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5 / 혼례에 청함을 받으신 예수님
(요 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요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 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하는 찬양을 부르면 기쁨이 생기다 못해 차고 흘러넘치는 경험을 합니다. 찬양을 부르면 내 영혼이 기뻐하고 그로 인해 성령님도 같이 기뻐하시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시146:1)는 시편을 읽기만 해도 기쁨이 있습니다.
1~2절 사흘째 되던 날, 즉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한 지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라는 지역에 혼례가 있었습니다.
혼례의 3요소는 혼례의 주인공 신랑, 신부와 자리를 빛내주는 손님들, 맛있는 음식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혼인 잔치는 일주일 동안 하는데 신랑과 신부는 왕과 왕후로 대접받는다고 합니다. 오늘 주인공인 신랑과 신부는 손님 초청을 아주 잘한 것 같습니다.
마리아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이 초청받아 혼례에 왔습니다.
이 결혼식에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예수님과 믿음의 사람들을 초청한 신랑과 신부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을 삶에 초청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초청할 때 성령님이 일하실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예수님을 삶으로 초청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항상 인식하고 존중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 항상 함께하신다는 생각으로 말과 행동에 유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사람이 두세 사람 모인다면 그곳이 교회가 되고 그 자리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적은 수가 모여 기도하고 예배하는 것도 우리 삶이며 예수님을 인식하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주님이 성령으로 여기에 와 계십니다.
우리 가정에 모임에 직장에 교회에 예수님을 초청하려면 예수님을 존중히 여겨야 합니다.
집에서 밥 먹을 때도 예수님도 같이 드시고 일할 때도 옆에서 같이 일하시고 예배를 드릴 때도 옆자리에 앉아 계신다는 것을 항상 알고 그분 앞에서 말과 행동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우리 삶에 초청하고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3절 사람들이 결혼식을 갔을 때 식장의 분위기, 크기, 결혼식 이벤트, 신랑 신부의 아름다움을 말하기도 하지만 단연 음식이 가장 큰 주제입니다. 밥이 어땠는지에 따라서 결혼식이 좋았다 별로였다 말합니다. 유대인의 결혼식은 온 마을 사람들의 기쁨이 되고 그 기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포도주라고 합니다. 그만큼 결혼식에서는 포도주가 중요합니다.
혼례를 일주일씩 하니까 질 좋은 포도주가 많이 필요합니다.
근데 그 포도주가 다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요즘은 생산과 공급이 잘 되서 부족해도 문제없이 채울 수 있지만 이때는 현재보다 부족한 때라 포도주를 다시 공급하려면 긴 시간이 걸립니다. 포도주를 다시 만든다 해도 숙성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누가 먼저 발견했을까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먼저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문제를 신랑이나 매니저에게 알리지 않고 예수님께 가지고 왔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마리아는 이 혼례에 초청받은 손님입니다. 결혼식장에서 발생한 문제를 신경 쓸 필요 없는 손님입니다. 근데 마리아는 불만과 원망을 품지 않고 내 문제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 문제를 들고 나갔는데 그 대상이 예수님이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았지만,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죽음 문제, 영적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일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포도주가 떨어진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예수님께 문제를 들고 온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의 문제를 기도로 예수님께 들고 가야 합니다.
(빌 4:6)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갑자기 찾아오는 돈 문제, 관계 문제, 가정 문제, 직장 문제, 사업 문제들이 있습니다. 문제만 놓고 본다면 해결책이 안 보여 막막하고 걱정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예수님께 들고 나올 때 마음에 드러나는 걱정, 염려, 불안들은 쓸데없는 사라지거나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겨납니다.
다니엘도 왕 외에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면 사자 굴에 들어간다는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혔을 때도 그는 전에 하던 대로 하나님께 기도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사자들의 입을 막으셔서 다니엘을 보호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먼저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로 예수님을 초청해야 일하실 수 있습니다. 먼저 기도하고 만나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고 공부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먼저 기도해야 예수님이 내 삶에서 일하실 수 있습니다.
4~5절 기도했으면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말을 하자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셨습니다. 엄마가 쓰레기 좀 버리고 오라고 하셨는데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하면 분명 얻어맞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 전반부만 보면 내 상관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 같아도 그 뒤에 내 때가 이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때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때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때에 민감하게 반응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어갈 때도 예수님은 때가 이를 때까지 기다리시다가 때가 되어서 나사로에게 가셨습니다. 또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 날 유대로 가자고 하는 형제들에게 예수님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아 먼저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때에 맞춰서 유대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를 기다리시고 때에 맞춰 일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다며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기도에 응답받지 못했을 때 절망하며 떠날 수도 있었지만, 마리아는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던 이유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마리아가 이미 하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처녀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마리아에게서 나온다는 말씀을 듣고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간 엘리사벳의 집에서 ‘여자 중에 복이 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님을 향한 마리아의 찬양이 흘러나옵니다. 예수님을 벤 때부터 마리아는 하나님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둘째, 마리아는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잉태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며 순종했습니다. 남자를 알지 못하는 마리아가 잉태하는 건 인간적으로 생각했을 때 불가능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약혼한 사람이 있는 여자가 잉태를 한 건 간음죄로 몰아 돌로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때입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음과 하나님께 순종할 때 선하게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응답이 원하는 방향과 달라도 하나님의 때에 더 좋은 방향으로 기도가 이루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을 믿습니다.
예수님도 순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내려가라 하셨을 때 그대로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라 하셔도 그대로 순종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 순종까지의 길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고통을 피하고 싶어서 잔을 옮겨달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자기 의를 죽이고자 흘러 떨어지는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십자가 순종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사해지고 영생을 받았습니다.
순종이라는 것은 상대방의 말에 대해서 내 뜻, 의견을 굽히고 순순히 따르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의식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눈에 안 보인다고 해서 무시하고 기도할 때만 찾는 사람이 아닌지 점검해 보고 그런 자신을 발견했다면 이 시간 회개함으로 예수님을 존중하는 자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행위가 구원을 이루지 않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인 것처럼 예수님을 의식하며 존중히 여기며 말과 행동을 하길 기도합니다. 존중받고 높임 받으신 예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문제를 직면했을 때 그 문제를 가지고 나아와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주님께 아뢰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는 주님이시지만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일하실 수 없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을 삶으로 초청해 그가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믿고 구할 수 있길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순종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성령의 소원을 통해서 그리고 세우신 주의 종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목사님, 동역자, 직장 상사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소원과 권위를 통해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서 말씀을 잘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질 수 있길 기도합니다.
우리 모두 삶으로 예수님을 초청하여 존중히 여기며 모든 것을 주님께 구하며 말씀에 순종하는 새군산교회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충만히 받고 하나님 나라 축복을 받길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