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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유주현(柳周鉉, 1921-19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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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한국 |
분야 | 소설 |
해설자 | 이승하(중앙대학교 공연영상창작학부 문예창작학과 교수) |
유주현은 정통 문학권에서는 크게 인정받지 못한 소설가다. 1948년 <백민>에 <번요(煩擾)의 거리>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후 1950년대에는 개성을 지닌 전후 소설가 중 한 사람으로 활동했지만 서기원ㆍ선우휘ㆍ손창섭ㆍ오상원ㆍ이범선ㆍ장용학 등의 명성에 미치지 못했다. 유주현은 1960년대에 들어 신문연재소설에 매달려 <분노의 강>(부산일보), <언덕은 폭풍설>(서울일일신문), <너와 나의 시>(매일신문), <장미부인>(한국일보), <부계가족>(국제신문), <조선총독부>(신동아), <대원군>(조선일보), <녹수는 님의 정>(서울신문), <새마을의 신부들>(부산일보), <대한제국>(신동아), <통곡>(동아일보), <군학도>(서울신문), <백조 산으로>(조선일보) 등 장편 13편을 썼으니, 대단한 인기에 엄청난 필력이었다. ≪조선총독부≫와 ≪대한제국≫은 각 5권짜리, ≪장미부인≫은 3권짜리 단행본으로 간행되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도 신문과 문예지 및 여성지 연재를 병행하여 <상아의 문>(중앙일보), <욕망의 저택>(여성중앙), <우수의 성>(중앙일보), <황녀>(문학사상), <파천무>(중앙일보), <대치선생>(서울신문), <모계가족>(주부생활), <인간군도>(한국문학), <배덕시대>(매일신문), <금환식>(중앙일보) 등 10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이 가운데 1961년 <언덕은 폭풍설>이 신문의 폐간으로, 1976년 <금환식>이 와병으로 종결되지 못했을 뿐이다. 대중의 인기를 얻으며 신문연재소설을 쓰는 동안 1950∼1970년대에 꾸준히 발표한 그의 단편소설은 평가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유주현 하면 역사소설가 내지는 신문연재 전문작가로 자리매김 되었기 때문이다.
유주현은 60년 남짓 살다 간, 비교적 단명의 소설가이지만 남긴 작품의 양은 엄청나다. 등단한 1948년부터 1963년까지 약 15년 동안은 중ㆍ단편소설을 주로 썼는데 <조선총독부>를 <신동아>에, <부계가족>을 <국제신문>에 연재하는 1964년부터는 신문연재 전문작가로 전환하다시피 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한다. 그 바람에 그의 우수한 단편소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유주현의 작품들은 국내 주요 문학전집에 거의 빠짐없이 실려 있다. 1976년에 간행된 ‘현대문학사기획편집’ ≪신한국문학전집 22≫(어문각)에 9편이, 1978년에 간행된 ‘삼성판’ ≪한국현대문학전집 19≫(삼성출판사)에 6편이, 1985년에 간행된 ‘울창한 한국문학 80년의 숲’ ≪한국문학전집 17≫(삼성출판사)에 5편이, 1986년에 간행된 ≪정통한국문학대계≫(어문각)에 9편이, 1995년에 간행된 ≪한국소설문학대계 32≫(동아출판사)에 8편이 실려 있다.≪한국현대문학전집 19≫에 실려 있는 6편 중 장편 <우수의 성>이 들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모두 중ㆍ단편이다. 5권 전집에 다 실려 있는 작품이 <張氏一家>와 <六人共和國>이고 4권에 걸쳐 실려 있는 작품이 <太陽의 遺産>, 3권에 걸쳐 실려 있는 작품이 <流轉 24時>, <언덕을 향하여>, <임진강>, <神의 눈초리>이다. 2권에 걸쳐 실려 있는 작품은 <戱畵四題>, <背德의 墓>, <南漢山城>이다.
유주현 소설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서는 전집에 2회 이상 실려 있는 이런 ‘대표작’들을 읽어야 하겠지만 전집에 실려 있지 않은 작품을 통해서도 작가를 평가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새롭게 발굴하여 독자 제위께 보여드리자는 뜻에서 여기 소개하는 7편의 단편소설은 어느 전집에도 수록된 바 없다. 그래서 전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인생관과 세계관, 소설가로서의 의식과 정신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문제작이라고 생각되는 것들만을 뽑아 보았다. 각 작품의 발표지면은 아래와 같다.
