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1~11
◈ 새번역 ◈
1 유월절과 무교절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어떻게 속임수를 써서 예수를 붙잡아 죽일까' 하고 궁리하고 있었다.
2 그런데 그들은 "백성이 소동을 일으키면 안 되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고 말하였다.
3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나병 환자였던 시몬의 집에 머무실 때에,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는데, 한 여자가 매우 값진 순수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4 그런데 몇몇 사람이 화를 내면서 자기들끼리 말하였다. "어찌하여 향유를 이렇게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서,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줄 수 있었겠다!" 그리고는 그 여자를 나무랐다.
6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만두어라. 왜 그를 괴롭히느냐? 그는 내게 아름다운 일을 했다.
7 가난한 사람들은 늘 너희와 함께 있으니, 언제든지 너희가 하려고만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8 이 여자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곧 내 몸에 향유를 부어서, 내 장례를 위하여 할 일을 미리 한 셈이다.
9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
10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를 넘겨줄 마음을 품고, 그들을 찾아갔다.
11 그들은 유다의 말을 듣고서 기뻐하여, 그에게 은돈을 주기로 약속하였다. 그래서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적당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 묵상 Point ◈
(출처 : 묵상과 설교 / 성서유니온)
1) 여인의 용기 있는 헌신
여인은 할 수 있는 최고의 헌신을 표현하려 했다. 그럼에도 실행하는 데는 많은 결단과 용기가 필요했다. 자신의 전 재산 같은 것을 한 번에 써야 하고, 남자들의 식사에 여자가 가서 향유를 붓는 다소 무례한 행동을 해야 했다. 망설였을 수 있지만 이 일을 행하기로 결심했다. 감사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다. 헌신은 저절로 혹은 강요로 되지 않는다. 반드시 주의 은혜에 대한 사랑과 감사의 경험이 전제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내적 감사가 가치 비교를 통해 용기 있는 외적 표현으로 연결되어야 진짜 헌신이다.
2) 제자들과 유다의 반응
여인의 행동에 대해 유다를 포함한 제자들이 분개했다.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는 큰돈을 낭비했다는 이유에서다. 율법 중 하나인 '사람 사랑'에 헌신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들의 반응 이면의 모습은 다르다. 예수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누가 크냐는 논쟁을 해왔고, 지금도 그 마음으로 서로 경쟁하고 있다. 유다는 곧바로 종교지도자들에게 가서 돈을 받고 예수를 넘겨주기로 약조한다. 왜 예수와 함께 있었음에도 두 마음을 품고 따를까? 참 신앙과 헌신은 한 번의 말과 행위로 완성되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진리를 통한 생각의 변화를 삶으로 표현하는 지속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것을 놓치면 위선의 가면을 쓸 가능성이 높아진다.
3) 예수의 반응과 가르침
예수가 흥분한 제자들을 진정시킨다. 여인은 지금 향유를 부어 장례를 미리 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여인의 행동은 단지 감사를 표현한 것이었지만, 그녀의 순수한 헌신은 부지중에 하나님 사역에 동참한 것으로 칭찬받은 것이다. 한편, 예수의 죽음 언급은 영광만을 생각하는 제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한 일침이자 곧 있을 유다의 배반 결과를 미리 말한 것이다. 여전히 제자들은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의 가르침은 모두를 향해 있지만, 순전한 감사를 표현한 자만 긍정적인 결과를 얻었다. 말씀은 저절로 열매 맺지 않는다. 우리 편에서의 바른 응답도 중요하다.
◈ 설교 / 예수님을 대하는 사람들의 상반된 태도 ◈
(출처 : 생명의 삶 플러스 / 두란노)
사람마다 관점이 다릅니다. 관점이 다르면 똑같은 일이라도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르게 반응합니다. 사람의 관점을 형성하게 하는 것은 마음입니다. 사람은 마음이 향하는 것에 영향을 받습니다. 본문에는 예수님을 대하는 두 가지 전혀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자신이 가진 값진 것으로 주님께 헌신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은 주님의 몸값을 대제사장들과 흥정합니다.
예수님이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고 계실 때 어떤 여인이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고는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3절). 그녀가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향유는 노동자의 1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값진 것이었습니다. 이 여인이 이렇게 값진 것도 아끼지 않은 이유는 예수님이 그녀에게 가장 귀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혀 아까워하거나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께 드렸습니다.
제자들은 이 모습을 지켜보고 화를 내며 여인을 책망했습니다. 여인이 향유를 낭비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향유를 비싼 값에 팔면 그 돈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도울 수 있는데 의미 없이 다 부어 버렸다는 것입니다(5절). 그러나 제자들의 비난은 틀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니라 여인의 손을 들어주시며, 그녀의 행동이 당신의 장례를 예비하는 좋은 일이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6절). 우리의 헌신을 평가하시는 분은 주님 한 분입니다. 누군가의 헌신을 내 잣대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이 여인의 행동은 예수님의 장례를 예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인류의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실 주님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든 도울 수 있지만, 주님은 이제 곧 십자가를 지실 것입니다(7절). 따라서 여인의 행동은 바로 지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성도는 헌신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행동을 칭찬하십니다. 여인의 행동에 대한 예수님의 관점은 제자들의 관점과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은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여인이 행한 일도 전해져 기억되리라고 선언하십니다(9절). 주님을 위한 헌신의 행위는 잊히지 않습니다. 주님이 기억하시고 칭찬해 주십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베푸는 작은 섬김도 주님이 다 기억해 주시기에 우리의 수고는 주님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최고의 헌신을 드린 여인과 정반대의 길을 갑니다. 대제사장들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몸값을 흥정합니다(10~11절). 욕심에 사로잡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통해 얻을 것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더는 예수님을 따라다녀 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유다는 은 30을 받고 예수님을 넘겨줄 기회를 찾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유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을 수 있다는 것을 특별한 헌신의 기회로 보았습니다. 그녀는 단 한 번뿐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가룟 유다는 욕망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주님을 자신의 욕심을 이루는 수단으로 보았습니다. 헌신과 배신을 가르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였습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의 관점이 아니라 여인의 관점으로 주님을 바라보고 섬겨야 합니다.