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오늘 이 순간부터 덕 보겠다는 생각 버려라"
감동이 있는 명품 주례사
“부부는 남이다. 남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하나가 될 수 있다…. 비밀의 방을 가져라. 그 안에 자기 나름의 삶이 있다. 결혼 했다고 버리지 말고 함께 가꿔 나가라 ….” 박씨의 주례사는 부부가 하나임을 강조하는 상투적인 주례사와는 다르다. 결혼 정보회사 선우가 최근 5년 사이 결혼한 부부 202명에게 물어본 결과 주례사가 기억나지 않는다는 사람(49%)이 기억하는 사람(42%)에 비해 더 많았다. 경황이 없기도 하고,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주례사는 한 번 읽혀지고 사라진다. 결혼식 이후에 다시 언급되는 경우도 많지 않다. 혼인서약은 남편이, 성혼 선언문은 부인이 읽는다. 주례사는 한 단락씩 나누어 한다. 조 교수는"결혼식은 남녀가 함께 꾸미는 것인데 남자 혼자 주례를 보는 것보단 남녀가 함께 보는 게 더 의미 있을 것 같아 시작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주례사는 독특한 데가 있다. 예비 부부에게 결혼생활을 하면서 지킬 약속을 구체적으로 써오게 한 뒤 식장에서 낭독한다. “서로 싸우더라도 한 이불은 덮고 자겠습니다. 남의 집 남편, 부인과 비교하지 않겠습니다”라는 식이다. 약속을 낭독하고 하객들 앞에서 실천을 다짐받은 후 조 교수 부부의 본격적인 주례가 시작된다. “여보, 당신은 이 '사랑의 약속'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라며 조 교수가 시작하면 부인은 약속을 하나씩 언급하며 조언을 해 준다. 두 사람이 만담하듯 한 번씩 주고받으며 선배 부부로서의 경험을 얘기한다. 소설가 이윤기(63)씨는 2001년 겨울 8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의 편지를 받았다. 생면부지의 청년이 주례를 부탁하며 보낸 편지였다. 대학 시절부터 이씨의 작품을 좋아했던 조희봉(41ㆍ강원 상서우체국장)씨는 “독자로서 굉장히 존경하던 분이라서 어릴 때부터 나중에 결혼하면 꼭 주례를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을 막연히 하고 있었다”며 “하지만 워낙 유명한 분이라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편지를 보내고 일주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나 이윤기인데, 결혼식 날 화천으로 가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이씨의 전화를 받았다. 이씨는 “주례 같은 걸 매우 싫어하지만 기꺼이 나섰던 이유는 내가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젊은 부부를 격려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결혼식 당일 “그대를 위하여 내가 있는 것이지, 나를 위하여 그대가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윤기 소설 속 주례사를 현실에서 들으며 “책 속에서 사람이 살아나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그의 주례사는 신혼부부뿐 아니라 결혼생활을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난 부부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그는 “두 사람은 오늘 이 순간부터는 덕 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이렇게만 생각하면 사는 데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고 말한다. 상대방 덕 볼 생각으로 결혼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성직자 아닌 일반인 '연설'은 우리만의 독특한 관행
주례사를 통해 본 결혼문화의 변천
19세기 기산 김준근이 그린 풍속화. 전통혼례를 치르는 모습(왼쪽)과 혼례·첫날밤을 지내고 신부가 신랑 측 집으로 가는 모습이다. 조선시대의 결혼식은 신부 측 집에서 열렸다. 독일 함부르크 민족학박물관 소장
“혼인(婚姻)에서 혼(婚)은 남자가 장가든다는, 인(姻)은 여자가 시집간다는 의미입니다. 혼례 때 신랑과 신부가 입는 옷은 본래 궁중에 입궐할 때의 복장입니다. 신랑은 흉배에 학 두 마리가 그려진 당상관(정3품), 요즘으로 치면 3급인 국장급 공무원에 해당하는 옷을 입습니다. 신부는 숙부인(당상관의 부인에게 내려지는 지위)의 예복을 입었고요. 조선시대는 계급사회였어요. 이런 사회에서 혼례 때는 일반인도 당상관·숙부인의 옷을 입을 수 있었다는 건 의미가 큽니다.” 6례란 혼담(婚談·신랑 측이 신부 측에 청혼하는 것), 납채(納采·신랑의 사주를 적어 신부의 저고릿감으로 쓰일 비단과 함께 신부 측에 보내는 것), 납기(納期·신부 측에서 혼인 날짜를 정해 신랑 측에 알리는 것), 납폐(納幣·신랑 측에서 신부 측에 예물을 보내는 것), 대례(大禮·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가서 부부가 되는 의식을 올리는 것), 우귀(于歸·신부가 신랑을 따라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를 말한다.
현대식 결혼에서처럼 주례가 주례사를 들려주는 순서는 없다. 대신 전통혼례에는 집례가 있다. 집례는 행사를 이끄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 혼례에서는 행교배례(교배례를 올리겠습니다), 신부선재배(신부가 먼저 절을 두 번 하겠습니다), 신랑답일배(신랑은 한 번 답배를 하겠습니다) 등의 순서를 큰소리로 일러주는 역할이다. 『주자가례』에는 신랑이 신부를 자신의 집에 데려와 혼례를 치르고 곧바로 함께 사는 것으로 나온다. 이 때문에 조선 초 조정에서는 『주자가례』처럼 혼례를 치러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곤 했지만, 워낙 오래된 풍습이라 바뀌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신부 집에서 대례를 치르고 첫날밤을 보내는 풍속은 조선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얘기다. 성직자가 아닌 민간인이 주례를 맡아 주례사를 들려주는 경우가 더 많은 우리네와는 좀 다르다. 미국인 그렉 필립스(한국닛산 사장)는 “미국에선 대다수가 교회나 성당에서 목사님·신부님 등 성직자를 모시고 결혼식을 올리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주례 문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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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음의 정원 원문보기 글쓴이: 마음의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