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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의 철학
----이영월의 시세계
반경환 애지 주간 및 철학예술가
이영월 시인은 1949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고, 60세에 중,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65세 때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를 졸업했다. 2009년 {문학세대}(시부문), 2017년 {화백문학}(수필부문)으로 등단했고, 첫 시집 {매화꽃 필 때}와자전에세이집 {노을에 비친 윤슬}을 출간했으며, 현재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 회원과 ‘들꽃시’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간 승리의 장본인인 이영월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하늘길 열리면 눈물의 방}은“삶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 길//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욕심은 사라지고// 진국처럼 본심이 자리한다// 경쟁도 아니 하고 걸림돌 없는 길// 양보하며 여유로운 마음// 가진 것 놓고 無로 돌아가는 길// 나에게 죽음은 또 하나의 경사일지도 모른다”([하늘길 열리면])라는 표제시처럼‘사무사思無邪의 경지’, 즉,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철학’의 성과라고 할 수가 있다. 그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73세이고, 큰아들 조정훈과 작은아들 조지훈의 어머니로서, 또한, 현재 요양치료 중인 조용엽의 아내([면회가는 날])로서, 이처럼 욕심이 없고 늙음과 죽음마저도 하나의 경사로서 받아들인다는 것은 진정한‘사무사의 경지’, 즉,‘무위자연의 철학’의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수줍게 핀 수선화가 보인다
신작로 길 개나리도 보인다
군락을 이룬 벚꽃이 보인다
손길 닿지 않아도
발길 닿지 않아도
봐주는 이 없어도
본분 다하며
말 없는 몸짓으로 피워내는
그대는 나의 스승입니다
----[해미천을 걷다가] 전문
사무사의 경지, 무위자연의 철학----. 아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가 있는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간다. 성실한 사람은 맹목과 광신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는 사람이며,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의 삼박자를 자연의 순리처럼 다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시인은 인간의 중의 인간, 즉, 전인류의 스승이며,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의 삼박자를 다 갖춘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다.
“삶 위에 드리워진 그림자 길// 늙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다// 욕심은 사라지고// 진국처럼 본심이 자리한다// 경쟁도 아니 하고 걸림돌 없는 길// 양보하며 여유로운 마음// 가진 것 놓고 無로 돌아가는 길// 나에게 죽음은 또 하나의 경사일지도 모른다”라는 [하늘길 열리면], 이제는“수줍게 핀 수선화가”보이고,“신작로 길 개나리도”보이고,“군락을 이룬 벚꽃”도 보인다.“손길 닿지 않아도/ 발길 닿지 않아도/ 봐주는 이 없어도”“본분 다하며/ 말 없는 몸짓으로 피워내는/ 그대는 나의 스승입니다”라는 [해미천을 걷다가]는 이영월 시인의 무위자연의 철학의 탁월한 성과이며, 최고급의 인식의 제전의 승리라고 할 수가 있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며, 그 모든 생명체들은 늘, 항상, 그 본분을 다하며, 자기 자신의 생존의 결정체인 꽃을 피운다. 수선화도, 개나리도, 벚꽃도 스승이고, 참나무도, 소나무도, 대나무도 스승이고, 벌도, 나비도, 개구리도 스승이다. 개도, 길고양이도, 호랑이도 스승이고, 산도, 강도, 바다도 스승이고, 어린 아이도, 친구도, 늙은이도 스승이다. 모든 만물이 다 스승이고, 이 배움의 자세가 이영월 시인의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의 보증수표가 되어주고, 그에게 인간 중의 인간, 즉, 인간 승리의 길(시인의 길)을 안겨주기도 했던 것이다. 지혜가 있으니까 용기가 있고, 용기가 있으니까 두려움이 없고, 두려움이 없으니까 언제, 어느 때나 너무나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자기 자신의 길만을 걸어갈 수가 있었던 것이다. 요컨대 만물을 스승으로 삼고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하늘길’을 창출해낸 이영월 시인이야말로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을 다 갖춘 참다운 스승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영월 시인의 [하늘길 열리면]과 [해미천을 걷다가}가 그의 앎에의 의지의 소산이라면, 이 앎에의 의지는
속치레가 든든하려 애썼다/ 어느 날부터/ 겉치레가 눈에 박혀/ 명품을 좋아했다// 허기진 마음 달래려고/ 물건 사냥으로 배 채웠다/ 움켜쥐고 먹어보아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 젊은 날 내게도 그런 날들 있었다/ 해볼 짓 다 하고/ 갖고 싶은 것 다 갖고 나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제정신 들고나니/ 모두가 부질없어라/ 세월은 저만치 비켜서 있고/ 주름은 이만치 다가와 있더라
라는 [허영]과
오지랖 넓어 남의 일에 참견했어요/ 나서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그것이 바로/ 내게 등 돌린 까닭이 되었어요// 거드름피우며/ 남을 업신여기는 것/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만 기울어진 판단으로 말이어요// 살아온 날들의 여정을 뒤돌아보며/ 내 앞지락을 주섬주섬 펼쳐 보았어요/ 여물지 못한 편견 때문에 그랬던 것을/ 아주 늦은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라는 [오만]을 끊임없이 반성하고 성찰하며, [살고 싶어요, 구해주세요]라는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을 거쳐왔던 것이다.
