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13
포항에 내리자 날이 너무 차갑다.
왼쪽 발바닥 아래서 지그시 느껴지는 통풍기. 오른쪽 무릎은 어제보다 더 안 좋은 상태.
생질이 설치한 산길샘(나들이)에 <기록시작> 설정 후 해안가로 나간다.
남부종합시장, 영암도서관을 지나니 곧 워크라인의 끝자락인 형산강 하구를 만난다.
<현대> <포스코> 고로에서 나오는 연기의 기세가 하늘을 뚫을 것 같다.
강변길에 해파랑 길 안내 표식이 여럿 나타난다. <해파랑>길 안내는 정부 어느 부처에서 개발한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세계적인 트레킹 길로 발전할 여지가 있어 보인다.
송도해수욕장의 넉넉한 품을 보며 걷는데 해파랑길이 갑자기 왼쪽으로 차도로 90도 꺾인다. 급히 산길샘을 열어보니 오던 길을 계속하면 결국 이곳으로 다시 오게 되어 있다. 코끼리 코 길인 것이다.
동빈큰다리를 건너 포항여객터미널에 도착. 탑승객들이 내뿜는 열기가 대단하다. 몇 년이나 되었을까? 울릉도에 갔다 온지가? 아내의 부잿날, 이런 날 혼자 훌쩍 떠나는 것도 낭만적일 것이다.
계류장을 보니 울릉을 오가는 배도 이제 쾌속선으로 대체되어 있다. 안전이야 더 할 테지만 선상이 오픈된 연락선의 낭만은 못 따르리라.
영일대해수욕장(구 북부해수옥장)엔 해상 누각이 건립되어 있다. 누각에 올라 제철 쪽을 바라보니 하늘이 온통 옅은 잿빛이다.
누각기를 읽어보고 다시 길을 나선다.
‘적어도 칠포까지는 가야되겠지......그럼 식사부터 해야겠지....’ 마침 두무치 앞 식당가다. 아무 식당이나 골라 들어가려는데 우선 보이는 안내글귀가 <2인 이상 어쩌구>.
다른 집을 찾으면 되나 무시하고 걷다 우연히 시선 앞으로 전개되는 해안선을 보니 양덕지구 여남동이 보인다. 에그머니나.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오늘 이 몸 상태로는 나가지 못할 것 같다.
저 언저리를 통과할 때가 영일만 신항 공사땐가? 하여튼 즐거운 기억은 아니다.
칠포는 포기하고 여기서 돌아가야겠다.
안 그래도 오늘 목적이 산길샘 학습과 죽도시장의 식해 구입이 아닌가.
환호공원 안에 있는 포항시립미술관 앞을 지나 죽도시장으로 오는데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었다. 장량지구 근처에서 만난 <포항역> 방향 안내판을 보고 걸었는데 아무래도 외곽으로 빠지는 것 같다.
전진하는 방향에 왜 <영덕>이라는 방향 안내판이 나오냐 말이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물으니 포항역이 흥해쪽으로 이전을 했다는 것이다.
왔던 길로 20여분 정도만 돌아나가면 죽도시장 가는 길로 들어설 수 있겠으나 마침 죽도시장 앞을 지나는 차가 오기에 날름 차에 오른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죽도시장. 일본인들도 많이 다녀가는 곳이라 그런지 하차 지점에 이르자 일본어로 만 하차안내방송이 나온다.
입구부터 개메기가 주를 이룬다. 원래 포항이라는 말이 개+메기(강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란 뜻이다.
반찬거리에 가서 가자미식해, 꼬마노가리, 황태고추장무침 구입 후 동대구회센타에서 물회로 배를 채운다. 가격을 많이 올랐지만 맛은 변함없다.
코스요리를 보니 20만원. 4-5인 상인데 눈에 찍어둬야겠다.
사라진 포항역으로 이동. 죽도시장에서 10분 안 거리인데 역사터는 폐허로 변해있고 공사용 가림막으로 막아뒀다.
광장 앞 국군수송사령부 건물(TMO)만 용케 서있다.
광장에서 40여 년 전 더블 백을 메고 서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본다. 내 앞은 누구였고 내 뒤는 누구였을까? <트리스탄과 이졸테>.......
이상하다. 왜 오늘 무슨 체면에 걸린 듯 <트리스탄과 이졸테><트리스탄과 이졸테>하며 걸었지?
터미널에 이르자 이미 날은 어둡다.
땀이 식으니 통풍기가 기승을 부린다.
몇 시간 즐겼으니 몇 시간 고통 받는 건 당연하다.
실용주의자 철학을 변형시킨 <행복총량불변의 변칙>을 생각해 본다.
<인간의 행복-인간의 불행=0> 란 법칙인데 밀이나 밴덤 철학처럼 언사적이지도 않고 명확하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들을 것은 뻔하나 내 나름 이유는 충분하다.
차를 타고 오며 며칠 전 자형이 말씀하신 <개념은 본질을 앞설 수 없다>란 말을 되짚어본다. 난해한 말씀이라 이해가 어렵다.
만약 그렇다면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사르트르의 말과 <여자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자로 만들어져 간다>는 보봐르의 생각은 어떻게 해석해야하지?
<트리스탄과 이졸테>.......
더욱 짙어지는 어둠을 보며 지그시 눈을 감는다.
카메라 줌 기능이 없어 표현이 거칠다.
포항시립미술관 앞.
포항 물회-동대구식당. 소주 생략.
반찬들이 전부 달달하다....쩝.
그날. 그날. 그날. 겁을 잔뜩 먹고 불안에 떨어야했던 그날. 결코 우리 후손들에게는 그런 날들이 없어야되는데, 아 나는 그동안 무엇을 했더란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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