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중순 아빠 일터 근처에 갑자기 고양이가 나타났다. 누가 봐도 손을 탔던 것처럼 보였고, 털에 윤기가 흘러 시골 관광지인 이곳에 누군가가 버리고 갔을 거라 추측했다.
구석에서 애옹애옹 울다가 관심을 보이는 관광객이 있으면 그 앞에 가 데굴데굴 구르면서 간식을 얻어먹었다.
그러다 고양이는 아빠 사무실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가 궁금증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름도 지어줬다.
그루밍을 왜 하는지도 궁금해했다.
아빠는 옷에 고양이 털을 묻히고 퇴근하게 되었다.
선비는 사무실에서 잘 먹고 잘 자면서 둔둔해져갔다.
그리고 아빠는 동물농장과 고부해를 챙겨보기 시작했다.
나는 중성화하지 않은 수컷 고양이인데다가 사람 손을 잘 타는 산책냥이였던 선비가 걱정이 됐다. 그래서 며칠 내내 아빠한테 목걸이라도 채우라고 닦달을 했다.
그랬더니 선비는 웨이터가 되어있었다.
팔불출이 따로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선비가 사라졌다.
나는 늘 염두에 두던 일이었다. 하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꼬박꼬박 사무실에 와 잠을 자고 밥을 먹었는데, 하물며 오전에도 있던 선비가 점심먹고 온 찰나에 없어졌다. 새 영역을 찾아 떠났다면 이렇게 하루아침에 갑자기 안 보이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퇴근까지 늦추고 선비를 기다렸고, 주말에도 사무실에 나가 선비를 기다렸다. 아빠는 점심먹으러 가는 길에 마주친 선비를 보고 자기가 지나쳐 버려서 선비가 삐쳐서 가버렸나... 생각하며 눈에띄게 우울해보였다.
그렇게 '고양이'란 단어는 아빠 눈치를 보며 우리집에서 금기시되었다. 아빠가 선비 얘기만 꺼내도 한숨을 쉬고 말을 잃었다.
아빠는 현수막을 걸었다.
우리 가족들은 여러 방면으로 선비를 찾으러 다녔다.
한 달 여가 지나고 우리 가족은 선비가 밥도 더 잘 주고 좋은 영역에 가서 정착했을 거라고 아빠를 위로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당근마켓에 빨간 넥타이를 한 선비가 우리 아파트 근처에서 밥을 얻어먹는다는 글이 올라왔다. 아빠 사무실에서 우리집까지는 약 20km가 떨어져 있는데 선비는 어떻게 여기 있었던 걸까....
사진 속 선비는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빨간 넥타이를 여전히 하고 있었고, 다행히 잘 얻어먹고 다닌 건지 더 통통해져있었다. 선비는 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집 베란다에서도 내다보이는 곳에 있었다.
아마 추측하건대 누가 달랑 들고 데리고 갔다가 차에서 뛰어내려서 도망친게 아닐까 싶다(백프로 내 개인적인 추측). 아빠 사무실에서 우리 집까지는 차로도 20분 넘게 걸리니까 선비가 제발로 이까지 왔을 리는 거의 없다.
아빠는 한달음에 글 작성자를 찾아갔으나, 바로 어제 임보자가 데려갔다는 말을 들었다. 임보자도 찾아갔다. 그러나 선비는 그 집에 없었다. 키우려고 접종도 하고 데려갔으나 집에 있는 고양이들과 합사가 힘들어서 마당에 내놓았다고 했다. 선비는 그 잠깐 사이 기존 길냥이들에 쫓겨서 도망을 간 이후였다. 그렇게 선비는 아빠에게서 더 멀어졌다.
나는 이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아빠의 두 번째 눈물을 보았다. (이거 약간 아빠가 부끄러워함)
이제는 밥을 챙겨주는 분들도 없고, 인가도 없는 곳에 선비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밥을 먹을 곳은 물론, 물 먹을 곳도 없었을 것이었다. 아빠는 근처에 있던 선비를 찾지 못하고 다시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사무실 직원들과 함께 밤낮없이 선비를 찾으러 다녔다.
