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사람’과 ‘돈 뜯는 사람’
이번 총선 출마자 중 제일 관심 가는 사람은 함운경입니다. 국민의힘이 서울 마포을에 전략공천한 사람이지요. 거의 40년 전인 1985년, 대학생이던 그는 서울 을지로 입구의 미국문화원을 점거 농성한 일로 이름이 났습니다. 이 사건은 2년 뒤에 터진 ‘87년 민주화운동’의 기폭제로 꼽히기도 힙니다. 그의 이 이력 앞에서는 나름 운동 좀 했노라 하는 왕년의 386 운동권 인물들도 기가 좀 죽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나는 함운경이 운동가여서가 아니라 사업하는 사람, 자영업자여서 그의 이번 도전을 지켜봅니다. 그의 운동권 이력을 무시하는 게 아닙니다. 운동 경력보다는 장사 경력을 앞세우는 모습에 더 끌린다는 말입니다.
마포을에 공천된 후 구독자가 제법 되는 정치 유튜브에 나온 그는 진행자의 부탁에 “군산에서 생선을 파는 생선 장수 함운경입니다”라고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연출하는 ‘서민 코스프레’ 같다고 생각하는데, 이어진 그의 말에 이런 생각은 사라지고 속에서 울컥한 게 올라왔습니다. “생선 장사, 이거요, 새벽 경매장 가서 사온 아구 한 마리 잡아 손질해 팔면 3,000원 남아요. 그렇게 팔아서 직원 두 명 인건비 만들어 내려면 정말 어렵습니다.”
“두 명 인건비 만들어 내려면 정말 어렵다”라는 그의 말에 울컥했던 것은 20여 년 전 내가 ‘사장님’일 때 기억 때문입니다. 첫 직장이던 신문사를 그만두고 나와서는 회사를 하나 차렸습니다. 기업 사보를 대신 만들어주는 업체였지요. 경제부 기자일 때 알게 된 기업이나 학교 선배가 전문경영인으로 있는 대기업 같은 곳에서 일거리를 따내면 그럭저럭 꾸려나가지 않겠냐는 요량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때 잘나가던 중견 업체 오너가 잘 봐줘서 일감을 하나 얻고 그게 바탕이 돼 또 다른 곳에서도 일을 따냈지요. 신나서 직원도 두 자릿수로 늘렸습니다.
하지만 2년 만에 털어먹고 사무실을 접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불경기, 경험 부족, 나에게 일을 준 분들의 퇴장 등등…. 직원 다 내보내고 책걸상 컴퓨터 프린터 팩시밀리 전화기 에어컨 등등 집기 전부를 중고 물품 전문업체에 헐값에 떨이하고 간판 내린 후 휑한 사무실을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났습니다.
어쭙잖은 사장일 때 제일 무서웠던 게 뭔지 아십니까? 월급날 돌아오는 거였습니다. 간신히 월급 만들어 주고 나면 곧바로 다음 월급날이 돌아왔습니다. 거지에게 배고파 오는 게 제일 무섭다면 영세 자영업체 사장들에게는 월급날 돌아오는 게 제일 무섭다고 해도 될 겁니다. 월급날 나가는 건 월급만이 아니지요. 4대 보험, 근로소득세, 퇴직금 적립, 거래처 대금, 은행 이자 등등.
이런 것 주다 보면 정작 자기 월급은 못 가져가기도 합니다. 자기 월급은커녕 오히려 아내가 친정이나 동창들에게서 돈을 빌려 와야만 월급날 겨우 넘기는 사장님도 있을 겁니다. 나는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월급 갖고 들어간 날은 한 손 손가락만으로 다 셀 수 있습니다. 사장님들 이런 고생은 평생 월급만 받아온 사람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고생입니다. 피가 마른다는 말로도 부족할 겁니다.
함운경은 최저임금 제도를 고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한국이 시장경제 원칙으로 돌아가는 나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시장경제 원칙을 파괴하면서 최저임금을 왕창 올린 문재인 정권 때 크게 덴 모양입니다. 그때 갑자기 크게 오른 최저임금을 감당하지 못해 데리고 있던 사람을 내보내고 직접 생선 손질을 해야 했거나, 자기가 집에 가져가야 할, 자기의 최저임금을 못 가져갔거나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짐작됐습니다.
함운경의 상대는 민주당 최고위원 정청래입니다. 그도 운동권이라고 소문났습니다만 함운경의 출마 이후에는 그 경력을 내세우지 않는다는 말도 들립니다. 당시 함운경과 함께 운동했던 ‘정통’ 민주화 운동가들이 1989년 미 대사관저를 점거, 불을 지르려다 미수에 그친 게 고작인 정청래가 원조 운동권 함운경과 맞먹으려 드는 걸 마뜩잖게 여기기 때문일 겁니다. 정청래 측도 그런 분위기를 느끼는지 “누가 진짜 운동권이었는지 그게 뭐 중요한가. 누가 더 마포을 발전에 필요한 진짜 일꾼인가가 중요하지”라고 한답니다.
정청래도 20여년 전 마포에서 학원을 운영하다가 정치에 뛰어들었다니 사업 경력이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나는 돈 버는 것의 고단함, 삶의 신산스러움은 방수 앞치마 두르고 고무장갑 낀 손에 칼 들고 생선 비늘을 벗긴 다음 머리 꼬리를 잘라낸 후 배를 따고 토막 치는 일을 해온 함운경이 정청래보다 더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나 짐작합니다. 그렇게 돈을 벌어 다른 이들까지 먹여 살려본 함운경이 일과 돈의 가치를 더 알지 않을까도 생각합니다.
만일 함운경이 당선된다면 남의 돈 뜯어내려는 강도 같은 자들 소식이 끊어지지 않는 국회와 그 언저리가 조금은 더 깨끗해지지 않겠나 기대도 해봅니다. 전 민주당 대표 송영길과 민주당 국회의원 노웅래 임종성 등등, 국민의힘 국회의원 정찬민 하영제 등등, 여러 정치인이 이미 더러운 돈 받아먹은 혐의로 처벌받고 있거나 곧 처벌될 처지입니다.
이들은 자기가 땀 흘려 돈 번 적이 없으니 다른 이들의 돈을 만만하게 보는 겁니다. 그러니 아무 때나 돈 내놓으라고 손 벌리고, 안 내놓으면 뜯어내는 기술을 개발하는 겁니다. 송영길이 돈 봉투를 뿌릴 수 있도록 돈을 만들어줬다가 구속된 전 수자원공사 감사 강래구는 “5백만 원 뜯고 싶으면 천만 원 가져오라고 해. 그러면 5백 갖고 온단 말이야”라고 후배를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우리 국회에 돈 뜯는 사람은 인제 그만 들어오고 돈 벌어본 사람, 돈 벌어 다른 이 먹고살 만하게 한 사람, 함운경처럼 몸으로 애국해 본 사람이 많이 들어왔으면 하는 바람을 그의 출마에 빗대 몇 줄 써봤습니다. (알아보니 함운경은 최저임금을 못 감당해 5명이던 직원을 2명으로 줄였다고 합니다.
직원들에게는 250만 원을 월급으로 주고 자기는 150만 원을 가져갔다고도 합니다. 고용이 애국이고, 세금내는 사람이 애국자라는데 이처럼 최저임금 때문에 애국자 자리에서 밀려난 사람이 꽤 많았을 것 같군요. 후쿠시마 ‘오염수’ 괴담으로 사람들이 수산물을 외면했을 때도 군산의 생선 장수 함운경은 속이 몽땅 타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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