성을 가진 복음송이 대중집회에서 확산해, 점차 복음주의 교회 공예배에 유입되었습니다. 오르간 연주에 맞춘 개인 독창과 찬양단 합창도 도입되었습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파격적인 대중음악 형식의 곡과 전자악기를 도입한 ‘현대 기독교 음악’(CCM)이 청년집회에 사용되기 시작하여, 열린 예배라는 이름으로 공예배에 유입되었습니다. 20세기 말부터 21세기에 복음주의 교회의 찬양 집회를 통하여 복음송과 CCM은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오늘날도 개혁교회는 공예배에서 엄격하게 시편송(Psalm)을 고수하고, 시편과 성경 찬송시만 오르간 연주에 맞추어 제창하며, 찬양대를 두지 않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전통적인 장로교회도 공예배에서 시편송과 찬송가(Hymn)를 오르간에 맞추어 제창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장로교회는 영국과 미국 장로교회의 전통, 복음주의 부흥 운동의 영향, 교파 구별 없이 하나의 찬송가를 사용하려는 민족의식도 더해져, 찬송에서는 신학적 특성이 모호합니다. 한국찬송가공회가 교단 대표와 교회음악 전문가들로 구성한 위원회를 통해 찬송가와 복음송을 선별하여 편집한 초교파 찬송가를 출간하고 있고, 우리 총회도 그 찬송가를 인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교회 『헌법』은 찬송가 사용을 상세하게 규정하는 별도의 지침을 제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예배와 집회 구별 없이, 다양한 종류의 찬송가와 독창과 찬양대 특별찬양, 다양한 악기 연주도 제한 없이 수용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찬송에 있어서 예배신학은 느슨한 반면 음악 효과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커져 있습니다.
2) 찬송과 교육
성도들은 찬송 음악의 예술적 특성 때문에 찬송교육 책임이 찬양대 지휘자 혹은 찬양대장에게 있다는 생각을 갖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 ‘헌법’의 ‘교회정치’ 제41조는 ‘찬송을 지도하는 일’이 목사의 직무임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찬송이 예배의 기본 요소이며, 찬송은 예배신학의 의미를 표현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지침’ 제8조에 표현된 ‘찬양대의 찬양’은 찬송의 한 종류로서 공예배의 부가적 요소입니다. ‘찬양대 찬양’ 없이도 공예배는 충분하지만, 찬송 없이 공예배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목사는 찬송의 음악적 표현 능력을 효과적으로 지도하기 위해, 특히 찬양대의 수준 높은 찬양 활동을 위해 지휘자나 성가대장에게 찬송교육 직무의 일부를 위임할 수 있으나, 전체 찬송교육은 목사의 지도 하에 이루어집니다. 찬송은 청중을 초청한 전문적 음악공연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 전체의 경배활동입니다. 그래서 가사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그 내용에 동의하면서, 소리 내어 부르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입니다(‘예배지침’ 제9조). 그리고 집단의 일치된 제창, 잘 조절된 방식으로 표현되는 제창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찬송연습을 해야 합니다. 찬송교육에서 다음 몇 가지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찬송의 의미와 특성을 잘 이해하도록 교육해야 합니다.
찬송가의 가사가 갖는 성경적, 신학적 의미, 공예배 안에서 진행되는 찬송의 순서와 요소의 의도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편, 찬송가, 복음송, CCM을 특성에 유의하여 구별할 수 있는 찬송 관련 지식교육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 초점 맞추어진 공예배의식 찬송은, 시편과 찬송가에 한정하여 선정되는 것이 정당합니다. 찬송을 반복 연습하여 찬송가 책에 의존하지 않고도 부를 수 있게 되면 찬송은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됩니다.
둘째, 공예배를 시작하기 전, 공예배에서 부를 찬송을 미리 연습하는 일은 필요한 예배교육방법입니다.
예배 전에 찬송을 제창함으로써 순화된 경건한 마음 상태를 준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예배시간에 부를 찬송들을 미리 연습하여, 예배시간에 능숙하게, 마음을 표현하여 찬송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일입니다. 찬양대의 찬송연습이 필수적인 것처럼, 예배에 참석하는 모든 성도들의 찬송연습도 필수적인 예배교육 과제입니다. 최근에는 공연문화가 발달하면서 방송과 특별행사를 위한 리허설이 일반적입니다. 공예배의식의 연습도 좋은 방법으로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공예배에서 성도들은 예배공연을 대접받는 청중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배하여 찬송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개혁교회에서 목사는 오후 예배시간 전에 종종 찬송교육을 하면서 찬송을 지도합니다.
