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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4.시편-14 역경에 올린 다윗의 기도시(시편 56편 1-3절)
성경 말씀은 시편 제 56편 1절에서 3절까지 봉독합니다.
[시편 56편]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지금 우리가 함께 살펴보는 시편은 다윗이 일생 살고 사역하는 중에 가장 어려운 날들에 기록된 시편들입니다.
지금 56편 같은 경우에는 제일 처음으로 망명길 들어서서 블레셋 땅 가드에서 까닥하면 거기에서 체포되어서 나오지 못할 뻔 했던 그런 때에 남긴 시죠.
그런데 그것이 전부 대개 기도로, 시는 시인데 기도시로 이렇게 분류할 수 있겠습니다.
[시편 56편]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요낫 엘렘 르호김에 맞춘 노래, 다윗이 가드에서 블레셋인에게 잡힌 때에>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여러분 다윗의 시가 70여편 된다고 자주 말씀드려왔는데, 그 중에 밝고 명랑한 시는 거의 없고, 대개 이렇게 암울한 그런 시가 대부분이죠.
오늘도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겠다 하고 마음이죠. 다윗의 심정이..
.. 사람이 나를 삼키려고 종일 치며 압제하나이다
2 나의 원수가 종일 나를 삼키려 하며 나를 교만히 치는 자 많사오니
여러분 아시는 대로 다윗이 얼마나 성실하고 정직하고,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할 정도로 하나님도 다윗을 그렇게 인정하는데도 불구하고 고난이 많다는 거예요.
고난이 많고 원수가 많다는 얘기를 합니다.
내 원수가 이렇게 많습니까?
이렇게 다윗이 절규하는 데가 꽤 여러 군데 있어요. 나중에는 다윗이 엉겁결에 이르기를 ‘천하 모든 사람이 다 거짓말쟁이 입니다.’ 이런 말을 해요.
그래서 다윗이 언제 거짓말쟁이를 많이 만났는지 이런 생각이 드는데, 다윗이 어려움과 환난을 겪을 때 보면 역시 다윗 곁에 사람들이 별로 많이 남아있지 않았어요.
세상에 압살롬의 난, 조금 있으면 나오겠습니다만, 압살롬의 난에 거기에 어떻게 가담합니까?
아들놈이 아버지에게 칼을 들고 덤비는데 거기 가담할 정도라면 수에 칠 가치가 없는 사람 아니겠어요?
그래서 다윗이 놀라고 많이 놀라는 거죠.
거기 성경 한구절 찾아봅시다.
지나 온 구절인데, 시편 25편 19절 봅시다. 다윗이 자기 원수가 많다는 얘기를 해요.
25편 19절,
[시편 25편]
19 내 원수를 보소서 저희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함이니이다
그러니까 다윗같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정치를 하는데도 다윗의 원수가 많고 나를 심히 미워하고 있다.
한군데 더 보시면, 앞으로 우리가 공부할 부분인데, 69편 4절에 보면, 역시 이것도 다윗의 시인데,
[시편 69편]
4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머리털이 몇개인지 모르죠? 대머리는 몇개 안돼.
대머리 되는 사람이 머리카락이 두개 남았었는데, 어느 날 한개 빠진거야. 하루아침에 머리 절반이 날아갔어요.
그랬더니 마침내 나머지 한개도 빠지니까 내가 대머리가 되었잖아. 그러더래요..
그런데 대체로 대머리 말고 일반사람들은 머리카락이 8만개 내지 10만개 된다고 합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는데, 물론 꼭 원수가 80만명 10만명 되는 것은 아니지만, 많다는 말을 한거죠.
4 무고히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내 머리털보다 많고 무리히 내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취치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어떻든 아무 연고없이 무고하게 다윗을 미워하는 사람이 머리털보다 많다는 거야.
우리 성도들은 그렇지는 않죠?
더러 어려움이 있지만 우리를 미워하는 자가 우리 머리털보다 많고 그렇지는 않잖아요.
그러면 감사해야 돼요.
한두 사람이 여러분을 미워한다고 밥도 안 먹고 그러면 안 됩니다.
다윗을 보세요.
그렇게 정치를 성실하게 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가 이렇게 많아도 내가 누워서 잠도 자고 깨었으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이로다.
잠 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믿는 거예요.
우리는 잠 잘 잤잖아요.
어젯밤에 누웠고 잠도 잤고 아침에 깨어났으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 증거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는 증거를 굉장한데서 찾을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젯밤에 내가 누웠는데 잠을 잤다는 거예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다는 거예요.
