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알트루사 방학동안에도 쉽없이 수요집단상담모임 하는 거 아시죠?
이번주 수요일에 모임이 있습니다.
이번이 학령기 일곱번째 시간입니다.
문선생님 발제글 읽고 만나뵙으면 합니다.
"좋은 교사, 좋은 부모, 좋은 어른"
연애해서 결혼한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연애할 때 하던 짓을 결혼하고는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결혼하더니 얼굴이 바뀌었다고 서로 말합니다. 구름위에 떠서 연애하고, 땅에 발을 딛고 결혼 생활을 하니까요. 그런데 서로 관심을 끄지 않고, 재미를 잃지 않고 살려면 구름위에 떠있는 상태와 땅에 발을 딛고 사는 것이 겹쳐있고, 구름 위와 땅을 번갈아가며, 동시에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맨 정신으로 삭막한 ‘현실’에만 사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 살아야 건강하기 때문입니다. 꿈이 없는 삶이란 건강할 수 없습니다. “낮은 곳”에 몸을 싣고 살아도 “높은 곳”을 저버리지 않고 알고 사는 삶이 제대로 우리를 사람답게 살게 합니다.
학령기에 이르렀다고 아이들이 놀이시기를 졸업하고 완전히 차단하는 게 아닙니다. 놀이와 공부가 함께 공존합니다. 연애와 결혼이 공존해야 하듯이 말입니다. 그러기에 좋은 선생은 놀이와 공부를 엇바꾸며 흥미를 불러오고, 공부하고 싶은 동기에 열을 부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승부를 가르는 게임이 아니라 완성을 향해 가는 길을 즐기는 마음으로 게임과 일에 임하게 아이들을 이끌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떤 일도 귀하지 않은 것이 없다는 자세를 길러,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소중한 것임을 마음에 배어들도록 원칙에 맞게, 세심하고, 정확하고, 적절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놀이와 배움의 자세를 갖추게 합니다. 아이들이 게임을 즐기듯 일(공부)의 완성을 보람차고 즐겁게 느끼도록 돕습니다. 그러려면 교사 자신이 일관성 있게 건강해야 하고, 각박하지 않고 유연하며 아이들과 부모에게 신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좋은 교사를 알아보고 협력하는 부모는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그 시간을 아이들과 조화롭게 쓸 수 있어야 합니다. 교사가 아이의 숨은 재능을 찾아 불을 붙여주기를 기대하지만, 부모도 아이를 파악하고 교사와 협력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학습의 단계를 거치면서 완성의 맛을 본 아이들은 다음 단계도, 또 그다음도 기꺼이 지속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계속해서 관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다음 단계도 공부(일)를 완성하려는 의지를 늦추지 않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단계에선가 전학을 갔다던가, 아파서 결석했다던가 해서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면, 제대로 말끔하게 확실하게 알지 못한 채 그 단계를 어정쩡 넘겨버려야 해서 스스로 미비하게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자신에 대한 부적절함의 느낌과 열등감을 싹트게 합니다.
아이를 보살피는 좋은 어른은 아이가 느끼는 이 차질을 눈 여겨 보아야 합니다. 왜냐 하면 아이가 그 단계를 지나 그 다음으로는 잘 해나가고 있다고 여겨 어른들은 안심하고 있어도 아이는 그 해결되지 않은 경험이 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어서 스스로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의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언젠가 한두 번 잘 못 알고 넘어간 것이 평생 머리를 떠나지 않고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또 안 될 거야. 난 안 돼”라고 귓속말로 자기에게 속삭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지만 자기 머릿속에서는 끊이지 않고 들립니다. 남들은 “저 사람은 곧 잘하면서 왜 저럴까?” 하며 이상하다는 듯 지켜보는 데도,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밖에 못 느끼고, 제 살을 깎아내듯 마음에 고통을 겪으며 살게 합니다.
“하면 된다!” 라든가 “나의 사전에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구호를 외친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삶의 어떤 과정도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습니다. 어떤 과정의 흔적도 그냥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좋은 어른’은 아이의 배움의 과정을 소중하게 봐주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그냥 넘겨 버리고도 “이제 다 지났으니, 아, 다행이다!” 하며 마음 놓아서는 안 됩니다.
첫댓글 양수리에 가야 해서 결석합니다.