셋째, 찬송은 경건한 마음을 형성하고 구원교리를 내면화하며 성경의 가르침을 기억하기 쉽게 만드는 교육방법도 됩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음악의 교육적 효과를 이해하였으므로 찬송을 기독교교육에 적극적으로 도입하였습니다. 주일학교와 더불어 공예배를 제외한 집회는 교육의 목적도 갖는 모임이므로 시편, 찬송가, 복음송, 잘 선별된 CCM도 가르칠 수 있습니다. 주일학교와 여름과 겨울성경학교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찬송을 가르치는 활동은 기독교 종교교육에서 효과 있는 교육방법입니다. 목사와 교사, 그리고 지휘자와 성가대장은 모두 교회의 찬송교육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4. 기도와 교육
1) 예배와 기도
기도(祈禱)의 우리말 사전 의미는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빎”을 뜻합니다. 기도는 거의 모든 종교에서 발견되는 인간의 보편적 종교 행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참지식은 필연적으로 그 지식에 부응하는 기도 내용과 형식과 방법을 요구하므로, 개신교의 기도는 다른 종교의 기도와 구별됩니다. 특히 공예배 의식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의 믿음과 간절함과 같은 내면적 태도와 더불어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형식과 내용 그리고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도는 공예배 안에서 여러 차례 실행되는 예배 요소입니다.
교회 『헌법』의 「예배지침」을 보면, 공예배 의식 안에는
(1) 예배시간 전의 준비기도
(2) 회개기도
(3) 대표기도
(4) 설교 후 기도
(5) 주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공예배 외의 모든 정기적인 집회를 기도회라 칭하고, 기도회에 수요기도회, 새벽기도회, 구역기도회, 가정기도회, 철야(심야) 기도회 등을 열거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개인과 가족이 사적으로 기도하는 일은 성도의 마땅한 의무라고 설명합니다.
공예배의 대표기도와 주기도는 기도의 주요 내용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공예배 대표기도의 주요 내용은
(1) 하나님의 영광
(2) 감사
(3) 자복
(4) 간구
(5) 다른 사람과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 총회의 「예배지침」에는 주기도 외에 다른 모범기도문이 없습니다. 우리의 경우 모범기도문이 제안되어 있지 않은 것은 아마도 기도를 개인의 일로 그리고 기도 중 성령의 자유로운 인도 가능성에 개방적이어야 한다는, 기도하는 사람 개인 내면의 영적 조건과 태도를 강조한 결과로 보입니다.
그러나 개혁교회 「예배지침」에는 예배형식서와 함께, 모범기도문이 제안되어 있습니다. 주기도가 모범기도문인 것처럼, 여러 경우에 맞춘 모범기도문이 있습니다. 죄의 고백과 설교 전 기도문, 성도의 필요를 위한 기도문, 축복을 위한 기도문, 설교 후 기도문, 교리교육 전 기도문, 교리교육 후 기도문, 식사 전 기도문, 식사 후 기도문, 환자와 시험받는 자를 위한 기도문, 아침 기도문, 저녁 기도문, 교회회의 시작 기도문, 교회회의 마침 기도문, 집사회의 기도문이 실려 있습니다. 이처럼 모범기도문을 제시한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내용과 방법에 맞게 기도해야 한다는 교육적 목적과 기도의 공적 특성을 강조한 결과로 보입니다.
2) 기도와 교육
개인의 인격적인 내면 특성과 성령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영적 특성을 고려할 때, 기도는 교육과 분명하게 구별됩니다. 그러나 다른 관점에서 보면, 기도는 교육의 결과를 반영한 응답 행위이고, 기도가 경건한 사람을 형성하는 교육적 기능을 발휘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가르치는 교육, 기도를 위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기도와 교육의 관계에 있어, 다음 몇 가지 구체적인 문제를 명료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의도적인 교육 행위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가르치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높은 분을 가르친다는 것은 경우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행위도 아닙니다. 우리는 기도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생각과 의도, 우리가 바라는 바를 진솔하고 간절하게 표현하고 호소할 뿐입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방법도 아닙니다. 기도를 듣고 있는 사람들을 교육하려는 목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께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대표기도 하는 사람은 기도를 통해 다른 성도들을 가르치려고 성경 구절들을 선포하거나 설교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가르치려 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를 드러내려는 행동은 예수님의 질책을 들었던 외식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기도 모습이었습니다(마 6:5).