잠을 잔 것은 좋은데 안 일어나면 큰일나죠?
그래서 누웠는데 잠이 안온다든지 잠을 잤는데 못 일어나는 것은 죽은 거죠.
그런데 어젯밤에 누웠고 잠도 잤고 아침에 깨었으니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다.
여러분 다윗의 마음이 이렇게 가난하고, 굉장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이 아비에게 칼을 들고 덤비는 가운데서도 누웠고 잠도 잤고 깨어났으니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그런 시를 볼 때 그 때 다윗의 마음이 얼마나 가난하고 겸손하겠는가..
우리가 굉장한 일을 하고 대사를 경영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고 믿은 것이 아니라, 그런 어려운 날들에 그래도 눕기도 하고 잠도 자고 아침에 깨어나는 것을 볼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저는 그런 것을 볼 때 참 감동이예요.
저는 한두 사람이 나를 미워한다 어쩐다 해서 잠도 못자고 속으로 부글부글 하다가 그런 수가 있었거든요.
한번은 하룻밤 잠을 못 잤는데, 강의하다가 강의하면서 잠을 자는 거예요.
성경강좌를 하다가 깜박 졸아서 무슨 말을 했는지 엉뚱한 말을 하고 있어..
내가 두번 그런 경험이 있는데, 다윗이 겪은 것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아닌데, 몇사람이 저에게 좋지 않게 말한다 해가지고 그런 것을 가지고 잠을 못 자면 참 쫄장부죠.. 그렇죠?
그래서 앞으로는 잠 잘 자기로 했어요.
머리털보다는 많지 않을 테니까..
그래서 56편 3절에,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여러분 우리는 이 성경 전체를 가지고 있으니까, ‘성도들아 하나님을 수시로 시시로 의지하라’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라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을 믿으라 하나님께 맡기라’ 이런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일반화 되었지만, 다윗이 이런 글을 쓸 때 정도만 해도 ‘어려울 때 하나님을 의지해야 되겠다’ 이런 말이 일반사람들이 잘 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나라 외에는 아직은 하나님을 아는 나라가 없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거의 다 타락해버리고 제사장들까지 타락해 있는 상황에서 어떤 믿음을 지도하고 어떤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을 지도할만한 그런 통로가 별로 있어 보이지 않은데,
다윗이 시를 쓰고 그 영혼이 그래도 맑고 투명해서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해야 되겠다.’ 하는 생각을 했다는 거야.
우리는 지금 당연한 것 같죠. 우리는 너무나 익숙한 말이어서 당연한 것 같은데, 다윗 시대만 해도 희귀한 생각이야.
어려운 때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을 어떻게 의지 하겠어요?
그런데 다윗의 시 속에 끝없이 나오는 말이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거예요.
그 말은 줄을 그으세요.
3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4절도 그렇죠?
4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혈육 있는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이렇게 사람들이 자기를 해하고 삼키려고 압제하고, 종일 교만하게 말하고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더 크게 하겠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지금도 우리가 산업사회가 전 세계적으로 흔들리고 해서 오늘 잘릴것인가 내일 잘릴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있고 염려가 되겠죠.
그것 때문에 잠도 못자고 해가지고 그 이튿날 졸아서 잘리지 말고..
그럴 때일수록 누워서 잠도 자고 일어나고 깨었으니까 하나님 함께 하신다는..
저녁에 잠 잘자고 낮에 일 잘해야 안 잘리지..
병든 병아리처럼 낮시간에 일하다가 졸아봐..
잠 못자니까 심지어 강의하다가 존다니까..
여러분 잠이라는 것은 이것은 필수적으로 얼마만큼 자야 되는 것이죠.
5 저희가 종일 내 말을 곡해하며 내게 대한 저희 모든 사상은 사악이라
여러분 우리가 진실로 진리를 파악해서 말했는데 누군가가 말꼬리 붙잡고 자꾸 말을 곡해하고 오해하고 그러면 참 힘들어요.
나중에 우리가 69편에 가서도 그런 것을 볼텐데,
나는 정말 진실하게 해서 있는 힘을 다해가지고 이야기 했는데 듣는 사람이 싹다 오해로 바꿔서 역공격을 해오니까, 나는 혼자 나 자신을 변증해야 되고,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100명이 넘게 달려드니까 그러면 나를 편들 수 있는 사람도 100명이 있을 텐데, 거의 비굴하게 침묵해버리는 거야.
마르틴 루터 킹 같은 그런 분이 한 말이기도 한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보다 더 미운 사람은 의인이라고 하면서 비굴한 침묵으로 입을 다문 사람이 소름끼치도록 무섭더라고..
