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향기(向基)
박정희 생각과 결심.
1968년 1월21일 청와대 기습 음모사건과 프에블로 납북사건이 생기고 그 해 11월 울진, 삼척에 무장공비가
침투하는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이 자행되었다. 이에 정부는 1969년부터 10대 도시의 고교생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작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북한에게 당하고만 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미국에 대해
강력한 군비증강을 요청하였다. 그 중에는 공군력 강화를 위해 당시 최신예 전폭기인 F-4D(팬텀)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F-5A, F-86F, 세이버 전투기 밖에 없어 공군력이 너무 취약했다 미국은 수차
례 난색을 표시하다 결국은 월남전 혈맹인 한국의 청을 들어주게 된다. 1968년 한국 조종사 16명이 미국으
로 건너가 혹독한 훈련을 받고 1969년 8월 2 오후 3시 대구 비행장으로 팬텀기를 착륙시킨다. 8대의 팬텀기
는 3번의 공중급유를 받으며 태평양을 건너와 오키나와 미공군기지에 착륙해서 성조기를 지우고 동체에
태극 휘장을 새긴 뒤 제주도에서 마중 나온 우리 공군 전투기들과 합류하여 대구로 오게 된 것이다.
1969년 9월 23일 최초의 팬텀기 비행부대가 제 151 전투비행대대라는 이름으로 대구 공군비행장에
서 창설식이 거행되었다. 이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팬텀기를 조종해 태평양을 건너 온 위대한
보라매들을 표창한다. 대령 전치범(공사2기), 중령 김인기(공사3기), 중령 강신구(34회-조간6기,
37회 신성일의 형.) 중령 김재수(공사5기), 중령 이재우(공사5기), 중령 이원순(공사 5기), 중령 한증근(공
사5기), 소령 박근태(공사6기)에게 공로표창장을 수여한다. 이 행사에 참여한 강신구 동문은 배우로 유명
한 강신영(신성일 37회)의 형으로 소장까지 승진하였다 팬텀기 인수 계획에 참여했던 조근해(38회),
이광학(39회)동문은 나중에 공군참모총장과 공군사관학교 교장까지 진급을 하고 전역한다. 이런 경북
고등 출신 보라매들의 숨은 피와 땀 덕분에 우리 공군은 세계 최고의 공군력을 창설하게 된 것이다.
ㅡ 아상 사무사 님 께서 주신 사진과 안내 글 자료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