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줄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써진다면
첫눈처럼 기쁠 것이다.
미래의 열광을 상상 임신한
둥근 침묵으로부터
첫 줄은 태어나리라.
연서의 첫 줄과
선언문의 첫 줄.
어떤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의 첫 줄.
그것이 써진다면
첫아이처럼 기쁠 것이다.
- 심보선 '첫 줄' 일부
처음은 가장 강력한 불길이다. 사랑 편지의 첫 줄이든 삶의 혁명을 이룰 첫 문장이든 그것은 열기로 가득하다. 눈송이는 차가워 세상을 차갑게 식히지만 우리네 마음만큼은 따뜻하게 달구지 않던가.
하지만 태초는 카오스로 가득해 처음을 기다리는 마음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생의 나침반이 자꾸 흔들리는 건 그래서다. 그럴 때는 가만하게 자기 안으로 침잠해 곧 시작될 처음을 상상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아기는 첫울음을 울어야만 미소를 보여준다.
〈김유태 / 문화스포츠부기자·시인〉
Bloch: From Jewish Life, B 54 - 1. Prayer (Arr. B. Kanneh-Ma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