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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슈아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니이다.' (요한복음17장 3절 말씀)
샬롬. 우리 구주 예슈아 그리스도안으로 있는 진리와 믿음에서 난 새 생명으로 한 지체된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우리가 함께하여 한 주(主)안 으로 살아있는 유다형제의 손을 빌어 말세지말을 살고있는 우리에게 경계로 주신 주님의 편지를 대하고 있습니다.
※ 유다서 22절 말씀입니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 καὶ 》οὓς μὲν ἐλεεῖτε διακρινομένο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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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시간은 καὶ [kaí] 카이 로 그 뜻은 ''그리고'' ''또'' '"~에" '더하여''로, 우리가 그간 함께 하였던, 21절의 "그리스도의 긍휼에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함께 첨가하여 더 가질 것을 권합니다.
※※ 이 시간은 그 스물네번째 단어로 헬라어 Ἰουδαῖος, αία, αῖον [Iŏudaiŏs] 유다이오스 로 그 뜻은 '유대의' '유대인' '사람' 입니다.
※ 많은 관주말씀들을 주시는데 요한복음 가운데 "우리 주 예슈아 그리스도를 적으로 나타내는 유대인"부문 관주 말씀을 함께 살피시도록 하겠습니다.
< 요1:19, 2:18, 5:10, 15, 6:41, 7:1, 9:18,22, 10:24등.>
ㅡ. 요한복음에서 여섯번째로 주신 9장 말씀부문은,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요 9:18,22) 입니다.
※ 지난시간 오늘 말씀의 배경을 살피기전 나면서 소경된자가 주의 말씀을 믿고 보내심을 받아 씻고 낫게된 실로암(보내심을 받음, 실로, 샬롬)의 어원 샬라흐,
주께서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을 때에 나타내시려"를 말씀과 함께 그리스도가 세상(사람들)이 보게(영의 눈을 떠서 하나님의 뜻과 인생본연을 알도록 "보냄을 받았다")하는 빛 되심의 증거를 함께 살폈습니다.
※※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시자면,
성령은 사도 요한 형제를 통하여 전하시는 말씀에서 그(날때부터 소경이었다가 보게된 자)의 부모들이 왜 그렇게("우리는 소경으로 난 것만 알고 어떻게 아들이 낫게된 것은 모른다", 9:17절)말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그 이유(속마음)는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슈아 주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유대교 회당출입과 회(하나님의 백성회, 유대사회 생활공동체)에서 출교하기로 결의 하였으므로 그들의 보복같은 징계를 무서워하였기 때문이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 본문에서 말씀하는 출교(黜敎)는 헬라어 ἀποσυνάγωγος, ον [apŏsünagō- gŏs] 아포쉬나고-고스 로 기본적인의 의미로는 '사람이나 사물로부터~멀리 떨어져' 를 뜻하는 ἀπό [아포] 와 '집회소, 모이는 곳' 을 뜻하는 συναγωγή, ῆς, ἡ [쉬나고게 에서 유래한 것으로,
'회중에서 추방되다', '출교당하다', '쫓겨나다', '저주받다' 를 뜻한답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나고, 유대사회 공동체에서 따돌림당하며, 저주받은 자로의 비난과 따돌림 사회 공동체에서 외면당함(살기 힘들어짐)을 말씀합니다.
출교에 대하여는 요한복음에서만 세 번이 기록(요9:22, 12:42, 16:2)되었는데,
종교로 유대교 내에서 이러한 출교는 책망, 무기한 출교, 영원한 출교등 여러 단계가 있었답니다.
또한 이러한 출교는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 선민들의 회 가운데에서 끊어지는 것은 물론 유대인 피차간과의 교통 교제마저 단절되는 것을 말한답니다.
이는 당시 유대 사회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회당의 출입을 금하는 것만 의미하지 않고,
자녀들의 교육과 경제활동 문화등 사회의 모든 전반적인 활동에서 매장 또는 축출 당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이방인 취급(짐승들 처럼 여김)을 당하는 것을 말한답니다.
일반인 뿐만 아니라 많은 유대관원들과 부자들도 내심으로는 주를 믿으나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 것을,
밤중에 몰래 주를 찾은 니고데모나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 그리고 말씀(요 12:42)으로도 증거하고 있습니다.
※※ 그러나 출교(ἀποσυνάγωγος, ον [아포쉬나고-고스)의 원래 어원은 자식을 지극히 사랑하는 부모가 비뚤어 나가는 자식을 훈계 차원에서 얼마간 분리훈육시키는 개념이지요.
