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文鄕) 강릉(江陵)
3 여류작가의 메카(Mecca) 예향(藝鄕) 강릉(江陵)
강릉은 일찍부터 문학과 예술의 고을로 이름을 떨쳤지만, 특히 재능이 뛰어난 여성들을 수없이 많이 배출하여 여류작가들의 메카로 일컫고 예향(藝鄕)으로 꼽힌다.
강릉은 수많은 학자와 문인들을 배출하였는데 남성들은 일단 미뤄놓고 이름을 떨친 여성들을 꼽아본다.
<1> 신사임당(申師任堂)
조선 연산군(燕山君) 10년(1504), 강릉 오죽헌에서 태어난 사임당은 평산신씨(平山申氏) 신명화(申命和)를 아버지로, 어머니는 용인이씨(龍仁李氏) 이사온(李思溫)의 딸이다.
사임당은 19세에 덕수이씨(德水李氏)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하여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학자요 경세가(經世家)인 아들 율곡(李珥)을 이곳 강릉 오죽헌(烏竹軒) 몽룡실(夢龍室)에서 낳는다.
사임당은 4남 2녀를 두었는데 3남 이이(李珥)는 조선의 위대한 스승으로, 막내아들 이우(李瑀)는 뛰어난 서화가(書畵家)로, 큰딸 이매창(李梅窓)은 자신의 재능을 승계한 미술가로 키워냈다.
오죽헌(烏竹軒) / 몽룡실(夢龍室) / 문성사(文成祠-율곡 위패를 모심)
당호(堂號) 사임당(師任堂)은 중국 고대 주(周)왕의 왕비였던 태임(太任)을 본받는다는 의미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여성을 대표하는 현모양처로 인정되어 5만 원권 지폐에 앞면에 초상화가 들어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뒷면에는 사임당의 큰딸 이매창의 매화도(梅花圖), 5천 원권에는 앞면에 아들 율곡의 초상화, 뒷면에는 사임당이 그린 초충도(草蟲圖)가 들어가 있다. 사임당은 현모양처이기에 앞서 뛰어난 문학가이자 예술가였으니 강릉을 여성 예술의 메카(Mecca)요, 예향(藝鄕)으로 이끈 선구자라 할 수 있으며 사임당의 시(詩), 글씨(書), 그림(畵)을 보면 당시로는 추종을 불허하는 위대한 예술가였음을 알 수 있다.
일찍부터 예술적 자질을 보인 사임당은 7세에 안견(安堅)의 그림을 스스로 사숙(私淑)하였다고 하며 사임당이 남긴 그림, 글씨, 시들을 보면 너무나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림은 풀벌레, 포도(葡萄), 화조(花鳥), 어죽(魚竹), 매화(梅花), 난초(蘭草), 산수(山水) 등이 주된 화제(畫題)이다.
모두 생동하는 듯 섬세한 사실화여서 풀벌레 그림을 마당에 내놓아 볕에 말리려 하자 닭이 와서 살아있는 벌레인 줄 알고 쪼아서 종이가 뚫어질 뻔하기도 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그림은 채색화(彩色畵), 묵화(墨畵) 등 약 40폭이 전하는데 ‘자리도(紫鯉圖)’, ‘산수도(山水圖)’, ‘초충도(草蟲圖)’, ‘노안도(蘆雁圖)’, ‘연로도(蓮鷺圖)’, ‘요안조압도(蓼岸鳥鴨圖)’ 등이다. 글씨로는 초서(草書)로 쓴 ‘신사임당초서병풍(申師任堂草書屛風)’ 6폭과 해서(楷書) 한 폭이 전한다.
자리도(紫鯉圖)는 물고기 잉어(鯉)를 그린 그림이고 노안도(蘆雁圖)는 물가 갈대밭에 기러기가 노는 그림, 연로도(蓮鷺圖)는 연꽃과 해오라기, 요안조압도(蓼岸鳥鴨圖)는 여뀌가 자라는 물가에 새와 기러기 떼가 나르는 그림이다.
1868년 강릉부사로 온 윤종의(尹宗儀)는 초서 병풍을 보고 글씨를 판각하여 오죽헌에 보관하면서 발문을 썼는데, 글씨체를 ‘마제잠두(馬蹄蠶頭-말발굽과 누에머리)’라 극찬하였다고 한다.
