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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는 새다
유독/황인찬
아카시아 가득한 저녁의 교정에서 너는 물었지 대
체 이게 무슨 냄새냐고
그건 네 무덤 냄새다 누군가 말하자 모두 웃었고 나
는 아무 냄새도 맡을 수 없었어
다른 얘들을 따라 웃으며 냄새가 뭐지? 무덤 냄새란
대체 어떤 냄새일까? 생각을 해봐도 알 수가 없었고
흰 꽃잎은 조명을 받아 어지러웠지 어두움과 어지
러움 속에서 우리는 계속 웃었어
너는 정말 예쁘구나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예쁘다
함께 웃는 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였는데
웃음은 좀처럼 멈추질 않았어 냄새라는 건 대체 무
엇일까? 그게 무엇이기에 우린 이렇게 웃기만 할
까?
꽃잎과 저녁이 뒤섞인, 냄새가 가득한 이곳에서 너
는 가장 먼저 냄새를 맡는 사람, 그게 아마
예쁘다는 뜻인가 보다 모두가 웃고 있었으니까, 나
도 계속 웃었고 그것을 멈추지 않았다
안 그러면 슬픈 일이 일어날 거야, 모두 알고 있었
지
* 황인찬 시인의 여자친구가 그 날 있었던 "이건 무슨 냄새지? 누군가 네 무덤 냄새야하고 말하자 모두 웃었다"는 일화를 가지고 쓴 시라고 한다. 마지막 결구가 임팩트가 있다. 꽃잎과 죽음을 잘 대비시켜 결구로 이끌고 있다.
황인찬 시인의 첫 그림책, 《내가 예쁘다고?》
최근작인 그림책 《내가 예쁘다고?》는 혼잣말 같기도 하고, 타인에게 하는 말 같기도 한 “되게 예쁘다”로 시작합니다. 이 작은 말이 그림책의 시작이 된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은 제 친구 아들이 유치원에 엘사 옷을 입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에서부터 모든 생각이 시작됐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유치원 다니던 시절의 제 생각이 났던 거죠. 누군가 저에게 ‘예쁘다’, 그렇게 말했고 저는 그 말을 듣고 ‘나는 남자인데 왜 예쁘다고 하지?’라고 생각했어요. 잊고 지냈던 그 일로부터 다른 서사들이 떠올랐어요.”
어떤 단어, 어떤 순간이 이야기가 되기도 하는군요.
“전에는 메모장에 메모가 가득했어요. 시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사전을 찾아 읽기도 했습니다. 메모장의 메모도 동이 나고, 세 번째 시집을 낼 때부터는 타인의 말들을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거리에서 들려오는 말들에 귀를 쫑긋 세우기도 했고요. 어떤 문장이나 단어가 그 맥락에서 떨어져 강렬하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그 단어가 저의 맥락과 만나 시가 되기도 합니다.”
시는 경력이 쌓인다고 실력이 느는 분야가 아니라고들 합니다. 등단 후 12년이 흘렀는데요. 지금까지의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실력이라는 말이 참 모호한 말이에요. 나이를 먹고 시를 계속 써나가면서 능숙해지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다만 능숙함만으로는 좋은 시를 쓸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아무리 서툴고 미숙해도 좋은 시를 쓸 수 있고, 아무리 능수능란하게 시를 부릴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꼭 좋은 시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는 아직 한참 멀긴 했지만, 그럼에도 능숙함을 갖추게 되면서 조금이나마 자유롭게 시를 쓸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모르겠는 것이 시지만, 분명 20대 초반에 시를 대하던 경직된 태도는 부드러워지긴 했어요. 그것이 꼭 좋은 일이라고 말할 수도 없겠지만, 그것을 통해 저의 시는 조금 더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시인’이라 소개하진 않는다고요. 하지만 이제 시인임을 숨기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전에는 ‘박사 과정 중입니다’ 혹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사실 제가 시인인 것을 모르고 관계를 맺는 일이 이제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나 싶기도 하네요. 다만 누군가에게 제가 굳이 시인이라는 이야기를 먼저 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시인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난 뒤에 벌어질 일이 얼마나 부끄러울지 상상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웃음).”
코로나 이후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는데, 식물을 키우는 일은 어떤 감각들을 깨워주나요.
“생물을 가까이 두는 것이 삶에 보탬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생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기도 하고, 생물이 생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삶이란 무엇인지도 생각해보게 되거든요. 여러 식물 각자가 원하는 환경이 달라 때로는 손이 많이 갈 때도 있지만, 식물은 환경만 갖춰지면 알아서 쑥쑥 자라주는 생물이기도 해서요. 저는 그 점이 또 아주 좋습니다. 스스로 잘 자라는 식물을 보면서 성취감과 만족감을 느끼는 경우도 참 많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다들 너무 다양하게 예뻐서, 매일 식물을 새로 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만 합니다.”
똠양꿍에 대한 애정을 여러 인터뷰에서 발견했는데요. 첫맛에 반했나요, 서서히 물들었나요.