가만히 있어버리는 것..
옳은 일에도 칼을 빼지 않고 그냥 자기 이미지 관리하면서 그냥 가만히 있어버리는 것..
분명히 내가 옳은 것을 알면서도 아무도 내 편 안들고 가만히 있어버리는 것..
이런 비굴한 침묵이 소름끼치게 무서웠다.
차라리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보다 더 무서웠다라고 그렇게 쓰고 있어요.
저도 그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제가 진주노회에서 싸움에 휘말려서, 우리는 뒤에는 못 서거든요. 맞아죽어도 앞에 서야지..
앞장 서가지고 바른말 하니까, 여러분 어디가서 바른말 해보세요. 반드시 미움 받습니다.
자기들과 같이 악도 하고 죄도 짓고 해야 잘 어울리지.. 안 어울리고 무슨 고고하게 혼자 그렇게 옳은 말 하면 반드시 미움 받는 거죠.
그래서 그렇게 미움 받을 때 내가 옳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나를 반대하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데, 가만히 있어버리는 거야.
반대하는 사람보다 정말 비굴한 침묵이 소름 끼칠 정도로..
그런 것은 경험 안해 본 사람은 몰라요.
그래서 다윗도 나중에 보면 그런 얘기를 합니다.
공평하고 의롭게 판단하고 말도 해야 될 것 아닙니까? 말 해야 될 때..
그래서 정직하게 말 해야 될 때 침묵해 버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중에 69편에서 읽을 수 있는데, 얼마나 어려웠으면 다윗이 그런 말을 하겠어요?
6절입니다.
6 저희가 내 생명을 엿보던 것과 같이 또 모여 숨어 내 종적을 살피나이다
7 저희가 죄악을 짓고야 피하오리이까 하나님이여 분노하사 뭇백성을 낮추소서
여기도 그런 말이 나오고 나중에도 나오는데, 다윗이 이런 말을 해요.
저렇게 악한 사람을 하나님 죽여버리지 마십시오.
죽여버리면 사람들이 잊어버립니다.
죽여버리지 말고 살려놨다가 계속 낮춰가지고 사람들에게 오래오래 기억되게 해달라고 그렇게 기도해요.
우리 같으면 우리를 심하게 미워하는 원수는 하루아침에 죽여버려 주옵소서 하는데,
죽여버리면 빨리 잊어버립니다. 저것들이..
그러니까 죽이지도 말고 낮추어서 오래 전시를 해 달라.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것은 다윗의 심정을 겪어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인데,
8절입니다.
8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유리(遊離)한다’는 말은 떠돌이죠. 떠돌이..
방랑자 망명객으로 블레셋으로 갔다가 가드에, 그 다음에 아둘람 굴로 갔다가, 모압으로 갔다가, 헤렛 수풀로 갔다가, 십 황무지로 갔다가, 엔게디 사막으로 갔다가, 마온 황무지로 갔다가, 그일라로 갔다가..
끝없이 이렇게 10년을 이렇게 떠돌이처럼 숨어다니고 밀려다니고..
내가 얼마나 유리하는지 얼마나 떠돌고 있는지..
아무 잘못한 것도 없이 국가의 일등공신으로서 블레셋의 위협으로부터 골리앗으로부터 국가의 운명을 건져놓고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신세를 하나님께서 다 계수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 얘기를 하는 거죠.
그리고,
..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눈물도 아마 꽤 많이 흘린 모양이예요.
..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9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
10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끝없이 ‘의지한다 의지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다윗이 기가 막힌 질곡의 날을 지나갈 때, 그리고 유리할 때 떠돌이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고 앞이 전혀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거예요.
11절도,
1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12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주께 드리리니
서원한 것도 있고 서원한 대로 하나님이 들어주시면 그 뒤에 감사드리고 싶다 그런 얘기죠.
13 주께서 내 생명을 사망에서 건지셨음이라 주께서 나로 하나님 앞, 생명의 빛에 다니게 하시려고 실족지 않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다음, 57편도 다윗의 시인데,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58편도 다윗의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59편도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알다스헷’은 히브리어로 ‘알타쉬헤트’,
‘알타쉬헤트’라는 말은 어떤 노래가 있는데, 노래 첫구절 첫소절인데, 알타쉬트라는 말의 뜻은 ‘너는 망해서는 안 된다.’ 그런 말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는 거예요. 옛날부터..
옛날에 우리가 곡 이름을 다 모르면 옛날 찬송가 보면 첫소절, 제목은 모르겠고 첫소절은 ‘뭐뭐로 한다’ 그런 것 있죠?
