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제가 모임 발표인데요 뒤늦게나마 다음 사항 부탁드립니다.
1. 구약의 에스더서 전체 읽어 오십시요. 내용이 많은 줄 압니다만 내일 시간 절약을 위해서입니다.
2. 내일 발표 주제는 에스더서를 중심으로 "만사에 때가 있나니 주님이 준비한 때를 알자"입니다.
3. 주님은 준비된 자를 언제 사용하나, 나는 준비된 자인가, 주님의 때는 언제인가, 이를 어떻게 아나 등등.
내일 주안에서 뵙겠습니다 샬롬~"
토요일 오류동모임의 단톡방에 위의 공지가 떴습니다. 즉시 "예"라고 대답해주는 착한 오류동 모임 식구들(@.@ 감격!). 숙제는 얼른 하는 법이죠. 저도 오래전 주일학교 교사시절, 연극 공연을 위해 극본으로 고쳐쓰던 추억까지 떠올라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는 말씀.(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였는지, 강의가 시작되자 눈이 반짝반짝 생기가 넘쳤음.)
먼저 해리쌤의 전강이 있었습니다. 요즘 부쩍 체력이 떨어져 힘들어하고 있는 해리쌤. 찬송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를 통해 어머니의 믿음과 주의 따뜻한 위로를 깨닫게 되었다는 근황을 말해 주었습니다. 고통이 왔을 때 어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데, 우리 해리쌤은 하나님의 사랑을 발견하다니... 역시 주의 자녀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됩니다. 해리쌤, 화이팅~
드디어 연창호 선생님의 후강.
에스더서를 '때'라는 주제로 풀이하였습니다. 그리고 에스더서와 같이 극적 반전이 일어난 '조선판 에스더서' 이야기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성서신애에 올라오겠지만, 쉽게 들을 수 없는 이야기인지라 여기에도 요약하여 올립니다.
<조선판 하만, 김영준 이야기>
그는 서자로 태어났다. 조선시대 서자는 불운의 아이콘이다. 서자라는 컴플렉스는 양날의 검이다. 세상에 컴플렉스 없는 인간이 있던가. 아무도 없다. 이 운명 앞에서 인간은 순간순간 결단해야 한다. 한 순간의 선택에 일생이 결정난다. 그는 배화학당의 교사로 온 중국인 유영지(兪靈芝)를 보고 반하여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한중커플이 생길 뻔 하였으나, 유영지는 그가 일자무식에 애꾸요, 그의 성품이 음험한 것을 알아본지라 그의 청혼을 거절하였다.
유영지는 중국 남감리교 여학교에서 의대교육을 받은 후, 여선교사 켐벨(Josephine E.P.Campbell)여사를 따라 1897년 내한한 선교사였다. 그녀는 조선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명이었기에 그의 무례한 청혼에 어이없어 하며 상대조차 하지 않았다. 유영지로부터 단번에 발로 차인 그는 복수의 칼날을 갈았다. 앙심을 품었다. 그는 자신이 발로 차인 게 서자라서 그런 것이라고 여겼다. 처절히 울부짖으며 어떻게 하면 선교사와 예수교인을 다 죽여버릴까를 궁리하였다. 그는 자신의 처지에서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복수할 수 있는 방법과 그 때를 기다리며 준비했다. 이 인물이 바로 당시 경무사라는 고위직을 가지고 있던 김영준(金永準 ?~1901)이었다.
김영준은 왜 중국인 여성에게 청혼하였을까? 한국인 여성도 있는데 말이다. 김영준으로 하여금 근대문명을 공부한 중국의 신여성을 동경하도록 만든 인물은 윤치호였다. 윤치호는 미국유학을 끝내고 고국에 금의환향할 때 중국인 마애방(馬愛芳 1871-1905)을 아내로 맞이하고 있었다. 마애방은 남감리회의 맥티여학교를 졸업한 신여성이었다. 윤치호는 미국에서 인종차별로 인해 백인과 연애를 못했다. 고국에서는 중등교육을 받은 여성이 없어 중국 여인 중 감리교도인 동시에 신여성을 배우자감으로 골랐다. 그녀가 바로 마애방이었다. 윤치호가 에모리 대학과 밴더빌트 대학에서 유학하고 귀국전 청일전쟁으로 상하이에 1년 동안 머물 때 마양과 연애결혼을 하였던 것이다. 이를 보고 자기도 중국인 신여성과 결혼하겠다고 벼른 자가 있었으니, 바로 김영준이었다.
김영준은 음험하였다. 자신이 직접 복수하지 않고 남을 시켜 유영지 등 선교사들을 살해하고자 하였다. 그는 궁리 끝에 국가 권력을 이용하는 길을 찾아내었다. 1900년 음력 10월 10일(양력 12월 1일) 김영준은 고종황제의 칙령을 날조하여 기독교인과 선교사들을 모두 죽이라는 통문을 지방 관청으로 보냈다. 어명이므로 즉시 시행해야 하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무릎 꿇지않고 절을 하지 않은 모르드개가 미운 하만이 모르드개 뿐만 아니라 유대민족 전체를 죽이고자 한 것처럼(에3:6) 김영준은 유영지 뿐만 아니라 예수교인 전체를 죽이고자 모의하였다. 악인의 흉계는 정말 간악하다.
