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자 시집 {그와 나의 아포리즘} 출간
백승자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고, 2016년 {애지}로 등단했으며, 서산여성문학 회원, 충남시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백승자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다. 그녀는 가수(歌手)에 가까운 시인이다. 백승자의 시는 때때로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된다. 백승자의 첫 번째 시집 {그와 나의 아포리즘}에 수록된 다른 많은 시들이 그러하듯이, 이 시가 보여주는 음악성은 대단하다. 그녀는 말을 능수능란하게 잘 다룬다. 시인은 말과의 놀이를 기꺼이 즐긴다. 언어유희로서의 시는 노래를 닮았다. 동일한 표현을 적당한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백승자는 자신의 시를 음악의 상태로 고양한다.
백승자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다. 그녀는 가수(歌手)에 가까운 시인이다. 백승자의 시는 때때로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된다. 백승자의 첫 번째 시집 {그와 나의 아포리즘}에 수록된 다른 많은 시들이 그러하듯이, 이 시가 보여주는 음악성은 대단하다. 그녀는 말을 능수능란하게 잘 다룬다. 시인은 말과의 놀이를 기꺼이 즐긴다. 언어유희로서의 시는 노래를 닮았다. 동일한 표현을 적당한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백승자는 자신의 시를 음악의 상태로 고양한다.
그녀는 한 번도 고지告知 받지 못한 번호들에 묶여 있다
애초에 선택권을 박탈당한 피사체
지문 번호를 고르는 건
앵글에서의 소멸을 자초하는 일
태어나자마자 거미줄 같은 숫자에 갇혀
반항을 모르는 포로가 되었다
삶의 스텝마다 도사리고 있는 늪의 더듬이들
1등이 아니면 안된다는
1로 태어나 2로 살면 안된다는
99보다는 100이어야 한다는
수는 언제나 객관적 흐름이었다
끝없이 숫자를 복사해내는 시간은
뫼비우스띠를 그녀의 발목에 채우고
한사코 채찍질을 하고 있다
봄에 서서
가을 문고리를 붙잡고 있는 그녀
마지막 번호는 꿈꿀 수 있을까
----백승자, [수數, 덫] 전문
인간은 사유하는, 또는 계산하는 동물인 만큼, 백승자 시인의 말대로, 우리 인간들은 숫자에 묶여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숫자는 지문이고 덫이고, 숫자는 암흑(늪)이고 운명이다. 누구나 다같이 숫자에 묶여 있는 것이고, 이 숫자의 운명에서 “지문 번호를 고르는 건/ 앵글에서의 소멸을 자초하는 일”일 뿐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애초부터 자유와 선택권을 박탈당한 피사체에 지나지 않았고, “태어나자마자 거미줄 같은 숫자에 갇혀/ 반항을 모르는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1등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일등주의의 늪, “1로 태어나 2로 살면 안 된다는” 고정관념과 편견의 늪, “99보다는 100이어야 한다는” 만점주의의 늪, 뉴턴과 아인시타인과도 같은 천재가 되어야 한다는 천재교육의 늪, 지구촌을 벗어나 빛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주를 정복해야 한다는 탐욕의 늪 등----. 10진법, 2진법, 빅데이터에 의한 인공지능의 판단과 계산법은 늘, 항상 객관적이고 정확했지만, 그러나 “끝없이 숫자를 복사해내는 시간은/ 뫼비우스띠를 그녀의 발목에 채우고/ 한사코 채찍질을” 해대고 있는 고문과도 같았던 것이다.
뫼비우스띠----. 안과 밖이 구분이 안 되고, 출구와 입구가 구분이 안 되는 뫼비우스띠, 선인지 악인지 구분이 안 되고, 잘 사는 것인지 못 사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되는 뫼비우스띠----. 백승자 시인의 [수數, 덫]은 뫼비우스띠이고, 암흑 속의 늪이며, 또한, 그녀의 [수數, 덫]은 무한경쟁의 삶이자 엉망진창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숫자란 미래의 희망이며 행복을 가져다가 주는 복음과도 같았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거미줄 같은 숫자에 갇혀 반항을 모르는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스페이스 X’를 타고 가든, ‘블루 오리진’을 타고 가든, 큰곰자리이든, 백조자리이든, 그 어느 은하계의 무릉도원이든지간에, 우리 인간들은 숫자라는 덫에 빠져 헤어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 백승자 시인의 전언인 것이다. 잘 계산하는 것은 불행에 불행을 더 하는 것이고, 불행에 불행을 더 하는 것은 숫자에 중독되는 것이다. 일등, 만점, 뉴턴, 아인시타인, 억만 장자 등도 중독성의 독약에 해당되고, 국민소득, 상류사회, 선진국민, 세계챔피언 등도 중독성의 독약에 해당된다.
