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에선 학생들에 가르친다 "한국처럼 강해지자"
전쟁 속에도 수업하는 키이우 학교
지난 6일 찾은 우크라이나 키이우 근교 하트네(Hatne) 마을의 ‘하트네 리체움(초·중등 11개 학년 과정이 개설된 학교)’ 10학년 지리 수업 주제는 한국이었다.
선생님이 만든 동영상에서 “한국은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의 위협 속에서 힘든 근현대사를 거쳤지만 1960년대 이후 기적 같은 경제성장을 이뤘다. 지금은 삼성·현대·LG 등 세계적 기업을 배출하고, K팝·K푸드·K드라마 등 강한 문화의 힘으로 세계적 리더 국가로 부상한 나라”라는 설명이 나왔다.
수업을 듣던 학생 베라(15)는 “한국의 경제적·문화적 성공 비결이 정말 궁금하다”며 “전쟁이 끝나면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 학교는 한국 정부의 지원으로 2023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10학년 지리 교과서를 채택해 사용하고 있다.
250여 쪽 중에서 6페이지 이상에 걸쳐 한국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나온다.
항상 중국이나 일본에 곁들여 기술되던 한국이 이렇게 부각돼 나온 우크라이나 교과서는 이 책이 처음이다.
교과서 제작에 참여한 우크라이나 교육과학부 출판국 관계자는 “한국은 원조받는 국가에서 원조하는 국가가 된 유일한 사례”라며 “이런 발전의 과정을 본받아 강한 나라가 되고 싶다는 희망을 담았다”고 했다.
전쟁 중에도 수업은 계속됐다.
“왜앵~” 하는 사이렌과 함께 공습경보가 울리자 곧바로 학생 수백 명이 일제히 교실 문을 열고 나와 줄지어 밖으로 향했다. 옥사나(50) 교감 선생님은 “학교 지하 대피소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학생들을 따라 내려간 대피소는 보통 방공호와 달랐다.
벽과 천장을 밝게 꾸몄고, 복도를 따라 여러 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었다. 각 공간은 다름아닌 교실들이었다. 칠판과 화이트보드부터 학생들을 위한 책상까지 모두 구비돼 있었다.
옥사나 선생님은 “한 번 공습이 시작되면 몇 시간씩 지속되기도 한다”며 “그 와중에도 수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이렇게 교실들을 준비해 놨다”고 했다. 학생들은 총 3개의 교실과 또 다른 3개의 대형 공간에 조금 전까지 함께 수업하던 선생님들과 함께 머물렀다.
마르가리타(46) 교장 선생님은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멈춰선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이 성공한 배경에는 교육에 대한 큰 관심과 투자가 있다고 들었다.
우크라이나인에게도 한국 못지않은 열망이 있다”고 했다.
또 “전쟁은 언젠가 끝날 것”이라며 “그때 국가를 다시 일으킬 인재, 공장과 산업을 다시 세울 전문가를 키우려면 한순간도 수업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방공호에 내려온 4학년 아르템(9)군에게 “겁나지 않느냐”고 물으니 “자주 있는 일이다.
익숙해서 괜찮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선생님은 “가끔 시험 중에 공습경보가 울리면 시험지를 들고 그대로 이곳에 내려와 마저 문제를 푼다”고 했다.
잠시 후 공습이 끝났다는 안내가 나오자 학생들과 선생님들은 다시 지상의 교실로 향했다. 옥사나 선생님은 “교실과 대피소 사이를 빠르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출입구를 여러 개 만들어 놨다”고 했다.
하트네는 2022년 시작된 전쟁 초기에 러시아군이 바로 마을 입구까지 진격해오면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져 큰 피해를 봤다.
학교 건물도 러시아군의 드론(무인기) 공격과 포탄 파편에 일부 파괴됐다. 마르가리타 교장 선생님은 “그땐 학교에 제대로 된 대피 시설이 없어서 학부모들이 직접 모래주머니를 쌓아 창문을 막았다”면서 “공습을 받을 때 벽 두 개로 가로막힌 곳에 있어야 더 안전하다는 ‘두 개의 벽 원칙’에 따라 학생들을 복도로 대피시키는 미봉책을 써야 했다”고 했다.
그해 9월 정상 수업이 재개되면서 지역 교육청과 하트네 시 당국이 학교 지하 공간에 제대로 된 대피소를 조성하기로 했다.
교사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대피소를 수업이 가능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현재 우크라이나 여러 학교가 비슷한 ‘대피소 교실’을 만들고 있다.
한국을 비롯해 미국·일본 등의 인도주의 자금 지원이 큰 보탬이 됐다.
학교 건물 한편에 조그마한 역사관(館)이 있다.
출입문 양쪽으로 여러 군인과 학생들의 사진이 붙어 있었다. 옥사나 교감 선생님은 “왼쪽은 전쟁 초기 우리 마을을 지키는 과정에서 전사한 졸업생들, 오른쪽은 지금 전방에서 러시아군과 싸우고 있는 졸업생들의 사진”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는 이 학교에서 싸우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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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에선 학생들에 가르친다 “한국처럼 강해지자”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