그러나 그 시간이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로서도 더욱 마음 아프고, 간절함으로 의(옳음)로 돌이키기를 기도하고 위하는 개념이지요.
'네가 네 아들에게 소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고 죽일 마음은 두지 말찌니라.(잠19:6)
"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 (잠22:15)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 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 12:6~8)
※ 그리고 '출교'라는 합성어 단어 ἀποσυνάγωγος, ον [아포+쉬나고-고스] 에서 '집회소' '모임(회)곳' συναγωγή, ῆς, ἡ [쉬나고게] 의 어원들을 좇아보면 σημαίνω [세마이노] 등으로 수가지인데, ]'알리다' '미리 지시하다' '전달하다' 등으로 집회소의 개념이요. '하나님의 뜻이나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사역등으로 하나님의 뜻을 서로간 사귐가운데서 나누어 알도록 하는,
하나님의 집 일들에 대하여 피차 정보를 나누고 여러사람들(하나님의 가족ㆍ백성들) 앞에 우리앞에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하신일들을 보고 하듯 하는 나눔과 사귐의 모임(회당/진리나눔의 장)을 회당(會堂)의 의(議)로 말씀 뜻합니다.
※ 그러나 주후 이천년 동안에도 많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이 유대교=>로마카톨릭=>개신기독교등 종교들을 통하여 우리 주께서 미리 알려주신 말씀대로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요 16:2),
출교와 옥에 갇히고 십자가형과 화형 목베임등 갖가지 잔인한 모양으로 죽임당하였음을 역사가 증언하고 있으며,
그것은 우리 주의 강림을 앞둔 말세 지말의 예언에는 에큐메니칼(세계종교연합)의 계교 교묘한 방식으로 더욱 심화할 것임을 예언으로 주시고 있습니다.
ㅡ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계 6:9~11)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4:13) ㅡ
※ 오늘 우리 각인의 골방으로 읽어 묵상하실 말씀은,
"그리스도인들의 회(에클레시아)'에서의 바른 징계(출회)의 본"으로 주신 형제 사도바울의 서신 권면입니다.
< 고린도전서 4장, 5:1~7, 고린도후서 2:1~11절, 12:21절, 43:5~6절 >
아멘. 할렐루야! 샬롬
<참고자로> ※ 종교기독교의 잔혹사 ※
종교재판은 특정 종교의 법적, 윤리적 기준에 따라 개인이나 집단을 처벌하는 제도를 의미합니다.
이 제도는 신의 의지를 사람 성직자들이 대변한다는 신탁(神託)명분 아래 사법 절차로 여기며, 집단의 신앙을 보호하기 위하여 필요하다는 논리로 "종교지도부와 세상권력이 서로 결탁하여 생기는 괴물로 나타나는 짐승"의 형태입니다. (현재. 국소적이지만 이슬람IS 나 탈레반의 예)
다양한 종교 전통에 따라 그 실행 방식이 다르게 나타나지만, 대체로 교리 위반이나 이단으로 간주되는 행동에 대한 처벌을 포함합니다.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에서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종교재판을 찾아볼 수 있으며, 이들은 종교 공동체 내에서 신앙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한 노력을 반영 한다는 명분입니다.
※ 1683년 스페인, 마드리드 대광장. 한여름의 축제 같은 분위기가 가득한 이곳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하지만 이날의 주인공은 춤추고 노래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광장의 중심에는 커다란 사형대가 세워져 있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벌어질 끔찍한 화형광경을 보러 모였습니다.
종교재판소는 이단자와 배교자들을 단죄하며, 그들을 화형에 처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호기심과 흥분 속에 이 끔찍한 장면을 기다리고 있었죠.
사형수들 중 가장 주목받았던 이는 17세의 아름다운 유대인 소녀였습니다. 그녀는 여왕에게 간절히 외쳤습니다.
“위대하신 여왕님, 제 젊음을 불쌍히 여겨주세요. 저는 단지 갓난아기 때부터 믿어온 종교 때문에 죽어야 하나요?”
여왕은 그녀의 절규에 마음이 아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종교재판소의 막강한 권력은 왕과 여왕조차 거스를 수 없었으니까요.
그날, 배교자와 유대인, 마녀로 몰린 21명이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들은 불길 속에서도 놀라운 용기를 보여줬습니다. 손발을 불 속에 내밀며 결코 굴복하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잔혹한 처형을 지켜보던 관중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끔찍한 장면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기독교 가톨릭의 종교재판은 단지 처형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은 공포와 속임수, 그리고 극한의 고문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피의자들은 몇 달 동안 감옥에 갇혀 어떤 죄로 기소되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재판관들은 “솔직히 자백하면 자비를 베풀겠다”며 거짓 약속을 하거나, 공포심을 조장해 < 이미 준비 조작된 각본에 따라 억지자백을 강요 >했습니다.