숫자는 늪이고 마약(독약)이고, 이 숫자놀음은 백승자 시인의 [수數, 덫]처럼, 역사의 종말이자 인간멸종의 신호탄이라고 할 수가 있다. 백승자 시인의 [수數, 덫]은 대단히 지적이고 뛰어난 시이며, 인문학적 차원에서 ‘수數’가 ‘덫’이라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시라고 할 수가 있다. 아는 것은 병이고, 계산하는 것은 숫자의 덫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때 그 자리에 있겠다는 것// 그대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늘 사랑할 준비를 한다는 것// 달아오르던 열망을 삭여/ 아프지 않고 때로는 무덤덤하게/ 그대를 안아낼 수 있다는 것// 그대가 나를 잊은 의자에 앉더라도/ 해 드는 창가를 내어주며/ 부르면 들릴 만한 거리에 서 있겠다는 것// 그대는 매일 나를 비킨 곳만 바라보네// 마음이 무너진 날에도/ 또 그 다음 날에도/ 진실로 기다린다는 것은/ 11월 감처럼 말갛게 익어/ 12월의 그대를 파랗게 품어내는 것
―「기다린다는 것은」 전문
백승자는 단순한 시인이 아니다. 그녀는 가수(歌手)에 가까운 시인이다. 백승자의 시는 때때로 노래가 되고 음악이 된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다른 많은 시들이 그러하듯이, 이 시가 보여주는 음악성은 대단하다. 시인은 작품의 제목인 “기다린다는 것은”을 비롯하여 1연, 2연 2행, 3연 3행, 4연 3행, 6연 3행, 6연 5행 등에서 공통적으로 ‘~것’을 활용한다. ‘~것’을 7회 반복함으로써, 이 시는 시적 화자 ‘나’의 “그대”를 향한 ‘기다림’을 극대화한다. ‘그대’를 향한 ‘나’의 감정은 한때의 “달아오르던 열망”을 넘어선다. ‘그대’가 ‘나’를 외면하거나 잊는다고 해도, ‘그대’를 향한 ‘나’의 마음은 “무덤덤하게”, “부르면 들릴 만한 거리에 서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말갛게 익”은 “11월 감”을 닮은 ‘나’의 마음은 “사랑”으로서 충만하다. 백승자의 제안처럼 “기다린다는 것”은 “늘 사랑할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기다림’은 곧 ‘사랑’이다.
천만 다행히도/ 서라벌에 네로의 콜로세움은 없었네/ 올무에 사람 옭아 놓고/ 핏덩어리 물고 춤추는 사자들을 향해/ 축배 들고 환호성 지르는 열병 앓는 말벌들은 없어서/안압지 야경에 몰려드는 불나방 무리에는/ 기꺼이 끼어도 좋겠네// 그 정도쯤이야/ 애교어린이화원 한 귀퉁이/ 포석정 보름달 끌어안고/ 빙빙 술 흐른다 시 지어라/ 어무산신무御舞山神舞 어무산신무御舞山神舞 위아래 없이 엉겼다 해도/ 는실난실 흥청거린 폼페이우스에 비하면// 진실로 그쯤이야/ 벼 한 모숨 심을 땅대기에 기대어/ 사철을 견디는 목숨들 옥토 위/ 턱 하니 드러누운 대릉의 주인들에게/ 엎드려 입 맞추는 것쯤은 무방하겠네// 서라벌에/ 콜로세움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도/폼페이우스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턱 하니 드러누운 대릉大陵의 주인들에게」 전문
독자들은 아마도 ‘구체적(具體的)’ 또는 ‘구체성(具體性)’이라는 어휘를 접한 적이 있을 테다. 어떤 사물이나 대상이 일정한 형태와 성질을 갖춤으로써 주체가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도록 한다면, 그 사물이나 대상은 구체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백승자의 이 작품은 대단히 구체적인 시이다. “대릉大陵”, “서라벌”, “네로”, “콜로세움”, “안압지”, “이화원”, “폼페이우스” 등의 어휘를 보면 그녀가 추구하는 스케일의 넓이와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의 빛나는 장소와 유명한 인물을 넘나들면서 시인이 최종적으로 주목하는 장소와 인물은 ‘서라벌’이고 ‘대릉’이며 “턱 하니 드러누운 대릉大陵의 주인들”이다. 백승자가 여기에서 제공하는 문기(文氣)는 활달하고 호방하다. 2연 5행의 “기꺼이 끼어도 좋겠네”와 4연 5행의 “엎드려 입 맞추는 것쯤은 무방하겠네” 그리고 5연의 “서라벌에/ 콜로세움이 없었다는 이유만으로도/ 폼페이우스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등의 진술은 이를 입증하는 사례들이다. 이제 한국 시단도 작품의 제목에 “턱 하니 드러누운”과 같은 감각적인 표현을 자연스럽게 배치하는 개성적인 시인을 얻게 되었다.
백승자의 첫 시집을 점검하였다. 그녀는 말을 능수능란하게 잘 다룬다. 시인은 말과의 놀이를 기꺼이 즐긴다. 언어유희로서의 시는 노래를 닮았다. 동일한 표현을 적당한 위치에 배치함으로써 백승자는 자신의 시를 음악의 상태로 고양한다. 그녀는 「애드벌룬」과 「갈대」 등의 시편에서 흔들리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오롯이 형상화하면서 사색적이고 철학적인 시 세계를 전개한다.
시인은 또한 시 「기다린다는 것은」에서 기다림을 노래한 바 있다. 파울로 코엘료(Paulo Coelho)에 의하면 “인생은 언제나 행동할 수 있는 적절한 순간을 기다리는 문제였다.(Life was always a matter of waiting for the right moment to act.)” 인간의 삶은 늘 기다림의 연속이다. 우리는 적절한 때를 기다리다가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다림의 대상은 각각 다를 테지만,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주어진 “흔들리는 목숨”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백승자의 제안을 존중하는 독자들은 유연한 사고와 상상력으로 “끊어지지 않는 유목민”이 되고 “말랑말랑한/ 사람으로 되살아나”야 한다. 유목민 또는 말랑말랑한 사람이 되어서 새롭게 걸어갈 때, 비로소 진정한 인간의 길이 시작될 것이기 때문이다.
----백승자 시집 {그와 나의 아포리즘}, 도서출판 지혜, 무선제본, 값 10,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