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소설[단편] 고양이는 죽지 않아

[모나미붓펜]

교복이 구겨졌다. 나는 구겨진 모서리를 잡아 꾹 눌렀다. 조금 펴질까 싶었는데 어림도 없는 소리. 보기싫게 비죽이 튀어나와있다. 보기싫게.
나는 언니가 싫어하던 연못의 가장자리 길에 서 있다. 말이 연못이지 사실은 그저 못이다. 사람이 많이 빠져죽은. 나는 그곳에 서 있다.
빨리 가자. 뱃속에서 울려나오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구름이 무척이나 빠른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가을 바람이 연못 저편에서 나에게로 차갑게 불어온다. 저 빠른 구름이 부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저렇게 빨리가면 언니를 볼 수 있을텐데, 하지만 무서울텐데.
얼른 발을 옮겨. 가자. 다시 한번 뱃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눈을 한번 감고 한참 바람을 느끼다가 발을 옮긴다. 차가운 바람이 이렇게나 반가울 수 없는 일이다. 답답한 병원은, 너무 싫어.





언니는 세수를 못한다. 세수도 못하고 양치질도 못하고 속옷을 갈아입지도 못한다. 그래서 나는 항상 언니를 돌본다. 얄밉게도 나는 이렇게나 힘든데 언니는 얌체같이 그저 누워서 산소호흡기나 빨아대고 있다. 미워 죽겠어.
수건을 꼭꼭 짜서 언니를 세수시킨다. 분명히 하얘졌다. 입원하기 전보다는. 하지만 그것밖에 모르겠다. 눈빛도, 목소리도 듣지 못하니까.
교복에 물이 묻었다. 나는 듣지도 못하는 언니에게 짜증을 내며 너때문이라고 투덜댄다. 하지만 반응이 없는 언니에 대해 알기 때문에 나는 곧 투덜거림을 멈춘다.
세숫대야를 들고 끙끙대며 -이 병원 세숫대야는 너무 크다- 밖으로 나간다. 물을 버릴 심산이었는데 못 볼 걸 봐버렸다.
며칠전부터 안면을 텄던 아주머니가 울고 있었다. 입을 가린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덜덜덜. 세숫대야의 물도 그 아줌마를 따라서 덜덜덜 흔들리고 있다.
분명 아들이었다. 아들은 이미 세숫대야의 물처럼 차갑게 식어 더 차가운 하얀천을 얼굴위로 덮고 있다. 내가 무서워하는 의사선생님들이 아들을 끌고 가고 있다. 아줌마는 그저 그것을 바라볼뿐이다.
억울한 것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다는 것. 죽어가고 있는데 그저 얼굴이나 닦아주고 이야기나 해준다고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 더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아니, 계속 봐. 뱃속의 소리가 말한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싫다고, 보고 싶지 않다고, 무섭다고. 하지만 자꾸 보란다. 나는 결국 그 아들을 바라본다.
그러다 무서워진 것은 저 아들의 병실에 있던 무서운 무언가가 우리 언니에게 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 나는 얼른 언니의 병실 문을 닫았다. 문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차갑다.





'삐이이-'
물을 끓어서 주전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는 동시에 전화벨이 울린다. 서둘러 불 먼저 끄고 전화를 받는다.
친구. 오랜만에 듣는 친구의 말투, 목소리, 어기. 나는 그 반가움 뒤에 숨은 두려움을 느꼈다. 천천히 입을 떼서 용건을 묻는다.
상투적인 대화가 어색하게 몇번 오고간다. 아니, 어색한건 나뿐이다. 차가운 친구의 말에 나는 당혹함을 감추지도 못한 채 어쩔줄을 몰라하고 있다. 빨리 끊고 싶다. 친구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그리고 이유없는, 하지만 알 것 같은 침묵이 계속 이어진다. 나는 그 아이가 할 말을 알고 있고 그 아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죽을 것만 같은 답답함.
"그 아이-"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친구의 목소리. 하지만 그 진심은 차갑기만 해서,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배를 감싸안았다. 제발 듣지 말아줘.
"그 아이, 빨리 죽였으면 좋겠어."
뚜-하는 기계음이 친구의 목소리 뒤로 이어진다. 알고 있었지만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은, 나에게 너무 큰 상처를 안겨준다. 그리고 나와 함께 고통을 공유했어야 할 남자의 얼굴도 떠올려진다.
언니때문에 힘들어했던 나에게 어깨를 빌려준 남자였다. 난 너무 힘들었고, 그도 날 원했다. 단지 그가 친구의 오빠였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나를 힘들게 한다.
나는 겨우 일어서서 주전자로 걸어갔다. 뜨거운 김이 사납게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주전자 입구를 배로 가져다 댄다. 부어버릴 생각이다.
부워, 확 부어버려. 배 깊숙히 숨은 그 아이가 말한다. 부워버리라며. 나는 주전자를 힘껏 던졌다. 뜨거운 기운은 퍽하고 벽을 때리고 온 사방으로 흩어졌다. 나는 쓰러지며 신음한다. 제발 이러지 말라고.