<敗北者>(<문예>, 1953. 여름.)
<夏日怨情>(<현대문학>, 1955. 10.)
<溫泉場夜話>(<문학예술>, 1956. 3.)
<人生을 불사르는 사람들>(<문학예술>, 1956. 8.)
<鬪情>(<문학예술>, 1957. 8.)
<密告者>(<사상계>, 1961. 6.)
<虛>(<현대문학>, 1963. 6.)
아래는 각 작품에 대한 해설이다.
작품 말미에 (四二八五, 六, 六, 於大邱)라고 적혀 있다. 1952년 대구 피난지에서 썼음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정심은 남편 현수가 늑막염으로 반년 이상 자리보전을 하자 두 아이와 함께 살아갈 길이 막막하다.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팔 수 있는 물건인 은조사적삼’을 들고 나가 보리 한 되와 바꿔와 밥을 차렸는데 남편은 안 먹던 밥이라 체하고 만다. 남자의 체면을 구겼다고 역정만 내는 현수에 비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생활력 강한 정심은 최후의 수단으로 매춘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웃집 창수네 방에서 화장을 하고 취객을 기다리던 정심은 모르는 사내에 의해 정조를 잃게 되는 순간 남편의 신음소리와 아이의 잠꼬대를 환청으로 듣는다. 사내의 손길을 뿌리치고 옷을 챙겨 입고 자기 집으로 달음박질쳐간 정심은 남편 앞에서 울부짖는데 바로 그 순간 현수는 숨을 거둔다.
본인의 의지로는 벗어날 수 없는 비극의 극한, 그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소설은 바로 실존주의의 ‘한계상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남편이 있고 두 자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춘으로밖에는 돈 벌 길이 없는 전시 후방의 여인네 이야기를 통해 전쟁이 초래한 비극적 상황을 극대화한다. 정심은 대학 시절에 여류시인이 되겠다고 브라우닝이 어떠니 니체가 어떠니 하며 논전을 펴기도 했는데 “동란은 친정집 네 식구를 함몰시켰고, 의로운 남편을 병들어 누폈다”. 그래서 “남편과 자식을 안고서 생활고라는 구실을 앞세워 매음을 밥 먹듯 하는 무지몽매한” 창수네의 권유에 넘어가고 마는 것이다. 전쟁이 모든 등장인물의 생을 벼랑으로 몰아갔으므로 이 소설의 소재는 전쟁이 초래한 비극적인 현실이며 궁극적인 주제는 반전(反戰)이다.
한여름 땡볕 속에 서울 Y고등학교 학생 박군과 시골 소년 태군은 살모사 잡이에 나선다. 폐병환자인 상희가 태군의 집에 묵으며 요양을 하고 있는데 태군은 살모사를 잡아서 상희에게 고아주는 것이 중요 임무였다. 박군은 누나의 친구인 상희에게 자기도 살모사를 잡아서 선물하고 싶은 마음에 나섰던 것인데, 살모사를 잡는 과정에서 둘은 내 것이라며 치고받고 싸운다. 싸우는 동안 아랫마을 이장의 아들인 윤군이 이들이 잡은 살모사를 낚아채 간다. 윤군은 보신이라면 뭐든 마다하지 않는 아버지에게 돈을 받고 팔아 갈보집에서 술을 사 마신다.
이 소설이 암시하는 것은 6ㆍ25전쟁의 결과다. 두 사람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는데 그 과정에서 이득을 본 것은 두 사람보다 연장자이면서 힘이 센 윤군이다. 동족이 피를 흘리며 싸운 전쟁은 휴전협정으로 끝이 났고 잇속을 챙긴 것은 강대국이었다는 의식을 작가는 하고 있는 것인데,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6ㆍ25전쟁에 대한 알레고리로 읽힌다. 휴전협정이 체결된 것도 7월 27일, 한여름이었다.
