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원한 엘리야
열왕기상 19 : 1 - 8(14)
갈멜산에서 기도하여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비를 내리게 했던 엘리야가 광야로 들어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450명을 죽이고 승리한 엘리야가 광야의 한 로뎀나무 아래서 앉아서 죽기를 원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원망스러운 호소였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숨겨진 깊은 진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여호와께 ‘지금 내 생명을 거두소서’라고 원망스러운 호소를 하게 된 원인은 무엇입니까?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싸워서 그들 모두를 죽인 것은 바알이 거짓 신이고 여호와가 살아계신 하나님이신 것을 백성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않았던 가물었던 땅에 기도하여 큰비를 내리게 하므로 해서 여호와가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백성들에게 알게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엘리야가 광야로 도망쳐서 한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바랬다는 말씀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 기도하면서 깨닫게 된 것은 엘리야의 공식적인 선지자로서 은퇴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엘리야의 은퇴라는 말씀은 없지만 사실은 선지자의 은퇴를 의미하는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세도 자신의 사명을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여 맡기고 느보 산으로 올라가서 죽었습니다(신34:9). 엘리야도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자신을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고 은퇴하였습니다(16).
엘리야가 선지자로서 공식적인 마지막 사역은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와 싸워 이긴 것입니다. 그때 여호와의 능력이 임하셔서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셨고 비도 내려주셨습니다.
엘리야의 선지자 사역은 거기까지였습니다. 그후에도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했습니다. 엘리야는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습니다(46).
당시 이스르엘은 아합왕 별궁이 있었고 이세벨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엘리야가 이스르엘로 간 이유를 말씀이 없어서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 원인도 없이 달려갔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학자들은 엘리야가 이세벨을 죽이고 아합과 이세벨이 세운 바알의 제단들과 우상들을 헐고 불사르고 종교개혁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스르엘로 달려갔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엘리야가 여호와의 선지자의 사명으로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였던 것처럼 이세벨도 죽이려고 이스르엘로 달려갔지만 그의 생각대로 이세벨을 죽일 수가 없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아합의 말을 듣고 이세벨은 그가 섬기는 신들의 이름으로 죽기를 각오하고 엘리야를 죽이겠다고 하는 소문을 들었습니다(2).
자기 새끼를 물어 죽인 사자를 보고 어미 호랑이는 죽을 것을 각오로 새끼를 죽인 사자에게 덤벼드는 것처럼 이세벨은 죽기를 각오하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19:2).
‘죽기를 각오하고 덤벼드는 사람은 이길 장사가 없다’는 말처럼 이세벨이 죽기를 각오하고 자신을 죽이겠다는 말을 듣고 엘리야는 겁을 먹고 싸울 수가 없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생명을 위하여 이세벨이 따라올 수 없는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까지 도망 와서 다시 광야로 들어갔습니다(3).
사환을 브엘세바에 머물게 하고 혼자 마른 떡 한 조각도 물 한 모금도 구할 수 없는 광야로 들어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엘리야,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싸워 이겼던 엘리야가 자기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광야의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갈멜산에서 함께 하셨던 여호와께서도 그와 함께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생명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4).
로뎀나무는 척박한 땅에 서식하는 키가 2m 정도의 우리나라의 싸리나무와 같은 나무입니다. 잔가지가 많고 잎이 작아서 한 사람이 앉아 쉴 수 있는 그늘이 있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원하고 잠든 엘리야는 마치 은퇴하고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목사님들과 유사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큰 교회를 성공적으로 목회하셨던 목사님이 은퇴하신 후에 찾아 오는 사람도 찾아갈 곳도 없이 무료하게 혼자 우울증으로 괴로워하시다가 세상을 떠나신 분들도 있습니다.
교인들의 사랑을 받다가 은퇴한 후에 마치 광야의 한 로뎀나무 그늘에서 앉아서 외롭게 죽기를 바라고, 굴에 머물면서 ‘오직 나만 홀로 남았다’고 말하는 엘리야는 오늘의 은퇴한 목사님들을 상징합니다.