“처음 먹는 순간 아니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세상에 있다니, 하고 놀랐습니다. 많은 경우에 무엇인가를 좋아하게 될 때는 최초의 경험이 크게 영향을 주는 것 같아요. 경험해본 적 없는 놀라운 맛이었고, 그것이 아주 마음에 들었고, 그래서 좋아하게 됐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시를 쓰는 일만큼 시인으로 인생을 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시를 쓰는 사람이 시인이 아니라 시인이 쓰는 것이 시라고도 했지요. 후자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시는 그다지 돈이 되지 않으므로, 그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며 적당한 균형을 찾고 있습니다. 자조적인 농담이 섞인 말이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리며 살아가기 위해 시인으로서 자신과 시민으로서 자신을, 시와 생활을 잘 구분하면서, 동시에 잘 섞어가면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요. 시인으로 사는 일이란 결국 그 어느 쪽도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계속 휘청거리는 일인 것 같습니다.”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무화과 숲〉
황인찬 시인의 시는 새다. 이제는 ‘같다’는 말을 지워도 되겠다. 그의 시는 새처럼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하지만 쉽게 읽히진 않는다. 쉽게 간파당하지 않기 위해 그는 많은 말을 삼킨다. 스물둘, 등단하던 해 그는 수상 소감에 “새를 보면 무섭다”고 적었다고 한다. 시를 쓰기 위해 시인으로 살려고 노력한다는 그에게 시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삶의 중력을 이기고 시의 세계로 떠올라야 한다. 하지만 쉬운 사랑만 사랑인 건 아니다.
독자는 쉽게 황인찬 시인의 시 안으로 들어오지만 쉬 나가지는 못한다. 익숙한 줄 알고 발을 디뎠는데 거기엔 낯선 세계가 있다. 황인찬 시인이 말을 거는 방법이다. 시의 말들은 독자에게 찾아온 순간 날아오른다. 그 허공을 오래 바라보라고, 그는 여백을 남긴다.
시는 짧다. 그래서 명료하다. 시인의 말처럼 말싸움을 하다 보면 안다. 말이 길어질수록 원래 의도와는 멀어진다. 말에 떠밀린다. 황인찬 시인은 말에 떠밀리지 않으려 시를 꼭 붙잡는다. 시를 읽지 않은 시대는 있었지만, 시인이 살지 않는 시간은 없었다.
황인찬 시인이 쓰는 시는 어떤 면에서 시대를 바꿨다. 시를 읽지 않는다고 혼내는 사람도 없는데 시집을 펴는 시대로. 덕분에 시집을 편 순간은 나와 다른 생각, 나와 다른 표정, 나와 다른 감정을 만난다. 그렇게 낯선 세상과 몸을 섞고 말을 섞다 보면 뜻밖의 환희가 차오를지 모른다. 시인이 똠양꿍 한 숟갈을 떠먹던 순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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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으로서 다른 시인들의 시를 읽고, 그것에 관한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은 어땠나
“내가 좋아하는 시와 시인들을 소개하는 일이어서 즐거웠다. 다만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를 쉽게 전달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내 일상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내 일상이 독자의 일상으로 번져가고, 시에서는 우리들의 일상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말하면 시를 이해하기 훨씬 쉬워지니까.”
△ 김소월의 시 ‘산유화’에 나오는 ‘저만치’라는 단어에 대한 해석이 흥미로웠다. 최근 자주 언급되는 ‘느슨한 연대’, ‘건강한 거리 두기’와도 맥이 닿아있는 것 같다
“책에서도 썼지만 나를 지키고 상대를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하다. 그것은 예술의 기본 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다. 거리 두기에 실패하면 예술의 의미나 아름다움을 생성하는 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적절한 거리 두기는 언제나 중요한 것이고, 비단 예술만이 아니라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 “마음, 사물, 사건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함께 생각하는 일은 어느 한쪽만 보는 일보다 훨씬 시적인 일일 것”이라고 했다
“시 쓰기는 판단을 내리는 일이 아니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고스란히 보여주는 일이다. 고스란히 보여주기 위해서는 눈에 띄는 부분들과 함께 너무 작아서 잘 보이지 않거나 들리지 않는 것들도 묘사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넉넉하게 담아낼 수 있는 게 예술에서의 바람직한 재현이다.”
△ ‘신발’과 ‘사랑’의 관계에 관한 글도 흥미로웠다. 이 글을 읽고 뜬금없이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이 떠올랐다. 이 글에서 당신은 “여러분의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요”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신의 사랑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나
“세 번째 시집 제목에 사랑을 붙이는 바람에 책이 나왔을 때 사랑을 잘 모르면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웃음) 단순하게 말하면 나에게 사랑은 귀찮고 껄끄러운 것이다. 나는 혼자 있는 게 훨씬 편하고, 가볍고, 가뿐하다. 그런데 사랑은 그런 귀찮음과 껄끄러움을 감수하게 한다.”
△ “사랑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가 되지만, 나는 둘이 된다”는 문장도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그 순간조차도 외롭거나 멀게만 느껴질 때가 있지 않나. 사랑할 때 귀찮음과 껄끄러움을 감수하는 나를 자각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너와 내가 닿을 수 있는 부분은 여기서부터 여기까지야 라고 분명하게 나눠야 관계가 좀 더 건강하고 오래갈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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