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도착해서 처음 본 한국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어요. 부둣가에 빨간색 십자가가 그려진 병원 열차와 짐들이 보였죠. 흑인 병사들로 구성된 미군 군악대가 나와 우리를 반겨줬어요. "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불리는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머나먼 영국에서 한국으로 파병됐던 켄 켈드가 떠올린 한국의 첫인상이다. 지금은 87살의 백발 할아버지가 됐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됐던 한국에서 보낸 시간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최근 한국에서 그를 포함한 영국군 장병 23명의 수기를 묶은 '후크고지의 영웅들'이라는 책이 출간됐다. 당시 대부분 17-20살이었던 푸른 눈의 앳된 청년들이 동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전투 현장에서 겪었던 삶과 죽음, 그리고 일상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책이다.
책에 실린 꼼꼼한 수기의 주인공이자, 전쟁의 상흔을 극복하고 빠르게 발전한 한국의 현재 모습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켄 켈드를 BBC 코리아가 화상으로 인터뷰했다.
잊지못할 첫인상
'후크고지'는 임진강 북단에 비스듬하게 걸쳐 있는 해발 200m 남짓의 고지다. 생김새가 쇠고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후크(hook)'라고 불렸는데 한국전쟁 당시 영연방군과 미군이 중공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모두 4차례에 걸친 격전 끝에 영연방군과 미군이 승리하며 임진강 북단의 연천군 장남면과 백학면, 미산면, 왕징면 일대가 지금의 한국 영토가 됐다. 그리고 책에 담긴 수기의 주인공들은 이 후크고지를 지켜낸 듀크 오브 웰링턴 연대 소속 장병들이다.
당시 영국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인들을 한국에 보냈다. 하지만 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고 영국의 참전 군인들은 이를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진 출처,KEN KELD
어쩌면 이름조차 생소했을 동방의 작은 나라에서 일어난 전쟁에 파병된 소년들은 험난한 뱃길과 기차에 몸을 싣고 전투지로 향했다. 켈드 역시 그 소년들 중 한 사람이었다. 당시 한국에 대한 첫인상을 묻는 질문에 그는 세 가지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깨진 유리창과 쌓여있던 먼지, 그리고 우리에게 몰려든 한국 꼬마들이 기억나요."
기나긴 뱃길 여정 끝에 일본에 잠시 내렸다 다시 부산으로 향했던 그들은 그곳에서 또다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나무로 만든 불편한 의자에 앉아 깨진 창문을 통해 밖을 겨우 내다보며 스무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를 종단해 올라가는 아주 길고 불편한 여정이었다는 게 그가 떠올린 기억이다.
"역에 설 때마다 굶주린 아이들이 먹을 것을 구걸하려고 기차를 에워쌌어요. 그렇게 얻은 음식마저도 작고 어린 아이들은 덩치 큰 아이들에게 뺏기기도 했죠."
당시 계속된 전쟁으로 곳곳에는 온통 배고프고 굶주린 아이들이 천지였고, 외국 군인들을 실은 기차가 역에 오면 아이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선로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북으로 향하는 동안 장병들은 배고픈 아이들에게 비상식량을 대부분 나눠준 탓에 굶주림과 수면 부족을 겪으며 여정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삶과 죽음의 경험
켈드와 동료들은 당시 후크고지 인근에서 방어진지를 강화하기 위해 벙커 벽을 쌓고 참호를 파는 임무를 맡았다. 처음 후크고지에 도착한 그들은 앞으로 자신들에게 닥쳐올 일을 알지 못한 채 그저 감방 같은 곳으로 들어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그곳에 머무르는 2주 사이 갑작스레 시작된 중공군의 공격은 사흘 내내 이어졌다. 어린 청년이었던 그는 집중 포격으로 무너진 벙커와 얕아진 참호들, 그리고 땅에 묻힌 시신들이 썩어가는 악취를 맡으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버텼다.
살면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겪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이들이 서있던 주변에는 거센 불길과 함께 포탄이 비처럼 쏟아졌고 당시 병력의 절반을 잃었다고 켈드는 회상했다. 아수라장이 된 전장에서 그는 친구와 함께 부상자와 전사자의 시신 수습을 도왔다.
그러나 또다시 뒤쫓아 온 중공군의 총탄이 날아들자 켈드와 동료 병사들은 굴안으로 몸을 숨겼다. 당시 이들이 가지고 있던 무기는 스텐 경기관총 한 정과 수류탄 한 발이 전부였고, 쏟아지는 공격에 스스로를 지키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굴 안에 몸을 숨긴 청년들은 숨을 죽인 채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쿵쿵 대는 포격 소리와 중공군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켈드가 전장에서 떠올린, 가장 힘들었던 순간 중 하나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구출을 기다리는 일 뿐이었다.
치열한 전투 끝에 결국 후크고지는 지켜냈고, 청년들은 겨우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기억을 기록하다
켈드 옹이 머나먼 한국 땅에서 경험했던 일을 담담하게 기록하기 시작한 건 3년전 쯤부터다.
그는 사람들이 종종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일에 대해 묻곤 했다면서 누구나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기록하고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수기 작업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6·25전쟁을 바라보는 거대 담론이나 국제 관계 이론은 없지만 생사를 오가는 치열한 전투 현장에서 앳된 젊은이들이 겪은 일상의 이야기와 생각, 감정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 있는 이유다.
사진 출처,RAMI HYUN
이들의 생생한 수기를 담은 책의 번역을 도운 김용필 씨는 그동안 6.25전쟁에 참전한 많은 영국군 용사들을 만나오며 그들이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있다고 전했다. 당시 전장의 혼란 속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고 해도 그 시절 자신들이 몸담은 전쟁이 얼마나 의미있고 중요한 것이었는지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먼 나라에서 바다를 건너온 푸른 눈의 청년들은 이름조차 생소했을 작은 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웠고 그들이 지켜낸 나라의 발전을 지켜보며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했다.
인터뷰 내내 환한 표정으로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던 켈드는 자신들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땅의 변화된 모습에 여전히 들뜬 듯 했다.
"한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예요. 지금 한국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자랑스러워요.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국가 중 하나로 성장했잖아요. 기회가 된다면 죽기 전에 꼭 다시 한 번 가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