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다물 타봉술 多勿 打棒術
그소년들의 자치기 놀이가 끝날 무렵
그 때 ,
한무리의 기마병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같이 달려왔다.
3마리의 말들은 모두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무척 다급하게 먼 길을 달려 온 것 같았다.
“너희들 중에 박지형이 있느냐?”
그 중 험상궂게 생긴 기마병이 어린애들을 향해 큰소리로 닦달하듯이 소리치자,
이에 겁먹은 꼬마 한 명이 “쟤가 박지형인데요” 하며 박지형을 오른쪽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놀란 박지형은 얼른 자신보다 가위 뼘만큼 키가 더 큰, 이중부의 등 뒤쪽으로 숨는다.
그때 두 필의 말이 또, 공터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중 적갈색 말을, 탄 한 명은 견고한 장수 將帥 갑옷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서 그들의 인솔자인 듯하였다.
우악스러운 기마병은 마상에서 그대로 왼손을 뻗어 박지형의 목덜미를 낚아채려 하였다.
그러자, 박지형의 앞에선 이중부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좀 전에 자치기하던 어미 자로 기마병의 내뻗는 왼손을 가로로 막는 자세를 취하더니, 좌에서 우측으로 먼지떨이로 벽의 먼지 쓸듯이 2번에 나누어 막았다.
날렵한 꼬마의 막대기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소년의 묘한 막대기 방어술에 놀란 기마병, 급히 왼 손을 회수하면서 오른손은 말 고비를 다그쳐 움켜쥐며, 왼손은 다시 큰 원을 그리며, 이제는 목표 대상을 바꾸어 꼬마 이중부의 막대기를 낚아채려 했다.
그런데 중부는 이미 기마병의 공격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듯이 어느새, 막대기를 곧추세워 오히려 기마병의 손바닥 중심, 장심 掌心을 날카롭게 찌르고 있었다.
“헉!” 방심했던 기마병이 얼른 손을 위로 들어 올려 막대기를 피하였다.
손바닥이 막대기에 찔리지는 않았지만, 꼬마의 막대기를 피하려다 마상 馬上 위의 자세가 보기 흉하게 흐트러졌다.
기마병은 등이 써늘해짐을 느낀다.
기마병의 왼손은 하릴없이 허공을 향해 한 바퀴 반을 회전시킨 후, 머쓱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자세를 다시 바로잡은 후, 재차 공격 자세를 취했다.
누가 봐도 이번, 두 초식의 겨루기는 꼬마 이중부의 우세다.
만약, 이중부가 막대기를 거두어 들이지 않고, 계속 공격하였다면 기마병은 마상에서 떨어졌을지도 모를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물론,
기마병이 상대를 어린 꼬마로 인식하여 주의하지 않고, 단순히 완력 腕力만으로 행사한 방심 放心이 잘못이지만,
그렇지만 이중부의 손에 들린 자(尺)작대기는 좀 전의 자치기용 가느린 단순한 작대기가 아니라, 하나의 봉 棒처럼 막대기로서의 무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주위의 다른 소년들 역시,
모두 이중부의 작대기 다루는 모습에 놀란다.
특히, 아랫마을 주장이라는 한준이란 소년의 눈이 이채롭게 빛난다.
이중부의 옆 모습을 새삼스럽게 한 번 더, 이리저리 살피며 노려보는 눈빛이다.
순간,
“헛! 다물 타 봉술이다”
뒤에 나타난 적갈색 말을 타고 있던, 인솔자로 보이는 갑옷의 중년 기마병이 놀라,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로 외쳤다.
다섯 필의 말을 타고, 선후 先後로 나타난 기마병들은 같은 무리로 보여진다.
“예서 부여 夫餘의 비기 祕技 ‘다물 多勿 타봉술 打棒術'이 나타나다니”
“장영 아우는 잠시 물러나 있게”
장영이라고 불리운, 기마병은
“네. 강교위님” 하더니 불만을 삭이고, 한편으로 비켜섰다.
허리에 묵도 墨刀를 찬, 적갈색 말 주인, 강 교위는 중부를 바라보며,
굵직한 목소리로
“네 이름이 뭐지?”라고 묻는다.
갑옷을 입고있는 장군 차림새의 위풍당당한 모습의 강 교위에게 이미 주눅이 든 꼬마 이중부.
자신도 모르게 공손히 대답한다.
“이중부라고 합니다”
“그럼, 중부 너희 집은 어디냐?”
중부는 동네 어귀의 대나무가 있는 갈대 지붕 집을 가리키며
“저쪽 집 입니다”
“방금 펼친 타봉술은 누구에게 배웠느냐?”
“글쎄요?” 대답이 시큰둥하다.
“몇 살이지?”
“11살요”
“언제부터 그 타봉술을 연마했지?”
“한~두어 해 될 것입니다”
* 사진 - 태산
3. 산동 山東
중국내륙의 동쪽 끝, 황해 부근은 지평선만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언덕배기 하나 보이질 않는다. 산동성의 동해안 東海岸이다.
그 지평선 위, 서쪽 방향으로 해발 1,535m의 높은 산이 우뚝 솟아있다.
태산 泰山이다.
실제 내륙의 높은 산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평범한 높이지만(실제 한반도의 강원도 오대산 높이 (1,561m)보다도 낮다) 전반적으로 평지(해발 10여자 내외)에 자리 잡고 있다 보니 아주 높은 산으로 보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인 묵객 墨客으로부터 수 많은 찬양 讚揚을 받아왔다.