기도는 성전과 예배의식과 골방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점에서 하나님께만 향하여 진솔하고 간절하게, 감사와 회개와 간청내용을 표현하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선한 의도라고 해도 일절 교육적 의도와 같은 다른 의도가 개입되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기도는 교육의 결과를 반영합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뜻에 대한 이해는 응답받는 기도의 필수적인 전제조건입니다. 누구인지 모르는 대상에게 무작위로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모르는 주문 같은 중언부언으로 발설하는 것은 개신교의 기도, 특히 예배의식에서 할 수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마 6:7). 공예배에서는 방언 기도도 부적합 합니다(고전 14:23).
기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아는 사람이, 자신의 말로 하나님께 응답하는 소통방법입니다. 말씀을 듣는 것이 수동적인 수납이라면 기도는 적극적인 동의와 응답의 표현입니다. 마치 배워 알고 있는 것을 기초로, 자신의 말과 글로 자세하게 표현하여 응답하는 활동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와 뜻과 일에 의거하여 감사의 내용을 열거하고, 회개해야 할 문제들을 깊이 검토하고, 간구해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명료화하는 기도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기도준비 과정은 교육활동입니다.
기도를 가르치려고 예수님은 모범기도문을 주셨습니다. 개혁교회는 여러 경우에 적합한 모범 기도문들을 더 만들어 활용하게 하였습니다. 언어가 발달하면서 어린이가 자기의 생각과 요구를 더 적절한 단어로 표현하고, 여러 경우에 적합한 단어로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모범기도문 학습은 기도의 다양한 주제, 내용, 표현을 배우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 「예배지침」에는 모범기도문이 없지만 직접 기도문을 작성하는 방법으로 기도를 준비하는 일, 집단에서 공동기도문을 작성해보는 일 등은 좋은 기도 교육 방법입니다. 공예배의 기도 담당자는 미리 기도문을 작성한 후 그 기도문을 기초로 기도하거나, 그 기도문을 읽는 방법으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기도의 교육은 기도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고, 직접 기도해 보는 경험, 기도회에서 다른 사람의 기도를 듣고 동의를 표현하는 경험들을 통하여 점점 더 익숙해집니다. 그래서 공예배 외에도 여러 종류의 기도회에 참여하도록 권하고 있습니다.
셋째,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교육하시는 방법입니다.
기도는 한편 주체인 우리의 교육적 행동이 될 수는 없지만 다른 주체인 하나님의 교육적 행동은 됩니다. 삼위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특권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와 말씀(지적, 요구, 뜻)에 대하여 ‘아멘’이라고 동의를 표현하게 하심으로써, 성도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추구하며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기도를 응답하시고, 기도에서 성령님의 도움을 경험하게 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누리고, 하나님 말씀의 진리 됨과 능력 있음을 인정하는 참된 신앙, 성숙한 신앙에 이르게 하십니다.
기도 행동과 기도 응답 과정에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은 깊어져 개인화되고,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에게 살아있는 지식이 되며,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람이 됩니다. 기도를 통해 마음이 반응하고, 몸이 실천으로 나아갑니다. 이렇게 볼 때 무의식중에 기도는 우리를 교육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교육적 의도에서, 은혜의 방편으로 기도방법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교육에서는 하나님의 교육이 잘 이루어지도록 준비하고 보조하는 기도 교육이 실행되어야 합니다.
5. 설교와 교육
1) 예배와 설교
설교(說敎)의 우리말 사전의 뜻은 “종교 교리를 설명함”이고, 영어사전은 “목사가 교회에서 하는 종교적 연설”로 풀이합니다. 우리말에서 ‘설교’라는 표현은 실제로는 목사의 가르치는 활동을 지칭하므로, 그 종교는 개신교를 뜻합니다.
개신교 신학에서 설교(sermon, homily)는 좁은 의미에서
(1) 복음의 선포와
(2)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 적용과 권면에 제한됩니다.
그래서 설교를 하나님 말씀의 ‘강론’(講論)이라고 말합니다.
