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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알트루사에서는 1/19(수) 수요집단상담모임 안내와 문선생님 발제글(10:30-12:30)
홍혜경 추천 0 조회 173 22.01.17 15:07 댓글 7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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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01.17 16:20

    첫댓글 양수리에 가야 해서 결석합니다.

  • 작성자 22.01.17 17:02

    가족모임인가요?

  • 22.01.17 19:13

    @홍혜경 어지럼증으로 주말 동안 꽤 고생했다 말했더니 보양식^^ 해주신다고.. 언니랑 같이 가요.

    이사 준비도 해야 하고요. 이사 나오는 날(1/28)과 이사 들어가는 날(2/3)이 일주일 차이가 나서 간단한 짐도 좀 갖다놔야 하고..

  • 22.01.18 13:13

    @홍혜경 내일 모임에 참여 못하니까 글로라도^^

    저는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제게 때로 '부적절한 느낌&열등감'을 불러일으키려 하셨다는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 '뭘 믿고' 기죽지도 않는가, 기막혀 하셨어요. 저는 말대꾸 잘하는 어린이였어요. "내가 못하는 건 맞아요. 내가 못하면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셔야 하잖아요?"라고 대들거나.. (시쳇말로, 버릇없는 어린이ㅠ) 오죽하면 6학년 선생님은 학생들과 함께 '이인미 왕따'에 동참하기까지!! ('왕따'당할 만했다고요? ^^;;) 아무튼 저는 '왕따'에서 생존하기 위해 노력하느라.. 타인의 감정을 잘 살피지 못하는 어른으로 컸죠. (지금도 그 방면으로.. 노력은 하지만..ㅠㅠ) 하지만 '명/암'이 교차한달까, 버릇은 없었지만, 열등감&패배감엔 빠져들지 않게 되었어요. 가정에서 할머니가 기를 살려(!)주셨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만.. 뭐랄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인미는 하나님의 딸!!"이란 확신이 있었어요. 제가 서른세 살 때 문 선생님께서 "이인미만 하나님의 딸인가?" 질문하셨을 때 "'아, 나만!'이 아니구나!" 깨달았건만.. ㅎ (갈길이 먼..)

  • 22.01.18 11:54

    "아이는 그 해결되지 않은 경험이 늘 마음 밑바닥에 깔려 있어서 스스로 완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의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오래전 언젠가 한두 번 잘 못 알고 넘어간 것이 평생 머리를 떠나지 않고 주저하게 만듭니다. 그리고는 “또 안 될 거야. 난 안 돼”라고 귓속말로 자기에게 속삭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는 소리지만 자기 머릿속에서는 끊이지 않고 들립니다. 남들은 “저 사람은 곧 잘하면서 왜 저럴까?” 하며 이상하다는 듯 지켜보는 데도,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그렇게 밖에 못 느끼고, 제 살을 깎아내듯 마음에 고통을 겪으며 살게 합니다."

    이 부분이 정말 제 얘기네요. 자기개념에 문제가 생긴 채 살아온. 제 스스로 한계 지우고 저를 가두며 살아왔다는 깨달음이 요며칠 들더라고요^^

    초등학교 4학년과 6학년 때 숙제에 대해 낼 이야기하고 싶어요~

  • 22.01.20 03:24

    4학년 6학년 때 제가 정말 힘들어했던 숙제들이 있었어요. 4학년 때는 사회 교과서를 외워 가서 쓰는 숙제가 있었는데 전 그 교과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워야 한다고 여겨서 자꾸 짜증을 냈어요. 이게 왜 다 안 외워지냐고요. 선생님이 요구하는 건 그정도까진 아니였을 텐데, 그만하면 됐다는 부모님 말도 들리지 않았죠. 입으로 소리내서 읽고 입으로 확인하면서 조사 하나 틀리면 짜증내며 앞으로 돌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6학년 때는 졸업을 앞두고 세계지도 그리는 숙제를 내주셨어요. 그렇게 한 번 직접 그리다 보면 그 지역에 대한 이해가 높아질 거란 선생님 말씀이 있었어요. 그런데 전 똑같이 그리는데 집착을 했어요. 유럽이면 유럽, 아시아면 아시아 부분부분 그릴 땐 그릴 만했어요. 모양새가 많이 비슷했죠. 섬이나 삐쭉삐쭉한 땅끝 모양까지도요. 그런데 대망의 세계지도를 그려가야 하는 날 저는 처음으로 새벽까지 그 그림을 잡고 있었죠. 다 그렸는데 중국만 남았는데 남은 공간은 그 넓은 중국을 표현하기엔 너무 조금 남아있었어요. 그 부분 마무리를 못해 잠을 잘 수가 없었네요. 제가 그러고 앉아있으니 당시 우리집에서 같이 살던 고종사촌오빠가 도와주려고 했는데

  • 22.01.20 03:22

    @작은나무(정은선) 이것도 저것도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때 그부분을 오빠의 도움으로, 이래도 괜찮다는 오빠의 말을 듣고 대강 완성은 할 수 있었어요. 그렇지만 제 마음 속 불만족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그땐 그게 최선이었고 지금 봐도 정말 잘 그렸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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