< 과거 우리나라 독재정궨들에서 정적이나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간첩누명을 씌우고 사형을 신속하게 집행해버리던 방식입니다.>
하지만 자백하더라도 기다리는 것은 무자비한 처벌과 더 끔찍한 죽음뿐이었습니다.
종교재판에서 가장 악명 높은 것은 바로 고문이었습니다.
피의자는 손발이 밧줄로 묶이고, 밧줄을 네 방향으로 당깁니다. 이 과정에서 관절이 뒤틀리고 살이 찢어지는 극심한 고통을 겪습니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피의자가 기절하면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고문을 시작했습니다. 피의자는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것 같은 고통을 겪게 되었죠.(거열형)
팔을 뒤로 꺾어 관절이 비틀어지도록 묶은 뒤, 도르레로 밧줄을 당깁니다. 관절이 탈구되고 피가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고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의사가 어긋난 뼈를 맞춰주지만, 그조차도 극심한 고통을 동반했습니다.
피의자의 몸을 쇠사슬로 감고, 도르레로 조여 뼈와 살을 찢어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도 감옥으로 돌아가 추가 고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 이 잔혹한 고문은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고문을 견뎌낸 사람들도 평생 몸과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가톨릭 종교재판은 신앙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 아래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권력과 사회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죠. 많은 사람들은 종교재판의 희생양이 되었고, 자신의 신념과 믿음 때문에 생명을 잃어야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이 아닙니다.
종교와 권력이 결합되었을 때, 인간성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역사를 기억하며, 종교와 권력이 가져야 할 책임과 한계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 일찍이 유대인 사도들로 부터 이단(많은 적그리스도들)이라고 배척당했던 종교화 배도자들이 바벨론시대부터 대를 이어온 이방 신전건축 장인들(freemason)과 로마의 권력이 만들어낸 바벨론종교 계승자 로마가톨릭이,
교리가 정립되어가자 ‘이단’이라는 죄목으로 유대인(특히 그리스도인들)을 죽였으니 결국 ‘이단’이라 지목한 상대방이 멸절할 때까지 무한 반복하는 아이러니입니다.
가톨릭은 이단 심문소를 통해 신속하게 반대파를 숙청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 효율적인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이 잔인한 기술은 유럽을 정복한 다음,
로마 교황청과 스페인예수회 콜롬부스등 야욕을 가진 탐험가(?)들과 결탁하여 아메리카 원주민 전체를 말살하는 식민정책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를 알지도 못했던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이단이라는 낙인을 찍어 그들의 문화를 파괴하고 정신까지 말살해 버렸으니 한층 업그레이드 된 종교악이 세계로 전파된 셈이었습니다.
이처럼 자신과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범죄 집단은 다른 문화뿐 아니라 무고한 생명도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프런티어 제노사이드)
※ 전 세계 선교(Mission)라는 미명하에 가톨릭교회가 역사적으로 수행한 행위는 단순한 종교적 선교를 넘어 식민지 정복과 폭력의 핵심적인 도구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심각한 반성과 분석이 요구됩니다.
15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유럽 열강의 식민 제국 확장 과정에서, 교황과 가톨릭 성직자들은 단순한 영적 지도자를 넘어, 식민주의 정당화와 실행의 중추로 작용했습니다.
이들은 토착민의 권리와 문화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교회의 권위를 기반으로 원주민의 인권을 조직적으로 침해하고 말살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토착민들은 생존 터전을 잃고, 집단 학살과 노예화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을 겪었으며, 이 유산은 오늘날까지도 깊은 상처와 분노로 남아 있습니다.
종교교회의 이 어두운 과거를 직시하고 알리는 행위는 단지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 것을 넘어, 종교교회들의 쇠퇴를 바라는 이들의 중요한 저항 행위로도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선 교황청이 식민지 정복에 부여한 ‘영적 정당성’의 구조적 메커니즘을 살펴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멀지않은 과거 1492년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한 직후, 교황 니콜라오 5세가 내린 Dum Diversas(1452)와 Romanus Pontifex(1455) 칙서는 비기독종교인의 땅과 주민을 정복하고 노예로 삼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이는 곧 식민주의자들에게 종교적 면죄부를 부여하는 체계적 도구였고, 1493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가 반포한 Inter Caetera 교서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신대륙 분할을 승인, 이른바 ‘발견의 원칙(Doctrine of Discovery)’을 국제 관례화하여 비기독교 땅에 대한 가톨릭 국가의 독점적 권리를 법제화했습니다.