1956년 3월에 발표된 이 작품에서도 작가는 6ㆍ25전쟁의 상흔을 다루고 있다. 다방 ‘진달래’는 온천이 있는 온양읍을 동서로 관통하는 예산가도 남쪽 길가에 있다. 상이용사 불구자인 상만은 친구들의 중매로 이 다방의 레지이며 피난민인 미옥과 동거를 시작한다. 눈이 많이 내린 한겨울 어느 날 천안에 다녀온 상만은 분노에 사로잡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칼로 위협하며 미옥이 스스로 옷을 벗게 한다. 신성여관에 웬 남자와 드나든다는 소문을 듣고 왔기 때문에 모욕을 준 것이었다. 미옥이 만난 사람은 정부(情夫)가 아니라 이북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미옥의 형부였다. 부끄러움에 사로잡힌 상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미옥은 형부의 권유를 뿌리치고서 진달래에서 상만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피난민이든 이산가족이든 상이용사든 이 땅의 모든 사람이 6ㆍ25의 피해자라는 의식을 갖고 쓴 이 소설도 반전(反戰)이라는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화장장의 6명 화부 중 덕배와 순만은 완전 무학이 아니라 보통학교나마 나왔기에 두 사람은 허물없이 지낸다. 덕배의 아내가 셋째 아이를 낳다 사산하고 산욕열이 악화되어 사경을 헤매는데, 답답한 마음에 덕배는 아내를 놔두고 일터인 화장장으로 나간다. 스물여덟 나이에 자살한 학교 여선생의 시신을 화장한 뒤에 덕배는 친구의 도움을 받으며 자기 아내의 시신을 처리하게 된다. 일곱 살 난 사내아이와 네 살짜리 딸아이를 키워야 하는 덕배는 시름을 잊고자 술을 퍼마시다 운다.
6ㆍ25전쟁과 무관한 소설로, 작가가 전쟁의 상흔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단서를 제공하는 작품이다. 하지만 처절한 비극의 현장으로 내몰린 인물들을 등장시킴으로써 인간의 한계상황에 대한 탐색을 해본 것이고, 그 점에서 이 작품 역시 서구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집단이 집단에 가하는 폭력을 다뤘다는 점에서 전후소설의 계보에 넣을 수 있다. 덕표는 군대 생활 4년 중에 영창에 여덟 번 들어갔다가 끝내 불명예 제대한 파락호다. 일등중사 출신 경태와 역도와 보디빌딩으로 몸을 다진 인배, 나이가 가장 어리고 얼굴이 해사한 양복쟁이 창수는 성북동 뒷산에 올라가 놀러온 사람들을 괴롭히며 술을 빼앗아 마시고 돈도 갈취하는 깡패 집단이다. 장교까지 포함된 일가를 한참 괴롭히며 술을 빼앗아 마시던 일당은 잡지사 기자들 야유회 자리에 껴들어 난장판을 만든다. 남녀 기자들을 공포분위기로 몰아가는 과정이 긴박감 있게 그려지는데, 취한 덕표는 엉뚱하게도 제일 연장자인 기자에게 친절을 베푸는 인배를 두들겨팬다. 네 명 사이에 자중지란이 일어나면서 소설은 끝난다. 전쟁터에서 살아났지만 군대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덕표라는 인물은 집단의 완력으로 힘없는 집단을 괴롭힌다. 작은 집단이 작은 집단에게 가하는 폭력이 확대되면 그것이 바로 전쟁이다. 그런데 그 폭력의 끝은 엉뚱하게도 자멸이다.
4ㆍ19혁명 당일, 대학생인 명구와 허윤과 경숙은 혁명 대열에 참여하지 않고 명구네 집 뒷산에 올라가 잡담을 나누고, 잡담에 지치자 명구와 허윤은 경숙과의 데이트 내기 팔씨름을 하며 논다. 이들이 피신하듯 산에 오른 것은 아버지가 다 정부 고위관리여서 혁명 참여는 아버지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같은 대학의 후배인 태수가 경찰을 두들겨패 바로 이 산으로 쫓겨 올라오게 되면서 소설은 급반전을 이룬다. 명구는 자기 집에 숨어 있자고 태수를 안내해 가다가 쫓아온 경찰에 떡이 되도록 얻어맞는다. 태수는 명구도 함께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구를 경찰에 자기를 팔아넘긴 밀고자로 간주하고는 함께 수갑을 차고 끌려가면서도 명구에게 침을 뱉는다. 명구는 혁명 대열에 참가하기로 결심을 한 직후에 기묘한 상황이 발생함으로써 수갑을 차고 끌려가면서 후배에게 밀고자라는 모욕까지 당하는 것이다.