‘내 주를 가까이’에 맞춘 노래. 이런 식으로 한 거예요.
‘하늘 가는 밝은 길’에 맞춘 노래. 이런 식으로 곡의 첫소절에 나오는 말을 이렇게 부른다 했는데, 알타쉬헤트라는 말이 너는 망해서는 안 된다.
이런 곡에 맞추어 불렀던 노래인데,
그런 것을 보면 가사는 여러 가지이고 곡은 한 가지를 가지고 부른 노래가 많았다는 얘기죠.
우리도 그런 것들 있죠?
곡은 한개이고 가사는 두가지로 부르는 노래가 더러 있을 겁니다.
그런 것이 알타쉬헤트라는 곡조가 있다는 거예요.
[시편 57편]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의지한다’는 말을 우리가 56장에서 봤고, ‘하나님께 피한다’는 말도 같은 말이죠?
2 내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 부르짖음이여 곧 나를 위하여 모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로다
3 저가 하늘에서 보내사 나를 삼키려는 자의 비방에서 나를 구원하실지라(셀라) 하나님이 그 인자와 진리를 보내시리로다
4 내 혼이 사자 중에 처하며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여러분 사람들에게 빠진다는 것이 참 위험하다는 거죠.
사람이라는 것은 결국 우리를 도우는 자가 아니고 나를 불사르는 자와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이 미워하고 사람들이 비방하는 그 혓바닥 밑에서 지옥불이 올라온다고 해요.
사람을 사른다는 거야. 완전히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말로 다 다윗의 일생 모든 것을 전부 다 불살라 버리는 그런 가운데 내가 누워 있다는 거예요.
..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그러니까 혓바닥 밑에서 지옥불이 올라오고, 이는 창이고 입술은 화살이고 해서 그 입술로 사람을 죽인다는 거야.
사람을 매도하고 아니면 사람을 모략중상하고 교만하게 치고, 이렇게 해서 말로 한 사람을 한 사회에 완전히 매도해버린다든지 해서 죽인다는 거예요.
전에 제가 언론세계라든지 보니까 어떤 사람을 그냥 여론이나 언론이 한 사람을 죽여버리는 것은 일도 아닙니다.
그렇게 언어의 폭력이나 언론의 폭력도 무섭다는 거죠.
정치를 일반적으로 능숙하게 하는 사람은 그런 언론 플레이를 잘 하고 해야 되는데, 그것을 잘 못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도 그런 것 잘 못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어디가서 그런 사람들 잘 구슬려서 하면 나을텐데, 그런 것을 잘 못하니까..
다윗은 그 때 무슨 언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든 다윗이 한 것이 옳지 않은 것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입술로 혀로 친다는 거죠.
..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
5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하나님이 높은 데서 보면 잘 보일 것 아녜요?
누가 옳은지 누가 안 옳은지를..
6 ○저희가 내 걸음을 장애하려고 그물을 예비하였으니 내 영혼이 억울하도다 저희가 내 앞에 웅덩이를 팠으나 스스로 그 중에 빠졌도다(셀라)
잠언에도 그런 말이 나옵니다.
웅덩이를 판 사람은 스스로 자기가 판 웅덩이에 자기가 빠진다. 깜빡한거죠. 파 놓고는..
7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8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하도 사울을 피해서 다니다 보니까 수금을 가지고 연주해본지 오래 되었어.
수금이 어느 보따리에 들어있는지.. 그리고 비파도 악기고.. 마음에 무슨 여유가 있어야 무슨 노래하고 춤추고 악기를 만지고 하지..
맨 그저 망명길로 피난길로 쫓겨다니다 보니까 수금도 짐 속에 쳐박아 뒀던 모양인데, 이제는 다시 꺼내가지고 비파도 깨우고 수금도 깨우고, 이 비파 수금이라는게 다윗은 음악을 즐길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다윗은 그냥 기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문을 반드시 써가지고 거기다가 곡을 붙여서 악기와 함께 그렇게 올리는 거예요. 기도를..
우리처럼 막 부르짖는 것만 하는게 아니라, 기도문을 쓰고 거기다가 곡을 쓰고 악기를 연주하면서 음악에 실어서 자기 소원이 올라가게 한다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 찬송이라는게 ‘곡이 붙은 기도’라 그런 말이 있죠? 다윗이 한 겁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니고..
그러니까 기도문들이 다 남아있는 거죠.
곡을 붙이고 오래 불러왔고 다윗이 부른 기도시가 유행이 되어가지고 그 당시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죠.