이 논리는 무력 침략과 종교적 강압을 합리화하는 근간으로 작동했으며, 유럽 군대는 십자가와 검을 동시에 휘둘러 저항하는 원주민을 잔혹하게 탄압했습니다.
특히, 16세기 중반 이 원칙이 공식 폐기되기 전까지 전 세계 식민지화가 가속화되었으며, 미국 대법원 판결에 이르러서는 원주민의 토지 소유권 부정을 정당화하는 법리로까지 자리 잡았습니다.
이는 기독교회의 종교적 권위가 식민지 폭력의 도구로 전락했음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 과정에서 수많은 원주민들이 전쟁, 강제노동, 질병이라는 복합적 인과 아래 생명을 잃었으며, 그 배경에는 명백한 식민 권력의 착취와 의도적 학살이 자리한다는 점입니다.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의 대량 확산은 비극의 한 축이었으나, 이를 둘러싼 식민 행위자들의 가혹한 착취와 폭력 없이는 이해될 수 없습니다.
스페인 정복자들과 함께 행했던 가톨릭 성직자들의 개종 강요와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대한 ‘하느님의 이름’으로 행해진 처벌은 종교적 권위가 폭력과 탄압에 동원된 명백한 증거들입니다.
일부 초기 성직자들은 오히려 잔혹 행위를 조장하거나 정당화했으며, 반대 목소리였던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의 고발조차 전체 식민주의 흐름에 묻혀버렸답니다.
교회 자체가 노예제도에 적극적으로 혹은 방관하는 태도를 취한 점, 토착 신앙과 문화를 ‘이교도적’이라 규정하고 체계적으로 파괴하며 언어와 관습마저 금지하는 동화 정책을 실시한 점은, 단순한 종교적 확산이 아닌 문화적 제국주의로서의 바벨론의 계승 로마가톨릭 식민주의의 본질을 드러낸것입니다.
이후 식민주의 시대가 공식적으로 종료된 이후에도, 교회의 인권 침해와 문화 말살 행위는 새로운 양상으로 계속되고 있습니다.
특히 19~20세기 북미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벌어진 가톨릭 교회의 학대는 그 대표적 사례입니다.
캐나다와 미국 정부가 원주민 동화를 명분으로 가족과 떼어 놓은 아이들을 교회가 운영하는 기숙학교에 수용, 언어와 전통을 금지하고 신체적·성적 학대, 가혹한 체벌을 가한 사실은 인권적 비극의 연장선상에 있음의 증거입니다.
150,000명에 달하는 원주민 아동들이 139개 기숙학교를 거쳐갔으며, 그 중 많은 이들이 질병과 학대로 사망했으나 정확한 피해 규모조차 파악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2021년 브리티시 컬럼비아에서 발견된 215명의 어린이 유해는 이러한 잔혹사의 현실을 새삼 일깨웠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눈물 어린 공식 사죄는 상징적이었으나, 악어의 눈물같은 것이고,
진정한 피해자 지원과 보상이라는 실질적 조치가 부재함으로써 종교기독교회의 책임 회피는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
오히려 일부 가톨릭 매체가 사죄를 감정적으로 포장하는 방식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을 왜곡하는 모습은, 피해 회복과 화해 과정에 장애물이 되고 있답니다.
현재도 이러한 식민주의 유산은 원주민 사회와 전 세계에서 분노와 저항의 중심에 있기도합니다.
캐나다 원주민 지도자들은 교황청에 15세기 칙서의 공식 폐지, 토착민 권리 회복, 실질적 보상 요구를 지속하며, 과거 가해자와 그 유산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가 활발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선교사 후니페로 세라 신부의 동상이 2020년 시위대로 끌어내려지는 사건은 상징적인 사건이겠습니다.
동시에 일부 국가에서는 교회가 과거에 취득한 토지와 재산 환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증가하고 있으며, 가톨릭 내부에서도 반성과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수백 년에 걸친 깊은 상처를 치유하기에는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 가톨릭의 내부를 지배하는 영은 사탄인지라 거짓말과 행함없이 입술로만 반성이 그들의 하는 일들입니다.
기독교회의 도덕적 권위는 이러한 역사적 진실이 알려질수록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교회에서 등을 돌리는 이들이 증가하는 현실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되었습니다.
ㅡ 종교기독교 잔혹사 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