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 13일 연중 제19주일
<저더러 물 위로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22-33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모진 세상에서 구박만 받고 살아온 사람들, 용기를 내십시오.
전국에서 집중호우로 난리가 났습니다. 산사태가 일어나고, 강물이 범람해서 많은 인명피해가 일어나고, 이재민이 생기고, 농경지가 침수되고, 도시가 물에 잠기고, 철도가 끊기기 직전까지 가고 전 국가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기상이변이 생겨서 집중호우가 내리고, 태풍이 지나가고, 잼버리로 온 국민이 마음 조리고, 또 다른 태풍이 다시 올라온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유례없는 폭염으로 열사병이 전국에 퍼지고, 이제는 다음 주에 올라올 폭염의 공포에 힘들것 같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에게 호우와 물난리로 다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지상 낙원이라던 하와이에서는 산불이 시작되어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죽고, 전 국토가 화염에 휩싸여 오늘 겨우 85%까지 진화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재앙이 연일 뉴스를 달리고 있으니 이제는 지치고 지친 사람들이 하느님께 하소연하지 않을 수 없는 사정에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5천명을 먹이신 기적을 행하신 후 제자들을 먼저 보내시고 그 많은 사람들도 직접 집에 돌려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홀로 산에 오르셨다는 복음 말씀을 접하면서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사람들을 일일이 집에 보내시는 주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 식구는 대가족이라서 한 번 집에 모두 모이면 40명 가깝게 모이는데 오랜만에 모였다가 각자 집에 돌아가는 날에 빠트린 것은 없는지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각자가 짐 보따리를 챙겨들고 문 앞에서 작별을 할 때면 아이들은 안가겠다고 울고, 어머니는 손자들을 달래고, 차 안에서 먹을 것들을 조그만 비닐봉지에 챙기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편찮으신 어머니는 생전에 또 볼 수 있을까 눈물을 감추시고, 차에 오르는 아이들도 못내 섭섭하고 죄송한 마음으로 서로 목이 메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진한 이별을 하시는 주님은 어린 아이들의 머리에 손을 얹어 주시고, 헤어지기 섭섭해서 주춤거리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빌어 주시며 강복(降福)하십니다. 예수님 앞에 엎디어서 자신의 병을 고쳐주신 주님께 감사인사를 올리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시고, 허리를 구부려 인사하는 노인에게 등을 두드려 주시지요. 목이 메어 말을 하지 못하는 여인들에게 손을 들어 강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감동입니다. 이들은 언제나 함께 하고픈 사람들이고 주님의 곁에서 언제나 있고 싶은 여리고 여린 사람들입니다. 이 모진 세상에서 구박만 받고 살아온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 예수님의 곁을 떠나면서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주일 미사 후에 신부님과 신자들의 이별이 이와 같은지 잠시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혼자 기도하러 산에 오르셨습니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지시는 주님은 오늘 사람들에게 한 일과 사람들을 가르치신 일과, 주 하느님께서 특별하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면서 모든 일을 낱낱이 보고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버지, 오늘도 당신의 뜻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살았답니다.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시간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아버지!” 주님의 기도시간은 참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오붓한 시간이기 때문이지요. 도란도란 말씀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저녁기도도 이와 같은지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십니다. 여러 ‘스타디온’ 이라고 하니까 한 ‘스타디온’이 대략 191.27m라고 하니까 5 스타디온 이라고 하여도 1km는 족히 될 듯합니다. 물위를 걸어가시는 그 분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다.”하고 큰소리로 고함을 지를 만도 합니다. 우리는 유령을 무서워합니다. 그것은 유령이 완전히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유령은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고, 행운을 주거나 재앙으로 몰고 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령을 무서워하면서 섬기는 사람들도 생깁니다. 그래서 물위를 걷고 있는 예수님을 보고 두려워하고 유령이라고 제자들도 말하였을 것입니다. 유령(幽靈)은 아주 먼 곳으로 떠나게 될 갈 길이 먼 영혼이지요. 그런데 천국이든 지옥이든 연옥이든 갈 길이 분명하면 길을 잃어버릴 수가 없지요. 세상에 미련이 많으면 그 미련을 해결하려고 길을 잃어버리고 헤맵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우리도 유령을 무서워합니다. 전설의 고향이나 장화홍련전을 보아온 우리는 유령을 철썩 같이 믿고 있는 것이 당연한 한국 사람이며 보편적인 인간들의 심성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유령을 무서워하나요? 우리를 해칠까봐 두려워합니다. 내가 그만큼 유령을 이길 자신이 없고 그 어떤 것에도 그만큼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믿는 구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를 진 사람은 유령이 복수한다고 생각하고 있기에 많은 죄로 더러워졌다고 자신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당신’이니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계시면 아무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너라!’ 하시는 주님의 말씀에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세상의 것에 두려워하고 모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순수성을 잃어버리고 불순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두려움은 믿음으로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평생을 죽도록 고생해도 믿음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다가 연이은 재앙에 실망하고 좌절하고 있을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용기를 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재앙도 주님의 은총으로 극복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희망으로 용기를 얻고 이겨갈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