나도 연못 가장자리 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 길 옆에 검은 털복숭이 시체가 있을때부터 나는 더욱 더 그 길을 싫어하기 시작했지만 어쩔 수 없는게 그 길이 병원과 가장 가까운 길이기 때문이다.
저 체구로 보면 고양이 일 듯 싶다. 아마 고양이도 살아있었을 것이다.
밥을 먹고, 산책하고, 몸을 가꾸고, 사랑을 하고, 낮잠을 자고, 눈을 맞고, 물을 마시고, 뒹굴고, 하품을 하고, 달리고, 잠을 자고, 웃고, 울고, 미워하고, 햇빛을 쬐고, 꽃향기를 맡고, 키스하고, 노래를 부르고. 우리 언니가 했던 것처럼. 나의 아이가 할 것처럼.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아련하게. 땅 속 깊은 곳에서.
들어봐. 죽은 고양이의 울음이야. 뱃속에서 또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무시하려 했지만 내 눈은 그러질 못햇는지 금세 눈물을 밀어낸다. 밀려난 눈물은 어디로 갈지 갈팡질팡하더니 결국 내 볼을 타고 내려온다.




별이 보인다. 이곳은 그렇게 도시가 아니라서 아직도 밤하늘에는 별을 볼 수 있다. 길 중앙에 서서 하늘을 볼 때면 항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오직 밤하늘과 나. 별과 나. 이것들 뿐이다.
야오옹, 조용한 밤하늘 밑에서 고양이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아차 싶어서 얼른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야옹하는 소리와 함께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고양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밤인데다가 검은 고양이라서 형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제는 제법 추운 밤바람에 양 손을 겨드량이에 끼고 고양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부스럭. 소리와 함께 고양이가 한번 더 움직였다. 기적인가.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기적이 아니었다. 고양이의 시체에서 작은 뭔가가 꼼지락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조금 작은, 같은 빛의 털을 지닌.
아기 고양이. 작고 여린 목소리. 지난 이틀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듯 안타까운 목소리와 몸짓.
손을 내밀까? 나는 고민했다. 저대로 놔두면 곧 죽어버릴거야. 하지만, 또 죽어버리면? 모두들 처럼 죽어버리면. 저 작은 몸이 비틀어져 죽어버리면. 나는 곧 마음을 고쳐먹고 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고양이가 더욱 더 구슬프게 우는 것이 느껴졌다. 울지마. 말하지마. 둘 다 입닥쳐.
'퐁당'
고개를 돌렸다. 어둠에 익숙해진 내 눈은 고양이를 찾고 있었지만 그것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연못의 은은한 파동만이 느껴질 뿐이다.
나는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어느새 누군가의 자동차의 라이트가 내가 서 있던 자리를 비추었다.




"미쳤어?! 10월에 물에 뛰어드는 애가 어딨어?! 이런 덜되먹은..."
심한 욕설이 들려왔고 추위가 몰려왔다. 어떻게 건진지 모를 젖은 고양이를 안고 벌벌 떨고만 있었다. 따뜻함이 등을 덮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양복 윗도리를 벗어 나에게 걸쳐주고 있었다.
"죽지마요."
나는 대뜸 그에게 말했다. 깜짝 놀라 손을 멈추던 그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눈물이 차올랐다. 얼굴에 있는 물기와 합쳐져서 온 얼굴이 눈물로 뜨거워졌다.
"죽지 말아줘요. 죽지 말구 같이 있어요."
그의 팔을 부여잡았다.
"무슨..."
내 얼굴의 물기를 닦는 그의 손길이 느껴졌다. 하지만 금새 눈물이 차올라 떨어진다.
"죽지 말고. 살아있어서. 함께. 모두 함께. 언니도, 내 아이도, 고양이도. 죽지 말란 말이야."
꺽꺽 거리는 소리가 목을 통해 겨우겨우 터져나온다.
누군가든 꼭 죽을 것이다. 수명이 다하든, 병에 걸리든, 사고가 나든지. 하지만 아무도 죽지 않았으면 한다. 제발, 간절하게 모두들 살아줬으면 싶다.
그가 고개숙인 내 어깨를 꾹 잡았다.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마주보았다.
"아무도, 죽지 않아. 죽게 하지 않을거야."
단호한 그의 말에 나는 잦아들던 울음을 다시 터트린다. 사람이 많이 빠져죽었다던 못 가장자리까지 내 울음소리가 울려퍼진다.
따뜻한 품에 안겨서 나는 생각했다. 그의 대답을 들었다 해도 언니는 깨어나지 않을 것이고 아이는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양이는 살아있다.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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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모나미붓펜입니다.
왠지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듯 싶습니다.
제가 그림을 공부할 때 그리고 싶던 이야기를 글로 옮겼습니다. 최대한 유치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도 무척이나 유치한 글이 되어버렸습니다.
프롤로그를 올린 후 부터 정신사나운 일이 많아져서 한동안 글을 못 썼습니다.
남은 한 편을 잘 쓸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즐거우셨길 바라며 기분 좋은 밤 되세요.

[사쿠_yuki]

아니요,소설책을 다 읽었을때같은 감동입니다.분명 짧은데도 두근두근 하고있어요.감사합니다..

[[백호교]이젠 내가 하늘을 만들겠어]

한동안 죽음은 죽음 그 자체로의 우울한 단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훌륭히 삶을 강조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기다렸던 만큼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엄태현]

마늘양 소설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요ㅎ 잘쓰시네요. 잘 읽고갑니다. 건필하세요.

[†死神†[Cjsvnd]]

전율이 이네요....아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