현대교회의 은퇴한 목사님들은 복지제도가 있어서 생활은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기만, 할 일이 없이 외롭게 우울증으로 괴로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미자립 교회를 섬기다가 은퇴한 목사님은 생계가 어려워서 시군에서 마련해준 노인 일자리에서 일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광야의 한 로뎀나무 아래 앉은 엘리야는 먹고 마시며 누워 잘 수 있는 의식주의 문제로 죽기를 원하다가 잠들었습니다.
그때 여호와께서 보낸 천사가 잠든 엘리야를 어루만지며 깨웠습니다. 깨어나 눈을 떴을 때 하나님의 나라였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로뎀나무 아래였습니다.
천사는 엘리야에게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의 물을 주며 먹고 마시라고 했습니다. 굶주렸던 엘리야는 천사가 주는 떡과 물을 마시고 다시 누워 잠들었습니다.
천사가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일어나 먹고 마시라’고 해서 엘리야는 떡과 물을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러 어느 굴에 들어가서 머물렀습니다.
‘그 음식물을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야를 갔다’는 말씀은 천사가 주는 떡과 물을 마신 후 사십 주야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낮의 뜨거운 햇볕과 추운 밤을 무서운 짐승들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사십일을 걷고 자며 하나님의 산 호렙의 어느 굴에 머물렀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도 더 이겨내기 어려운 삶의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라고 물었을 때 엘리야는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히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9,10) 말했습니다.
엘리야가 여호와께 계속 두 번이나 말한 것은(14) 그의 한이 맺힌 원망의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은퇴한 목사님들이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불평의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원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라’(15)고 말씀했습니다. ‘길을 돌이켜’라는 말은 돌아온 길로 되돌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달려갔더라”(45)는 말씀에서 엘리야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달려간 것은 이세벨을 죽이기 위해 단단히 준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때 엘리야가 이스르엘로 간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다시 엘리야에게 ‘너는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라’(15)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네 길을 돌이켜’라는 말씀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이스르엘로 달려갔던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으로 가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죽이려고 한 것은 엘리야의 착각이었습니다. 이러한 착각은 엘리야에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기도해서 응답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하는 것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님시의 아들 에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에게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15-16)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좌절하고 호렙의 굴에서 실의에 빠진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19-21). 성경에는 엘리야가 하사엘이나 에후에게나 엘리사에게 기름 부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왕이 되고 엘리사가 선자자가 된 것을 성경이 말씀하는 것은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에게 기름을 부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광야의 한 로뎀나무 아래 앉은 엘리야처럼 은퇴한 후에 외롭게 스스로 우울증으로 고생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루만져 주시며 은퇴한 자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새로운 사명을 맡겨주십니다.
목사뿐 아니라 장로, 집사, 권사에게도 법적으로 은퇴한 후에 할 일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은퇴하기 전과 같은 일이 아닌 또 다른 새로운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새로운 사명을 잘 감당했습니다. 그 후에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죽음을 보지 않고 살아서 하나님의 나라로 하나님께서 데리고 가셨습니다.
에녹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로 올라갔던 것처럼(창5:24;히10:5), 여호와께서 회오리 바람으로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가셨습니다(왕하2:1-11). 엘리야는 무한한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끝까지 다하여 사탄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나이가 많아서 은퇴한 후에 은퇴하기 전과 같은 사명을 하려고 하는 것은 교회에 덕되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지 않습니다.
은퇴한 자가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하시고 섬기던 교회에 덕이 되시고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실 수 있도록 합시다. 주님께서 불러 가시는 그날까지 건강하게 지내시며 끝까지 충성합시다.
최후 심판의 날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충성된 종이라 칭찬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그때 우리 모두 기뻐 뛰며 주님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엘리야와 함께 주님을 모시고 영생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