현수막을 내걸었고, 정류장과 전봇대에 전단지를 붙이고, 퇴근하고도 매일 찾아가 선비를 불러댔다.
이 과정에서 아빠는 여러 캣맘들과 캣대디들의 도움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선비를 다시 찾으러 다닌지 5일 후 갑자기 아빠한테 사진이 왔다.
선비는 산속에 5일 가량 숨어있다가 배가 고팠는지 근처 소키우는 노부부가 있는 밭의 트랙터 위에서 왜옹왜옹 울고 있었다고 한다. 마침 그날 오전 밭에 가던 길에 선비를 찾는다는 현수막을 본 할머니가 아빠에게 전화를 주셨다.
할머니는, "누가 사람도 아니고 고냬이를 찾는다고 현수막을 걸었길래 내 하도 신기해서 잘 봐뒀제."라고 하셨다.
그렇게 선비는 다시 아빠에게 왔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선비는 어찌저찌 잘 찾아서 6월인 현재까지 잘 지내고 있으니, 임보자에 대한 너무 과한 비난은 삼가주세요🥲 물론 화가 많이 났지만 결국엔 찾았으니...)
선비를 중성화시키기로 했다. 시에서 하는 길냥이 티엔알 지원사업 대상자가 되었다.
전화번호가 적혀있는 더 멋진 목걸이를 얻은 선비.
빈 땅콩이 된 선비 약을 먹이기 위해 아빠는 주말에도 출근해서 선비 약을 챙겨줬고, 선비는 잘 회복했다. 그치만 아빠는 선비 땅콩을 없앴다는 죄책감(?)에 그날 집에 와서 소주를 깠다. 내가 위로해줬다.
아빠는 이제 선비에게 무릎까지도 허락을 했다.
원래 처음에는 선비가 책상에만 올라와도 내려놨다.
아빠는 선비가 없어졌을 당시 고양이를 찾는다는 글을 페이스북과 당근에 올렸고, 그 글을 본 여러 캣맘&캣대디 분들이 찾아와서 도와주었다. 아빠에게 고양이의 특성을 알려주고 함께 선비를 부르면서 도와주셨다고 한다. 아빠는 그렇게 캣맘과 캣대디들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과거 길고양이들 만나면 줄 간식들을 챙겨다니던 딸을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는, 이제는 길고양이 사료를 캣맘분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사료를 주문하게 되었다.
+ 사실상 선비 자랑하는 달글💛
+ 혹시 선비 위치나 지역을 안다고 해도 언급하지말아주세요
현재 선비는 외출냥이긴 하지만 현재 갤럭시태그를 달고 늘 위치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그 누구보다 재빠르게 사무실로 뛰어 들어온다고....) 제가 현재 공부중이라 올해 연말에 공부가 끝나면 집으로 데려올 예정🥰
행복해여해 선비야ㅠㅠㅠ 여시네 아부지랑 여시랑 행복해ㅠㅠ
빨간넥타이 하고있어서 넘 다행이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선뱌 아부지랑 행복해
ㅠㅠㅠ 넘 뭉클하다 선비 행복하길💕💕
너무 예뿌다ㅠㅠㅠ
미치겠다 너무 따수운 가족과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운 고녜이.. 정말 사랑해 ㅠㅠㅠ
너무너무기여운 야옹이네❤️
따수워ㅠㅠ 선비 아버님이랑 행복해라아
아부지랑 선비 그리고 이 글을 올려준 여시와 나머지 가족들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길
모두 행복하길❤️❤️
ㅠㅠㅠㅠㅠㅠ선비야 건강하게 잘지내
선비도 여시네 가족도 늘 건강하구 행복하길!
선비와 여시네 가족분들 모두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허어어엉 ㅠㅠㅠㅠ이 글 넘 좋아ㅠㅠㅠㅠㅠ선비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