꼴찌만 하던 내가 저물어가는 황혼의 길목에서 머리가 트였나보다 방금 하던 일도 몇 발짝만 옮기면 잊어버려 제자리 오고야 생각이 난다
그러던 내가 변했다 지독한 사람들이 한다는 독학 눈 감고 사물을 만져 기억해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느리지만 하면 된다는 집념 하나로 버텨온 찰거머리의 근성으로 자신은 있다
나는 지금 또 하나의 도전을 하며 씨름 중이다 책 속에서 스승을 만났고 무궁무진 펼쳐진 세상을 보았다 우울증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쓴다
나는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난다 유년의 철부지로 돌아간다 색칠을 한다
꽃 한 송이가 묶인 채로 바다에 던져졌다 뭍으로 나가고 싶지만 나갈 수 없다 가벼워서 살아있다 둥둥 떠 있다
오늘 숙제는 그림 두 점 색칠하기다 내 신세와 닮은 제목은‘얽혀있는 속마음을 들여다보세요’이다
나의 간절한 절규“나는 바다에 던져졌어요. 구해주세요. 길이 막혔어요. 뭍으로 나가고 싶어요.”이 말뿐이다
매일이 악몽인 오늘의 주제다
----[살고 싶어요, 구해주세요] 전문
허영이란 무엇이고, 오만이란 무엇인가? 허영이란 자기 자신의 지식이나 경제적 능력에 걸맞지 않게 겉(겉치레)만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말하고, 오만이란 자기 자신의 지식이나 경제적 능력에 걸맞지 않게 타인들을 무시하고 깔아뭉개버리는 오만불손한 태도를 말한다. 젊었을 때는 자기 자신에게 정직하고 속치레를 갖추려고 애를 썼지만, 어느 날부터 겉치레에 눈이 박혀 명품을 좋아하게 되었다. 허기진 마음을 달래려고 명품사냥으로 배를 채웠고, 해볼 짓 다 해보고 갖고 싶은 것 다 가져보았지만, 그러나 나이가 들고 제정신을 차리고 보니 모든 것이 다 부질없어 보였던 것이다. 이처럼 [허영]의 한가운데에서 헤엄을 치다보면 자기 자신의 처지와 위상, 이 세상의 참된 진리와 허위, 모든 사물들의 이름과 가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오지랖 넓어 남의 일에 참견”하게 되고, 타인들의 의사와 주체성을 무시한 채, 지나친 편견과 [오만]으로 모든 불화를 연출해내게 되었던 것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배운다는 것이며, 배운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내려놓는다는 것이다. 반성과 성찰은 도덕적 정당성(윤리학)의 두 축이며, 이 반성과 성찰의 결과에 따라 한 시인의 위상이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시학은 윤리학이며, 이영월 시인의 [허영]과 [오만]은 그의 윤리학에 맞닿아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반성과 성찰은 자기 자신을 발가벗긴다는 것이며, 이 발가벗음의 토대 위에서, 최초의 시원으로 되돌아가 그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전생애를 건 모험이며, 세계적인 대사건이며, 새로운 시인으로서의 출발이 이 반성과 성찰에 달려 있다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 결과, 허영과 오만에 빠져있던 그가 변했고,“지독한 사람들이 한다는 독학”의 길을 시작하게 되었다. 느리고 더디지만 하면 된다는 집념과 한번 시작하면 포기하지 않은 찰거머리 근성으로 수많은 스승들을 만났고, 보다 넓고 큰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나 아직도 나는 유년의 철부지, 아니, 망망대해를 표류하고 있는 얼치기 시인에 불과하고, “나의 간절한 절규, 나는 바다에 던져졌어요. 구해주세요. 길이 막혔어요. 뭍으로 나가고 싶어요”라는 악몽같은‘오늘의 주제’와 싸우고 있을 뿐인 것이다.
