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태국은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서부 지역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방콕이다. 옛 이름은 시암(Siam,1856∼1939)이었다. 국민의 75%가 타이인이며 14%는 중국인이다. 종교는 불교이다. 면적은 513천 평방제곱키로로 한국의 약 5배, 인구는 72백만 명이다.
태국은 지형학적으로 북부 산악지대와 중부 평원지대, 북동 고원지대, 남부 밀림지대 등 4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북부 산악지대에는 평균고도가 1,200m 정도의 여러 산맥들이 세로로 나란히 뻗어 있으며 그 사이로 핑·왕·욤·난 강의 하곡이 가파른 골짜기를 이루고 있다. 열대우림이 무성하여 고급 목재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타이에서 가장 높은 인타논 산(2,595m)이 산맥 북서쪽 끝에 위치한다. 타이 중심부를 이루는 중부 평원지대는 4지역 가운데 가장 넓은 지역으로 대부분 차오프라야 강 삼각주로 이루어져 있다. 타이 경제는 주로 서비스업·경공업·농업에 바탕을 둔 시장경제가 중심을 이룬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보다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1/8을 차지하는 농업 부문에는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태국의 기후는 동남아시아의 다른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열대몬순 지대에 속한다. 수도 방콕의 가장 더운 4월의 평균 기온이 25.9ºC이며 가장 시원한 12월의 평균 기온은 25.3ºC이다. 연교차는 4.2ºC이다. 이러한 단조로운 기후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몬순이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남서몬순이 부는 우기로, 연간 강우량의 거의 전부가 이 시기에 쏠린다. 11월부터 4월까지는 동북몬순이 불어 아시아 대륙의 건조한 대기의 영향을 받아 건조기가 된다. 내가 방문한 지난 11월 말은 여기저기 꽃이 피어 있고 낮기온이 30~35도로 우리나라의 한여름처럼 수영과 물놀이 하기에 좋은 기온이었다. 한국의 추운 날씨를 피해 여름의 무더운 날씨를 만끽하고 싶다면 태국 여행이나 태국 살기를 해도 좋을 것 같다.
타이는 1932년 이래 대체로 군부가 지배해온 의원내각제 형태의 입헌군주국가이다. 세습 왕이 국가 수반이자 군 총사령관이다
타이의 예술은 건축·미술·음악·연극·문학·자기 및 도기 공예 분야에서 뛰어나다. 타이 건축양식은 보통 목재로 지은 불교 사원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종교적인 색채가 압도적인 타이 미술은 인도와 스리랑카에서 전해진 전통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
고고학적 증거들에 따르면 이곳에는 지난 2만 년 동안 거의 계속해서 사람이 거주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타이어를 쓰는 민족이 10세기 무렵 중국에서 남쪽과 서쪽으로 이주해왔다. 13세기에 들어와 크메르 왕국에 대한 반란이 성공한 후 1220년경 세워진 수코타이 왕국과 하리푼자야의 몬 왕국을 물리친 후 1296년경 일어난 치앙마이 왕국 등 2개의 타이 민족국가가 세워졌다.
1350년 수코타이 왕국을 무너뜨리고 세워진 아유타야 왕국은 15세기초에 수코타이 지역을 완전흡수하고 무너져가던 크메르 왕국을 폐허로 만들었다. 1569년 아유타야 왕국의 가장 강력한 적이었던 미얀마인들이 아유타야군을 물리치고 수도를 점령했으며 15년 동안 아유타야 왕국을 지배했다. 1767년 미얀마인들이 다시 한번 타이 수도를 점령한 후 아유타야 왕조의 지배는 막을 내렸다. 1782년 차오 프라야짜끄리(라마1세)가 이끄는 짜끄리 왕조가 권력을 잡게 되었다.