명종 때 어숙권(魚叔權)은 ‘패관잡기(稗官雜記)’에서 사임당(師任堂)의 포도와 산수도는 너무나 절묘하여 평(評)하는 이들이 ‘안견(安堅) 다음이다.’라고 기록하였다.
신사임당 / 초충도 / 포도도 / 수박도 / 초서(草書) 병풍 / 매화도(딸 이매창)
강원도에서는 사임당의 부덕(婦德)과 예능적소양(藝能的素養)을 기리기 위하여 1975년부터 강원 여성에게 수여하는 사임당상(師任堂賞)을 발족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신사임당은 부모님을 정성껏 모신 효녀로도 이름이 났는데 남편의 양해를 얻어 친정인 강릉 오죽헌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여러 해 살았고, 글솜씨도 뛰어나서 많은 한시를 남겼는데 특히 부모님을 향한 애틋한 심정을 노래한 시가 많아 강릉을 효문학(孝文學)의 요람(搖籃)으로 이끈 분이라고도 하겠다.
오죽헌(烏竹軒)에서 조금 떨어진 핸다리(白橋) 마을에는 사모정공원(思母亭公園)이 있는데 이곳이 고향인 언론인 권혁승(權赫昇, 백교 문학회장)이 2009년 사재(私財)를 쏟아부어 조성한 공원이다.
백교문학회(白橋文學會)는 2010년부터 부모님을 그리는 효사상(孝思想)이 담긴 시와 수필 등을 대상으로 하는 백교문학상(白橋文學賞)을 만들어 매년 수상자를 선정하여 시상(施賞)함으로써 이곳이 명실상부 사친문학(事親文學)의 요람(搖籃)으로 불리고 있는데 이곳 출신 신사임당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踰大關嶺望親庭(유대관령망친정)<대관령을 넘으며 친정을 바라보다.>
慈親鶴髮在臨瀛(자친학발재임영) 身向長安獨去情(신향장안독거정)
回首北村時一望(회수북촌시일망) 白雲飛下暮山靑(백운비하모산청)
어머님의 늙으신 몸이 임영 땅에 계시는데 / 이 몸은 홀로 남편 따라 서울로 가네.
고개를 돌려 가끔씩 북촌을 바라보니 / 흰 구름 아래로 청산이 저물어가는구나.
♣ 옛 대관령 길 중간쯤 쉼터에 사임당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위의 시는 사임당이 어린 율곡의 손을 잡고 시댁인 서울로 갈 때 이곳에서 강릉을 바라보며 읊었다는 시이다. 시어(詩語) 중 임영(臨瀛)은 강릉이다.
친정(親庭) 오죽헌(烏竹軒)은 선교장(船橋莊), 경포호(鏡浦湖)와 함께 강릉의 북쪽에 있는 마을(北村)
思親(사친)<어머님이 그리워>
天里家山萬疊峯(천리가산만첩봉) 歸心長在夢魂中(귀심장재몽혼중)
寒松亭畔雙輪月(한송정반쌍륜월) 鏡浦臺前一陣風(경포대전일진풍)
沙上白鷺恒聚散(사상백로항취산) 波頭漁艇任西東(파두어정임서동)
何時重踏臨瀛路(하시중답임영로) 綵服斑衣膝下縫(채복반의슬하봉)
산이 겹친 내 고향은 천리건만 / 자나 깨나 꿈속에도 돌아가고파
한송정 가에는 두 개의 둥근달 / 경포대 앞에는 한 줄기 바람
갈매기 떼 모래 위에 흩어졌다 모이고 / 고깃배들 바다 위를 오고 가누나
언제나 강릉길 다시 밟아가 / 색동옷 입고 어머니 앞에 앉아 바느질 할꼬
♣ 한송정(寒松亭)은 신라 화랑(花郞)들이 이곳에서 심신수련(心身修練)을 하며 차를 다려 마시던 정자각(亭子閣)이라고 하는데 근처에는 차샘(茶泉), 돌아궁이(石竈), 돌절구(石臼) 등이 있다.
장소는 강릉 강동면 하시동리 해변에 있는데 지금은 공군부대 내이고, 우리나라 다도문화(茶道文化)의 성지(聖地)로 꼽히는 곳이다. 사임당의 묘는 남편의 고향인 경기도 파주(坡州)에 남편과 합장되었는데 율곡가족묘원(栗谷家族廟院)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