실은,
유명세 有名稅를 타는 또 다른, 더 큰 이유가 있다.
제왕이나 황제는 제위에 오르면 꼭 이곳, 태산에서 등극 登極 행사를 거행한다.
중원내륙 中原內陸에는 더 높고, 더 아름다운 풍광 風光을 자랑하는, 고산준령 高山峻嶺들이 부지기수 不知其數임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태산에서 등극행사 登極行事를 치려야 했다.
그래야 진정한 황제로 인정 받을수 있었다.
그 사유 事由는,
원시시대 原始時代부터 태산 泰山을 비롯하여 산동성과 동부 東部의 황해 黃海 해안선 海岸線 지역은 동이족 東夷族인 조선인들이 터를 잡고, 태고 太古부터 오랜 기간 생활해 왔었다.
여타지역과 비교해 자연산물들이 풍부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여들고, 인구가 늘어나자 공공의 질서를 지킬 필요성이 대두 되었다.
따라서,
지배층과 권력자들이 나타나고, 그렇게 국가 國家의 틀이 갖추어지자 그 지배층은 자신들의 권위를 세울 수 있는 상징 象徵이 필요하였다.
그래서 그 지역에서 가장 높은 산 山인 태산을 권위의 상징으로 여기고, 신성한 장소로 만들어 제를 올리고 국가의 큰 행사를 거행하는 장소로 태산을 활용하게 되었다.
또한, 산동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넓은 평야와 강과 바다를 접해 자연산물이 풍부하여, 경제와 문화가 앞선 선진화 先進化 된 지역으로, 오랜 세월을 그렇게 지내다 보니 자연스레 태산이 최고의 신성 神聖한 산이 되었다.
오랜 기간 피지배층 被支配層이었던, 하화 夏華족들이 자신들의 무리가 많아지고, 따라 세력이 커지자 동이족을 배척 排斥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오랜 세월 동안 대 代를 이어가며 보고 듣고, 배운 게 지배층 동이족들의 풍습 風習이라 이를 그대로 답습 踏襲한 것이 전통 傳統이 되고, 관습화 慣習化되어 버렸다.
그렇다 보니, 내륙에 더 높고, 더 깊고, 더 아름답고 신비로운 고산준봉 高山峻峯들이 즐비 櫛比해도 이들을 다 배제 排除하고
굳이,
동이족들의 터전이었고 동이족들의 관할인 태산을 가장 우러러보고 신성시 神聖視하게 된 것이다.
아무리 비싸고 질 좋은 명품이라도 서민이 갖고 있으면 하찮아 보이고, 일반 시장에서도 구할 수 있는 평범한 물건이라도 왕족이 지니고 있으면 대단한 명품 名品처럼 보이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동이족의 터전에 자리한 태산이 그렇게 특별한 우대를 받아 왔었다.
’태산명동서일필‘ 泰山鳴動鼠一匹, ‘하늘 아래 태산이라’, ‘티끌 모아 태산’ '걱정이 태산이다' 이러한 격언 格言이나 속담 俗談도 생겨나고, 지금도 인구 人口에 회자 膾炙되는 바이다.
산동성의 황하 이북의 서북쪽 하북성에는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린 험준한 산맥이 있다.
태항산맥(太行山脈)이다.
태항산맥의 서쪽 지역 즉 장안, 낙양 등이 있는 곳을 관중 지역이라 부르며, 춘추전국시대와 삼국지의 시대 배경까지는 하화족의 주요 역사의 현장이었다.
* 관중 關中
관중 또는 관중분지 關中盆地, 관중평원 關中平原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역사적으로 서안 西安을 중심으로하여 북쪽의 소관 蕭關, 서쪽의 대산관 大散關, 남쪽의 무관 武關. 동쪽의 함곡관 函谷關 사이의 평원을 가리키는 지명 地名으로, 현재의 중국 산서성 중부와 하남성 서단 西端을 포함한다.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관문은 관중과 화북평원을 분리하는 동쪽의 함곡관이다.
* 중원 中原
관중에서 동관 東關인 함곡관을 지나면 동쪽에 넓은 평원이 나타나는 데 이를 중원中原이라 칭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중원천하 中原天下라 부르는 구체적인 지역은,
황하의 남쪽 하남성과 황하 건너편 북쪽에 위치한 하북성의 남쪽 일부, 산동성의 서쪽 일부, 그리고 태항산맥과 황하 사이에 있는 산서성의 남쪽 일부 지역을 말한다. 그러니까 황하의 하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후대에 와서는 더 넓은 의미로 앞서 말한, 중원지역에다 관중 지역을 합하여 중원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춘추전국 春秋戰國시대의 주 전장 戰場터로 갖가지 병법 兵法이 난무 亂舞하고,
수 많은 명장 名將들이 등장하는 중원지대다.
그러니까 이 중원지역이 하화족의 본래 영역이다.
현재, 중국의 영토 중, 3할에도 미치지 못한다.
더구나 당시, 그 3할 중의 태반 太半은 동이족 관할 管轄이었다.
산동 山東이란
지명은 남북으로 길게 뻗어내린 험준한 태항산 太行山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어 산동성 山東省이라 부른다.
따라서 태항산맥의 서쪽은 산서성 山西省이다.
- 17. 원보
첫댓글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매일 읽으려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