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건 바쁜 일이다.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주, 한 번이라도 바쁘지 않았던 적이 있었던가?
사랑하는 아우의 '빙부'께서 별세하셨다.
만사를 제쳐둔 채 고속열차를 타고 전주로 가는 길이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때다.
또한 그런 시대고 그런 나이다.
오늘만 결혼식이 네 번이다.
정신없다.
결혼식은 길면 한 해 전에, 적어도 한 달 전엔 알 수 있기에 복잡한 일정을 조율는데 그나마 용이하고 편리하다.
그러나 애사는 알 수 없다.
어느날 느닷없이 부고가 날아든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하루의 경조사가 총 다섯 건이다.
몸은 하난데 다 갈 수는 없다.
그래서 과감하게 결정했다.
오전에 전주에서 조문하고 오후 4시에 수서역 부근에서 혼사에 참석하기로.
나머지 혼사엔 마음만 보내기로 했다.
혼주들에게도 정중하게 양해를 구했다.
내 평소의 지론도 '경사'보다는 '애사'에 더 마음과 시간을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오래된 나의 소신이다.
소신이 그렇다면 그대로 행동하는 게 맞다.
그것이 나의 순리다.
아무튼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위로, 감사, 격려, 찬미가 더 필요하고, 더 긴요함을 느낀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네팔 홍수'로 인해 고귀한 생명, 오천 명 이상이 일거에 목숨을 잃었다.
작년 가을에 '네팔'의 높은 산과 깊은 계곡에서 만났던 많은 이들의 순박한 눈빛과 해맑은 미소가 아직도 내 뇌리에 선하다.
특히 우리 팀의 짐을 남로(머리띠)와 도코(바구니)로 높은 곳까지 운반해 주었던 포터들의 순수와 성실 그리고 그들의 땀이 여전히
내 가슴 속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렇기에 더 눈에 밟히고 애통하기 그지없다.
그래서일까?
내 심장이 박동할 때마다 마음 속에서 애절한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내년 연초에 다시 '뉴질랜드'의 '밀포드 트랙'으로 해외 원정 트레킹을 떠날 예정이다.
거기도 험준한 산악지대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앞날을 알 수 없기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소중한 이들에게 '사랑과 감사'를 적극적으로 전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차일피일 미루거나 주저하면 안된다.
시간은 절대로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기 때문이다.
혼사 얘기가 나와서 한가지 더 부연하고 싶은 게 있다.
고교 동창이 나에게 자기 딸의 결혼문자를 두 번이나 보냈다.
졸업 후 지금까지 44년 동안 단 한번도 만나지도, 통화도 한 적이 없었다.
어처구니가 없었고 못내 씁쓸했다.
백 걸음 천 걸음 양보할지라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
과거에 많은 세월 동안 나는 동창회를 위해 리더십을 행사했고 봉사했었다.
약 오백여 명 졸업생 중에 적어도 수도권에서 살고 있는 동창들은 내가 대부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이 자기 딸 결혼식에 초대하고 싶다는 인삿말까지 친절하게 덧붙여 청첩을 보내왔다.
그가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얘기는 다른 친구를 통해 들었다.
그러나 44년간 '함흥차사'였던 사람이 갑자기 E.Q나 S.Q 지수가 급상승한 것일까?
자신의 혼사가 다가오자 여기저기에 연락을 넣기 시작했다.
첫번째 문자에도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일주 후에 재차 보냈다.
어안이 벙벙했다.
정말로 유구무언이었다.
우리세대가 염치를 모르는 세대도 아니고 그런 나이도 아닌데 말이다.
무릇 인생 후반전은 자신이 땀을 흘렸던 만큼, 파종했던 만큼의 소출에 감사하며 인생의 마지막 무대를 겸허하게 준비할 시기다.
'인간관계', '재물', '건강', '명예', '평판'도 상술한 바와 별반 다르지 않다.
청춘기부터 자신이 경작했던 만큼만, 딱 그만큼만 정직하게 되돌려 받는 것이다.
그게 인생이다.
제발 우리 모두가 '견리사의'의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열차 안에서 태블릿 펜으로 한 자 한 자 찍다보니 어느새 '익산'까지 왔다.
KTX가 너무 빠르다.
이제는 슬슬 내릴 준비를 해야겠다.
다음엔 조금 느린 열차를 탈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당분간은 너무 바빠서 안될 것 같다.
내일도 혼사가 있는데 꼭 감사를 전할 분이다.
챙겨야 하고 챙기고 싶다.
2027년부터 나의 화두는 '은둔'이다.
인생 2막엔 의도적으로라도 '분주함'을 멀리하고 '내면세계'의 성숙과 조용한 '봉사'에 더 진력할 예정이다.
오늘도 KTX는 수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스토리를 태운 채 고속으로 달리고 있다.
창문을 때리는 빗소리가 되게 정겹게 들린다.
전주역에서 내리면 일단 따뜻한 '카페라떼' 한 잔을 마시고 싶다.
커피 주문 이전에 우산부터 사야할까 보다.
사랑하는 모든 분들.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빈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