가족모임인가요?
@홍혜경 어지럼증으로 주말 동안 꽤 고생했다 말했더니 보양식^^ 해주신다고.. 언니랑 같이 가요.
이사 준비도 해야 하고요. 이사 나오는 날(1/28)과 이사 들어가는 날(2/3)이 일주일 차이가 나서 간단한 짐도 좀 갖다놔야 하고..
@홍혜경 내일 모임에 참여 못하니까 글로라도^^
저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제게 때로 '부적절한 느낌&열등감'을 불러일으키려 하셨다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뭘 믿고' 기죽지도 않는가, 기막혀 하셨어요. 저는 말대꾸 잘하는 어린이였어요. "내가 못하는 건 맞아요. 내가 못하면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야 하잖아요?"라고 대들거나.. (시쳇말로, 버릇없는 어린이ㅠ) 오죽하면 6학년 선생님은 학생들과 함께 '이인미 왕따'에 동참하기까지!! ('왕따'당할 만했다고요? ^^;;) 아무튼 저는 '왕따'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타인의 감정을 잘 살피지 못하는 어른으로 컸죠. (지금도 그 방면으로.. 노력은 하지만..ㅠㅠ) 하지만 '명/암'이 교차한달까, 버릇은 없었지만, 열등감&패배감엔 빠져들지 않게 되었어요. 가정에서 할머니가 기를 살려(!)주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만.. 뭐랄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인미는 하나님의 딸!!"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제가 서른세 살 때 문 선생님께서 "이인미만 하나님의 딸인가?" 질문하셨을 때 "'아, 나만!'이 아니구나!" 깨달았건만.. ㅎ (갈길이 먼..)
"아이는 그 해결되지 않은 경험이 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어서 스스로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의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언젠가 한두 번 잘 못 알고 넘어간 것이 평생 머리를 떠나지 않고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또 안 될 거야. 난 안 돼”라고 귓속말로 자기에게 속삭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지만 자기 머릿속에서는 끊이지 않고 들립니다. 남들은 “저 사람은 곧 잘하면서 왜 저럴까?” 하며 이상하다는 듯 지켜보는 데도,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밖에 못 느끼고, 제 살을 깎아내듯 마음에 고통을 겪으며 살게 합니다."
이 부분이 정말 제 얘기네요. 자기개념에 문제가 생긴 채 살아온. 제 스스로 한계 지우고 저를 가두며 살아왔다는 깨달음이 요며칠 들더라고요^^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 때 숙제에 대해 낼 이야기하고 싶어요~
4학년 6학년 때 제가 정말 힘들어했던 숙제들이 있었어요. 4학년 때는 사회 교과서를 외워 가서 쓰는 숙제가 있었는데 전 그 교과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한다고 여겨서 자꾸 짜증을 냈어요. 이게 왜 다 안 외워지냐고요. 선생님이 요구하는 건 그정도까진 아니였을 텐데, 그만하면 됐다는 부모님 말도 들리지 않았죠. 입으로 소리내서 읽고 입으로 확인하면서 조사 하나 틀리면 짜증내며 앞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6학년 때는 졸업을 앞두고 세계지도 그리는 숙제를 내주셨어요. 그렇게 한 번 직접 그리다 보면 그 지역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거란 선생님 말씀이 있었어요. 그런데 전 똑같이 그리는데 집착을 했어요. 유럽이면 유럽, 아시아면 아시아 부분부분 그릴 땐 그릴 만했어요. 모양새가 많이 비슷했죠. 섬이나 삐쭉삐쭉한 땅끝 모양까지도요. 그런데 대망의 세계지도를 그려가야 하는 날 저는 처음으로 새벽까지 그 그림을 잡고 있었죠. 다 그렸는데 중국만 남았는데 남은 공간은 그 넓은 중국을 표현하기엔 너무 조금 남아있었어요. 그 부분 마무리를 못해 잠을 잘 수가 없었네요. 제가 그러고 앉아있으니 당시 우리집에서 같이 살던 고종사촌오빠가 도와주려고 했는데
@작은나무(정은선)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때 그부분을 오빠의 도움으로, 이래도 괜찮다는 오빠의 말을 듣고 대강 완성은 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제 마음 속 불만족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땐 그게 최선이었고 지금 봐도 정말 잘 그렸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