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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정밀하게 그린 호랑이라도 기운이 없으면 고양이에 불과하고, 단 세 줄의 붓질로 그린 난초라도 바람에 흔들리는 생명력이 느껴진다면 '기운생동'한 최고의 그림입니다.
우리가 앞에서 이야기한 팔대산인의 새 그림이 그렇습니다. 형태는 지극히 단순하지만, 새의 눈빛에서 세상을 향한 서슬 퍼런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것, 그것이 바로 기운생동입니다.
2. 골법용필 (골法用筆) : 선(線)에 담긴 화가의 정신과 뼈대
"붓을 쓸 때(용필)는 뼈대(골법)를 세우듯 굳세고 힘차게 써야 한다."
동양화는 '선(線)'의 예술입니다. 서예와 그림이 한 뿌리라는 서화동원(書畫同源) 사상이 여기서 나옵니다.
붓질 하나를 하더라도 그 속에 화가의 정신적 뼈대(骨)가 드러나야 합니다. 흐물흐물하거나 주저하는 선이 아니라, 단호하고 확신에 찬 선을 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석도가 제창한 '일획론(一畫論)'의 뿌리도 바로 이 골법용필에 있습니다. 단 한 번의 붓질에 온 우주의 기운과 자신의 척추를 실어 내리치는 힘, 그것이 골법입니다.
3. 응물상형 (應物象形) : 대상에 응하여 형태를 잡아내는 객관성
"사물(物)에 대응(應)하여 그 모양(形)을 알맞게 그려낸다."
그림의 기본기인 '형태력'을 말합니다. 바위를 그릴 때는 바위답게 굳세게, 물을 그릴 때는 물답게 부드럽게, 대상의 물리적 특징을 포착하여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단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정확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능력으로, 서양화의 '데생'이나 '소묘' 능력과 통합니다.
다만 동양화에서는 단순히 겉모습만 똑같이 복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본질적인 형태(象)를 취하는 것을 뜻합니다.
4. 수류부채 (隨類賦彩) : 대상의 종류에 따라 알맞은 색을 부여함
"사물의 부류(類)에 따라(隨) 고유의 색채(彩)를 입힌다(賦)."
동양 회화의 '채색론'입니다. 소나무는 푸르게, 단풍은 붉게 등 사물이 가진 고유의 색과 성질을 파악하여 색을 쓰는 원칙입니다.
얼핏 들으면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동양화에서의 색은 단순히 빛의 반사를 그리는 서양의 인상주의와는 다릅니다. 대상의 본질과 계절감, 그리고 화가의 감정이 담긴 '관념적인 색'에 가깝습니다.
수묵화에서는 먹의 다섯 가지 색(먹의 농담)으로 세상의 모든 천연색을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넓은 의미의 수류부채에 해당합니다.
5. 경영위치 (經營位置) : 화면이라는 우주를 설계하는 구도론
"화면의 구도와 여백, 사물의 배치(位置)를 치밀하게 기획(經營)한다."
그림을 그리기 전, 하얀 종이 위에 무엇을 어디에 배치할지 경영(화면 설계)하는 '구도와 공간'의 원칙입니다.
동양화에서는 그리는 곳만큼이나 '그리지 않는 곳(여백)'의 경영이 중요합니다. 비어 있는 공간이 하늘이 될지, 물이 될지, 혹은 끝없는 고독이 될지는 이 경영위치에 달렸습니다.
화면의 균형과 불균형, 주연과 조연의 배치, 시선의 흐름을 지휘하는 화가의 거시적인 안목을 뜻합니다.
6. 전이모사 (傳移模寫) : 전통을 베끼며 스스로를 단련하는 계승
"과거 대가들의 훌륭한 작품(模)을 베껴 그리고(寫) 그 정신을 후대에 전한다(傳)."
과거의 명작을 모방하며 배우는 '학습과 계승'의 원칙입니다. 동양 예술에서는 옛 성현이나 대가들의 그림을 똑같이 따라 그리며 필법과 정신을 몸에 익히는 과정을 필수적인 수련으로 보았습니다.
서양의 임화(Copy)와 비슷하지만, 단순히 기술만 베끼는 것이 아니라 그 그림을 그린 옛 화가의 마음자리까지 따라가는 고도의 정신 수행이었습니다.
비평가 사혁의 통찰 사혁은 이 여섯 가지 중 **1번(기운생동)과 2번(골법용필)**은 타고난 천재성이 있어야 가능하고, 나머지 3번부터 6번까지는 노력과 훈련으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보았습니다.
석도와 팔대산인은 6번(전이모사)의 늪에 빠져 전통만 베끼고 있던 당대 화단을 향해, "1번과 2번이 없는 그림은 껍데기일 뿐이다!"라며 붓으로 혁명을 일으킨 인물들입니다.
시를 쓰실 때 사물의 겉모습(응물상형)을 묘사하는 단계를 넘어, 시어(詩語) 하나하나에 시인의 척추와 기운(기운생동, 골법용필)을 담아내는 과정과도 정확히 맞닿아 있는 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