하나의 신전이 세워지기 위해서는 수많은 신전이 무너지지 않으면 안 되고, 한 사람의 시인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죽었다가 되풀이 살아나지 않으면 안 된다. 허물을 벗지 못한 뱀이 파멸할 수밖에 없듯이, 기존의 역사와 전통, 모든 가치의 기준표들을 파괴하지 않으면 그는 진정한 시인으로 탄생하지 못한다. 시인은 아버지를 살해한 신성모독자이자 모든 가치기준표를 파괴한 범죄자이며, 동시대의 미풍양속을 살해한 파렴치한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창創자에는 칼도刀자가 들어 있고, 모든 시인은 전제군주로서 모든 사물의 이름과 가치를 자기 자신의 앎(지혜)의 보호 아래 두고 있는 것이다.
이영월 시인의 [살고 싶어요, 구해주세요]가 시인을 위한 고통의 지옥훈련과정(입문의례과정)을 노래한 시라면, [늙어서도 꿈을 꾼다], [접목의 꿈], [날개], [황금 갯벌], [김칫독] 등은 그 악몽같은‘오늘의 주제’와 맞서 싸우며 이루어낸 제일급의 탁월한 시적 성과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악몽은 길몽이 되고,“매일 시 쓰며/ 당신 그리다 죽는 꿈”([늙어서도 꿈을 꾼다])은 현실이 되고,“비단길같이 매끄러운 참벌”은“정년도 해고당할 일도 없는 만년 일터”가 되고,“어매들의 놀이터”[황금 갯벌]은 만년 청춘인 이영월 시인의 영원한 시의 텃밭이 된다.
고욤나무에 대봉 매달리는 꿈 안고 산다
상처가 주는 아픔을 견딜 수 있는 것은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다
조개 속의 진주가 그냥 반짝일 리 없다
속살에 상처 아물고
고통을 견디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예술은 창작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
홀로가 아니라 접목인 것이다
나는 시詩를 쓰고
당신은 하늘을 보고
한때 노래하고 춤추며 행복했지
필드에서의 푸른 초원이 내 것처럼 드넓었다
나는 여전히 시詩를 쓰고
당신은 요양원에 누워있지만
당신을 안아줄 수 있는 느티나무로 우뚝 서리라
머잖아 시인의 마을에 시가詩歌 소복이 쌓일 것이다
나는 오늘도 접목의 페달을 밟고 노래한다
----[접목의 꿈] 전문
꺾인 날개는 좀처럼 날지 못했다
온몸 굴려 굴렁굴렁
시작詩作을 알리면 반은 이룬 게지
쓴 내 나는 외로움과
쓰디쓴 절망이 온다 해도
쓰러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비상을 꿈꾸다 추락하는 꿈
나비의 날개 그리다 찢긴 생生
모든 사람 비웃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텨왔다
때때로 불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부나비 되어 한 줌 재 되어
흔적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자식 걱정 남편 걱정
이 나이에 무슨 부귀영화가 필요하랴
나날이 지는 낙엽인 것을
태어난 죄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나도 살맛 나는 세상 구경 떠나고 싶다
시시때때가 시시때때詩詩時時 되도록
날개 펴고 훨훨 훨훨
날아보고 싶다
----[날개] 전문