명구는 소설이 끝날 무렵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양심을 지켜 “독선적인 기성세대와 대결”하기 위해 시위 참가를 결심하지만 허윤은 아버지를 핑계삼아 시위에 참가도 안 하고 혁명에 참가한 모든 사람을 “데모 좀 한다구 정권이 뒤집힐 줄 아냐”라며 비웃는다. 4ㆍ19혁명을 간접적으로 다룬 이 소설은 결국 인간의 ‘양심’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또한 당신은 이 경우에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고 묻고 있다.
친구인 상준이를 죽이고 10년 형을 살고 나온 영걸은 억울했다. 상준이 오해를 해 자기 처 경옥을 두들겨패는 것을 말리다가 그만 상준을 죽이고 만 것이다. 경옥은 용수와 재혼해 살고 있는데 영걸이 출감하자마자 마을로 찾아왔으니 용수는 심사가 뒤틀린다. 상준의 묘를 찾아간 영걸을 만나 사과를 하고 싶어 집을 나서는 경옥, 두 사람의 재회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용수가 경옥의 뒤를 따라 무덤이 있는 독고개 뒷산으로 가는 데서 소설은 문득 끝난다.
1963년 6월 발표작인 <虛>에 이르면 전쟁의 상처는 유주현의 소설에서 완전히 지워진다. 그 대신 모럴, 윤리의식, 사랑이 초래한 비극, 선과 악의 경계, 양심과 비양심, 억울한 수형자… 뭐 이런 것들이 다뤄진다. 박정희가 정치일선에 나선 그 시기에 유주현 소설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이런 것들로 바뀐 것이다.
거듭 말하거니와 이상 7편의 단편소설은 유주현의 작품이 실려 있는 한국문학전집 5권 중 어디에도 들어 있지 않은 작품이다. 즉, 작가 자신이 크게 애정을 가진 작품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작가가 살았던 각각의 시대상을 잘 반영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작품의 수준이 어느 것 하나 처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또 그간 비평적인 논의가 전혀 이루어진 바가 없었다는 점에서 이들 작품만을 모아 한 권의 책에 담는다. 유주현의 작가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들을 담은 이 책이 그를 연구하고자 하는 후학들에게 길잡이 노릇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7편의 작품을 종으로 정리해보면 이렇다. 발표 시기가 중요한데, <敗北者>는 6ㆍ25전쟁 중에 쓴 작품이어서 그런지 전쟁을 후방에서 겪고 있는 여성의 모럴을 다루고 있다. <夏日怨情>은 6ㆍ25라는 전쟁에 대한 종합적인 인식을 알레고리 형식으로 담아내고 있다. <溫泉場夜話>만 해도 6ㆍ25가 가져다준 상처와 그것의 극복을 다루고 있지만 6ㆍ25라는 크나큰 힘을 발휘하는 자장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점에 의의를 둘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도 김동리 유의 ‘순수소설’이라기보다는 실존주의의 영향을 받은 소설이라고 볼 수 있다. <鬪情>은 폭력의 본질에 대해 묻고 있는데 발표 시점이 때마침 이승만 정권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때였다. <密告者>는 4ㆍ19혁명 당일 비겁하게 뒷산에서 시간을 보낸 세 젊은이를 내세워 혁명의 의미를 역으로 짚어본 작품이다. <人生을 불사르는 사람들>은 김동리의 <까치소리>를 연상시키는데,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과 질투심, 윤리의식과 죄의식을 짚어본 점에서 시대상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쓴 작품이다.
7편의 작품을 살펴본 결과 유주현은 철저한 사실주의자였다.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그는 시대를 반영한 작품을 썼고, 사회의 부조리와 인간의 모순됨을 직시하였다. 6ㆍ25전쟁의 비극성과 전후의 황폐함, 이승만 정권의 폭압 정치와 4ㆍ19혁명, 그리고 전통사회의 붕괴 등 그 시대가 짐지고 있는 가장 무거운 십자가를 지려고 애쓴 흔적이 역력한 소설들을 썼다. 미학적인 측면에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고 다소 미흡한 점도 보였지만 주제의식의 튼튼함에 있어서는 별다른 흠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1964년부터 역사소설로 전환을 꾀한 것은 자신이 선택한 길이긴 했지만 1950∼1960년대 우수한 중ㆍ단편소설을 쓰던 작가가 상업성을 띤 신문연재소설과 역사소설로 가버린 것은 한국 소설계로 봐서는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유주현에 대한 연구를 하고자 한다면 오인문이 편찬한 ≪柳周鉉 硏究≫(서울, 1992)를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