9 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10 대저 주의 인자는 커서 하늘에 미치고 주의 진리는 궁창에 이르나이다
11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은 온 세계 위에 높아지기를 원하나이다
여러분 그렇게 다윗이 어려울 때도 어려움에서 그저 자기를 멸해주기를 바라는 정도이고, 온 정신이 자기가 높아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의 옳은 것이 옳은 대로 판별되고 그렇게 악이 악대로 심판되어서 하나님 이름이 높아지기를 그렇게 기도하는 거예요.
58편입니다.
[시편 58편]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1 인자들아 너희가 당연히 공의를 말하겠거늘,
인자들아 사람의 아들들아, 너희 사람의 아들 맞나?
사람의 아들이라면 너희가 당연히 공평과 정의를 말해야겠거늘 어찌 잠잠하느냐?
제가 아까 얘기했죠?
말해야 될 때 입을 닫아버리고 비굴한 침묵자들을 보고 한 말이예요.
사울 곁에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울이 엉뚱한 짓을 하면 말려야 될 것 아니냐?
순 터무니없는 일을 하는데, 사람의 아들 맞나? 정말 사람이냐?
당연히 너희가 공의를 말해야겠거늘 어찌 잠잠하느냐?
.. 어찌 잠잠하느뇨 너희가 정직히 판단하느뇨
지금 판단을 바르게 하고 있는 거냐? 마는 거냐?
정직한 판단력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사울도 사울이지만 사울 주변에서 사울이 악을 행하고 의로운 다윗을 잡을려고 하는데, 왕의 앞에서 반대도 한번 못하느냐? 하고 원망하는 거죠.
2 오히려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의 강포를 달아주는도다
그래서 여기 3절에 보면,
3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물론 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교리화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제가 볼 때도 실제 이런 사람이 있습니다.
악한 사람은 커가다가 악을 배우는 사람이 있지만, 정말 날 때 어릴 때부터 못된게 있어요.
어릴 때부터 못된 것이 죽을 때까지 못된 것이 있어요.
전혀 사람이 되지 못하는 거야.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가서 거짓을 말하는데,
4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아직도 제가 생물학적으로 확인을 못해봤는데, 해본다 해본다 했는데 못해 봤어요.
정말 독사가 귀가 먹었는지..
한번 여러분 생물학적으로 독사가 귀가 먹었는지 찾아보세요.
입에 독을 품고 오직 사람을 물고 죽일려고 하는데, 5절에,
5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귀머거리 독사 같다는 거야.
여러분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데 도무지 대화가 안 되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예요.
전에 제가 있던 원지교회에서 조그마한 학생에 주일날 교회에 나오게 되었는데, 그 아이가 평소에는 불교가 마련한 굉장히 좋은 유치원이 가는 거야.
불교에는 돈이 많으니까 굉장히 좋은 시설에 가요.
그래서 이 아이가 교회에 나가는 줄 알고, 선생님이 ‘예수님이나 부처님이나 똑같다’고 하는 거야.
이 유치원생은 ‘같지 않다’고 우기는 거죠.
‘부처는 그냥 사람이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라고’ 유치원 선생님에게 설득을 하는데, 그 선생님이 자꾸 귀머거리 독사같이 못 알아듣고 하니까,
목사님께 말하기를, ‘목사님, 선생님이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아요.’ 하더래요.
유치원생이 선생님에게 전도를 하다가 안 되니까 화가 나서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선생님이..
5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6 하나님이여 저희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7 저희로 급히 흐르는 물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8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여기 이런 귀머거리 독사같은 악독한 사람은 졸지에 어느 날 망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저주시에 가까운 시죠.
그러니까 사람이 어떤 일시적으로 일회적으로 단순 과거형으로 한번 잘못하고 그 잘못에 대해서 통한히 여기는 사람 같으면 다 용서될 수 있는데, 그런게 아니고 이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어.
그리고 그 독을 항상 품고 있고 아무리 말해도 말이 통하지 않고 귀머거리 독사같은 사람은 용서를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저주를 해요. 저주를..
8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9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더웁게 하기 전에 저가 생 것과 불붙는 것을 회리바람으로 제하여 버리시리로다
10 의인은 악인의 보복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11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
이런 말을 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런 악한 귀머거리 독사같은 사람이 졸지에 망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그래도 생각을 하면서 의인들이 악인의 보복당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면서 그 때 사람들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는 갚음이 있고, 진실로 천국가서가 아니고 땅에서도 하나님이 재판하시기는 하시는가 보다. 그런 판단을 하겠다는 거야.