이영월 시인의 꿈은 [접목의 꿈]이 되고, [접목의 꿈]은 [날개]의 꿈이 된다. 고욤나무에 감나무를 접목하지 않으면 대봉이 주렁주렁 열릴 수가 없듯이, 고통과 싸우며 고통을 참고 견디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만인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시를 쓸 수가 있는 것이다.“조개 속의 진주가 그냥 반짝일 리 없다/ 속살에 상처 아물고/ 고통을 견디는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하다”,“예술은 창작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것/ 홀로가 아니라 접목인 것이다”,“나는 여전히 시詩를 쓰고/ 당신은 요양원에 누워있지만”, 나는 언젠가, 어느 때는“당신을 안아줄 수 있는 느티나무로 우뚝”서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여전히“접목의 페달을 밟고”있는 것이다. 페달을 밟는다는 것은 달린다는 것이며, 달린다는 것은 하늘을 날고 싶다는 것이다. 이 [날개]의 꿈, 이 비상의 꿈을 위해“쓴 내 나는 외로움과/ 쓰디쓴 절망이 온다 해도/ 쓰러지지 않으리라는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하게 된다.“비상을 꿈꾸다 추락하는 꿈”과“나비의 날개 그리다 찢긴 생生”따위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도 없고, 오직“살맛 나는 세상”을 위해“시시때때가 시시때때詩詩時時 되도록/ 날개를 펴고 훨훨 훨훨/ 날아보고”싶은 것이다. 인내는 쓰디 쓰지만 그 열매는 달고, 고통은 짧지만 시인의 이름과 행복은 영원하다. 쾌락은‘고비용-저효율 구조’를 자랑하고, 고통은‘저비용-고효율 구조’를 자랑한다. 고통을 참고 견디며 고통의 머릿채를 휘어잡고 고통을 충신忠臣으로 삼을 수 있을 때, 바로 그때에는 죽음의 신마저도 시인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이영월 시인은 지혜와 용기와 성실함의 삼박자를 다 갖춘 무위자연의 철학자이며, 그는 이 세상을 더욱더 넓고 아름답고 풍요롭게 바라다 보는 낙천주의자가 된다.
나무도 나이를 먹으면 골다공증이 생기나 보다
제 몸 헐어 텅 빈 속을 채우려 그 속에 김칫독 하나 묻었다
----[김칫독] 전문
우리 한국인들의 자랑이자 우리 한국인들의 영원한 입맛인 김치, 배추를 소금에 절였다가 고춧가루와 마늘과 파와 생강과 온갖 양념을 다해 버무린 전인류의 발효식품인 김치----. 이영월 시인의 [김칫독]은 그의 고통의 지옥훈련과정과 절차탁마의 장인정신이 빚어낸 제일급의 시이며, 만인의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명시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일찍이 어느 누가 육체적인 노화현상인 골다공증을 제몸을 헐어 비운 김칫독이라는 말로 미화시킨 적이 있었고, 또한, 일찍이 어느 누가 온몸으로, 온몸으로 쓴 시를 전인류의 발효식품인 김치로 미화시킨 적이 있었단 말인가? 시인은 이 세상의 삶의 본능을 옹호하는 찬양자이며, 그의 언어는 천하제일의 김치처럼 그 맛이 천리, 만리 퍼져나간다. 시는 낙천주의를 양식화시킨 것이다. 자유와 평등과 사랑처럼, 또는 친구와 술과 김치처럼, 오래오래 묵을수록 그 세월 두께만큼이나 그 맛이 더 깊어지고 천하제일의 진미가 되는 것이 시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무위자연’이란 그저 놀고 먹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행동을 사물의 이치와 자연이 이치에 따라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동물에게는 동물의 삶이 있고, 식물에게는 식물의 삶이 있다. 곤충에게는 곤충의 삶이 있고, 인간에게는 인간의 삶이 있다. 산에게는 산의 삶이 있고, 강에게는 강의 삶이 있다. 사치와 허영과 오만과 편견을 버리면, 즉, 그 모든 이기주의와 탐욕을 버리면, 전인류의 발효식품인 시와 예술처럼, 너와 내가 손을 맞잡고 이 세상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향유할 수가 있게 된다.