개신교 예배에서 설교는 공예배의 기본 요소입니다. 하나님을 대리하여 말씀을 낭독하는 ‘성경봉독’(奉讀, 삼가 받들어 읽음)에 이어, 설교는 그 성경 본문의 의미를 해석하고 강론하는 것으로, 하나님 말씀의 엄숙한 선포요, 권위 있는 교육활동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설교는 설교자의 자격을 공적으로 인정받은 목사와 강도사가 할 수 있습니다(「교회정치」 41,89조).
설교자는 성경을 정당하게 그리고 전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개혁신학 교육, 교리표준의 동의, 인격과 행위의 모범을 공적으로 검정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매번 설교를 위해, 항상 기도와 연구로 잘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설교에서 진리를 명료하고 쉽게 전달함으로써 생명을 구하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예배지침」 16,18조).
성도들은 예배에서 설교에 “하나님을 순종함으로, 총명과 믿음과 공경으로, 말씀을 신실하게 경청”하도록 요구받습니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1(5)). 설교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구속의 은덕을 전달하시는 외적 방편이므로, 성도들은 “부지런함과, 준비와, 기도로, 말씀에 주목해야 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받아야 하며, 그 말씀을 우리 마음에 두고, 우리의 삶에서 실천하여야 합니다.”(「웨스트민스터소교리문답서」 90).
2) 설교와 교육
한때 설교의 특별한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 설교와 교육을 엄밀하게 구별하려던 신약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도적 설교는 불신자를 향한 복음의 선지자적 선포를 뜻했고, 교육은 성도와 그 자녀들을 위한 교리와 도덕의 가르침이었다고 구별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다른 신학자들의 동의를 얻기 어려웠습니다. 그 이유는 복음서의 많은 부분에서 ‘선포하다’와 ‘가르치다’는 말은 엄밀하게 구별되기보다 교호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에 따라 선호하는 표현도 있습니다. 동일한 지상명령을 마태복음은 ‘가르치라’로, 그리고 마가복음은 ‘선포하라’(전파하라)로 표현하였습니다. 선포와 가르침의 대상도 엄밀하게 특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설교와 교육은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루는 두 가지의 방식이라 말합니다.
오늘날의 설교는 새로운 계시를 받아 선포하는 사도와 선지자 활동이 아니라, 이미 받아 완성된 성경말씀을 알리고 해설하는 활동이어서, 개신교 종교개혁자들이 이해한 바와 같이, 교사로서의 목사의 강론입니다. 물론 교사로서의 목사가 설교하지만
(1) 설교가 공예배의식의 기본 요소라는 점
(2) 하나님이 말씀과 성례에서 성령으로 성도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점
(3)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권위를 가진다는 점
(4) 목사(교사)와 성도(학생)의 상호소통이기보다 하나님으로부터의 권위 있는 일방소통이라는 점에서
설교는 교육의 지위를 넘어 ‘선포’의 무게가 실려 있다고 봅니다. 이에 비추어 편의상 공예배 설교는 선포의 형식에 가깝다면 집회 설교는 교육의 형식에 가깝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설교와 더불어 엄밀하게 구별되어야 하는 것은, 설교와 교육의 구별보다, 선포/교육 주체의 구별, 곧 ‘하나님’의 선포/교육과 ‘사람’의 선포/교육의 구별입니다. 설교는 명확하게 ‘하나님의 선포/교육’이고, 설교자는 그 활동의 수종자입니다. 그래서 설교시간은 예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시간이어야 하고, 설교 내용은 설교자의 주관적 사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설교에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대신, 설교자가 많이 부각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3) 설교교육
설교는 하나님의 교육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은 설교를 통해 회개와 구원과 확신과 위로 등의 은혜를 주시면서 성도들을 변화시키고, 견고하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따라서 설교에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교육하시고, 하나님의 교육이 성도들에게 효과를 발휘하도록 준비하는 설교교육이 필요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소교리문답서의 요구 사항들은 효과적인 설교교육의 통찰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교육학의 효과적인 수업모형에 맞추어 다음 몇 가지 단계로 재배열해봅니다.
(1) 예배시간 전, 성경본문을 찾아 읽고, 설교의 배경과 사건전개, 주요 단어를 숙지해 둡니다. 성경본문에 표현된 명백한 교훈을 확인해 둡니다. (2) 예배시간에는, 설교를 통하여 자신과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교육이, 성령님의 도움으로, 잘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3)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공경의 마음으로 설교를 경청합니다.
(4) 설교에 집중하여 설교의 논지, 주요 개념의 신학적 의미, 강조점과 결론을 이해합니다.