그런데 이런 말은 어떻습니까?
의인이 땅에서 보상을 받는 것 맞습니까?
왜 이렇게 조용해요?
구약에 있는 신앙들은 거의 의인은 종려나무같이 번성하며 의인은 다 보상을 받으며 악인은 다 망한다. 이것은 아주 유치하고 단순한 생각이죠.
신약에서는 볼 때는 어때요?
의인이 땅에서 다 보상 받나요?
안 되고 말죠.
세례요한은 땅에서 뭘 보상 받았어요?
아무 보상 받지 못하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비참하게 죽었어요.
땅에서 보상받은게 아니라 세례요한은 정말 비참하게 살다가 죽었어요. 장가도 못 가고..
서른 안팎될 때, 세상에 헤롯이라는 사람이 자기 동생의 아내를 탐내어서 빼앗아 왔는데, 동생의 아내와 딸도 따라왔어.
동생의 아내를 취한 놈이 그 딸에게 눈이 돌아갈 때 어머니와 딸, 이를 테면 제수와 조카죠.
그런 것을 놓고 곁눈질 하는 그 사이에서 세례요한이 비참하게 죽었으니까..
이 세상에 이럴 수가 있습니까?
땅에서 아무 보상이 안 되었어요.
여러분 스데반이 얼마나 의롭고 경건합니까?
의롭고 경건하고 바른 말 했는데 땅에서 무슨 보상이 있어요? 그냥 죽었어요.
베드로는 감옥에서 풀어줬지만 야고보는 안 풀어주었잖아요.
나중에 열두 사도가 거의 다, 요한사도외에 거의 다 순교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사도들이 땅에서 하나도 보상이 안 되었어요.
그래서 의롭게 살기만 하면 다 보상받는다는 것은 매우 유치한 시절에 하는 소리입니다. 사실은..
신약시대에는 그렇게만 말하기 어렵다는 거야.
그래서 의롭게 살고도 이 땅에서 거의 보상 안 된 채 세상 떠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의와 선을 포기할 수 있느냐? 그럴 수 없는 거죠.
의롭게 살고도 보상 되는 경우도 있고 보상 안 된 경우도 있다는 거야.
59편, 한장 더 보겠습니다.
역시 알타쉬헤드라고 알다스헷..
이런 가사의 길이도 다르고 한데, 곡은 똑같이 알다스헷라는 그 곡에 맞추어서 부르는 거예요.
[시편 59편] <다윗의 믹담 시, 영장으로 알다스헷에 맞춘 노래, 사울이 사람을 보내어 다윗을 죽이려고 그 집을 지킨 때에>
1 나의 하나님이여 내 원수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일어나 치려는 자에게서 나를 높이 드소서
2 사악을 행하는 자에게서 나를 건지시고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에게서 나를 구원하소서
3 저희가 나의 생명을 해하려고 엎드려 기다리고 강한 자가 모여 나를 치려 하오니 여호와여 이는 나의 범과를 인함이 아니요 나의 죄를 인함도 아니로소이다
그러니까 다윗이 무슨 범과가 있거나 죄가 있어서 이렇게 고난 당하는게 아니라는 거죠.
4 내가 허물이 없으나 저희가 달려와서 스스로 준비하오니 주여 나를 도우시기 위하여 깨사 감찰하소서
역시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때니까 그 때는 범죄한게 없죠.
나중에 압살롬에게 쫓겨다닐 때는 자기 범죄한게 있기 때문에 문제가 다르죠.
물론 이 때는 사울 왕에게 쫓겨다닐 그 때의 노래죠.
5절입니다.
5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일어나 열방을 벌하소서 무릇 간사한 악인을 긍휼히 여기지 마소서(셀라)
6 저희가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
7 그 입으로 악을 토하며 그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저희를 웃으시리니 모든 열방을 비웃으시리이다
9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니 저의 힘을 인하여 내가 주를 바라리이다
10 나의 하나님이 그 인자하심으로 나를 영접하시며 내 원수의 보응받는 것을 나로 목도케 하시리이다
그렇게 되는 수도 있고 그렇게 되지 않은 수도 있습니다.
11절에,
11 저희를 죽이지 마옵소서 나의 백성이 잊을까 하나이다 우리 방패되신 주여 주의 능력으로 저희를 흩으시고 낮추소서
죽어버리면 사람이 잊어버려요.
특히 옛날 사람이 잘 안 잊어버리는데, 요즈음은 잘 잊어버리죠.
