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적으로(홍찬미, 글로리아, 싱어송라이터)
“혹시 잃고 싶지 않은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지난겨울에 있었던 한 공연에서 관객으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질문을 받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습니다. ‘희망’. 그날 저의 대답은 짤막했지만, 질문이 남긴 여운은 길었습니다. 한동안 계속 생각이 나더군요.
믿을 수 없는 걸 믿고 있어 / 바랄 수 없는 걸 바라면서
견딜 수 없는 날 견뎌 / 온전한 아침을 꿈꿔
‘바람’이라는 노래의 후렴 가사입니다. 이 곡을 처음 쓸 당시의 저는 건반 앞에 앉으면 무엇을 노래해야 할지 몰라 오랫동안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불쑥 튀어나올까 봐 가사를 쓰는 일이 두려웠고 세상엔 이미 좋은 노래가 많은데 굳이 나 따위가 노력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못난 생각도 자주 했습니다. 그런데도 노래하고 싶은 마음이 제 안에서 사라지지 않아 다른 무엇보다도 그걸 배겨 내는 게 힘들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나서 그 마음에 이름을 붙이고 오랫동안 들여다보며 썼던 노래가 ‘바람’입니다.
지금 보니 ‘바람’의 노랫말은 ‘희망’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희망’은 무엇입니까. 나에게 없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아직은 완전히 도래하지 않은 시간, 전부 주어지지는 않은 무언가에 우리의 마음을 두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뤄지지 못할지도 모르는 꿈을 가슴에 품는 것입니다. ‘바람’에는 두 번째 후렴이 있는데, 첫 번째 후렴과 비슷한 듯 다른 두 번째 후렴에서는 뚝뚝 끊어져 있던 구절들이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져서 믿고, 바라고, 견디고, 꿈꾸는 일이 사뭇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희망적으로.
믿을 수 없는 걸 믿고 싶어 / 바랄 수 없는 걸 바라면서
견딜 수 없는 날 견뎌 / 온전한 그대를 꿈꿔
우리는 지금 사순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도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는 시기이고, 그와 함께 희망도 자라나는 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잡히시기 전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지요.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마태 26,32) 예수님의 죽음을 겪고 난 뒤에 이 말씀을 기억해 내고 갈릴래아로 되돌아가는 제자들을 상상해 봅니다. 더러는 믿을 수 없었을 겁니다. 더러는 예수님을 부인하였던 자신을 혐오하거나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대기도 했을 것이고, 또 더러는 버리지도 못하는 꿈 때문에 아파하며 애틋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그리워했을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남겨진 끝에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시려고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셨던 걸까요? 저마다 사로잡혀 있는 가장 깊은 절망을 다시 거슬러 올라갈 힘, 당신께서 먼저 걸으셨을 그 길, 잃고 싶지 않은 것 한 가지를 우리에게 영원히 주시려고. 사순 시기가 우리를 채근합니다. 희망으로 가까이 초대합니다. 부드러운 바람에 이끌려 이제 그만 절망에서 걸어 나오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