(5) 설교 후 기도에서, 순종을 결심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6) 예배 후에, 설교내용에 대하여 성도들과, 혹은 부모와 교사들과 대화를 나눕니다. 이해되지 않은 부분은 목회자와 대화합니다.
(7) 주 중에, 설교를 통해 확인한 하나님의 요구를 마음에 두고 생활에서 실천합니다.
효과적인 수업 모형들은 일반적으로
(1) 학습자의 준비
(2) 새로운 학습내용의 이해와 재구성, 전인적인 학습경험
(3) 대화를 통한 의미 확장
(4) 적용과 실천을 통한 확립으로 나아갑니다.
설교교육을 위한 구체적 요구들은 이러한 교육학적 원리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주일 공예배의 설교본문, 주일학교 성경교육, 새벽기도 (혹은 「복 있는 사람」) 성경본문도 모두 일치시켜, 주일에는 교회공동체가 한 본문을 배우고, 생각하고, 대화하고, 또 가정에서도 자녀를 교육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묵상과 반성이 필요한 종교교육의 특성과 교육의 효과를 고려할 때 괜찮은 방법일 수 있다고 봅니다. 개혁교회는 설교 이해와 적용을 격려하기 위해 설교에 대한 대화를 지속적으로 권고해 왔습니다.
21세기는 정보의 홍수시대여서 스마트폰으로 매일 엄청난 수량의 지식을 접하다 보니 지식의 비중은 가벼워지고, 용도에 따라 일회용화 되고, 선택으로 가치가 결정되고 있습니다. 미디어 기술의 발달로 교회 혹은 개인도 방송할 수 있어 수많은 설교가 공개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정보와 교육과 설교가 동일한 매체를 통해 제공되면서 매체의 규범에 맞추어 설교도 가벼워지고, 가치도 상대화되고, 시청자가 선택 가능한 것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공예배의식에서 선포되고, 설교를 통해 해설되어 선포/교육되는 형식으로 확립된 것은 하나님의 교육의 실제성, 하나님 말씀의 권위, 성령을 통한 구원과 생명 역사의 효력, 전인적인 결단과 순종의 요구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을 고려할 때, 설교는 다른 교육방식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설교만 분절하여 영상으로 제공하는 것은 교육자료일 뿐입니다. 그리고 방송 예배 설교는 불가피한 보완수단일 뿐이며, 대체 방법일 수 없습니다.
6. 헌금과 교육
1) 예배와 헌금
옛 언약(구약)시대 예배의식은 제사 방법으로 실행되어 봉헌물이 필수적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대속과 헌신의 봉헌물로는 가축을, 추수 감사의 봉헌물로는 농산물을 드렸습니다. 제물 제사는 아담으로부터 실행되어 아벨과 가인, 노아, 아브라함으로 이어진 예배 방법이었습니다. 출애굽 이후에는 율법으로 5가지 제사 방법(속죄제, 속건제, 번제, 화목제, 소제)이 확립되었고, 성일과 절기 집회, 그리고 특별한 역사적 사건(법궤 이동과 성전봉헌 등)을 기념하는 집회 때도 제사를 드렸습니다. 구약시대 제사의 주된 의미는 대속(헌신)과 감사(화목과 감사)의 표현입니다. 봉헌물은 하나님의 속죄와 은혜의 대가 지불이 아니라 은혜의 수혜 방법과 감사 표현이었습니다.
새 언약의 대속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속죄와 화목 제물이 되어 모든 대가를 지불하셨으므로, 옛 언약에 따른 제물 제사는 종결되었습니다. 새 언약에서는 오직 감사와 헌신의 표현으로서 헌금을 봉헌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대속과 돌봄 은혜에 대한 감사와 하나님을 섬기는 헌신의 표현은 하나님의 백성의 항구적인 예배 방법입니다. 우리가 소득으로 얻은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왔다는 것을 인정하는 십일조와 감사헌금이 감사의 표현이라면 구제와 복음 사역을 위한 헌금은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헌신의 표현입니다.
성경의 원리에 따라 고신교회는 헌금의 종류로 십일조, 감사헌금, 주일헌금, 특별헌금을 지정해 두고 있습니다(「예배지침」 14조). 십일조와 주일헌금은 세례받은 성도의 당연한 의무로 간주됩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여 실행하는 감사와 자발적 헌신의 표현이어서 자유로운 헌납이 원칙입니다.
