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집 수돗물 보급은 제 집 곁 메인 계량기로부터
아래 쪽으로 쭈욱 휀스 곁을 타고 내려가다
마을 정문을 돌아 사도(私道) 안쪽으로 흘러들어갑니다.
새로 입주한 두 집 입구에다 각각 계량기를 달 예정이라
제 집도 시설하기 좋게 이참에 정비를 하였죠.
벌개미취를 꺼내고 크로커스미어를 캐고 비파나무와 무궁화를 옮기면서
납작돌로 에둘렀던 수돗가도 새단장을 하였어요.
'다섯' 집을 '하나'로 울타리를 두른 '도담마을'은
아직 두 사람은 집을 짓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개인과 공동체적 긴장이 은근하답니다.
서로 몰라도 어렵고 서로 잘 아는 사이여도 쉽지 않다는 것이
새삼스럽습니다. 개별 계량기 설치가 엄연하듯
모든 경계가 뚜렷하고 나눔과 절제도,
공동 공간의 질서도 필요하단 것을
솜솜이 공부하고 있어요.
저 다섯 고양이 새끼들을 보면서두요...
어엿하고 탐스런 새끼들을 몰고 와
우리 다섯 공간을 넘나들며 배워주는
자유롭고도 착한 절제!
분할과 고저와 사도와 축대 간의 선,
협력과 예절과 스침과 나눔의 도,
빗물과 바람과 햇살과 소리의 길...
인자는 새끼들이 다 커서 털빛만으로는
어미와 새끼를 분간하기 어려워졌어요.
어미를 닮은 새끼 둘은 덩치와 옷차림이 비슷하죠.
아무래도 흙장난을 하는 양이가 새끼, 웅크린 양이는 어밀 터.
조용하고 깔끔하며 부드럽고 영특한...
괭이 마을의 한때입니다.
어제는 약수터엘 갔어요.
약수터 하면 꽤 깊은 골짜기 절집 풍취를 떠올리시겠지만
우리가 다니는 곳은 편도 1차선이 놓인 한적하고 호젓한 산자락이죠.
근동에서 농사를 짓는 한 노인이 이곳의
작은 옹달을 발견하고 호스를 넣어 샘물동이를 연결해 놓은 것.
이 호스에 거름망을 끼워 우린 두 시간을 앉거나 서서
패트병과 생수통에 가득 채웁니다.
곁님이 물을 담아 엉덩이 곁에 놓으면
저는 모아다가 차 트렁크에 올리는데 그것도 잠시.
곁님의 곁님은 어느새 사라져 숲길을 오르기 일쑤죠.
그러다 덤으로,
별 쓸모 없어 보이는 저 거친 각돌들을 어루만지고
누기가 깊은 기슭으로 널려 있는 이끼를 걷어 오기도 합죠.
피차 부평초 같은 풍신 아니냐
우리 새 정처에서 애틋이 마음조각 한번 맞추자꾸나...
이끼를 들꽃처럼 아껴 본 적이 없고 지난 전원주택에서도 코웃음쳤던
풀 같지 않고 꽃답지 아니하던 사이였건만!
외로우면 통한다구요?^^
언덕은 물빠짐이 좋은 대신 건조한 단점이 있죠.
그래서 마당에 연못을 파고 갤러리 앞쪽으로
요기다 싶게 이끼를 심어봤지만 성공적이진 못했어요.
애당초 이곳 도담은 노력한다고 파래질 이끼터는 아니였던 것.
그리하여도 될수록 서북사면쪽으로,
되도록 다른 나무나 화초 아래 그늘에,
것도 모두 털깃털이끼로 계속 쓰다듬었어요.
털깃털이끼는 바짝 말라도 물 한 모금에 냉큼 되살아나고,
다른 꽃들에게 오래 목을 축여주며,
미니멀의 동급 도전자 화초에게도 선선히 자리를 양보하며,
다른 여러 꽃들과도 친하면서 그럭저럭
초록이라는 '공공의 善'을 추구한답니다.
평화로운 상생의 촉매자 내지 중재자 같습니다.
이제부터 저는
지배적 위력을 뽐내는 지피식물과 저 털깃털이끼가
한 공간을 살게 허락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끼도 편하고 다른 꽃들도 넉넉하도록 안배?해서
이끼는 이끼대로 윗꽃을 빛내주고
꽃은 꽃 대로 아랫이끼를 돋보이게 하는바
보편적인 도덕률, '공통의 선'을 추구하갔습네다.
요고이 저 거친 돌과 암도 거들떠보지 않는 이끼를
이 정원의 중심에 높여주는 이유.
이 작은 뜰사회에도 합리의 정치가 있고
상식의 경영이 존재하나 봅니다.
'욕심'이 이겨낼 수 있는 급성 잔병치레라면
'욕심쟁이'는 좀처럼 낫기 힘든 난치의 만성병입니다.
