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학 칼럼 이 시대의 성자 넬슨 만델라를 기억하며
남아프리카 공화국 제 8대 흑인 대통령, 아프리카의 아버지, 에파르트헤이트(Apartheid) 정책에 저항하여 평생을 바친 지도자, 백인들의 잔혹한 투옥과 살인과 압제의 차별정책을 용서와 화해의 기독교정신으로 극복해 낸 흑인 인권운동가, 21세기의 성자 넬슨 만델라, 그에게 1993년 12월 10일 노벨 평화상이 주어졌다.
노벨상을 수상한다는 것이 일생일대의 얼마나 영광이고 자랑스럽고 일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노벨상 중에서도 노벨평화상은 노벨상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만델라가 그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틀림없다.
노벨상은 각 방면에서 혁혁한 업적과 공로가 공인받은 인물에게 주어지는 것이지만 그중에 평화상을 수상자가 많지 않다. 그 평화상이 아프리카의 흑인 인권지도자 만델라에게 주어졌다는 점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그러나 노벨 평화상이 만델라에게 영광을 준 안겨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만델라라는 위대한 인물에게 노벨 평화상이 주어짐으로 노벨상의 가치가 한층 높아졌다는 점이다. 그것은 만델라의 경이로운 관용의 인격 앞에 드려진 인류의 최소한의 예의이며 존경의 표현이라 해야 한다.』라고 “큰 느티나무 같은 인물이 그립다.” 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군사력이나 경제력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보다 그리스도를 닮은 만델라와 같은 관용과 용서의 인격의 영향력이 훨씬 더 크고 고귀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백인들의 인종차별정책에 저항하며 투쟁하다가 1964년 6월 11일 종신형을 받고 로벤 아일랜드(Robben Island) 작은 감방에서 1990년 2월 11일까지 27년이란 길고 긴 수감생활을 견뎌냈다. 그는 그 긴 세월을 지나면서 백인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그리스도의 신앙으로 삼켜버리고 용서와 관용의 인격으로 승화했다. 분노와 보복보다 화해와 용서와 관용이 훨씬 더 크고 고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코사어를 사용하는 템부족 추장아들로 태어난 작은 체구의 그가 이처럼 인류의 꽃과 같은 아름다운 인격으로 성화된 것은 기도와 성경을 기초한 신앙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기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라도 이와 같은 인격으로 승화(昇華)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꿈꿔야 한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갈증을 느끼면 누구나 물을 마셔야 하고 허기가 느껴지면 누구나 음식을 요구하는 것처럼 어느 누구라도 동등한 추한 죄인임을 인지해야 한다. 어느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내리는 보배로운 속죄의 피에 적셔지지 않는다면 그는 전능자 앞에 설 수도 없고 고개를 들 수 없다.
그 누구라도 그리스도 앞에 엎드려 그분을 영접하고 속죄의 은총을 수용하는 신비로운 중생의 경험이 있을 때 비로소 죄사함 받아 자유함을 얻고 그분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거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넬슨 만델라옹이 온 인류가 존경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된 것 같이 우리들 누구라도 스스로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만델라처럼 변화되어 그리스도를 닮아 갈 수 있다. 예수께서『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요한복음 14장 12절)하신 말씀처럼 우리들 누구나 그리스도 분량만큼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떤 일을 하든지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신앙인격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두자.
온 인류에게 드러난 영광스러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만델라처럼 유명해 지지는 않더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더라도 상관없다. 오직 하나님의 가치평가 앞에서 그분이 기뻐할만한 성숙하게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우리 모두 되어야 한다.
“너는 내 기쁨이요 내 면류관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너를 자랑스러워하노라”
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는 동역자들이 많아 졌으면 좋겠다.
2013년 7월 25일 칼럼리스트 박승학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