수집되는 헌금은 교회 공동의회와 제직회의 공적 결의를 거쳐,
(1) 공예배와 집회 실행
(2) 목회자 생활지원
(3) 교회당 시설유지
(4) 교회 주요 사역 (복음전파, 교육, 교제, 봉사)
(5) 노회와 총회 사역 등을 위해 사용됩니다.
헌금은 예배 요소로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므로, 회원이 사용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단체회비나 세금과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하나님의 일의 공동참여자이므로 교회의 공적 회의에서 자신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해 헌금 사용 문제 결의에 참여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와 다양한 사역을 통해 성도들은 목회적 돌봄을 받습니다.
2) 헌금교육
헌금의 신학적 의미, 헌금의 종류, 헌금을 준비하여 드리는 방법, 교회 헌금관리와 재정집행 이해 등에 대한 헌금교육은 교회교육의 주요한 내용입니다. 헌금교육은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영적인 일과 돈을 결부시키는 것 자체를 영적인 일을 속화시키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헌금의 신학적 의미를 알아야 헌금으로 신앙 행위를 할 수 있습니다. 헌금의 의무와 권면을 짐으로 여기지 않고, 감사와 헌신의 표현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헌금교육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교회 헌금제도와 재정 사용에 대한 오해가 발생합니다.
기독교교육학의 맥락에서 볼 때 헌금은 교육적 기능을 발휘합니다. 헌금의 교육 기능을 염두에 두고, ‘헌금을 위한 교육’과 구별하여 ‘헌금의 교육’이라는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헌금의 행동으로 우리의 마음 교육, 생활의 실천 교육, 책임성 교육을 실행합니다. ‘헌금을 위한 교육’과 ‘헌금의 교육’을 고려하면서 다음 몇 가지를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헌금의 신학적 의미를 가르치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헌금에서 돈은 일차적으로 자신이 노동으로 수고하여 얻은 소득이지만 신학적 의미는 소득의 원천과 배경과 과정을 성찰하게 하여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원천적으로는 우리 존재의 기반에서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아 누리고 있으면서도 대가를 지불할 수 없고 갚을 수도 없는 큰 은혜의 구원과 축복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신학적 의미의 교육은 헌금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은혜에 감사하며 섬기는 헌신의 사람이 되게 합니다. 예배에서 헌금은 하나님 은혜에 대한 응답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이 헌금을 제도화하여 응답을 요구하신 이유는 헌금이 하나님의 교육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헌금으로 우리의 마음과 삶을 교육합니다. 헌금으로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감사와 신뢰감 그리고 헌신은 더 깊어집니다.
둘째, 헌금의 종류와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헌금 종류에 대하여는 헌금교육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예배지침」에 따라 단순화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땅한 의무로 규정된 십일조와 주일헌금을 제외하고는 필요와 목적에 따른 감사헌금과 기타헌금을 한시적으로 그리고 자유로운 헌납으로 드리도록 단순화하는 것이 적합합니다. 헌금의 정도와 수준에 대한 교육에서는 성경원리에 따라 개인의 소득 수준, 믿음의 수준을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헌금의 서툰 강요로 은혜와 믿음으로 얻는 구원을 대가 지불 요구로 왜곡하거나 헌금을 축복을 받아내는 방법으로 이해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헌금이 언제나 감사와 헌신의 표현이 되어야 하나님께 수납되는 참된 헌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셋째, 기독교가정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헌금교육을 시작해야 합니다.
자녀의 자의식에 따른 결단 이전부터, 가족과 친족공동체의 예배와 종교활동으로 종교적 습관과 삶의 스타일은 형성됩니다. 헌금을 준비하는 좋은 습관도 이처럼 형성될 수 있습니다. 자녀를 위한 헌금교육에서 신학적 의미를 설명하고 부모의 헌금생활을 이야기해 주는 것은 좋은 교육방법입니다.
넷째, 불신가정의 개종자를 위해서는 학습교육과 세례교육에서 예배지침 내용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헌금의 신학적 의미를 이해해야 헌금의 정당성에 동의하고 헌금생활을 실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개종자의 초기신앙 수준과 어려운 경제 형편을 우려하여 헌금교육을 제외하는 것은 인간적인 판단입니다. 동정적으로 선교한 해외 선교지 교회들이 오랜 선교역사에도 불구하고 자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처음부터 헌금을 가르친 한국교회는 어려운 시기에도 자립하는 교회로 확립되었습니다. 헌금을 통해 성도들은 교회의 책임 있는 성도가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향한 감사와 헌신의 표현인 헌금은, 개종자들에게도 축복의 통로입니다.
