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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으로 돌아가는 모세(18-23)
하나님의 일을 행한다고 가족의 의견을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은 가정부터 잘 다스려야 합니다. 기독교인들이 믿음이라는 미명 아래 기본 윤리를 왜곡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인간의 윤리를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수는 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일을 하라고 하셨지만, 장인 이드로와 먼저 상의한 점에서 가족의 의견을 중요시했습니다.
18모세가 그의 장인 이드로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로 돌아가서 그들이 아직 살아 있는지 알아보려 하오니 나로 가게 하소서 이드로가 모세에게 평안히 가라 하니라 19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 20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21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가 애굽으로 돌아가거든 내가 네 손에 준 이적을 바로 앞에서 다 행하라 그러나 내가 그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그가 백성을 보내 주지 아니하리니 22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23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보내 주어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보내 주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18-23)
이제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즉시 순종합니다.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 들린 후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부르심을 받은 직후 장인 이드로를 찾아가 자신의 계획을 알립니다.
모세는 이드로에게 애굽으로 돌아가 형제들이 아직 살아있는지 알아보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그들이 모두 죽었을까 염려하는 표현이라기보다는 그들이 학대 속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참고, 타나크 성경[TNK]). 미디안 제사장이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 이드로는 모세를 부르신 여호와의 뜻을 존중합니다. 사위의 위대한 꿈을 후원하면서 그의 이탈로 인한 집안의 상당한 경제적 손실을 각오합니다.
40년이 흘러 세대가 바뀌고 애굽에서 모세의 생명을 찾던 사람들이 모두 죽었습니다(19). 이것은 마태복음의 예수님 탄생 이야기에 대한 기시감을 줍니다. 예수님의 가족도 헤롯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해 있다가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다 죽은 후 요셉과 마리아는 유대 땅으로 돌아옵니다. 분명히 두 사건은 하나님의 섭리하에 발생한 일이었을 것이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모세의 도피와 귀환은 인류를 구원하실 그리스도의 예표적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아내 십보라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워 애굽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모세의 ‘아들들’로 표현되는데, 게르솜과 그 이후 태어난 엘리에셀을 가리킵니다. 모세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은 애굽이 그에게 더는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모세는 손에 지팡이를 쥐었습니다. 그것은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 (마테 하엘로힘)입니다(20).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파라오를 찾아가 하나님의 말씀과 요구를 그대로 전하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라고 지시하십니다.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고하여 이스라엘 백성 ‘보내주기를 거절할 것’임을 미리 알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표현과 그분이 바로가 거절할 것을 미리 아신다는 사실은 해석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십보라와 피 남편(24-26)
믿음은 삶 속에서 순종으로 증명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품으면 머뭇거림이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받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들었을 때, 머뭇거림 없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모리아 산으로 출발했습니다. 믿음의 사람 모세의 모습은 어떤 모습입니까?
24모세가 길을 가다가 숙소에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신지라 25십보라가 돌칼을 가져다가 그의 아들의 포피를 베어 그의 발에 갖다 대며 이르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26여호와께서 그를 놓아 주시니라 그 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 때문이었더라(24-26)
갑자기 장면이 바뀐 듯 보이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에피소드 한 장면이 끼어듭니다. 이 단락은 구약 전체에서 가장 난해한 본문 중 하나입니다. 일단 모세라는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기에 대명사 ‘그’에 대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습니다. 전통적으로는 24절에서 하나님께서 만난 ‘그’를 모세로 간주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기로 하십니다. 그가 아들에게 할례를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알아차린 십보라가 재빨리 아들을 할례하여 그 포피를 모세의 발에 갖다 댐으로써 위기를 넘깁니다. 십보라는 모세를 ‘피 남편’이라 부릅니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석인데, 이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일 작정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구원자로 임명하여 부르셨는데, 느닷없이 왜 그를 죽이려 하십니까? 하나님의 변덕으로 이해되는 기괴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외에도 이 짧은 에피소드가 갖는 문제는 수수께끼투성입니다. 이 난제를 둘러싼 숱한 의견들이 있지만, 우리는 가장 무난한 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봅니다. 