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생활을 시작하고 이현필은 이내 후회하기 시작하였다. 결혼하면 여러 문제가 풀리리라 생각했지만 오히려 더 많은 문제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약 2년간이나 부부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커다란 시련이 닥쳐왔다.
1940년 여름, 어렵게 임신한 부인이 복통이 심하여 광주로 가서 보니 자궁외 임신이었다. 결국 당시로서 큰 수술을 하게 되었고 부인의 목숨은 살렸지만 뱃속의 아이는 살릴 수 없었다. 이현필에게 이는 큰 충격이었다. 죄 없는 어린 생명을 죽였다는 죄책감이 몰려왔다. 이럴 줄 알고 스승은 결혼을 반대하신 게 아닐까.
이때부터 이현필은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날마다 산에 올라가 기도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내를 누님이라 부르며 남매처럼 살자고 해혼(解婚)을 부탁했다.
그러나 아내가 이 뜻을 알아줄 리 없었다. 자기를 떠나지 못하도록 붙잡고자 애를 썼지만 이현필은 자꾸 피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아내의 애정은 차츰 증오의 모습이 되어갔다. 나중에는 보기만 하면 해치려 하였다. 원수같은 남편을 죽이고 자기도 죽겠다는 결심을 한 것이다. 이러한 아내가 앞문으로 들어오면 이현필은 뒷문으로 빠져 도망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