1900년 당시 상황을 보자 여름부터 중국에서의 핍박을 피해 제물포로 돌아오는 선교사와 그 가족들이 늘어났다. 10월초 북장로교회 연례회의가 평양에서 열렸다. 언더우드가 이때 서울을 떠나 평양으로 갔다. 이것이 하나님의 신의 한 수였다. 1주일간의 회의를 마친 언더우드는 부인과 아들 홀리, 의사 화이팅, 눌스 양과 함께 2개월간의 황해도 순회 전도에 나섰다. 그는 사경회를 열며 환등기를 사용하여 샌프란시스코항의 기선 출발 장면, 서울의 궁궐, 그리스도의 생애 등을 슬라이드로 보여주었는데 지역민들에게 인기 만점이었다. 언더우드 일행은 진남포, 곡산, 소래, 백령도를 방문하고 해주로 갔다.
1900년 11월 19일 해주에 도착하자마자 언더우드는 은율읍교회 영수 홍성서가 몰래 보낸 전갈을 통해 서울에게 김영준이 날조해 황해도 각 현에 보낸, '기독교인 살해 칙령'을 받았다. 거기에는 다음달 1일에 모든 유학도들은 가까운 서원에 모여서 모든 서양인과 예수교인을 죽이고 교회와 병원을 불태우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언더우드는 이 끔찍한 내용을 어떻게 서울에 전할까 고심하였다.
'국왕은 이런 것이 있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서울 몰래 지방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니 참으로 걱정이군. 이를 그냥 우편으로 보내거나 인편으로 알리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커. 보수파나 친일파들이 볼 가능성이 있으니 어떻게 몰래 알렌 공사에게 알릴 것인가. 공사관으로 직접 전보를 보내면 의심을 받아. 첩자가 우글거리는 세상이니 너무 위험이 크구나.'
언더우드는 그날 밤새 고민하며 기도하였다. 언더우드는 기도 중에 구약성서의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하만이 칙령을 빙자해 유대인을 말살하고자 잔인무도한 일을 꾸민 것처럼 누군가 고종의 칙령을 날조해 조선의 예수교인을 몰살하려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자신을 포함한 선교사들까지도 말이다. 그는 기도중에 이를 극복하는 길로 고종의 신임을 받고 있는 미국 공사 알렌과 자신이 가장 신회하는 에비슨 의사를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 여겼다.
그러나 영어로 전보를 치려다가 갑자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었다. 중요한 일은 은밀하고 작은 일에서 결정되니 만전을 기해야 한다. 들키면 다 죽는다. 네가 배운 라틴어가 있지 않느냐? 영어는 친러파 관료가 볼 위험이 컸다. 그는 조선인이 도저히 알 리 없는 외계어를 쓰기로 했다. 에비슨과 자기만이 알 수 있는 언어가 라틴어라는 걸 깨달았다. 언더우드는 파발을 통해 라틴어 전보문을 에비슨에게 급히 보냈다.
에비슨은 언더우드로부터 받은 전보문을 영어로 번역하여 알렌공사에게 알렸다. 알렌은 처음에 믿지 않았으나, 신중하기 그지없는 언더우드가 보낸 것이어서 신빙성 있다고 보고 곧이어 궁으로 들어가 고종에게 보고하였다. 고종은 늘 선교사들이 자신의 목숨을 보호해 주려고 수년간 침전에서 불침번 서 준 것을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날조된 칙령 앞에 분노하고 바로 기독교인 살해 칙령은 조작이며 그들을 오히려 보호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언더우드는 에비슨에게 전보를 보낼 때, 달리기 잘 하는 사람을 고용해 평양과 황해도의 천주교 신부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렸다. 이로써 기독교인을 살해하려는 김영준의 음모는 사전에 저지되었다.
언더우드 부인이 남긴 책, '상투잡이와 보낸 15년(1904)'에 이 사건의 전모가 나온다. 라틴어 원문은 "Omnibus praefecruris secreto mittus est In mensis decima omnes Christians occient"이며, 번역하면 "모든 현감에게 보낸 비밀 지령, 10월 10일 모든 기독교도를 죽여라."
그럼 김영준은 어떻게 되었을까? 보름 후 김영준은 이 사건과 더불어 인천 월미도 매각사건과 외국 공관 협박 사건에 연루되어 이듬해인 1901년 처형되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만과 같은 인물이 김영준이다.
이렇게 극적인 일이 우리 한국의 기독교사에도 있었다니 놀라운 일입니다. 홍성서의 발빠른 전달, 라틴어로 전보를 보낸 언더우드의 기지, 에비슨 의사와 알렌 공사의 신속한 조치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봅니다.
연선생님은 직업이 역사를 폭넓게 연구하는 학예관(인천의 역사박물관)이시다 보니, 우리에게는 정말 '걸어다니는 백과사전'이나 다름없습니다.(류쌤 표현에 의하면 'walking encyclopedia'라고~ㅎ) 그래서 평소 주일에도 소감발표 시간에 출처가 확실한(^^) 사실(史實)들을 실감나게 듣고 있습니다. 크리스탈님의 말씀대로 오류동 모임이 연선생님으로 인해 더욱 알차고 풍성해지고 있습니다.
첫댓글 오.. 그런 Behind Story가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