하늘에서 줄이 내려왔다
금 동앗줄이 내려왔다
나는 나팔꽃
나는 능소화
나는 바람 태우는 담쟁이
나의 참새와
나의 종달새와
나의 날개 닮은 나비
죽어라 줄에 매달려
지구 한 바퀴 돌리라
죽어라 줄 당겨
내 꿈 이루리라
줄, 줄, 줄을 타고
목청껏 노래 부르다 떠나리라
----[시작詩作의 기회機會] 전문
“나는 나팔꽃/ 나는 능소화/ 나는 바람 태우는 담쟁이”, 즉, 덩굴식물을 보고 하늘에서“금 동앗줄이 내려왔다”는 이영월 시인의 상상력은 새롭고, 이 새로움의 역동성에 의해서 인간의 존재는 새의 존재로 탈바꿈을 하게 된다. 나는 참새이고, 나는 종달새이며, 나는 나의 날개를 닮은 나비가 된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 센 것은 상상력이고, 이 상상력은 태양보다도, 천지창조주보다도 더 힘이 세다. 왜냐하면 모든 상상력은 인간 중의 인간, 즉, 시인의 영혼과 육체로 만든 언어의 발효식품이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동앗줄이고, 시인은 이 동앗줄에 매달려 만년주유권萬年周遊券을 산 우주여행자가 된다.“죽어라 줄에 매달려/ 지구 한 바퀴 돌리라”와 “죽어라 줄 당겨/ 내 꿈 이루리라// 줄, 줄, 줄을 타고/ 목청껏 노래 부르다 떠나리라”의 예언자적 외침과 그 의지가 바로 그것을 증명해준다.
이영월 시인의 아모르 파티, 즉, 니체적 의미에서 운명에 대한 사랑은 [시작의 기회]가 되고, 그는 이 [시작의 기회]를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팔과 다리로 움켜잡았던 것이다. 시인의 사랑은 운명에 대한 사랑이며, 이 운명에 대한 사랑이 그의 시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상상력은 태양보다도, 천지창조주보다도 더 힘이 세지만, 시인은 그 어떤 상상력보다도 더 힘이 세고, 이 시인의 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이 어렵고 힘든 세상을 참고 견디며 살아오지 못했을 것이다.
이영월 시인의 시적 힘은 지혜이고, 지혜는 상상력이고, 그는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이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시인이 되었다.
자연인의 아내이었다가
어부의 아내이었다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가
지금은
당신의 마지막 여인이고 싶습니다
시인으로
다시 태어나
만인의 연인이고 싶습니다
----[숲의 미로] 전문
이영월 시인의 [숲의 미로]의 숲은‘자연의 숲’이 아닌‘인간의 숲’이며, 그는 이‘인간의 숲’에서 유교적인 전통과 역사와 윤리관을 단번에 초월해버린다. 자유로운 인간은 한계와 경계를 모르고, 그 어떤 구속이나 제약도 모른다.“자연인의 아내이었다가/ 어부의 아내이었다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가// 지금은/ 당신의 마지막 여인이고 싶습니다”라는 시구처럼, 그는 [숲의 미로]의 주인이며, 탈선과 도약, 존재론적 건너뛰기와 존재론적 전환을 자유자재롭게 구사한다. 모든 것이 물이 흐르듯이 순조롭고, 그 어느 것을 해도 모자라거나 넘치는 것이 없다. 인간의 얼굴과 성격과 인품과 취향과 직업이 다르고, 그가 살고 있는 자연의 환경과 역사와 전통이 다르듯이, 이처럼 다종다양한 사람들과 살아보며, ‘만인들의 연인’으로 태어나고 싶다는 꿈은 어느 누구나 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꿈 중의 꿈은 시인의 꿈이며, 이 꿈은 역사와 전통, 문화와 풍습, 자연의 지리와 그 환경을 벗어나 만인들의 꿈이 된다. 그 꿈이 비록,“시인은 헛것만 밝히는 건달”,“시인은 빈털터리”,“뜬구름 잡고 사는 바보”([시인의 밥])라는 헛된 꿈일지라도, 시인은‘만인의 연인’이며, 이 ‘만인의 연인은 우리 인간들의 근본적인 사랑의 원형이라고 할 수가 있다.
만인의 연인, 이영월 시인의 초대는 숲으로의 초대이고, 이 숲으로의 초대는 너와 내가 우리가 되고, 모든 산새와 들짐승들과 그 모든 나무들이 함께 하는‘무위자연으로의 초대’이다.
숲은 미로이고, 이 미로 속에는 만인의 연인들이 산다. 이영월 시인의 {하늘길 열리면 눈물의 방]은 아름답고 멋진 신세계이며, 감격 자체의 눈물의 방이고, 우주적인 멋진 숨쉬기가 가능한 꿈의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