왜냐하면 악성뉴스가 자꾸 나오니까 옛날 것은 아무리 중요한 것도 밀리고 잊어버리고..
그래서 우리 세상에서 ‘남의 흉은 사흘이라’ 그런 말이 있죠.
흉볼 게 새로운 메뉴가 많이 나오니까 또 흉볼 시간이 없어요.
우리 사회에 사건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야 이 사건이 어떻게 될 것인가’ 어떻게 되기는 떠밀려서 그냥 지나가버려요.
그래서 만약에 이 사람들을 죽여버리면 금방 잊어버리고 생각도 못할 것이니까 죽이지 말고 흩으시고 낮추라는 거예요.
죽이지도 말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기억되게..
12 저희 입술의 말은 곧 그 입의 죄라 저희의 저주와 거짓말을 인하여 저희로 그 교만한 중에서 사로잡히게 하소서
13 진노하심으로 소멸하시되 없기까지 소멸하사 하나님이 야곱 중에 다스리심을 땅 끝까지 알게 하소서(셀라)
구약시대에는 대체로 범죄에 대해서 징벌 이런 것이 좀 현세적으로 집행된게 많습니다.
잘못하면 저주가 금방 임한다든지..
그런데 신약시대는 어떤 죄는 심판에 나가고, 심판이 그 죄의 그 뒤를 따르지만, 어떤 죄는 일생 동안 벌도 안 받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일생 동안 그냥 넘어가는 거야.
그래서 차라리 사도바울의 말을 빌리면 우리가 일생 동안에 지은 죄는 일생 동안에 벌을 받아야 돼요. 징계를 받든지..
안 받고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으면 끝장난다는 거죠.
너희가 판단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인데, 이것은 세상과 함께 정죄함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들이 이 땅에서 이런 저런 잘못이 있었을 때에 땅에서 어떤 권징이나 징계를 받게 되는 것은 감사해야 돼요.
세상 사람과 함께 죽은 후에 크고 흰 보좌에서 심판받으면 끝장나니까, 우리가 잘못한것 있으면 땅에서 징벌을 받든지 권징을 받든지 다 받는 것이 좋아요.
그래서 죽은 이후에 쌓아놨다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으면 끝장나는 것이니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악을 계속 행하고도 아무 벌도 안 받고 넘어가지만, 진심으로 예수믿는 사람은 사랑하는 자식들마다 근실히 하나님께서 채찍질 하시고 징계하신다는 거죠. 회개케 하시고..
14 저희로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15 저희는 식물을 위하여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아까번에 59편 6절에 보면,
6 저희가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고
7 그 입으로 악을 토하며 그 입술에는 칼이 있어 이르기를 누가 들으리요 하나이다
이렇게 하면서 고발하는 형식으로 했는데, 지금 끝에 와서는 하나님이 정말 나의 보장이시고 산성이시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괜찮다는 거야.
그렇게 하게 하소서.
14절,
14 저희로 저물게 돌아와서 개처럼 울며 성으로 두루 다니게 하소서
15 저희는 식물을 위하여 유리하다가 배부름을 얻지 못하면 밤을 새우려니와
16 나는 주의 힘을 노래하며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 부르오리니 주는 나의 산성이시며 나의 환난 날에 피난처심이니이다
17 나의 힘이시여 내가 주께 찬송하오리니 하나님은 나의 산성이시며 나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어느 곳에 숨어있다든지 하면, 사울왕은 군대를 보내어서 에워싸기도 하고 산을 포위하고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기도 하고 굴에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는 그런 역경을 지날 때에도,
다윗은 끝없이 기도하고 끝없이 찬양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항상 의뢰하고 그러고도 정당방위라고 하면서 누구를 헤치지 않고 늘 피하기만 하면서 하나님께 맡기는, 자기 손으로 직접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리하면 이렇게 의롭고 정직한 다윗에게도 역경도 있고 어려움이 있고, 그리고 그 어려움이 있지만 환난도 많았지만 ‘하나님께서 의인은 건지신다’ 이렇게 구약시대 고백은 그 정도에 머뭅니다. 의인에게 고난이 많으나 여호와께서 그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적어도 신약시대에 와서는 의인에게 고난이 많은데, 끝까지 안 건져주실 수 있다. 거기까지 나가야 돼요.
그래도 낙심하면 믿음이 아니야.
그 실례가 바로 세례요한 같은 사람이죠.
스데반 같은 사람 젊을 때 그 한창 일할 그 좋은 일꾼.. 건지지 않고 돌에 맞아 죽었어요.