숙소에서 여호와는 ‘모세’를 만난 것으로 보는 것이 앞의 이야기와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우리는 서사의 흐름을 수용하면서 모세가 애굽으로 떠난 도중에 어떤 숙소에서 이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게르솜의 할례를 시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세를 죽이려 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고 시도하셨지만(비케쉬) 실제 징벌을 실행하지는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모세의 생명을 ‘찾는 자들’(비케쉬 UP의 분사)은 실제로 그를 죽이려고 찾아다녔습니다(19). 우리는 바로처럼 실제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죽이려 작정하셨다는 이해를 거부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심지어 모세의 생명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결국 그의 아들의 할례를 최종적으로 실행하게 만드셨다고 해석합니다. 이것은 모세의 소명에서 아들의 할례의 중요성을 부각시킵니다. 십보라가 할례를 행한 아들은 게르솜으로 보는 것이 가장 무난합니다. 모세는 십보라의 반대로 게르솜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 보수적인 학자들의 전통적인 해석입니다. 그러나 자신 때문에 모세가 하나님께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자, 자초지종은 생략되었지만 십보라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즉시 자신이 직접 아들의 할례를 실행한 것입니다. 아내가 할례를 행한 이유는 남편의 생명이 위태로운 긴급 상황이기도 했고, 자신이 할례를 반대하여 생긴 문제였기에 책임을 지려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십보라는 뒤늦게 과오를 깨닫고 남편을 구하기 위해 아들의 할례를 실천에 옮긴 것입니다. 십보라는 할례를 행함으로써 아들 게르솜을 언약 백성의 일원으로 합류시킵니다. 이 할례는 언약 백성의 일원이 되는 기준이고 표지이기에 생명이 걸릴 만큼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무엇보다 언약 백성을 이끌어야 하는 모세가 애굽으로 떠나기 전에 자기 가족부터 언약 백성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야 했기에, 하나님께서 비상조치를 취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십보라가 모세의 ‘발’에 아들의 포피를 갖다 대며 ‘당신은 내게 피 남편이다’라고 말하는데, 이 ‘피 남편’의 의미도 할례가 지닌 이런 언약적 배경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피 남편’이 무슨 뜻인지를 아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아들과 더불어 자신이 할례의 피 흘림을 통해 남편이 속한 언약 백성의 혈통에 합류했다는 선언으로 보입니다.
이제 비로소 진정한 언약 백성이 된 가족과 더불어 모세는 애굽으로 떠날 준비를 완료합니다.
모세와 아론의 만남(27-31)
지도자에게는 고난의 길이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 후에는 놀라운 축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의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종적인 승리가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27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이르시되 광야에 가서 모세를 맞으라 하시매 그가 가서 하나님의 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에게 입맞추니 28모세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분부하여 보내신 모든 말씀과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이적을 아론에게 알리니라 29모세와 아론이 가서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장로를 모으고 30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31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27-31)
다시 장면이 바뀌어 애굽의 아론이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광야로 가서 모세를 만날 것을 지시하십니다. 이 광야는 물론 미디안 광야일 것입니다. 아론은 길을 떠나 하나님의 산, 즉 시내산에서 모세를 만나 그와 기쁘게 상봉합니다. 무려 40년만의 가족 상봉입니다. 모세는 형 아론에게 그동안의 모든 일을 상세히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굳이 아론을 시내산까지 부르신 이유는 분명 대업을 앞둔 두 사람을 준비시키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모세와 아론은 애굽으로 함께 돌아갔으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장로들을 불러 모았습니다(29). 4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늙은 장로들은 모세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지시대로 아론이 모세의 ‘입’이 되어 장로들 앞에 서서 모세의 말을 전합니다(30).
이어지는 ‘그가 백성 앞에서 이적들을 행했다’에서 ‘그’는 모세로 이해됩니다. 왜냐하면 바로 앞의 문장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던’이기 때문입니다. 아론은 바로 앞에서도 모세를 대신해서 협상에 나서는데, 40년의 공백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라는 인물에 친숙하지 않기에 아론이 나섰을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장로들은 모세를 잘 아는 나이 든 계층이므로 이것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아마 40년 동안 외국에서 살았기 때문에 모세는 모국어와 이집트어 구사에 능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모세와 아론은 계속해서 나란히 등장하며, 아론은 말뿐 아니라 기적을 행할 때도 모세를 대신해서 그의 지팡이를 들고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아론이 모세를 대신하여 ‘말’ 이상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장로들과 백성은 모세와 아론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외편하지 않으시고 그들의 형편과 처지를 줄곧 살피셨다는 말을 듣고 그분께 경배를 드렸습니다(31).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지도자로 감당할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믿음의 그릇이 큰 지도자감을 찾고 계십니다. 지도자를 세우실 때, 먼저 지도자다운 지도자를 만드신 후에 세우십니다. 당신이 준비된 그릇이 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용하십니다. 지도자로서 근심과 걱정을 다 버리고 큰 그릇이 될 때 큰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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