다섯째, 헌금 관리와 교회 재정 운영에 대한 기초적 이해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헌금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므로 교회는 처음부터 헌금관리에 철저하였고, 종교개혁 이후 교회재정 운영은 더 투명해졌습니다. 교회에는 헌금을 관리하는 별도의 직분과 결제 및 감사의 관리시스템이 있고, 공동의회와 제직회의 결의에 따라 공적으로 집행됩니다. 교회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헌금과 교회재산이 목사의 소유로 혹은 목사와 장로가 임의로 재정을 집행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헌금교육은 이러한 오해불식과 더불어 건강한 교회가 되게 합니다. 성도들이 재정이 집행되는 교회사역을 알고 기도하고 책임 있게 참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재정 집행에서 기준은, 성경적 원리, 삼위 하나님의 주권, 성령님의 인도, 교회의 고유한 본질과 사역 일치에 있으므로 국가나 기업의 재정관리 및 회계방식과 차이가 있습니다.
7. 성례와 교육
1) 예배와 성례
성례식은 주일 공예배의 기본 요소입니다. 성례는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은혜언약의 표(標)와 인(印)입니다. 성례의 핵심 의미는 성례전적 연합이 표상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말씀에 따라 집행되는 성례에 성령의 역사가 있어, 성례는 구속의 은덕(恩德)을 전달하는 효력 있는 방편(方便)이 됩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7장; 「소교리문답서」 88, 91).
성례의 종류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세례는 영적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져 은혜 언약의 은덕에 참여하는 것을, 외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약속함으로써 유형 교회에 공식적으로 가입된 것을 의미합니다. 은혜언약의 약속에 기초하여 그리스도인 부모의 유아도 세례를 받습니다.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표상하는 희생의 은덕에 참여하는 교제의 띠와 보증입니다. 성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고, 영적 양식으로 은혜 안에서 성장하며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성례는 말씀과 기도와 나란히 은혜의 효력 있는 외적 방편입니다. 성례는 엄숙한 의식으로 실행된다는 점에서 공예배의식의 전형적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미사가 일상적인 예배요소인 것과 달리 우리 「예배지침」은 성례 집행 횟수를 당회가 결정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주일 공예배가 의식으로서의 예배이고, 성례는 은혜의 좋은 방편이므로 예배신학에서는 성례 집행을 더 자주 실행할 것을 권합니다.
2) 성례 교육
세례는 그리스도인의 종교적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식입니다. 개인 인생의 주요한 통과의례여서 가족과 공동체가 참여한 공예배 의식 안에서 실행됩니다. 성찬은 언약 백성의 예배적 공동식사의식여서 영적 준비를 하도록 장로의 심방과 권면이 있습니다. 고대교회는 세례준비를 위해 교리교육과정을 만들었습니다. 개혁교회는 성찬 참여를 위해 교리 이해와 실천의 생활을 점검하였습니다. 18세기에 주일학교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성례를 위한 교리교육이 교회의 정통 교육과정이었습니다.
(1) 성례를 위한 교육
세례를 위해서는 은혜 언약의 신학적 의미와 공적 신앙고백 내용의 이해, 자발적인 신앙고백과 헌신, 삶의 변화 조건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세례준비 교육은 이방인 개종자, 유아세례를 원하는 부모, 그리고 유아세례를 받은 후 입교를 원하는 청소년들에게 필수적인 교육과정이 되었습니다. 세례준비 교육과정은 카테케시스(교리교육과정)로 칭해졌습니다.
고대교회에서 2~3년간 진행되는 교리교육과정은 3가지 수준의 반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공예배에 초대받아 참여하는 초신자 반이었고, 두 번째는 기도회에도 참여하는 사람들의 반이었고, 세 번째는 부활절에 세례받기 위해 기초교리를 학습하고, 금식으로 기도하고, 생활의 변화를 점검받는 사람들의 반이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교리교육을 위해 여러 종류의 교과서들을 만들었습니다.
2세기부터 5세기까지 고대교회에서 교리교육이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국교화된 이후 중세기동안은 많이 소홀하였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은 교리교육의 부흥기였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유아세례와 입교를 위한 교육과 참 교리 이해를 돕기 위한 일반적 목적으로 교회의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카테키즘)를 만들어 성례 준비 기간과 주일 오후에 가르쳤고 기독교 학교와 가정에서도 반복하여 가르쳤습니다. 당시에는 교리교육이 교회교육을 의미했습니다.