새 왕조는 초기에 수도를 강 건너 방콕으로 옮기고 라마 3세 때(1824∼51) 남쪽으로는 말레이 반도를 따라서, 북쪽으로는 라오스까지, 남동쪽으로는 캄보디아까지 영토를 넓혔다. 19세기 들어 타이(시암) 군주들이 유럽 국가들에 이권을 주고 그들과 정치적인 관계를 맺게 됨에 따라 타이에 대한 서구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갔다. 시암은 1867년 캄보디아에 관한 권리를 프랑스에 양도했으며 쭐랄롱꼰 왕 시대(1886∼1910)에는 서구식 내정개혁 정책을 폈다. 19세기말과 20세기초에는 라오스와 캄보디아 지방에 있던 속국을 프랑스에 양도했으며, 1917년 연합국 편에 가담해서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그후 쁘라차띠폭 왕(1925∼35 재위) 시대에 쿠데타가 일어나 절대군주제가 무너지고 입헌군주제 정부가 세워졌으며 1939년에는 국가의 공식 명칭을 시암에서 타이로 바꾸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는 마지못해 일본의 동맹국으로 참전했다. 타이의 안보가 인도차이나 전쟁과 베트남 전쟁, 전후 베트남군의 캄보디아 침공으로 잇달아 위협을 받게 되자 1932년 쿠데타가 일어나면서 군부의 지배가 시작되어 1950년대와 그 이후까지 계속되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난 1932년부터 지금까지 군주의 역할은 제한되고 군부가 지배하거나 군부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정부가 잇달아 들어서고 있다.
타이는 1950년 11월 6·25전쟁에 참전한 혈맹국으로 한국과 1958년 10월 1일 외교관계를 수립한 후에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입장을 적극 지지해왔다. 타이에서는 2014년 마하 우본랏 따나랏차깐야 공주가 한국을 방문해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다.
방콕
인구 천만 명으로 타이에서 유일한 세계적 거대도시. 문화·상업·금융의 중심지이다. 타이 만에서 약 40㎞ 떨어진 지점, 차오프라야 강 삼각주에 있다. 1971년 원래의 시가 차오프라야 강 서쪽 연안에 있는 옛 자치시 톤부리와 통합되었고, 1972년 다른 외곽지대들과 통합되면서 방콕 대도시권을 형성했다. 기후는 1년 내내 덥고 습도도 높다. 삼각주 지대가 수로로 가득 차게 되자 차츰 가라앉는 현상이 나타나 문제가 되고 있다. 경제는 타이의 거의 모든 수출입이 이루어지는 방콕 항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주로 상업과 공업에 집중되어 있는데, 식품가공·섬유·건축자재 생산 등이 주요산업이다. 수많은 불교사원들은 타이의 고전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방콕 차오프라야강
태국 방콕을 가로 질러 흐르는, 태국에서 가장 큰 강이다. 북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365 km 이상을 흘러 방콕을 통과하여 타이만으로 흘러들어 간다. 전체 길이는 1,200km,평균 수심은 40m로 큰 용수량을 가지고 있다. 메남강으로도 불린다. 이 강은 태국 최대의 곡창 지대를 관통한다. 따라서 짜오프라야강은 물자나 인력이 이동하는 교통의 대동맥이다. 쌀가마를 잔뜩 실은 바지선, 과일이나 야채를 실은 아주 작은 보트, 다양한 페리들이 강 위를 쉴새없이 움직인다. 이 강을 구경하는 가장 쉽고 값싼 방법은 짜오프라야 익스프레스에 올라타는 것이다. 강의 부두마다 건너편으로 가는 나룻배도 있다. 긴 꼬리 보트도 아주 많은데, 이 보트는 버스로 이용할 수도 있고, 특별히 전세를 내면 도시의 이곳저곳을 탐사하는데 이용할 수도 있다.강주변을 집중적으로 개발하여 도시의 아름다움을 살리고 관광과 운하로써의 기능도 하고 있다. 한국의 한강도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는 큰 강이지만 강주변에는 고속도로와 아파트만 즐비하다. 또한 한강의 교량들이 많고 낮아 큰 크루즈나 화물선이 지나갈 수도 없게 설계되었다. 도시의 소중한 자연환경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심 산
방콕 시내 풍경 , 차안에서 찍은 사진▼
방콕 차오프라야강 선상 관광, 강변의 시가지는 한국의 명동처럼 태극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