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즐겨 듣는다 / 곽주현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라디오부터 켠다. 한국방송(KBS)의 클래식 에프엠(Classic FM)이다. 92.3 메가헤르츠(MHz, megahertz)는 내가 애청하는 채널이다.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흘러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곡 중의 하나여서 하루를 시작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세상의 모든 음악을 이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다소 과장된 광고도 날리지만, 시간대별로 다양한 음원을 들을 수 있어 늘 그 주파수에 맞춘다. 집에 있으면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무엇을 하든 항상 라디오를 켜 둔다.
책상 맨 앞쪽에 놓인 이 녀석은 아직도 ‘금성(엘지 전자의 옛 이름)’이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 30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카세트와 복사 기능이 있고 입체 음향도 구현된다는 등의 설명이 붙어 있다. 그 시절에는 꽤나 값나가는 물건이었다. 지금은 버려도 주어 가지 않을 만큼 낡은 전자제품이 되어 버렸지만, 아직도 내 음악 감상용으로 별로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요즈음 나오는 제품들은 카세트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기능이 거의 없다. 그러나 이것은 그 옛날에 즐겨 듣던 팝송, 샹송 그리고 칸초네 등의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어 지난 시간을 되새김해 보기도 한다. 주인과 함께한 세월이 길어 이제는 속도가 느려져 제 음가를 내지 못하지만 그래도 그때의 추억을 불러오는 데는 손색이 없다. 이제 고인이 된 칸초네의 여왕 밀바가 부른 <리벨라이(짧은 사랑)>, <아리아 디 페스타(축제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뜻도 모른 채 따라 흥얼거리며 가슴 설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거실에 괜찮은 오디오가 있기는 하나 혼자 있을 때를 빼고는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서 켜 놓은 음악 소리가 가족이지만 소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자 선호하는 곡이 달라 더욱 그리하지 않는다. 꼭 내 서재로 옮겨 놓고 싶지만, 방이 좁아 그만두었다. 음악 전문가는 클래식은 음역의 폭이 넓고 깊은 오디오로 들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라디오만으로도 별로 부족하지 않다.
농막에도 비슷한 카세트 라디오가 또 있다. 그곳에서는 주로 시디(CD)를 듣는다. 고물이라 에프엠(FM)이 잘 잡히지 않아 그런다. 가곡을 크게 틀어 놓고 일하고 있으면 지나가던 동네 분이 발을 멈추고 무슨 좋은 일 있냐고 묻는다. 혹시 시끄러워 그러냐고 되물어 본다. 아니, 듣기 좋아서 그런다며 웃고는 가던 길을 간다. 다른 이에게 방해받지 않은 곳이면 이렇게 곧잘 듣는다.
수년 전에 긴 해외 배낭여행을 한 적이 있다. 20일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자려고 침대에 누웠다. 피곤해서 눈꺼풀이 무거운데 도통 잠이 오지 않고 노래가 듣고 싶었다. 함께한 아들에게 인터넷이 안 되는 곳이어서 핸드폰에 저장된 가요가 있으면 불러내 보라고 했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와 ‘이등병의 편지’를 들려준다. 두 곡 모두 어찌나 가슴이 시리던지 지금도 그때의 먹먹한 기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런 노래가 있는 줄도 모르고 처음 들어서 더욱 그랬다. 이처럼 음악은 언제 어디서 듣느냐에 따라 느끼는 깊이가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한때는 유명 작곡가의 테이프, 음반, CD를 가끔 사서 듣기도 했다. 그런데 그것을 파는 가게에 간 지가 꽤 오래되었다. 라디오에서 시간대별로 다양한 종류의 음악을 들려주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렇다고 어떤 분야에 깊이 빠지는 마니아는 아니다. 음(音)으로 표현되는 모든 장르를 듣고 즐긴다. 그래도 한 분야를 고르라고 하면 클래식이라고 말하고 싶다. 고전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고상한 취미를 가졌다고 다소 높게 쳐주는 사람도 있는 듯하지만, 아이고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클래식의 기초 지식도 없이 멋도 모르고 그저 좋아할 뿐이다. 그래서 곡을 소개할 때 안단테, 모데라토, 아다지오 등의 용어가 나오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러나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느슨해져서 독서나 글쓰기에도 집중이 잘된다.
요즈음 여러 티브이 채널에서 경쟁적으로 방송하는 트로트를 가끔 챙겨 듣고 있다. 출연한 분들이 자신의 모든 감정을 쥐어짜듯 뿜어내는 노래는 듣는 이의 마음을 들었다 놓았다 한다. 노래의 위력이 대단하다. 이름 없는 가수가 어느 날 갑자기 스타가 되기도 한다. 그가 지방 순회공연을 하면 비싼 입장료를 내야 하는데도 수많은 청중이 구름처럼 모인다니 가요가 지금처럼 전성기를 누린 적이 있었을까 싶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한 곡도 제대로 부를 줄 아는 노래가 없다. 그러니 그렇게 들었던 팝송 한 구절도 잘 외우지 못한다. 남이 부르면 그저 흥얼거리기는 잘한다. 그저 듣고 즐길 뿐이다. 내게 있어 음악은 삶의 윤활유다.
‘유행가 유행가 신나는 노래 나도 한번 불러 본다. 쿵쿵 따라 쿵쿵 따……,’ 얼씨구,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