지피식물을 심으면서 낮고 넓게 눈이 설레었다면
이끼를 심으면서는 호호 부는 반창고 입술을 느끼는 거죠.^^
웃자란 너와
나의 무성함을 붙들고
선선히 함께
낮아지는 일
낮은 바람 속삭이는
풀잎 새로
두 손을 내밀어
소슬히 함께
평활해지는 일
하여, 지상의 겨움이
사뿐 우리로
가벼워지게 하는 일을
풀잔디를 자르며 배운다
등뒤에 강아지 물먹는 소리
깔짝깔짝 귓불을 간질이고
이 가을
오도카니 앉은
존재의 한유閑裕에
아침햇살 뜨스히 즐겁다
- 졸시집<아주 오래된 외출>에서
잔디에 마사토를 입히면서
"응, 잔디가 겨울에 추우니까 이불 덮어주는 거야~"
소꿉놀이처럼 손녀와 잔디밭에 쪼그리고 앉아 오간 말.
"응? 엄마도 잔디지이??..."
초록은
꽃들의 이부자리고,
비와 바람과 서리와 눈꽃송이들의 구들이며,
우리들 샐녘의 고향집,
눈 뜬 아침햇살의 에덴...
이끼처럼 숼한 풀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심기 쉽고, 죽지 않으며, 자리를 덮되 차지하지 않으며,
응달을 지향하고, 낙엽을 살라먹으며, 꽃도 없이 포자를 치는
오, 첩첩하고 묵묵하며 습습하고 넉넉하나니!
이끼를 풀고 덮다가 털깃털이끼가 아닌,
= 첨 보는 이끼가 따라나왔구나...
이것 아무래도 귀해 보이니 가운데다 심어줄까...
이참에 이끼 책이나 하나 사야겠어.....
아는 이름이 몇 없다...
부채이끼, 괴불이끼, 솔이끼, 우산이끼, 방울이끼
그리고 흰털이끼...
바위 겉에 붙어 있는 조 이끼 이름은 뭘까...=
이렇게 엎드려 계속 혼자 중얼거렸답니다.
저 돌에 붙은 녀석은 물을 주면 1초도 안 되어
초록으로 쓰윽 변신합니다. 미역 같아요.
신기하기로야 열 이끼 중에서 으뜸일겝니다.
또한 저 피부의 색깔과 얼룩과 버짐과 검버섯 같은 산석(山石)께도
산신령 앞인 듯 내 나이를 까 바쳐서
박인 시간과 끼인 공간의 역사에 존경을 표하는 바입니다.
요 이끼를 흰털이끼라 카는데 비단이끼라고도 하고,
인터넷에서 어떤 이가 송이이끼라 부르며
분화용으로 파는 그림도 보았어요.
자주 볼 수 없는 '귀한' 이끼라는 점은 확실해요. 모냐면,
하여간 옹담샘에 통을 걸어놓고 나몰라라 너덜겅 숲길을 따라 덜겅덜겅 오르니
이마에 땀이 쪼르륵 흐르는 높이에서나 만난다 이겁지요.ㅎ
송이버섯처럼 동글동글한 것이 특징인데
그것들이 영역을 넓히다가 서로 살이 맞닿으면
둥글벙글 비단처럼 매끄럽게 펼쳐져
기모 든 옷 안감이거나 수면바지처럼 보드라와지죠.
그 쎄디 쎈 땅주름잎의 병사들 틈에서도
휩쓸리지 않고
그 너울로 밀려드는 겹물망초나 옐로우체인 속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는 담력으로,
거친 땅이며 늙은 나무며
아무 돌에게도 잘 입혀 주는 모성적 품성.
흙과 이끼의 숨통을 조이는 저 왜맥문동의 힘,
그 틈에 끼어서도 가만가만 웃어줍니다.
'나루'는 사철 저 털깃털이끼 덕분에
화분처럼 단정하고 고운
'개 화단' 을 즐긴답니다. 그뿐이겠습니까?
서리 눈 속에 빛나는 저 초록을
점심 때 이 마을을 산책하는 학교 선생님들이나,
말 어른들, 면 직원들 글고
여그저그서 쬧겨다니며 언덕을 끄덕끄덕 배회하는
깍두기 흑염소떼에게도 이끼는
아낌없이 손사래를 흔들며
초록 입술을 뽕뿅 날려보낸답니다.
실내에서는 역시 흰털이끼가 일등이죠.
어떤 이끼처럼 까매지지도 않으며, 물색을 잃고 누래지지도 않는
청회색빛 순한 초록을 조금씩 늘려주어요.
우산이끼는 실내화단사회에서 그리 예쁨은 덜 태우지만
제 이끼 사랑의 가슴팍 안에 들어있어요.
종족유지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죠.
이끼세상 만세!
괭이나라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