장로교회는 교회의 역사적 전통에 따라 성례 준비의 교리교육과정에 두 단계, 곧 (1) 학습과 (2) 세례/입교 교육을 나누었고, 심사 제도에 따라 교육결과를 심사한 후 공적 문답의 서약을 거쳐 공예배에서 성례를 실행하게 했습니다. 우리 「예배지침」은 ‘제5장 성례’에서 세례(유아세례)와 성찬을, 그리고 ‘제6장 신앙고백’에서 학습교인과 입교교인의 서약 내용을 제시합니다.
주일학교는 개혁교회와 장로교회 전통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근대 영국의 계몽운동과 부흥 운동에서 발생하여 확산하였고, 이후 장로교회에도 수용된 교회학교 제도입니다. 주일학교는 성경공부와 경건 생활에 초점 맞춘 교회교육과정입니다. 주일학교는 일반성도인 교사가 참여하는 학교교육형식이어서 장점도 많으나, 전통적인 교리교육을 대체하여 성례 교육을 약화한 약점이 있습니다. 그 결과 장로교회 『헌법』의 의도와 달리, 성례교육은 간소한 형식이 되었고, 교육내용은 교회마다 다르며, 교리교육 전통의 이해 부족에서 교단에 따라 학습제도가 무력화되기도 했습니다.
세례를 위한 필수조건이 은혜 언약과 교리표준 이해, 헌신의 결단과 삶의 변화라면, 학습 교육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서」를, 그리고 세례와 입교 교육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가르치는 것이 적절합니다. 개혁교회는 신앙고백서와 교리문답서를 쉽게 볼 수 있도록 시편송(찬송가)에 첨부하여 출간하고 있습니다. 이에 총회 교육원이 교리교육의 필요에 부응하여 작은 성경책 크기의 하드 카바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성례 교육 교과서로 출간하고 있습니다. 성례교육을 위해 개작한 다른 소책자들은 부가적 자료일 수 있을 뿐이며, 교회의 공적 교리교육서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2) 성례의 교육
성례는 예배에서 하나님이 교육하시는 방법입니다. 신앙 교육의 목표는 지식교육보다 더 깊은 마음의 교육을 지향합니다. 마음의 변화와 형성은 삼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인간 교사의 교리 지식교육은 마음의 변화와 성화에서 보조적인 활동일 뿐입니다. 말씀에 따라 집행되는 성례에서 성령님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와의 연합의 신비를 마음의 수준에서 알게 하시고, 새로운 사람의 정체성을 확립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마음의 형성과 변화 교육은 지식과 지성 교육 수준보다 깊어 종교적 의식을 동반합니다. 원시적인 공동체에서도 성인식을 준비하면서 공식적 교육이 생겼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식 교육과정은 자신의 종족 역사와 세계 이해의 학습, 수행시험과 종교적 제의 및 축제로 구성된 문화화 교육입니다. 오늘날도 이단 집단에서 혹은 통치자를 절대화하는 전체주의국가에서 이를 흉내 내어 종교의식과 다름없는 문화화 교육 방법을 활용합니다. 기독교교육이론에서도 신앙공동체의 종교의식과 삶에 직접 참여하여 경험하는 문화화 교육이 신앙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확립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모델이 있습니다.
성례식은 종교 문화화 교육 방법과 유사하기는 해도 이러한 것들과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성례는 하나님이 직접 제정하신 방법이고, 삼위 하나님이 직접 교육하시는, 신비한 영적 교육 방법입니다. 따라서 성례가 하나님이 교육하시는 기회가 되도록 잘 준비하는 것이 교회의 예배교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비추어 언약신학과 예배신학의 기초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육을 위해서도 성례식이 실행되는 공예배에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조성국 교수(고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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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알림-카페지기가 급한 사정이 있습니다
L.H 임대주택이 2년만기 재개약이 도래되어
보증금이 백만원가량 인상됩니다 또한 6월초에
인슐린과(하루6번주사) 당뇨합병증약값으로 몇십만원이
들어가고 통신비를 비롯해서 공과금으로 30만원이 듭니다
투병중에 대부분 시간을 누워서만 지내다보니
전혀 목돈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도와주시는 분이
계시도록 기도해주시고 작은 성금으로 도와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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