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이순신의 ‘홀로 뱃전에 앉아 있으니’
계사년(1593) 6월 12일
비가 오다 갯다 한다. 아침에 흰 머리카락 열 몇 개를 뽑았다. 흰머리가 난 것은 어찌 되돌리겠는가마는 위로 늙으신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사량 만호 이여념이 왔다 가고, 밤 열 시쯤에 변존서와 김양간이 들어왔다. 임금님 계신 곳의 소식을 듣자니 세자께서 편찮으시다고 하여 너무나 걱정스럽다. 영의정 유성룡의 편지와 지중추부사 윤두수의 편지가 왔다. 종 갓동과 찰매가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참으로 가여운 일이다. 해당 스님이 왔다. 밤에 수사 원균의 군관이 와서 명나라 다섯 사람이 들어왔다고 전하고 갔다.
계사년 7월 9일
맑았다.(중략) 이날 밤, 바다에 뜬 달이 밝고 먼지 하나 일지 않아 바닷물과 하늘이 같은 빛이다. 서늘한 바람이 잠깐 불어왔다. 홀로 뱃전에 앉아 있으니 온갖 근심이 가슴 속에 밀려왔다. 밤 한 시 쯤에 전라 좌수영 척후선이 들어와서 적의 소식을 알려주었는데, 실제로는 왜적이 아니고 영남의 피란민들이라고 했다. 이들이 왜적처럼 꾸미고 재물을 뻬앗았다는 것이다.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진주에서 일어난 일 또한 빈말이라고 했다. 과연 진주의 일도 그러할까? 아마도 그럴 리가 없을 것이다. 닭 우는 소기가 들린다.
계사년 7월 14일
맑다가 저물녘애 비가 조금 왔다. 진지를 한산도 두을포로 옮겼다. 비는 먼지를 적실 정도로 내렸다. 몸이 좋지 않아 하루 종일 앓는 소리를 냈다.
계사년 7월 15일
구름 한 점 없이 아주 맑았다. 해질 무렵에 사량의 수색선, 여도 만호 김인영이 들어왔다. 여도 만호 김인영이 들어왔다. 김대복은 순천 지휘선을 타고 왔다. 가을 기운이 바다에 드니 쓸쓸한 나그네 마음이 더욱 어지러웠다. 홀로 배 위에 앉아 있으려니 마음이 뒤숭숭하다. 달빛이 뱃전을 비추니 정신이 맑아지고, 시원해졌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데 닭이 벌써 운다.
갑오년(1594) 1월 1일
비가 퍼붓듯이 내렸다. 어머님을 모시고 함께 살 한 살을 더하게 되었다. 난리 중에도 다행한 일이다. 저물녘에 군사들을 훈련시키려고 한산도로 돌아왔다. 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나렸다.
갑오년 1월 12일
맑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어머니께 하직 인사를 올렸다. “잘 가거라, 가서 나라의 치욕을 꼭 씻어야 한다. ” 어머님은 이렇게 두 세 번이나 말씀하시면서 헤어지는 슬픔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배를 타고 돌아와서는 몸이 좋지 않은 듯해서 곧장 뒷방으로 들어갔다.
정유년(1597) 4월 19일
맑았다. 일찍 길을 나서면 어머님 영전에서 슬피 울었다. 어찌하랴. 어찌하랴. 이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어서 죽는 것보다 못하구나. 큰 집 조카 뇌의 집에 이르러 사당에 절을 올렸다. 금곡에 있는 강선전의 집에 이르러 강정과 강영수를 만나 말에서 내려 곡을 했다. 가다가 보산원에 이르렀는데 천안 군수가 먼저 와 냇가에서 쉬고 있었다. 임천 군수 한술이 중시를 보러 가는 길에 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와서 나를 위로하고 갔다. 아들 회와 면, 조카 봉과 해, 분, 그리고 완과 변 주부 등이 천안까지 따라왔다. 원인남도 왔다 갔다. 인신역에 이르러 잠을 잤다. 저녁에 비가 내렸다.
정유년 10월 14일
맑았다. 새벽 두 쯤에 잠을 깼다. 꿈에 말을 타고 언덕을 지나다 말이 발을 헛디뎌 개울 가운데로 떨어졌으나 넘어지지 않았다. 막내 아들 면이 나를 부축해서는 안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잠이 깼다. 이게 무슨 낌새인지 모르겠다. 늦게; 배 조방장과 이의득이 찾아왔다. 배 조방장이 하인이 경상도에서 와서 왜적의 형편을 알려 주었다. 황득중이 들어와서 ‘내수사의 하인 강막지라는 자가 소를 많이 기르기 때문에 열 두 마리를 끌고 갔습니다.’라고 했다.
저녁 무렵, 천안에서 온 사람이 아산 집에 보낸 편지를 전해 주었는데, 봉투를 뜯기 전에 뼈와 살이 떨리고 정신이 아득했다. 겉봉을 대충 뜯고 둘째 아들 열의 글씨를 보니 겉면에 ‘통곡’이라는 두 글자가 씌어 있다. 막내 아들 면이 죽었다는 말인가? 몹시 놀라 소리 높여 울고 또 울었다.
하늘이 어찌 이다지도 인자하지 않으신가. 가슴이 타고 찢어지는 것 같구나. 내가 죽고 네가 사는 것이 이치에 맞거늘, 네가 죽고 내가 살았으니 어찌 하늘의 뜻이 이러 잘못 될 수 있단 말인가? 눈 앞이 캄캄하고 빛조차 잃었구나,. 슬프다. 내 아들아! 나를 버리고 어디로 간단 말이냐. 네 제주가 남달리 뛰어나 하늘이 이 세상에 너를 남겨두지 않으려는 것인가?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네가 화를 입었구나. 이제 내가 누구를 의지하여 살란 말인가? 너를 따라 죽어 저승에서 함께 지내며 같이 울고 실지만 네 형과 누이, 그리고 네 어미가 의지할 데가 없으니 잠깐만 참고 살아야겠구나. 그러나 마음은 이미 스러지고 육신만 남아 슬퍼할 뿐이다. 하룻밤이 한 해처럼 길기만 하구나.
밤 열 시 쯤에 비가 나렸다.
- 난중일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