AD64년부터 311년까지 전후 10차례에 걸쳐서 수많은 박해때에 그 많은 의로운 사람들을 그 환난에서 건져주셨느냐?
안 건져 주시고 순교 했어요. 다..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가서 보면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순교함으로서 하나님께 바쳐진 영혼들이 따로 관리되면서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려라 하는 얘기가 나와요.
다섯번째 인을 뗄 때 나오죠.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이 악독한 세상을 하나님이 너무 오래 참으시는 것 아닙니까? 하고 탄원하니까,‘ 너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기다리라’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순교함으로 주님의 증인되고 주님 증인되어서 순교한다는 영광에 대해서 그런 것 우리가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많이 익숙하지 못한데, 성경시대 박해시대 그 때는 굉장히 강조되고 주를 위해서 고난받고 순교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최고의 영광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최고의 영광이 주의 복음과 주의 나라를 위해서 순교하는 것이다.
이것이 굉장히 강조하면서 이겼다는 겁니다.
그 당시에..
313년에 기독교 자유가 선포되고, 325년에 니케아 회의가 열릴 때에 알렉산드리아라든지 안디옥 갑파도기아 아니면 비잔틴 쪽 콘스탄티노플에서 각 학파마다 신학자 성경학자 주의 종들이 모여오는데, 거기 종교회의에 모여오는데, 전부 주님의 증인들이죠.
눈알이 뽑힌 사람, 손가락이 잘린 사람, 얻어맞아서 하반신을 못 쓰는 사람 전부 이런 사람들이 장애인 대열처럼 회의장에 들어왔다니까..
그것을 보고 참여한 사람 모든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하면서 우리도 주를 위해서 저런 영광을 위해 그렇게 기도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도 이렇게 아무 고난도 핍박도 불이익도 없이 이런 때에 일찍이 없었다는 거예요.
요즈음은 폭풍전야처럼 예수를 믿고도 아무 불이익도 핍박도 고난도 없이 오히려 예수믿는 것으로 부자 되겠다는 이런 현기증 나는 발상은 기독교 역사에 일찍이 없었다는 겁니다.
요즈음에 갑자기 나온 사상이야.
그래서 마지막 환난때가 되면 역경이, 구약의 다윗시대 보다 훨씬 더 큰 역경이 사도들을 속사도 교부 시대에 있었다는 거예요.
그리고 전무후무한 대환난은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더 큰 환난이 있어요.
심지어 계시록도 말하기를 ‘성도의 인내가 여기 있다’ 말할 정도로, 계시록 14장에 가서 보면 마지막 예수님 오시기 직전에 일어나는 환난이라는 것은 창세로부터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다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상당히 많은 사람이 순교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만약에 말세에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될 사람이라면 예수믿고 잘되고 복받고 그런 것도 감사하지만, 일부러 우리가 가난해진다든지 그럴 필요는 없지만, 그런 것 만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는 거죠.
주님의 나라에서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주를 위해서 얼마나 충성하고 얼마나 진실하게 증인된 삶을 살았느냐?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말씀드리면 구약시대에 최고 정점까지 올라갔던 다윗의 신앙이라도 신약에 미치지 못합니다.
사도들과 그 이후에 박해시대에 있었던 그런 순교자들의 순수가 그런 진리를 향한 열정은 정말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렇게 목숨을 바칠 정도의 믿음으로서 지켜나온 진리를 우리가 지금 우리 손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 믿고 잘 되기만 하고 복받기만 하고 고난도 없이 이렇게 간다는 것은 이 근자에 잠깐 이렇게 보이는 현상이지, 이것이 기독교 본질이 아니고, 항상 진리를 위해서 우리가 불이익 당한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믿음을 가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하나님의 사람 다윗이 사울의 손에 쫓겨서 이리저리로 유리할 때, 그가 올린 기도와 역경에 하나님께 올려졌던 기도와 찬양을 들었습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려 했고 인위적으로 원수를 갚지 않을려고 노력하는 그런 장면도 봤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런 악은 악대로 심판하시고 의인은 의대로 보상되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과연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역사를 판단하신다는 것을 보게 하신다 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신약시대를 돌아보면서 느끼게 됩니다.
이 시대에 우리가 주님을 믿고 이렇게 편안한 때가 많이 없었는데, 오늘날 이상할 정도로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무 고난도 핍박도 없고 불이익도 없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옛 사람 의로운 사람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어떻게 믿음을 지켜나갔는지를 잘 배우게 하시고, 역사의 종국사적 종말에 있을 대환난보다 더 큰 환난때도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마음속에 늘 깨어 준비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